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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산조각
    산하령(천애객) 2021. 8. 29. 21:00

    * 청애산 귀곡 귀곡주 괴담 이야기! 

     

     

    사람들이 잘 모르는 진실이 있다. 진실 혹은 거짓. 둘 중 어느 한쪽을 반드시 선택하여야만 한다면 너는 과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어느 날 온객행은 뒷짐을 진 채 청애산 귀곡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던 중, 거처를 향해 돌아가는 길에 그런 소리를 들었다. 가까운 근처 객잔에 술과 요깃거리를 사러 나갔다 오니까 주변 인근 터에서 사람 여럿이 모여 누군가가 마구 수근거렸다. 다들 무슨 일인지 한참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 중에는 몇몇 낯이 익은 강호인 녀석들도 있었다. 대체 어떤 이야길 주고받는 것인지 궁금해서 그들의 대화에 끼려고 조심스레 걸음을 살며시 뗐다가 금방 제 쪽을 향해 바라본 시선들에 온객행은 영문을 몰라 괜히 눈알을 이리저리 두리번 굴렸다. 

    "무슨 일이죠?" 

    "젊은 공자, 그거 알아? 요즘 들어 최근에 종종 목격된다는 괴담이 하나 있어" 

    "괴담이요? 무슨 괴담인데요?" 

    "아, 귀곡의 귀곡주 말이요! 으.. 말도 마시오~ 얼굴을 모르니 확실하진 않다만 얼핏 봤을 때 탐스러운 긴 흑백 머리의 젊은 남자가 붉은색 옷을 입고 이 청애산 근처에 간간히 나타나 목격된다는 정보가 있소~ 잘못 들어온 마을 아이들에게 풀 반지를 나눠주더니 갑자기 귀공자스러운 인사를 하더래~ 그것도 애들이 고맙다고 뒤돌아 말하려고 하면 저만치 먼 방향에 서 있다거나.." 

    "그렇군요. 세계는 원래 신비함 투성이잖아요." 

    "문제는 그 뿐만이 아냐~ 어느 순간 깨달았을 땐 홀연히 사라졌다던가.. 역시 귀곡의 귀신이라 아주 신출귀몰 해~ 하여튼 요즘 같은 무서운 세상에 원-" 

    누가 봐도 자기자신, 온객행이다. 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현재 그는 강호의 여러 문파들과 함께 어느 의미론 악명 높은 청애산 귀곡의 현 귀곡주였으니까- 3천 악귀의 우두머리로서 가장 정점에 서 있는 자다. 강호, 아니 모든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마음과 목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잔인하게 살인을 즐기는 미친 악귀라는 단면만 바라본 뒤 광기 어린 존재로 만들었으며 더 나아가, 잔혹하고 무자비한 귀신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편으론 기분이 좀 우울한듯 씁쓸해진다. 

    그가 말하는 존재가 누구인지 짐작이 가서 그저 미미한 웃음만 지은 온객행이 다소 말끝을 흐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에- 무섭죠.. 뒷쪽 세계에선 우리도 모르는 이유 없는 악의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만연하게 도사리고 있으니까요..' 때마침 어깨 너머 뒷쪽에서 본인만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난 방향으로 그는 살며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거 아무리 봐도 주인님잖이요!"

    "시끄러워~ 뭘 그리 자랑스러운 듯이 우쭐대며 말해? 게다가 귀곡주는 나이지,  네가 아니거든" 

    "치, 굳이 숨길 것은 아니잖아요. 내 앞에선 그렇게 고고한 신선인 척 안 해도 되거든요. 그래봤자 우린 귀신인데 신선이 무슨 밥 먹여 주나-" 

    "우리 아상이 못 하는 말이 없어~ 어이, 이거나 들어" 

    "또 부려 먹는다니까- 알았어요. 지금 든다구요!" 

    고상이 괜히 투덜거리며 입을 삐죽 내민 채 샐쭉거렸다. 그새 못 참고 꼭 한 마디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녀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돌직구를 와르르 쏟아냈다. 온객행은 그것을 주워 담기 바빴다. 사람들이 각자 제가 상상한대로의 귀곡주의 모습을 그림 그려 보지만 저마다 제각각이었다. 아이들은 기억한다고 해도 말로 옮기면서 살짝 왜곡이 생겨나, 그래서인지 이것저것 하눈에 딱 확인해도 너무나 확연히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결국 강호 사람들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포기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모여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제 갈 길을 가자, 청애산 공터는 텅 비어졌다. 한쪽 손을 허리 뒤에 얹진 채 다른 한 손 안은 두 개의 호두를 딱딱 소리 나게 굴릴 때 마다 부딪히고 흔들려 가둬둔 목소리가 비명을 지른다. 마음이 불안정하게 심장의 고동이 뛴다. 단 한번의 저항할 힘 따위 없도록 어긋난 윤리. 단단한 껍질 속에 든 열매는 무언가 하면 안 될 듯한 금지된 금단 같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온객행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벼랑 끝에 섰다. 다른 산에 비해 유난히 커다란 바위와 거친 지면과 가파르게 깎인 경사 진 산기슭을 자랑하는 절벽이 많은 편이었다. 

    애초에 일부러 이런 인적이 찾기 힘든 공간을 귀곡의 거처로 자리 잡은 것도 이해가 된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 앞에 오색찬란한 연이 올라간다. 하늘을 향해 올라가다 말다가 이내 높은 나뭇가지에 걸렸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한 아이가 '어?' 라고 말하는 순간, 마치 세상의 시간이 갑자기 멈춰버린듯 움직이지 않고 왠지 주변이 색깔이 없이 마치 흑백 같은 느낌처럼 사위가 확 어두워졌을 뿐이다. 당황해서 주변 사람을 부르려 했으나 차마 목소리조차 잘 나오지 않았다. 

    "어라? 어라? 어라? 꼬마 소년- 후후훗-" 

    "길을 잘못 들었군~ 마을로 향하는 길이라면 저쪽을 돌아 빠져나가면 된다. 어서 가거라~ 여긴 네가 있을 곳이 못 되" 

    "제 연이 나무에 걸렸는데.."

    "울지 마라~ 내가 가져다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주인님, 그냥 무공 쓰는 게 훨씬 빠를 걸요. 쓸데없이 잔머리 굴려 도구 쓸 생각하지 마시고요. 그게 훨씬 티 나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그리 할 참이었거든" 

    온객행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오색찬란한 연을 들었다. 시선의 끝이 왠지 자꾸 연을 따라가게 만들어서 온객행이 잠시 하늘 위를 향해 너울거리는 연을 계속 응시하다가 문득 생각 나 다시 소년에게 그것을 건네 주었더니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눈을 비비며 금방 울음을 그친 후 온객행 쪽을 쳐다보았을 땐 이미 그는 그곳에 없었다.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전에 어느 순간 온데간데 없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정말 신기한 일이라 생각하면서 손에 연을 꼭 붙잡고 아까 그가 알려준 방향을 따라 총총 걸어간다. 

    사위를 둘러싼 미망이 점점 걷힌다. 그리고 그가 건 능력의 효과가 점점 사라지는지 서서히 흑백이었던 주변이 원래 색채가 되어 돌아오면서 다시 시간이 움직였다. 멈춰있던 사람들과 사물이 움직이는 걸 보아 완전히 그 능력이 사라진 것 같았다. 멀리서 무사히 길을 빠져나져 나가는 걸 지켜보던 중 괜시리 옛 생각이 나버린 터라 과거의 기억에 빠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자서의 이름을 부른 채 한탄할 새도 없이 분노로 몸이 부들 떨며 온객행은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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