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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미치 온 스테이지 - 눈물의 변신
    특촬물 2020. 4. 25. 01:13

    * 가면라이더 가이무의 4호 라이더인 가면라이더 잔게츠 외전 연극 무대, 리더가 사라진 후 아임이 대리를 맡아 팀을 이끌면서 그가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하기까지 과정을 담았습니다. 여러 과거 날조가 가득한 글이군요. 물론 초록빛 인베스라던가, 새 하얀 오버로드라던가 잔게츠 무대에 대한 스포가 있으니까 이 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아임, 눈물의 변신! 이라는 걸로 테마를 정해봤는데 사실 이거, 제가 너무 보고 싶어서 쓴 글이네요. 왠지 이러이러하지 않았을까? 글라샤나 각 인물의 마음이 되어 막 캐입해서 썼네요. 

    * 가라이더 가이무의 키와미 암즈 테마곡인 乱舞 Escalation (난무 에스컬레이션)에서 2절 하이라이트 파트 첫 소절, [우리들이 최강의 힘을 가진 자물쇠로 연다면 우리들의 운명은 어디로 이어지는걸까] 가사를 인용했습니다. 가이무 연성을 하면서 한번쯤 소재로 넣고 싶었던 좋아하는 가사인데 이번에 이렇게 소설에서 넣을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뭐? 리더가 사라졌다고?" 

    "아임- 역시 며칠동안 리더가 안 보인다는 건.." 

    지금 팀 오렌지 라이드의 아지트는 초비상 상태가 되었다. 어디 조직에서 모두를 이끌 리더라는 존재가 없다는 것은 당연히 큰일이다. 거리를 정찰하러 갔다오겠다고, 혹시 모를 인베스의 습격에 대비해야 된다고, 상냥하게 웃으면서 아지트를 떠났던 그 날이 마지막 본 리더의 모습이었다. 아마 어딘가에서 싸우다가 심하게 부상 입고 혼자 도태된 것은 아닐까 싶었지만 파이몬의 말처럼 역시 그렇다면 팀 바로크 레드나 팀 그린 돌즈의 누군가가 발견했을 것이다. 

    팀의 2인자인 아임은 다른 팀원들에게 모두 나눠서 찾자는 말을 한 뒤 자신도 얼른 리더의 행방을 찾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몇 달이 지났다. 그동안 아무리 찾아봐도 조그만 단서가 될만한 흔적 따위조차 없었다. 토르키아의 지하 도시 여러 곳을 전부 샅샅이 찾아봤지만 그 어디에도 리더의 모습은 전혀 온데간데 없이 보이지 않았다. '찾았어?' 아임의 말에 파이몬이 '아니-'라고 대답한다. '역시 안 보이네요. 우리, 어떻게 되는걸까요? 아임 씨-' 구시온이 울상이 되어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바로크의 리더는 글라샤, 돌즈의 리더는 포라스인데 이제 오렌지의 리더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걱정되는데 무슨 메시지라도 남겨놓던가... 왜 안 보이는거야...." 

    아임이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채 그 자리서 털석 주저앉았다. 그는 애써 눈물을 참으면서 가만히 CCTV를 올려다 보았다. 토르키아 공화국 내 가장 위험한 땅인 지하 도시이기에 한순간이라도 절대 방심할 수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저 곳곳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를 모두 확인하고 싶은 지경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지하 도시의 바깥에선 귀족들이 저 감시 카메라로 철저히 지켜보며 단지 우리들이 하는 게임을 즐길 뿐일테니까 현재의 아임으로선 역부족이었다. 너무 분한 마음에 그는 주먹으로 땅바닥을 세게 내리쳤다. 

    사람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세계가 너무 불합리적이다. 이 세계에 어른이란 없다. 어른이라면 다만 지하 도시 바깥에 존재하는 귀족들 뿐이었고 지하 도시는 모두 청년들이었다. 즉, 언더 그라운드 시티 안, 여기엔 어른이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8년 전 그 사건 때문이라고 생각해 조금 원망했다. 이그드라실이라 하는 거대 기업이 들어와서 이 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멋대로 어떤 실험을 행하더니 결국 끝에서는 실험이 실패되고 토르키아가 불살라진 그 엄청난 사건이 이면에 있었다. 

    그리고 몇 년 후가 지나 오늘날 일부 저희들에게 덜컥 록시드와 센고쿠 드라이버를 건네주면서 끝까지 계속 싸워서 살아남아 이긴 한 팀만이 바깥 세상으로 내보내주겠다고 서로 죽고 죽이는 서바이벌 게임을 시킨 채 방치하고 왠지 모르모트 취급을 당하는 걸 즐기는 귀족들이 당연히 아임은 죽을만큼 싫었다. 정말이지, 이곳엔 아무도 방치된 자신들을 봐줄 제대로 된 개념 박힌 어른이 단 한명도 없나 싶었다. 

    언젠가부터 지하 도시에서 크랙 너머 들어온 헬헤임의 숲이라던가, 갑자기 인베스가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한다거나, 저마다 팀을 결성하여 팀끼리 죽고 죽이는 그런 무자비한 운명이 난무하는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거나 하는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현재로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한없이 바깥 세상을 갈망한 채 죽느냐와 죽이느냐의 두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임, 그런 게임이다. 

    그게 아임의 마음을 더욱 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더러 어떡하라는거야..' 다소 말끝을 흐린 아임이 한쪽 무릎을 세운 뒤 팔을 괴었다. 그 후로도 계속 연신 마른세수만 하던 그를 파이몬이 가만히 아무 말 없이 한쪽 손을 툭 얹었다. 파이몬도 구시온도 지금 굉장히 분한 상태겠지- 아임은 자신이 힘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미치자, 곧 눈물을 닦은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파이몬- 구시온- 나, 한번 더 리더를 찾아볼께~ 그러니까 우리 다시 한번 희망을 갖고 찾아보자!" 

    "아임 씨...." 

    "그래야 아임이잖아? 좋았어! 우리도 어서 힘내보자고-" 

    셋이서 힘찬 기합을 넣은 뒤 헤어져 다시 리더를 찾았다. 파이몬과 구시온이 열심히 찾고 있을동안 아임도 힘내서 리더 찾기에 돌입했다. 이대로 더 이상 리더를 찾을 수 없으면 어떡하나 싶었다. 가만 그러고보면 생각보다 리더한테 의지한 날이 참 많았다. 뭐만 하면 리더와 항상 의논하거나 상담하는 일이 많았으니까 언제까지나 계속 옆에서 함께 할 줄 알았던 그가 이리 없는 상황이 막상 닥치고 나니 앞으로 오렌지 라이드가 어떻게 될지 팀의 앞날이 막막하였다. 

    매번 느긋한 리더였지만 할땐 정말 딱 카리스마 있게 무언가를 펼칠 줄 알아서 그나마 지금까지 팀 오렌지 라이드는 아무 별탈 없이 잘 지내올 수 있었다. 팀원끼리 싸움 말고 넓게 생각했을 때 헬헤임으로부터의 인베스의 습격이라던가, 다른 팀들과의 사이라던가 등 그닥 이렇다 할 사건 사고나 특별한 분란 없이도 잘 지내올 수 있었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불과 겨우 3~4명 정도 소수 멤버로 시작했던 것이 어느 새 팀원들이 한명씩 늘어나고 팀 바로크 레드나 팀 그린 돌즈 따위 강한 팀들 사이에서도 팀 오렌지 라이드가 조금씩 강해짐에 따라 점점 이름만 대면 알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또한 현재 다른 팀들 못지 않도록 여기까지 팀을 강대하게 성장시켜낸 것은 다름 아닌 리더의 능력과 노력이 꽤 컸다. 

    물론 파이몬과 구시온도 제 나름대로의 위치에서 아주 확실히 한몫을 잘해주었는데다 마찬가지로 아임도 팀의 2인자라는 타이틀답게 멋진 활약담이 많았다. 하지만 어쨌든 리더라는 자리에 있는 존재는 먼저 나서서 모두를 이끄므로 역시 대단하였다. 

    "어? 이것은..?! 이게 뭐야.. 리더가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하는 도구잖아? 록시드랑 센고쿠 드라이버가 왜 여기에 떨어져 있지....?!" 

    한참 걷다가 우연히 한적한 곳의 거리까지 이르렀을 때다. 이전에 리더가 쓰던 물건이 떨어진 것을 발견한 뒤 급히 뛰어왔다. 록시드와 센고쿠 드라이버, 그걸 허리에 차고 포즈를 취하면서 「변신!」이라 외치면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할 수 있게 된다. 리더는 그 변신 시스템을 사용해 인베스를 물리친다거나 같은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팀들 간의 싸움에 자주 이용하기도 하였다. 

    그 순간 아임은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뭔지 잘 알 수 없었으나 직감적으로 든 촉이 그렇게 제 머릿 속에 말해주는듯한 느낌이었다. 리더가 사라졌을 법한 방향을 한참 쳐다보더니 그가 이내 리더가 쓰던  물건을 든 채 각각 흩어져 분산된 팀원들을 모아 팀 오렌지 라이드의 아지트로 돌아왔다. 

    "이것 봐봐~ 리더의 물건이야" 

    "정말이네- 어이, 아임! 대체 이거 어디서 주워온거야? 어디서 발견했는데?" 

    "뭔가 좀, 거의 한적한 거리까지 간 것 같아" 

    "저걸 쓰면 아머드 라이더가 된다죠?" 

    쇠파이프를 내려놓은 파이몬이 오렌지 록시드와 센고쿠 드라이버를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구시온도 옆에서 살짝 손가락으로 톡톡 건들었다. 

    "응~ 맞아! 확실히 리더의 것이야" 

    "어이! 리더는? 리더는 못 봤어?" 

    "그, 그게 말이지...." 

    "그래.. 만나지 못했구나..." 

    "미안!" 

    "괜찮아요! 왜 아임 씨가 미안해하는거예요? 아임 씨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아임이 민망한 기색을 감추며 웃었다. '모두 이런 상황인데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미안!' 다시 한번 사과를 하자, 이번에는 파이몬이 다소 언성을 높여 말했다. '시끄러워! 바보- 그럴 시간 있으면 밥 먹을 준비나 하라고? 슬슬 저녁이고 다들 오늘 꽤 지쳐있으니까-' 눈치 빠르게 화제를 전환시킨 파이몬 덕분에 자칫 어두워질 뻔한 분위기가 조금이나마 적당한 선에서 끝낼 수 있었다. 

    원래라면 되게 소소히 복작복작하고 늘 밝았던 팀의 분위기가 이렇게까지 다운되어버리다니 하여튼 팀을 이끌 리더의 부재 소식은 나머지 남겨진 팀원들에겐 역시 영 좋은 일이 아니었다. 토르키아 지상에서 공급해주는 왠만한 음식들이 지원된다는 것이 어쩌면 차라리 다행일까? 불행은 끝이 없고 그저 우리들이 서로 상대를 죽고 죽이는 게임을 즐길 뿐인 귀족들은 대조군 개채수를 위해 딱 죽지 않을 만큼은 들어보내준다. 다양한 음식과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 심지어 비상약도 있었다. 

    모순이다. 아임은 그것이 매우 합당하지 않은 불합리적인 모순이라고 생각하였다. 지하 도시의 사람들에게 있어 귀족은 전부 없애야 할 적과 같은 증오의 대상에게 지금 살아가기 위한 물건들을 공급 받고 있으니까 정말 우습지 아니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피식, 허탈감이 밀려온 아임이 자조적인 웃음을 한번 짓곤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요리라 해봤자 딱히 요리랄 것도 없이 그냥 간단한 햄치즈 토스트와 우유 한잔, 좀 더 화려하게 사치를 부려서 오늘은 샌드위치와 파스타까지 만들었다. 멤버별 기호 식성에 맞춰 크림 파스타와 토마토 소스 파스타를 만들어냈다. 언제 이런 위험이 어디에서 닥쳐올지 모르는 위험한 지하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이 정도쯤은 누구나 간단히 기본이었다. 

    밥을 먹는 도중 아임은 문득 어떤 것이 1억 광초 속도의 빛처럼 뇌리에 확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글쎄, 일단 그동안 리더와의 시간이 떠오르긴 했는데 말이다. 사라지기 직전 무언가 가슴 통증이 오는건지 강하게 가슴을 꾹 부여잡은 채 마구 흉통을 호소한 적이 있었다. 이전에도 꽤나 종종 그런 흉통이 자주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게 아주 오래된 것은 아니었고 언젠가부터 리더가 흉통을 호소하였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여하튼 비교적 꽤 최근 일어난 일이었을거라 대강 짐작했다. 

    그가 사라졌던 그 날에도 분명 같은 증상을 보이며 흉통이 있었단 걸 기억해냈다. 리더가 그리 몸이 약한 타입은 절대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언제나 멋지게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해 인베스라 불리는 괴물을 물리친다거나 또는 팀들 간의 싸움이 있을 때 마다 항상 앞장 서서 싸우는 사람이었다. 사람일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과 여타 다르다. 확실히 다른 뭔가 특별한게 분명히 있었으리라 아임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파이몬이 자신의 어깨를 한번 툭 팔을 쳤다. 흠칫 놀라는 아임을 본 파이몬이 괜스레 거친 말투로 농담을 시도했다. 구시온도 옆에서 슬몃 눈치를 살폈다. '팀의 분위기가 이래서야..' 아임이 그리 중얼거린 뒤 살며시 파이몬의 무드를 맞춰주었다. 

    저녁 식사 자리가 파한 뒤 바깥 공기를 쐬러 나간 아임 앞에 파이몬이 서 있었다. '뭐냐?' 아임이 그의 옆에 다가와 섰다. '이것 참, 우연인걸~ 같은 생각 했는지도?! 뭐, 별 거 아냐~ 나도 마침 산책하러 나왔을 뿐이거든' 파이몬이 가만히 옷 매무새만 다듬는 척 만지작거렸다. 

    "리더가 사라지기 전에 보여준 행동, 생각했지?" 

    "어- 잘 아는구나" 

    "당연한 거 아냐? 같은 팀원으로서 내가 그거 하나 알아채지 못할까봐?" 

    "훗- 그러네" 

    이후 두 사람이 잠시 말이 없었다. 조금 뜸을 들인 뒤 천천히 시간적 여유를 갖고 파이몬이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은 아무 생각하지마~ 더 신경 쓰면 귀찮아질 뿐이니까-" 

    "....... 그래-" 

    "이런 거 따위 고민하는 거, 너답지 않아~ 이런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아임- 아임이 할 수 있는 걸 해~ 우리들이 있잖아? 팀의 위기일수록 좀 더 의지해줘" 

    "파이몬.." 

    아임은 금방 우울한 표정을 지우고 미소를 지었다. '알겠어'라고 답한 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뒤돌아 한발자국 걸음을 뗀 그가 다른 한손을 뻗어 가만히 파이몬의 어깨를 얹었다. 굳이 아무 말 하지 않았으나 그것만으로 파이몬은 충분히 아임이 뭘 말하려는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입꼬리는 살짝 올렸지만 비록 눈은 웃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표정이 어두운 것도 아니었다. 복잡하게 헷갈리지만 웃는 것도, 울고 있는 표정도 아닌 미묘한 얼굴을 한 아임이 이내 자리를 떠나 아지트를 향해 걸어갔다. 파이몬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임이 시야에서 사라져 완전히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쯤 파이몬은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세게 꽉 힘을 준 손이 미세한 떨림을 냈다. 마음이 허전했다. 갈 곳을 잃은 채 허공을 대고 눈알을 굴리던 눈동자 속에 비친 것은 은은하게 빛나는 달과 몇 개의 별빛이 담겼다. 마음이 애절한 기분이 든다. 오늘따라 왠지 쇠파이프를 든 손이 슬플 정도로 처량하게 느껴졌다. 

    리더가 사라진지 며칠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나름대로 상황을 굳건히 이겨내며 타개하는 중이다. 없는 리더를 대신해 팀의 2인자인 아임이 임시 대리를 맡아 리더 역할을 책임지고 있었다. 상냥하고 부드러운 미소, 그가 보여주는 결단력 있는 행동은 역시 리더를 닮아있었다. 아니, 어쩌면 더 뛰어난 리더쉽을 보이는걸까 싶다. 리더와 비슷한 면이 있으면서도 뭔가 아임만의 그런 매력이 있었다. 

    강하고 카리스마 있게 팀을 이끄는 바로크 레드의 리더인 글라샤와는 뭔가 다른 대조적인 강함이 존재했다. 글라샤가 외강내유 타입이라면 반대로 아임은 내강외유 스타일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랄까.. 그래도 리더를 믿고 따르는 베리스와 오세를 보면 확실히 글라샤에게도 분명 사람을 이끄는 매력이 있었지만 어쨌든 힘을 보이는 수단이 두 사람은 전혀 서로 달랐다. 

    아지트에서 아임은 오렌지 록시드와 센고쿠 드라이버를 만졌다. 히어로의 변신인건가- 아머드 라이더가 되면 조금 느낌이 다르려나, 리더도 지금까지 계속 이걸 사용해서 싸워왔던걸까? 아머드 라이더가 되면 자신도 새로운 내가 될 수 있을까? 계속 사용하게 되면 어떻게 되지? 시스템의 부작용같은 것도 혹시 있으려나? 언제부터 이런게 마치 문화처럼 유행하게 되었지? 제 리더가 변신했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아임은 센고쿠 드라이버의 기능성에 대해 여러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생각과 생각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생수를 들이키던 그 앞에 파이몬과 구시온이 달려왔다. 급히 뛰어온 모양이었다. 

    "아임!" 

    "아임 씨!" 

    "깜짝 놀랐잖아~ 대체 무슨 일이야? 파이몬- 구시온-" 

    "지금 저 앞에서 바로크 녀석들이 쳐들어와서 한바탕 난리가 났어요." 

    "난리라니..?!" 

    "그 뿐만이 아냐! 그대로 냅두면 우리들 다 죽게 생겼다고- 전부 당하고 있거든~ 그 녀석들, 모조리 끝장내고 싶은데 쟤네들에 비하면 약한 건 사실이라서- 아임이 나서서 어떻게 좀 해봐!" 

    "알겠어~ 가자" 

    아임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과연 지하 도시답다면 지하 도시답다. 단 하루도 그냥 마음 편안할 날이 없다. 몇 번씩이나 빈번히 일어나는 항쟁은 지하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 있어 익숙한 광경이었다. 틈만 나면 팀들 간의 경쟁은 매일 치고 박는 싸움 덕에 이젠 어지간한 스킬 따위 도가 트일 정도가 되었다. 싸움이 일어난 장소에선 바로크가 우세하여 오렌지 녀석들이 한번 힘도 써보지 못한 채 무참히 쓰러졌다. 

    "이게 무슨 짓이야? 글라샤!" 

    "팀 오렌지 라이드의 힘은 고작 이것 뿐이냐" 

    저를 향해 달려오던 한 오렌지 팀원을 간단히 막은 글라샤가 주먹으로 가격해 쓰러뜨린 후 아임에게 소리쳤다. 이에 열 받은 아임도 지지 않았다. 

    "네 녀석 말고 아머드 라이더를 데려와라" 

    "아머드 라이더?!" 

    "너희 팀의 리더가 변신하지 않나?" 

    "그게.. 요즘 리더가 사라져서 없단 말이지~ 발견했을 땐 록시드랑 센고쿠 드라이버만 거리에 떨어져 있었어" 

    "흥! 그딴 변명이 통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건가? 그럼 언어도단이군" 

    "하지만 사실이야.." 

    글라샤가 팔짱을 끼며 코웃음쳤다. 리더 이야기에 조금은 감정이 격양되어 상기된 아임의 눈빛을 본 그가 근거 없는 유언비어일 줄 알았던 그 소문이 마냥 헛소리는 아니었나 싶었다. 녀석의 성격을 매우 잘 알고 있기에 결코 아임이 절대 거짓말 할 리 없었다. 그의 눈은 오직 진실을 말해주었다. 

    "싸워라" 

    "에, 무슨..?!" 

    얼른 글라샤의 말뜻을 알아채지 못해 아임이 머뭇거렸다. 리더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될까, 글라샤는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하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 변신할 수도 없는데 싸울 힘이 있을까? 내 자신을 바꿀 수 있을까? 생각만을 거듭할 뿐이다. 

    "오늘이야말로 꼭 결판내주겠어~ 강함을 증명해주지" 

    "하아?! 증명이라고? 그렇게 쉽게 당할 것 같냐!" 

    "어차피 강한 쪽은 우리잖아? 네 녀석들, 제대로 힘 써보기라도 했냐? 별 것도 아닌 주제에-" 

    "뭐? 어이- 그 말 취소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임은 그렇지 않아! 너희들 따위보단 훨씬 더 강하거든!" 

    "베리스! 오세!" 

    베리스의 비꼬는듯한 말을 들은 구시온이 눈을 부릅 뜬 채 소리쳤다. 당연히 파이몬 역시 비꼬는 오세를 향해 크게 일갈하였다. 옆에서 듣자하니 슬슬 짜증이 밀려온 글라샤가 베리스와 오세에게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경고를 날렸다. 베리스가 뒤에 뭐라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파이몬이 옆에서 거칠게 아임한테 싸우든, 뭘 하든 간에 빨리 어떻게 좀 해보라는 말을 꺼냈다. 

    "알겠어~ 글라샤, 네가 원한다면 까짓 거 어울러주지" 

    "기꺼이- 바라던 바다!" 

    두 사람의 우레같은 기합 소리가 이어졌다. 쇠파이프 없이 간단한 기술 동작만으로 충분히 상대가 되었고 호각을 다퉜는데 결코 어느 한쪽의 치우침 따윈 보이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이 섞인 무리 안에서 얼핏 싸우던 모습보다 지금 이렇게 일기토로 싸우는 모습을 보니 가히 용호상박이었다. 

    베리스, 오세, 파이몬과 구시온, 네 사람은 그 둘한테서 미처 시선을 떼지 못했다. 역시 리더와 팀의 2인자 포지션은 (지금은 리더 대리자인) 확실히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라는 걸 느꼈다. 네 사람은 서로 마주 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돌려 글라샤와 아임을 응시하였다. 

    "헉헉, 제법 하는군" 

    "너야말로 굉장하잖아!" 

    "흥! 여기서 도망치는 건 아니겠지? 덤벼라-" 

    "절대 그럴 리가.. 아직 지치지 않았어" 

    한번 서로 눈빛 교환을 하더니 글라샤와 마주 본 채 선 아임이 갑자기 휙 몸을 돌렸다. 그와 나란히 선 그가 막은 것은 다름아닌 인베스였다. '또 인베스인가! 어디서 나타났지?' 글라샤가 경계 태세를 갖췄다. '몰라~ 하여튼 지금은 인베스를 없애야 하는게 우선이라구-' 아임의 말에 글라샤는 '귀찮게 됐군'라고 중얼거린 후 바나나 록시드를 꺼냈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오렌지와 바로크 팀원 네 사람도 놀라 쇠파이프를 들었다. '이건 우리들의 싸움의 연장선이다. 끼어들지마라-' 글라샤가 그들에게 손을 뻗어 막는 시늉을 하며 그렇게 말한 뒤 그가「변신!」이라 외쳤다. 록시드의 버튼을 누르니까 곧 '바나나!'하는 기믹이 흘러나와 자물쇠 형태의 록시드 고리가 철컥 열렸다. 그러자 하늘에서 지퍼같은 크랙이 지직 열려 바나나가 둥실 떴다. 

    한번 가볍고 쿨하게 턴을 한 다음, 허리에 찬 검은 바탕으로 일부분 노란색 배경색이 조금 섞인 센고쿠 드라이버의 정중앙에 마치 퍼즐 맞추듯 끼워넣었다. 이어 글라샤가 고리를 눌러서 닫았다. 바나나 록시드에서 '록 온!'이란 음성이 흘러나온다. 그 후 옆의 커팅 블레이드로 과일을 커팅했다. 바나나 그림의 단면도가 나타남과 동시에 '바나나 암즈! KNIGHT OF SPEAR-!!' 멜로디가 흘러나와 바나나가 공중에 떨여져 머리부터 씌워졌다. 이윽고 갑옷으로 변한 그가 아머드 라이더 프로토 바론으로 변신했다. 

    변신하지 않은 아임도 화려하게 맨몸 액션을 선보였다. 다양한 손동작과 한발 한발 앞을 내딛는 현란한 스텝이 다이나믹했다. 몸을 움직여 이리저리 피하면서 글라샤와 아임은 인베스와 싸웠다. 하지만 곧 아임은 아머드 라이더가 아니기 때문인지라 인베스의 공격에 의해 금방 속수무책 당할 수 밖엔 없었다. 

    크악-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른 아임이 한바퀴 데굴 굴렀다. 그 사이 글라샤는 커팅 블레이드를 1회 사용하여 바나나 스쿼시를 날려 필살기 공격을 가했다. 잠시 인베스가 주춤거렸지만 다시 그를 향해 달려든다. 저번과 달리 이번 인베스는 꽤 강했다. 그러다보니 글라샤도 속수무책으로 구르고 신음을 뱉으며 당했다. 

    하나같이 당하는 그 두명의 광경을 본 파이몬과 구시온, 베리스와 오세 네 사람이 결국 쇠파이프를 들고 뛰어들어 인베스와 맞서 싸웠다. 아임은 주먹을 쥔 채 땅을 쾅 내리쳤다. 분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자신이 분했다. 리더가 없어도 이 모양, 이 꼴이구나 싶어서 그는 이제 화가 났다. 리더를 대신해 팀을 지키겠다고 호언장담해놓고는 아직 무엇도 제대로 한 것이 없는게 정말 분했다.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애써 울음을 참아보지만 눈에서 투명한 물방울이 자꾸만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팀원들은 다치고 라이더로 변신한 글라샤도 무색히 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인베스는 크아앙- 거리며 이들에게 돌진해왔다. 

    아임은 좀 초조해졌다. 대체 어떻게하면 좋을까, 눈물만 흘리던 그가 뒷쪽 주머니에다가 고리를 매달아 놓은 오렌지 록시드를 집어들었다. 한참 가만히 록시드를 직시하였다. 여차하면 최악의 상황 땐 반드시 사용해야겠다 싶었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게 이걸 쓰게되면 본인이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리더만큼 자신도 그런 각오를 다질 수 있을까, 또 그런 각오와 용기가 자신한테 있는걸까 고민이었다. 하지만 생각할 여유 따윈 없었다. 해야만 했다. 아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꽉 쥔 두 주먹이 미세하게 떨렸다. 

    "미안해! 리더- 돌아오지 않는 리더만 언제까지 계속 붙잡고 있을 수 없어! 이런 나라도.. 이런 나라도 할 수 있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이대로 후회하기 싫으니까 새로운 자신으로 변하고 싶어! 그러니까 이젠 아머드 라이더는 내가 하겠어!! 변신-!!" 

    울었다. 그가 울먹임이 베인 큰 목소리로 변신 대사를 외쳤다. 드디어 울면서 각오를 다진 아임이 허리에 센고쿠 드라이버를 차면서 오렌지 록시드를 들었다. 그의 각오와 용기가 담긴 눈물의 변신이다. 록시드를 여니 '오렌지!' 음성이 흘러나왔고 다소 화려한 각종 멋진 포즈를 취했다. 그 뒤 고리를 눌러 철커덕 닫혔다. '록 온!' 기믹이 흘러나온다. 커팅 블레이드로 록시드를 베자 오렌지 그림의 단면이 열렸다. 그러니까 다시 '오렌지 암즈!' 소리가 나왔다. 여담이지만 센고쿠 료마가 만든 센고쿠 드라이버 음성 취향은 참 여러므로 독특하다. 
    아무튼 그와 동시다발적으로 아까 변신 전의 글라샤가 그러했던 것처럼 '꽃길 온 스테이지!'라는 사운드가 흘러나오면서 하늘 위로 열린 크랙에서 오렌지가 과즙이 터지듯이 머리에 씌워졌다. 그리고 아임은 갑옷으로 변형된 오렌지의 라이더로 변신하였다. '이게 아머드 라이더..' 변신한 제 모습을 요리조리 살펴본 그가 엄청 신기해 하였다. 

    자신이 진정 변신한건가 싶어 몇 번이고 손으로 슈트를 만져보았다. 변신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나 자신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그 같은 아임의 변신에 글라샤를 포함한 나머지 이들이 놀라 마지 않았다. '아임이..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했다...' 파이몬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라이벌 팀 녀석이 변신을..?!' 베리스도 쇠파이프를 든 채 아임을 쳐다보았다. 다시 생각해봐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글라샤 역시 잠시 멍하니 넋을 놓았다가 인베스의 습격에 가볍게 킥을 몇 번 연타하였다. 

    아머드 라이더 프로토 가이무, 이것이 이제부터 아임을 나타내주는 어떤 대명사가 되었다. 오렌지 라이더의 아임, 바나나 라이더의 글라샤, 이렇게 구별이 된 아머드 라이더들은 함께 나란히 일렬로 섰다. '앞으로 꽤나 붙어볼만 하겠군' 글라샤는 그를 쳐다보지 않고 인베스를 향해 바라보면서 말했다. '말만 하라고? 글라샤- 언제든지 받아줄테니까!' 아임이 그를 쳐다보지 않고 주먹을 쥐어보였다. '아임- 기대하지~ 네 녀석의 강함-' 두 사람이 가면 슈트의 파츠 때문에 서로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으나 대강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아임은 오렌지를 자른 단면 형태의 소드, 즉 무쌍 세이버를, 글라샤는 한손에 스피어 창을 들었다. [여기서부터는 우리들의 스테이지다!] 아임이 멋진 대사를 날렸다. 한명이었던 아머드 라이더가 두명으로 늘어나니 아까보다 훨씬 강했다. 아머드 라이더로서의 첫 변신 데뷔 스테이지에서 아임은 무기를 들어 인베스를 막으면서 가만히 리더가 섰던 사용법을 기억했다. 

    일단 이렇게, 읏샤- 그는 글라샤를 따라 커팅 블레이드를 1회 커팅해 오렌지 스쿼시를 날렸다. 이 커팅 블레이드를 몇 회 쓰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필살기를 구현할 수 있었다. 스쿼시를 날린 뒤 다시 록시드 단면을 2회 커팅하자 이번에는 '오렌지 오레!'이라는 사운드가 흘러나와 필살기 어택이 되었다. 

    이어 본인도 지지 싫었는지 글라샤도 바나나 오레를 썼다. '오오- 이렇게 쓰는거구나!' 감탄을 자아내던 그가 무지막지하게 공격하는 인베스를 오렌지 소드를 들어 베었다. 크아악- 인베스의 괴상한 울음 소리가 울려퍼져 주변에 가득 채웠다. 계속 이러다간 한참 끝이 안 보이는듯 한데 이제 슬슬 최후의 일격을 날릴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다소 비틀거렸지만 멋지게 착지한 두 사람이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나 마지막 3회 커팅을 하였다. 각각 '오렌지 스파킹!'과 '바나나 스파킹!'이란 사운드가 호쾌하게 흘러나왔다. 심장이 두근거리는듯한 비트를 안고 마지막 필살기 장전을 한 두 사람이 멋지게 공중에 뛰어올라 라이더 킥을 시전한 뒤 그대로 뒤돌아 착지하였다. 그 뒤로 불꽃이 펑 터지면서 불이 타올랐다. 이것으로 겨우 강했던 인베스를 처리할 수 있었다. 

    센고쿠 드라이버의 검은 버튼을 눌러 리프트 오프를 하였다. 변신 해제가 된 아임과 글라샤의 호흡이 거칠면서 빠르게, 매우 불안정하게 뛰었다. 헉헉- 잠시 가쁜 숨을 고르는 그들 앞으로 각 팀원 네 사람이 저마다 이름을 부르면서 뛰어왔다. '괜히 걱정했잖아! 아임-' 파이몬이 그의 팔을 툭 쳤다. '미안- 미안- 다들 걱정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이제 괜찮아!' 예쁘게 눈웃음을 지은 아임이 '예에!' 감탄을 뱉으면서 파이몬, 구시온과 함께 하이파이브를 시전했다. 

    "아임- 역시 넌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뭐, 그것도 사람 좋은 바보 녀석이니까 가능한거겠지" 

    "뭐라고?" 

    "내 상대는 너라는거다! 앞으로 귀찮기만 한 약한 잔챙이 무리들보단 꽤 싸울 맛이 나겠군" 

    "얼마든지 상대해주겠어! 글라샤-" 

    "흥! 다음 번에 만나면 끝을 내주겠다. 그동안 힘이나 키워놔라" 

    "오렌지 녀석들 따윈 절대 안 져!" 

    "돌아간다." 

    이때 글라샤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꼈지만 그들은 그 변화를 깨닫지 못했다. 순간적 고통이 다가와 가슴을 쿡 부여잡았다. 이런, 또 다시 흉통이 시작된건가- 글라샤는 아무도 눈치챌 수 없도록 혼자 신음을 삼킨 채 고통을 참았다. 한번 가슴을 쓸어내린 그가 팔을 내렸다. 그리고 베리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돌아가자 말한 후 휙 뒤돌아 앞장서 걸었다. 
    자신의 고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였다. 말하면 그 녀석들, 분명 사람 좋은 아임까지 엄청 걱정할게 뻔할테니까 굳이 말할 필요 없었다. 이깟 고통쯤은 그냥 참으면 그만이다. '글라샤 씨-' 급 무안해진 베리스가 먼저 자기 할말을 마친 후 뚜벅뚜벅 구둣 소리를 내며 걸어가는 글라샤와 오세를 따라 저 멀리 뛰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파이몬- 구시온- 우리도 돌아가자' 아임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아임은 앞으로 왠지 전보다 더 자주 글라샤와 부딪힐 일이 많아질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이,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무언가가 마침내 시작될거라는 어떤 예감이 들었다. 어째서 그런 기분이다. 뭔가 알 수 없는 운명이 천천히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돌아간다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변신한 그때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걸까? 
    굳이 직접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아임도 글라샤도 모두 서로 상대가 자신의 진정한 라이벌이라는 걸 인정하는 터다. 그리고 이들에게 다가올 운명과 미래의 결말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직 그들로선 알 수 없었다. 다만 이윽고 시작될 운명이 결코 피할 수 없을거란 건 조금 알 것 같았다. 

    아임이 오렌지 록시드를 꺼내들어 가만히 허리에 찬 센고쿠 드라이버와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 힘, 만약 계속 지속해서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그는 처음으로 공포를 느끼며 무섭다고 생각되었다. 실로 너무나 강력한 변신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힘에는 선악이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 특별한 힘을 가진 걸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는 물건, 이것 하나로 마음을 지배당해버릴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마침내 자물쇠가 열려버리고 말았다. 이 세계를 최강의 힘을 가진 자물쇠로 연다면 우리들의 운명은 어디로 이어지는걸까── 

    저 멀리 아임이 지나간 뒷쪽에서 부스럭거린 소리가 났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초록빛의 청룡 인베스 하나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 모습을 새 하얀 긴 창을 든 채 가만히 응시하는 하얀색 몸체를 가진 오버로드의 눈빛이 번뜩거렸다. 흡사 지금은 모두 전멸한 페르신므의 오버로드인 레뒤에와 닮은 형상을 하였다. 붉은 피가 흘러도 금방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듯한 눈부실 정도의 흰 몸체를 가진 오버로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흰색 수정처럼 순결하고 고귀하게 반짝거리는 순백색을 한 이형의 존재가 하얀 아우라를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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