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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의 다이어리특촬물 2020. 4. 25. 01:11
* 특촬 헤테로 합작 - 두 사람의 계절에 라즈베리로 (2019.09.21.5PM) 제출했던 공개글입니다. 다른 분들의 멋진 연성은 아래 주소로 들어가서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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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면라이더 위자드 OP life is show time에서 [어제, 오늘, 내일, 미래, 그 모든 눈물을 보석으로 바꿔주겠어] 가사를 인용했습니다.본인과 관련된 일이 아니면 전부 관심 없는 무심한 표정을 하고 그런 행동 패턴을 보이던 하루토가 다이어리를 쓰는 것은 굉장히 의외의 모습이었다. 아마 이때부터 시작이었나 싶다. 그래도 꽤 차분하고 신중한 성격을 가진 하루토라 아주 상상이 안 가는 건 아니지만서도 또 어떻게 보면 생각치 못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하지만 어쩌면 조금 관점을 달리 본다면 아주 막 예상하지 못했다, 하는 그런 것도 또 아니라 하루토답다면 하루토다운 행동이었다.
어쨌거나 하루토는 대량의 시민들을 모아 마력을 모으기 위한 사바트의 날이 일어난 이후 팬텀 울드래곤이 태어나려던 뻔 했다. 겨우 간신히 절망에서 희망을 붙잡아 봉인할 수 있었던 그는 하얀 마법사에 의해 마법사가── 다른 동료들에게 의하면 '가면라이더'라고 불리는 히어로── 되어서 활동한지 얼마되지 않았던 때였다. 딱 그 시점이었다.
가면라이더 위자드로 변신하여 마보석의 힘이 깃든 위자드 링(마법 반지)으로 마법을 사용해 팬텀이라는 괴인과 하급 괴물인 구울들을 물리치는 히어로라는 것도 그런데다, 갑자기 나타나 저 특별한 힘을 준 하얀 마법사가 왠 의문의 소녀를 자신한테 잘 부탁한다고 하질 않나, 게다가 골동품 가게인 면영당에서 숙식하며 주인 아저씨 와지마 시게루 씨라던가, 나름 익숙해지긴 했지만 아직까진 금방 모든 걸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았다. 아무튼 어찌저찌 셋이서 함께 살게 되었는데 말이다.
면영당이 하루토의 새로운 아지트같은 존재가 된 것은 그저 와지마의 손재주가 있어서 위자드 링을 만들기 위한 마보석을 세공할만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단순 이유일 뿐이었다. 하여튼 여러가지 괴로운 과거를 끌어안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하루토나 기억이 없는 코요미한테 있어서 와지마는 그야말로 이들의 큰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좀 더 성숙하게 이들을 관찰하고 멋진 조언을 펼쳐줄 때면 하루토와 코요미 두 사람은 으레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미한 웃음을 짓곤 하였다.
그 소소한 행복이 좋아서 하루토는 조금, 아주 잠깐만이라도 좋으니까 잠시동안 시간이 멈춰 이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실제론 이것이 얼마나 이기적이라는 걸 생각한 그가 그때 마다 몇 번이나 손바닥으로 제 뺨을 후려쳐댔다. 각오를 다잡으면서 하루토는 다이어리를 계속해서 써내려갔다.
그날 있었던 일, 팬텀을 처리했던 일 등 사소한 일상 생활을 모두 일일이 기록해두고 있었지만 사실상 코요미와의 일이 대부분 기록을 차지하였다. 코요미와 함께 보낸 시간들을 전부 빠짐없이 기록한 것에 가까운 편이었다.
지금이야 그나마 낫지만 그 당시엔 기억을 잃은데다가 차가운 몸의 온기라던가 조금 여러가지 있어서 하루토 자신이 위자드 드라이버로 자주 마력을 공급해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인형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런가 확실히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태를 깨달은 코요미는 꽤나 차갑고 까칠했다. 최대한 상냥하게 대해보려 노력함도 무색하게 보통, 코요미가 거리를 두려하는 편이라서 전부 물거품이었다. 물론 유리된 감정이 많이 서투름은 두말 할 나위 없었다.
특별히 할말이 있거나 또는 일반 사람들 틈에 인간 모습으로 변장해 섞어있으면 누가 팬텀인지 구별해낼 수 있는 능력 덕분에 팬텀에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하루토에게 잘 말을 걸지 않았다. 누구한테나 잘 마음을 열지 않아서 그녀를 만난 초반에는 엄청 고생했다. 그래도 일단 와지마는 어른이니까 조금 믿고 따르는 눈치였지만 비슷한 나잇대의 하루토(물론 하루토의 나이가 좀 더 위다.)에겐 여전히 까칠하게 대할 뿐이다. 그런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유심하게 지켜보던 와지마가 10시가 넘은 늦은 밤, 조용히 그들을 불렀다.
"무슨 일인가요?"
코요미의 맑고 예쁜 목소리가 공중에 한번 울려퍼졌다가 흩어졌다.
"와지마 씨, 무슨 일이길래 이 늦은 시간에 부른거야?"
"그게 말이다. 하루토- 코요미- 뭔가 특별히 너희들에게 주고 싶은게 있어서 말이지"
"그게 뭔데?"
하루토가 다시 반문하자 와지마가 옆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다이어리..?!"
"갑자기 뭘까?"
하루토는 눈을 끔뻑하더니 눈동자가 커진 얼굴을 하였다. 갑자기 이 다이어리로 뭘 하라는걸까 싶어 코요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영문을 알 수 없단 표정을 지은 채 둘 다 서로 쳐다보다가 다시 와지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코요미가 지금 현재 기억이 없으니 신경이 많이 예민해진 상태이고 하루토 너도 네 나름대로 팬텀과 맞서 싸우느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든 상황이잖아~ 이런 때일수록 좀 더 마음을 편안히 가져야 되는거니까 마음의 안정이 가장 중요한거다. 어때? 서로 이 다이어리에 나만의 일기를 쓰면서 여유를 가져보는 거 어떤가?!"
"여유?! 으음.. 뭐, 그것도 나쁘진 않네~ 그치? 코요미-"
"으응~ 하루토- 뭔가 재밌어보여"
"그럼 와지마 씨 말대로 한번 해볼께"
하루토는 관자를 긁으면서 코요미한테 물었다. 은근 그녀의 의사를 넌지시 던졌고 생각보다 코요미는 뭔가 재밌어보인다며 긍정을 내비쳤다.
"아, 혹시 중간에 귀찮아지면 언제든 그만둬도 되니까 딱히 강요하지 않아~ 그냥 두 사람 모두 앞으로 여기서 함께 생활해야 될테니 좀 더 친해졌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니까-"
"응!"
"신경 써줘서 고마워"
"천만에-"
만약 저 혼자였다면 굳이 꺼내지 않았을 고민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먼저 와지마가 이야기를 꺼내준 덕분에 하루토는 정말 감사했다. 처음 파도 치는 바닷가에서 만났을 때보다 덜 하지만 여전히 차가우리만치 까칠하게 대해서 어떻게 다가갈지 조금은 고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억도 온기도 아무것도 없다며 스스로 괴물이라 칭한 코요미가 작정하고 물에 뛰어들었다. '우리가 누구이든 간에 지금을 살아나가자고?!' 그랬다. 하루토는 그 말을 전했고 덧붙여 '내가 너의 마지막 희망이다.'라고 말했다. 다행히 조금 기분이 풀린 코요미가 그때까지 줄곧 절망으로 가득했던 것이 그의 말처럼 지금 현재를 소중히 살아나가보자고 다짐한 계기가 된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조그만 중형 크기의 핑크빛 다이어리를 건네받긴 했지만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몰라 하루토와 코요미는 그저 막막하였다. 어찌해야 되나 답답한 마음을 감출 길 없이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주로 쓴 것들은 별 거 없었다. 평소 위자드로 변신해 팬텀을 물리치는 내용을 쓰는 것 외엔 그닥 특별한 건 없었다. 뭐,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특별한 일이라 해봤자 남들한테 특별한 일상이 하루토나 코요미에겐 매우 평범한 일상인 히어로 활동이니까 별로 의미를 부여해줄 어떤 정의도 그들한테 있어선 사실 없는 것과 같았다.
팬텀과 싸우고 있지만 솔직히 아직까지도 정의라는 것은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내리기 힘들었다. 게다가 자신이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과거도 있어서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그걸 끌어안고 가는 그의 성격도 성격이라면 성격인 탓이었다. 아직 마음의 여유가 하루토에게는 없다. 매일 내가, 상대가, 누군가가 절망하는 것에 조급해 하였고 자신이 직접 절망 대신 희망을 믿어보도록 하겠다고 말을 하고 다녀도 그다지 자기자신이 와닿지 않았다.
일단 본인이 그렇게 느낄 여유 따위 없으니 이해되지 않는 그 말의 의미가 가슴에 닿지 않는 건 당연지사였다. 눈을 뜨면 아침부터 시작해 저녁, 아니 밤까지, 때론 날을 꼬박 새워가면서 눈코 뜰 새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팬텀 때문에 팬텀을 처리하기 바빴고 또한 매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하루토가 앞뒤 돌아볼 여유 따위 같은 마음이 있을 리 만무하였다.
코요미도 그렇지만 하여튼 하루토 역시 타인에게 의지한다거나 마음을 잘 나누지 않는 편이어서 그런 두 사람의 기분을 와지마가 많이 배려해주었다. 과거이든 현실이든 뭐든 앞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선 제대로 마주 볼 수 있어야 한다. 또 언제까지 어색한 사이로 있을 수도 없으니까 와지마가 그들에게 내린 결정이었던 것이다. 이번 기회에 하루토와 코요미 두 사람이 좀 더 가까워졌으면, 좀 더 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둘의 관계는 그 이상, 이하도 아무것도 아니다. 분명 다시 한번 말하건대 둘의 관계 속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일반 친구와는 다소 다른 개념이다. 학교 다닐 때의 그런 친구들과 여타 다른 느낌적인 분위기가 분명 미묘하게 있었다. 확실히 두 사람은 학교 친구도, 사회에서 만난 동료라는 사이도 아니었다.
나름 팬텀과 함께 싸우기 위해 힘을 보태는 그런 동료란 것은 맞기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닌데 하루토 자신이 생각하는 그 동료라는 정의의 개념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뭐, 아무렴 어떤가- 그래도 지금껏 잘만 지내왔으니까 앞으로도 문제 없겠지, 같은 생각이 미친 그가 2층 방에서 내려왔다. 와지마와 코요미가 부산스레 아침밥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야~ 하루토-"
"오- 하루토, 지난 밤은 잘 잤니?"
"괜찮아"
"그래- 어서 와서 아침 먹어라~ 다 됐다."
와지마가 반찬과 젓가락을 나를동안 코요미가 밥통에 밥을 퍼날랐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연기처럼 올라오는 하얀 쌀밥이 왠지 맛있어 보였다. 아, 빨리 밥 한술 뜨고 싶어진 기분인데- 하루토는 그리 생각하며 가게 한가운데 위치한 소파에 앉았다. 역시 아침은 흰 쌀밥과 따뜻한 된장국이 진리다. 최고의 조합이란 말이다. 그 행복감에 젖은 하루토의 얼굴을 다소 인상을 찡그리며 무심히 바라본 코요미는 이내 젓가락을 들어 밥을 조금 떴다.
"아! 코요미- 오늘은 외출하는 날이지? 이따 씻고 밖에 나가자~ 오랜만에 뭐할래?"
"글쎄- 그건 그때 정하자"
코요미는 잘 밖에 다니지 않았다. 마력을 공급해줘야 겨우 살 수 있는 몸이니 밖을 나가고 싶어하지 않았고 또 팬텀을 구분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어 더욱 팬텀들의 표적이 되기 쉬운 터라 어디 특별한 경우가 아닌 다음 코요미는 외출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하루토가 적어도 한달에 2~3번 정도 코요미를 데리고 나가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는 것이다. 말이 좋아 넓은 의미로 데이트인거지, 친구나 동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그들에게 연인 사이도 아니었다. 당연 서로 부정할 것임이 불을 보듯 뻔한데── 그렇지만 조금 호감은 분명 있었다. 두 명 모두 이 마음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잠시후 아침 식사를 마친 하루토와 코요미는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꾸민다해도 평소 유니폼처럼 즐겨입던 코요미의 케이프를 두른 귀여운 로리타 의상, 하루토는 어지러운 마법진 모양을 연상케하는 붉은 반팔 티셔츠와 기묘한 짧은 검은색 자켓을 덧입을 뿐이다. 항상 입던거라 상대의 그런 옷이 차라리 익숙하고 보기 편했다.
그러나 뭔가 조금 더 예쁜 옷을 입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있었다. 공원 산책을 하다가 생각나 데리고 온 근처 옷 가게와 화장품 가게, 토끼눈이 된 채 이리저리 신기하게 바라보는 코요미가 귀여워서 하루토는 '오오! 괜찮은걸? 코요미- 잘 어울리잖아' 같은 리액션을 하면서 반응하곤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녀가 알아차리지 않도록 뒤에서 혼자 조용히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애써 아닌 척하지만 자꾸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결코 부정할 수 없었다.
주변을 지나가다 새 하얀 휘핑크림이 구름처럼 둥실둥실 뜬 상큼한 크레이프라던가 파르페, 버터와 애플 시럽이 가득 든 달콤한 와플이라던가 소소한 군것질을 하면서 두 사람은 오후 내내 시간을 보냈다. 서로 뭔가 신경 쓰이는 건 맞았고 어쨌든 코요미에게 있어서나, 하루토에게 있어서나 정말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임은 맞다.
애시당초 둘의 만남부터 이미 굉장히 특별할만큼 벌써 이례적이었는데 말이다. 그렇다 해도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도 아니고 친남매나 가족도 아니다. 친구, 동료나 연인은 분명 아니었다. 그럼 어떤 관계일까? 하루토는 꽤 생각해 본 적 있었다. 결론적인 답은 나오지 않았으나 우연히 만난(어쩌면 운명이었는지 모를) 신비스러운 관계라 해야되나..
그땐 정말 이름조차 불러주지 않았으니까,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도 된다고 말을 했지만 코요미는 버젓이 이름을 놔둔 채 퉁명스레 '소우마'라는 성을 부르기 일쑤였다. 뭐만 하면 소우마- 라는 식이라서 지금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오히려 성보단 하루토라고 이름을 불러온 경우가 더 많은 터였다보니 왠지 뭔가 성으로 불리는 건 아무래도 좀 어색한 감이 있었다.
처음엔 굉장히 낯설어서 그저 밀어내려고만 했었는데 이때 비하면 이름을 불러주는 지금은 코요미의 행동이 변해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경의적인 태도에 차마 금치 못한 채 손으로 입을 가리며 기뻐했던 하루토, 그 순간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너무 감격스러워서 날뛸 뻔했으니까 이제서야 코요미가 저한테 마음을 열어줬단 사실이 엄청 감동적이었다. 허나, 딱 거기까지였다.
두 사람 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호감은 있었지만 혹시 민폐가 될까봐 계속 언젠가,「언젠가」만 머릿 속에 되내인 채 마음을 감췄다. 그래, 아직은 그냥 이런 애매모호한 관계라도 괜찮았다. 지금 당장 우선 닥친 것은 위자드로 변신하여 팬텀과 싸우는 일이 시급했고 천천히 다가가면 되니까 서두를 건 없다. 언제가 되어도 좋다. 지금은 단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특히나 코요미의 입장에서 하루토는 단순히 살아갈 의미를 찾기 위한 어떤 방해 비슷한 조력자일 뿐, 반대로 그의 입장에서 역시 [코요미가 곁에 없었다면]을 전제로 가정한다면 그에게도 그녀는 앞으로를 살아갈 희망과 생존의 이유였다. 다만 현재는 오직 그 정도였다. 서로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관계- 세상에는 과연 이런 관계를 대체 무엇이라고 표현하는걸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어때?"
"응! 맛있어"
마지막은 언제나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들리는 헝그리 도넛 가게 포장마차다. 그리고 매번 볼 때 마다 늘 시끄러이 떠들며 맞이하곤 항상 권하는 신작 도너츠, 이 거리의 유명 인기 명물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신작 메뉴들이 쏟아져나왔고 사람들 모두 맛있다며 꽤 단골 손님도 어느 정도 있는 이름난 헝그리 도넛 가게라는 지명도가 명명한 곳이다. 젊은 청년 점원 한명이 있는데 오랫동안 점장과 같이 일해왔다는듯 하다.
하루토 일행도 그 두 명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을만큼 친했다. 조력자인 와지마를 제외한 그가 마법사라는 걸 유일하게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간에 점장은 그에게 신작 메뉴를 더더욱 권하지 못해 안달이 났다. 하지만 모든 신작 도너츠 따윈 상관없으니까 하루토는 항상 먹던 플레인 슈가다.
다른 도너츠보다 워낙 설탕이 가득 담긴 도넛인데다가 단 것을 매우 좋아하는 편인 하루토는 점장이 새 메뉴를 권하면 끝까지 굴하지 않은 채 무조건 플레인 슈가만 고집하였다. 덕분에 하루토가 신작 도너츠 하나 먹어주는게 점장의 소원이라나 뭐라나── 물론 초코 브라우니 슈가라는 이름의 신작 도너츠는 사서 코요미한테 건네줬다.
"그렇지? 아니 아니, 지금 그 말이 아니잖아? 도너츠는 맛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오늘 하루종일 어땠냐고-"
그 와중에 하루토는 플레인 슈가를 한입 베어물었다. 달다. 입 안에 가득 퍼지는 설탕 맛이 일품이다. 그 달달함이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다.
"좋았어!"
예쁘게 웃는 코요미를 잠시 응시하다가 하루토의 손은 다시 플레인 슈가로 향했다. 조그만 얼음 조각같은 각설탕을 엄청 태운 커피를 마신 뒤 하루토는 입을 열었다.
"나도 코요미랑 함께해서 좋았어"
"우리 둘 다 같은 마음이네"
"그러게"
"도너츠도 다 먹었고 이제 슬슬 돌아가볼까"
하나 남은 플레인 슈가를 마저 집어든 하루토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코요미 역시 그를 따라 간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하루토는 점장에게 '우린 이만 가볼께' 말을 마친 후 면영당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걸어가는 도중 무엇인가 생각났다는듯 '하루토-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줘~ 갔다올데가 있어' 말을 한 채 코요미는 어디론가 뛰어갔다. '응?! 코요미? 코요미?' 몇 번이나 이름을 부르며 하염없이 기다릴동안 10분 남짓 지난 후 이윽고 잠시 뒤 그녀가 숨 가쁘게 뛰어돌아왔을 땐 무언가 손에 들러져 있었다. 겨우 호흡을 고른 채 코요미가 제 손에 들린 물건을 설명하였다.
"이게 뭐야?"
"이거! 며칠 전에 와지마 씨한테 다이어리 받았잖아? 뭔가 귀여운 스티커라던가, 색깔 볼펜으로 꾸며보는 거 어떨까 싶어서 하나 샀어"
코요미가 여러 형형색색 볼펜과 아울러 한장 건네준 스티커에는 귀엽고 조그만 별 모양, 하트 모양, 장미꽃 모양 등 아기자기한 스티커가 들어있었다.
"오- 그거 좋은 아이디어네"
"그치? 오늘부터 열심히 한번 써볼 생각인걸~ 어때? 하루토도 같이 하자!"
"어- 그래"
그렇게 시작되었던 우리들의 다이어리, 각자 방에서 써내려간 다이어리에는 수많은 추억들을 증명해주는 조그만 사진과 글씨들이 차곡차곡 쌓아졌다. 이후 형사 다이몬 린코, 갑자기 마법사가 되고 싶다며 조수가 되겠다고 찾아온 나라 슌페이 녀석, 뜬금없이 나타나 가면라이더 비스트로 변신하더니 제 라이벌이라 외치고 다니면서 음식에 죄다 마요네즈를 뿌려먹는 이상한 녀석 니토 코우스케가 면영당을 드나드는 사람이 되었다.
그 다음엔 양산형 라이더 메이지였던가, 암튼 사바트의 날, 죽은 쌍둥이 언니 이나모리 미사에게서 태어난 팬텀 메두사와 꼭 닮은 마유와 이지마 유즈루, 야마모토 마사히로 씨까지 사람들이 늘어나더니 조용히 감도는 적막감이 휩싸여 일렁거린 면영당이 언제부턴가 왁자지껄, 도대체 뭐가 어떻게 하루가 돌아가는지 정신 없을 만큼 떠들썩하게 변했다.
어릴 때 빗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그는 가족이 모두 죽은 뒤 사람의 온기를 여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겉으론 애써 밝은 척 했다가 혼자가 되면 일순간 우울한 표정을 짓곤 하였다. 그래서 조금 귀찮긴 했지만 꽤 시끄러워진 면영당이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되었다. 소우마 하루토가 사바트의 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희망이었다. 아무리 절망한 순간까지 가도 희망이 있으면 다시 힘내서 나아갈 수 있다고, 비록 거절할 수 있었던 걸 굳이 마법사가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은 자신의 의지였고 본인 스스로가 그리하길 원했던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한켠이 찌릿, 가슴이 쿡 아려왔다. 애절하고 애틋한 마음이 흘러왔다. 안타깝지만 이제 코요미는 곁에 없다. 밝혀진 진실에 따르면 그녀는 원래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이미 한번 죽은 사람인데다 코요미의 몸 속에 숨겨진게 바로 현자의 돌이었다. 모든 진실을 알았을 땐 꽤 충격이었지만..
아니, 무엇보다 코요미 본인이 다시 살아나길 원하지 않아서 결국 함께해 온 시간 속에서 코요미는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분명 자신 안에 영원히 살아갈거라고 하루토는 믿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 이젠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이 많이 무뎌졌지만 여전히 후에키 코요미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애틋했다.
"보고 싶어~ 코요미....."
하루토는 담담하고 담백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는 다이어리에 아스라이 지난날의 추억 위에 잇대어 새로운 추억을 덧씌웠다. 아직 희망을 지키는 반지의 마법사로서, 다른 이름으론 가면라이더 위자드로서 희망을 구해야 될 사람들이 많기에 그는 다이어리를 쓰는 걸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의 인연을 펜으로 끄적이면 그것만으로도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사락- 종이를 넘길 때 마다 가족과 다름없는 면영당 사람들은 물론 코요미와 함께한 추억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종이 위로 그의 투명한 마음이 한 방울 떨어진다.
소우마 하루토는 드디어 마침내 계속 정하지 못했던 이 다이어리의 제목을 정했다. 추억을 하나씩 떠올리면서 그는 곧 펜을 들어 아무 망설임 없이 [나와 너의 다이어리]라는 글씨를 써내려갔다. 하루토는 어제, 오늘, 내일, 미래, 그 모든 눈물을 보석으로 바꿔 오늘도 담담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특촬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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