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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닮은 괴리감
    산하령(천애객) 2021. 8. 29. 20:55

    * 산하령 × 유리미인살 크오로 엽백의랑 오동이 만나는 내용 

    * 약 2천자 단문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인지 모른다. 가물한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머리를 짚으면서 일어나려던 찰나, 강렬한 미각이 느껴진다. 까끄라운 입안에서 얼룩진 피맛에 숨을 토해낸 후 엮겨움에 인상을 쓰며 흠칫 몸을 떨었다. 주변을 살피며 상황 파악하려 애썼으나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고 뭘 하고 있는 건지 몰라 씁쓸한 피맛만을 느낀 채 갈증이 차올랐다. 

    사위가 고요했다. 어느 곳도 들려오는 소리 따윈 특별히 없다. 앉은 자세를 취한 채 사지가 결박당해 기둥에 동여매여졌고 조금이라도 이리저리 움직일 때 마다 차가운 쇠사슬이 바닥에 끌려 칭칭, 찢어질 듯한 소리가 났다. 이 상태로 몇 시진 정도 지났을까. 아마 꽤 오래 이렇게 방치된 모양이다. 특유의 무거우면서 싸늘한 감각이 뼛속까지 아려와 별로 좋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나 어서 탈출할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 같다. 사지는 묶여 검을 빼어들 수 없는 노릇인 데다 천천히 들숨과 날숨을 번걸아 내뱉으면서 호흡하니 어깨의 날개뼈 마다 근육이 아파와 욱신거렸다. 

    저 멀리서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 들어온다. 끼익-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자가 나를 납치해온 인물인가? 그렇다면 왜? 무슨 이유로? 내가 저항했던가? 천인의 경지에 이른 무공이 얼마나 강한데 설마 육합심법보다 더 강한 무공을 쓰는 녀석이 있다고...?! 

    "특이하게도 나와 얼굴이 같아서 말이지~ 무슨 역용술이라도 쓴 거냐? 날 사칭하는 건가" 

    "당신은 누구지? 날 이렇게 만든 건 네 놈이냐" 

    말투로 보나 발음으로 보나 이 마을에 사는 사람은 아닌듯 했다. 차가운 광기로 조소하는 표정에는 기묘하게도 작위적인 문장이었지만 결코 잘못 들을 리 만무하다. 묶여진 사슬을 벗어나려 발버둥 쳤으나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괜히 힘만 소진하고 헛탕만 쳤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손목과 발목이 너무 뻐근하여 탈출 계획이고 뭐고 지금은 다 포기해야 할 듯 성 싶었다. 그의 말이라도 좀 들어볼까- 상황 설명이라도 듣고 이해하면 마음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을 뿐이다. 

    "말해~ 유리잔은 어디에 숨겼나?" 

    "유리잔? 유리갑이 아니라..?!" 

    그의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유리잔은 또 뭔가? 유리갑과 연관되어 있던가? 내 기억상으로 그런 물건은 없었던 것 같은데? 

    엽백의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가장하며 반문했다. 어이 없었지만 왜 잡혀온 건지, 또 현재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일인지 자신도 앞뒤 전후 사정을 알아야 했으니까.. 게다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깔보는 것 같은 광기 어린 조소는 퍽 기분 나빴다. 

    "음.. 뭔가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존재인가 보군" 

    "뭐가?" 

    "우리는 각 문파 사람들이 모두 봉인된 심혼이 담긴 유리잔을 찾아 열으려 하는 자들과 어떻게든 감추려 하는 녀석들로 나누어져 서로 팽팽히 날이 서 있어" 

    "훗, 그런가~ 날선 긴장감이라면 우리 쪽도 다를 바 없는데-" 

    "그쪽도?" 

    "자꾸 그쪽이라 그만 불러라~ 내 이름은 엽백의다." 

    "헤에- 그냥 오동이라 부르면 돼" 

    어쩌다 보니 대충 통성명까지 해버린 뒤 엽백의는 유리갑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처음엔 단순히 나쁜 녀석이라 생각했던 오동은 생각했던 것 만큼 아니었다. 소름 끼치지만 대화의 중간중간에 자신이 듣고 있다는 의미로 계속 반응하며 분위기를 이끌어간 것도 그였다. 

    "이 세계는 신기한 일도 일어나는군~ 설마 나와 정말 똑같이 생긴 닮은 얼굴을 한 사람과 만나는 일은 몇 수억 만 분의 하나일 정도로 우연일 테니까-" 

    "나도 널 처음 보고 네가 내 모습을 베꼈다고 생각해서 요즘 새로운 변장술이라도 연구하는 건가 싶었거든~ 피차일반이지" 

    굳이 차이점을 찾으려 하면 두 사람은 닮은듯 달랐다. 외견은 분명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목소리는 오동 쪽이 훨씬 더 어조가 빠르고 가벼운 느낌이었다. 반면, 엽백의는 다소 낮고 진중한 목소리였으며 입고 있는 옷부터 이미 서로 상반된 흑백이란 점에서 대조되었다. 그는 검을 다루는 실력이나 무공이 그리 뛰어나지 않아 약한 편이지만 온갖 비열한 속임수를 써서 두뇌 회전이 빨랐다. 그러니까 자신이 검사로서도 천인의 경지에 오른 무공의 실력자로서도 저항 한번 하지 못한 채 쉽게 당해버렸는지 전부 납득하였다. 

    괴리감이 느껴질 만큼 성격은 전혀 다른데 신기하게도 둘 다 모두 말하는 억양이나 손짓과 몸짓, 그리고 웃는 부분이나 놀란 표정조차 서로 같다는 사실을 알면서, 이번에는 동시에 시선을 옆으로 돌려 경멸이 섞인 헛웃음을 흘렀다. 문득 우리는 비슷한 기시감을 느낀다. 최악이다. 눈앞의 자기자신과 같은 얼굴이라 간단히 감정을 읽어내는 것은 불과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아주 짧은 시간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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