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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뱀은 카멜레온을 좋아한다 - 헤비츠카이 실버 우주 항해일지
    특촬물 2020. 4. 25. 01:03

    * 특촬 헤테로 합작 - 두 사람의 계절에 라즈베리로 (2019.09.21.5PM) 제출했던 공개글입니다. 다른 분들의 멋진 연성은 아래 주소로 들어가서 확인해주세요! 

    https://foryousummer.wixsite.com/futari-saison 


    뱀은 허물을 벗긴다. 조금씩 조금씩 하나 둘 반 불투명한 감정의 허물을 벗겨낸다. 그 감정이 뭔지도 모른 채 제 안에 차오른 느낌적인 감정을 애써 알려고 노력해보면서 열심히 새로이 얻은 감정의 기분을 덧칠해나갔다. 

    나가는 감정을 모른다. 자신이 원래 살던 고향인 뱀주인자리계 행성에선 일족이 모두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언제나 무표정을 유지하였으며 화를 낼 줄도, 기뻐할 줄도, 그 외에도 자잘하게 많은 다양한 감정을 세세하게까지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왜냐하면 아주 오랜 예전에 이미 선조가 감정을 없앴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 선조의 선조, 훨씬 윗대의 세대엔 한때 그렇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정말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실제 뱀주인자리의 주민들이 상호간의 싸움을 피하기 위해 감정을 버리며 살아왔던 터다. 그리고 그것은 나가가 우연히 우주 최고의 보물을 찾으러 자신의 행성에 찾아든 밸런스와 동료가 되고 괴도 BN단이 되어 저 드넓은 우주의 여기저기를 여행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또한 지금 현재 럭키 일행들과 함께 '큐렌쟈'가 되어서 여행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은 감정을 잘 알 수 없었기에 밸런스에 의해 서툴게 배운 몇 가지 감정만으로 웃어야 할 때 화를 내버린다거나, 슬프거나 괴로워서 엄청 가슴이 찢어질듯 아플 때 눈물을 흘린다는 기본 개념 상식조차 알지 못했다. 반대로 밸런스는 천칭자리계의 행성으로부터 온 기계 생명체 종족이었다. 비록 겉모습은 인간인 나가와 달리 그는 안드로이드 형체의 기계였으나 답지않게 충분히 다양하고 많은 감정을 알았다. 

    특유의 밝고 가벼운 성격을 제외하면 충분히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마치 아이가 엉엉 우는 것처럼 제대로 소리 내어 울 줄 알았다. 매번 그런 풍부한 그 모습을 볼 때 마다 나가에겐 전부 신기했다. 그저 이 모든 것이 꽤 큰 충격을 받은듯이 멍하다. 그만큼 매우 신선하기만 하였다. 그래서 가끔 저의 기준에서 얼른 막 이해되지 않는 감정이나 또는 그런 밸런스의 말투와 행동을 보면 넋을 놓은 채 한참 바라보았다. 인간이 감정을 모르고 반대로 기계 생명체가 그 같은 감정을 알려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어떻게든 최대한 이해하려 애써봤으나 아직 여행이 좀 더 필요한가 싶었다. 이대로 계속, 계속 여행해서 더 많은 존재들을 만나고 느끼며 감정을 배우고 싶었다. 그것도 뭔가 하나의 인생 공부가 되지 않을까, 매일 새롭게 흘러넘치는 감정을 알고 싶으니까 그래서 처음 럭키를 만나 별자리의 힘이 깃든 큐타마에 선택 받고 큐렌쟈의 일원이 되어 헤비츠카이 실버로 변신하고 오리온호에 타 모두와 다 같이 여행하는 중인 것이다. 큐렌쟈의 동료들은 정말 성별도 성격도 좋아하는 것도 모두 제각각, 참 다르다. 

    사자자리계 행성에서 온 럭키, 이리자리계 행성의 늑대 수인 가루, 황소자리계 행성 출신인 로봇 챔프, 앞서 말했다시피 카멜레온자리계 행성의 하미와 황새치자리계 행성에서 왔다는 스파다, 전갈자리계 행성이 출신지라는 스팅거는 뒷쪽에 전갈 꼬리가 있는데 이 독에 닿으면 사망까지 이르게 될 정도로 위험하다나 뭐라나── 물론 밸런스는 당연히 천칭자리계 행성에서 왔고 나가 레이는 뱀주인자리계 행성 출신이다. 또한 나중에 밝혀지길, 츠루기가 직접 만든 안드로이드인 랩터 283은 독수리자리계 행성 출신, 게다가 이들을 이끄는 쇼 론포 사령관은 이름에서 얼핏 알 수 있듯이 용자리계 행성에서 왔으며 지구인 두 명도 있었다. 

    팀의 막내인 사쿠마 코타로가 그러했으며 동생 지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쟈크매터를 꼭 없애겠다며 들어온 녀석, 마지막으로 한때 300년 전 우주 연방 초대 대통령이었던 전설적인 오오토리 츠루기 또한 지구인이다. 지구인 시점에서 보면 확실히 정말 그들 모두 외계인이나 다름없지만 안드로이드, 겉모습이 동물 형상의 수인 종족을 제외한 럭키와 스파다, 하미, 스팅거, 나가는 지구인인 코타로와 츠루기처럼 인간과 같은 모습 하고 있는 외계인 인간이다. 이렇듯 우주전대 큐렌쟈의 전사들은 다양한 종족이 모인 저마다 개성 강한 존재들이었다. 

    큐렌쟈로서의 일상이, 이 생활이 별로 나쁘진 않았다. 그런데 뭔가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차오르듯한 기분은 뭘까? 자신 안에, 마음 속에 자꾸만 흘러오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감정에 관해선 무딘 나가로선 아직 현재 그것을 이해하거나 알 길이 없었다. 감정 변화가 풍부한 다른 동료들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긴 꽤 힘든 일이었다. 하여튼 나가는 현재 잠이 오지 않아 배틀 오리온 쉽의 공용룸으로 나와있는 상태다. 

    이미 오랜 옛날, 300년 전의 선대 구세주였던 츠루기가 쓰러뜨렸을 터인 돈 아르마게가 어째서인지 현대에서 살아서 우주를 지배하고 있다는 말에 럭키 일행이 모두 시계 큐타마를 이용해 과거로 이동할 때다. 쟈크매터의 보스인 쇼군 돈 아르마게에 의해 공격받아서 파괴되어버린 이후 큐렌쟈의 새로운 탈 것이 된 전용 메카 전함이다. 

    어쨌든 나가는 전체 공용룸의 12명이 모두 앉기 가능한 크고 넓은 테이블 앞에 앉아 세이자(성좌) 블레스터에다가 빛 큐타마를 사용해 주변의 불을 밝힌 그가 가만히 손가락을 가볍게 톡톡 쳤다. 무언가를 고민하거나 골똘히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감정이라고 럭키와 밸런스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만약 혼자서 끌어안기 힘들면 언제든 상담해도 괜찮다며 의지하라는 큐렌쟈의 동료들, 항상 정말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나가는 처음 12명 완전체의 구세주 전원이 한자리에 모여 변신했던 날을 떠올렸다. 가장 늦게 만난 마지막 동료, 그리고 전설의 구세주, 아르고선을 부활시키기 위해 선미자리, 용골자리, 돛자리, 이 3개의 별자리의 힘이 깃든 큐타마가 모두 모였을 때 아르고자리의 힘이 깨어난다고 하는 전설의 배를 각성시켰더니 돌연 콜드 슬립(동면 캡슐)에서 눈을 뜬 그까지 합류하면서 큐렌쟈는 모두 12명이 되었다. 이때 나가는 비로소 새로운 궁극적인 전설이 시작된다는 것을 느꼈다. 

    "나가..!?" 

    "..... 하미?!" 

    "무슨 일이야? 왠일로 이 늦은 밤에 나와있네??" 

    "아, 으응~ 그냥.. 잠이 안 와서... 하미도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그렇게 말하며 하미는 따뜻한 코코아를 태운 다음 자리에 돌아와 머그컵 하나를 나가에게 건넸다. 나가가 웃으면서 '고마워' 짧은 말 한마디를 건넴과 동시에 하미가 의자에 앉았다.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 없이 머그컵을 들어 코코아를 마셨다. 살짝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와 주변 시야를 일시적으로 흐릿하게 만들었다가 사라졌다. 

    컵을 잡은 손바닥이 조금은 뜨거움이 전달되었지만 이 정도는 꽤 마실만 했다. 한모금 마시자 금방 입 안에서 따뜻한 초코 맛과 향이 가득 퍼져갔다. 한모금, 자꾸 한모금 더 마실수록 초코의 열기로 가득차 기운이 솟아오르는듯한 기분이다. 뭔가 화내는 것과 비슷한 모양으로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있으니까 하미가 그걸 보고 나가에게 말했다. 

    "나가! 지금은 화내는게 아냐~ 이럴 땐 좀 더 부드럽게 웃어야지!" 

    일부러 눈에 팍 힘주어 인상을 쓴 나가가 환한 웃음을 자아냈다. 뭔가 아직도 화난 느낌이야- 하고 하미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입을 삐죽 내밀더니 이내 휴우,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어, 어떻게하면 되?" 

    "봐봐! 나처럼 이렇게, 입꼬리를 옅게 올리고 은은하게, 부드럽게- 어때??" 

    하미가 양쪽 검지 손가락을 제 입가로 가져다 댄 채 쭈욱 올린 뒤 그렇게 말했다. 귀엽다. 아담한 체구에 뿜어져나오는 에너자이저가 그의 기분을 조금 이상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음을 지어버린 나가는 다시 컵을 들어서 가만히 코코아 한모금을 마셔댔다. 순간 목이 타는듯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왠지 이런 어색한 상황이 저를 곤란하게 만들어서 더 참고 있을 수 없어졌기에 자꾸만 코코아가 든 머그컵에 손이 갔다.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굳이 인간체의 모습이 아닌 기계, 수인 종족도 다소 섞어있지만) 곁에 있다는 것이 이전 자신의 고향 별인 뱀주인자리계에선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하루하루 마다 그전에는 결코 미처 절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나가는 조금씩 변해갔다. 

    함께 마음을 나눈다거나 깊게 의지할 수 있는 동료를 만나 전 우주를 지배하는 쟈크매터를 물리치면서 우주의 평화를 위해 여행하고 있지만 아직도 감정이라면 많이 서툰 편이었다. 완전히 모든 것을 전부 이해하기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오래 걸리더라도 부딪혀보자, 나가는 조용히 머릿 속으로 계속 되내었다. 

    "하미- 전에 하미가 나한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나는 감정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마음을 들어낼 줄 몰라서 대부분 감추거나 혼자 끌어안아버리니까 항상 솔직한 하미가 조금 부럽기도 해" 

    "..... 나, 말이지- 사실은 솔직하지 않아~ 언제 한번 말해준 적 있지? 내 과거에 대해서.." 

    "응~ 들었어" 

    하미가 가만히 머그컵을 내려놓은 뒤 나가를 똑바로 쳐다봤다. 진지한데 왠지 조금 멍한 것이 오묘한 표정을 한 나가의 은백발이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나가는 얼마 전쯤 하미의 과거를 들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날은 아침부터 공용룸에 나와 스파다가 요리를 할 동안 테이블에 모두 모여 미나토의 공연을 보던 중이었다. 일전에 한번 어캠버가 자신을 세뇌시킬 때 했던 말과 그의 팬이 폭주한 사례를 보고 수상하게 여겼고 미나토의 팬인 하미와 충돌했다. 나가에게 투닥거리며 싸운다는 느낌은 잘 모르지만 어떻든 이 일 때문에 나가도 하미도 서로 감정이 상했었다. 

    일명 '미나티'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호시☆미나토, 우주대스타 인기 가수로 유명한 그가 어쩌면 쟈크매터와 관련되어 있을지 모른다며 쇼 론포 사령관의 명령 따라 그가 주최하는 오디션을 통해 잠입 수사하던 때였다. 결국 에리다누스 큐타마를 사용해서 돈 아르마게의 분신이 붙어있었다는 걸로 끝이 났지만 말이다. 거기서도 또 투닥거렸고 쟈크매터 잔당이 나타났을 때 하미는 카멜레온 그린으로 변신해 싸우지 않은 채 대기실로 들어가버렸다. 

    역시 조금 신경이 쓰였던걸까.. 쟈크매터를 물리친 뒤 나가는 조심스레 대기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서, 사과라도 해야될 것 같아서, 나가는 다소 머뭇거렸지만 곧 천천히 입을 열어 사과와 함께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카멜레온자리계 행성 출신인 그녀는 본인의 별을 빠져나온 후 얼마간 여러 행성을 떠돌아다녔다고..... 

    이미 전 우주를 지배한 쟈크매터라 어느 별이든 모두 지배 받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여전히 적극성 없는 것은 극복했지만 암담한 현실에 희망을 잃었고 마음이 텅 비어졌다고 하였다. 그때 하미는 우연히 어느 별의 밤거리를 떠돌 때 아직 잘 나가기 전의 무명 가수였던 미나티가 기타를 치면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주변에 몰려드는 관객 한명조차 없었지만 왠지 필사적이 되어서 행동하는 그 사람을 보자 저도 모르게 그만 울컥하여 눈물을 흘렀다. 

    왜 아무도 안 들어주는데 노래하냐는 그녀의 말에 미나토는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지금은 아무도 없어~ 그래도 언젠가 꼭 내 노래를 들어줄 사람이 나타날거라 믿으면 그것만으로도 앞을 보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어' 그 말 한마디만으로도 충분히 하미는 구원받았다고 느껴졌다. 

    다시 눈물이 차올라서 울었다. 뭔가 처한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왠지 자기자신한테 해주는 말 같아서 텅 비어진 마음 뿐이었던 내가 처음으로 앞을 향해보자고 다짐했었다라고 다소 상기된 채 그에게 말했다. 하미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아까 아침에 그런 일이 있고나서 지금까지 나가와 마주칠 때 마다 내내 계속 감정적이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담담하게 자신의 기분과 마음을 풀어나갔다. 

    마음이 텅 비어졌다, 앞을 본다, 그 모든 문장이 나가는 얼른 막 이해하기 다소 어려웠지만 대강 어떤 기분인지는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무언가 마음이 허전한 느낌,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이 그 순간 저에게 있어서 하미의 감정에 공감해버렸다. 그리고 무언가 울컥하는 또 다른 감정이 가슴 속 깊은 내부에서부터 올라왔다. 하지만 무슨 감정인지 전혀 몰라 몇 번 머리를 굴린 끝에 나중에서야 언젠가 밸런스를 통해 들었던 말이 겨우 기억났다. 

    그것이 [연민]과 [공감]이란 감정이라 하였다. '연민? 연민이 뭔데? 공감은 뭐야?'라고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묻는 나가한테 밸런스가 상냥하게 특유의 밝음을 유지한 채 차근히 뜻을 설명해주었다. 

    누군가의 감정이나 기분, 타인이 느끼는 것을 이해하고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이 공감, 연민은 사전적 의미론 불쌍하고 가련하다는 뜻이라 이 단어는 잘못된 상황에서 쓰게 되면 자칫 감정을 상하게 만들 정도로 안 좋게 분위기가 흘러갈 수도 있다고 했다. 상대에 따라 동정받는 것을 싫어할 수 있기 때문에 분위기를 잘 파악해서 써야된다는데 말이 매우 어렵고 복잡해서 도통 뭔 소리인지 헷갈린 나가가 그저 눈동자를 굴린 채 눈만 자꾸 끔뻑거렸다.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역시 감정이라는 것은 조금 어렵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처한 환경이나 놓여진 처지는 분명 다르다. 또한 큐렌쟈가 되기 이전의 각자 살아온 생활과 일상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어쨌거나 하미의 마음이 텅 비어졌단 말에서 그동안 자신이 감정을 잘 알지 못해 가슴이 찌릿하는듯이 아려오는 무엇과 닮아있다. 

    앞으로 나아갈 생각 따윈 하지 않은 채 그저 포기하고 좌절하기만 했던 예전의 나와 비슷하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서 나가는 순간 그 두가지 키워드에 반응했다. 그리고 하미를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기분, 또한 그 같은 감정에 공감하는 것이 이제 가능하게 되었다. 

    화를 낸다는 감정도 배웠고 비록 자신의 의지가 약해 쟈크매터의 간부 어캠버가 감정을 해방시켜주겠단 말에 쉽게 현혹당해 타락한 적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화를 낸다는 것에 분노 조절이 가능해졌고 그러면서 원래대로 돌아온 후 헤비츠카이(뱀주인) 큐타마는 다크 큐타마로 변형하여 새로운 강화폼인 헤비츠카이 메탈로 변신하는데에 쓰게 되었다. 여러므로 기념적인 날이다. 아무튼 간에 지금 가만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꽤 많은 감정들을 하나씩 배웠다. 

    만약 그때, 밸런스가 우주 최고의 보물을 훔치기 위해 우연히 뱀주인자리 행성에 오지 않았다면, 설령 왔더라도 손을 뻗지 않았더다면 그 녀석과 함께 이 행성을 빠져나갈 수 있었을까, 아마 히어로의 변신은 커녕 큐렌쟈의 동료들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뭐든지 화끈하고 대담한 럭키나 밸런스에 비해 비교적 평소 조용하고 차분하며 침착한 성격의 나가는 적어도 이러한 자신의 선택이 일생에 있어 가장 잘한 일이라 생각하였다. 


    「YOU RES ME UP 
    YOU MAKE ME FLY 

    새벽에 올려다 본 별똥별 
    말로는 할 수 없는 그 소원 
    어릴 때나 그려봤었던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


    갑자기 나가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서 하미는 잠시 멈칫하곤 어? 했지만 곧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다음 파트를 이어받아 불렀다. 


    「빛나고 있는 것만이 
    강해질 수 있는 거라고 
    언제나 어떤 때도 믿고 있어」


    나가는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하미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확실히 제대로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두 사람은 후렴 부분을 열창한다. 


    「꿈꾸고 있어 
    나날은 너무 애절해 
    텅 비어진 마음에 
    눈물을 흘렀어 

    꿈 속에서 
    깨어나고 알았어 
    용기와 함께 걸어나가」


    이윽고 노래가 끝났다. 하미와 나가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본 채 웃었다. 가사는 조금 애절한데 멜로디는 답지 않게 밝고 희망찬 곡이다. 츠루기가 아주 전설적인 팀명이라며 멋대로 트리플Q라고 떠든 덕분에 하미와 럭키, 나가 셋은 그대로 그 유닛 이름이 되어버렸다. 어차피 확인차 잠입 수사하는건데 뭘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싶다가도 확실히 걸리지 않도록 하미와 럭키, 나가 3인조 구성의 아이돌 유닛에 오오토리 츠루기가 소속사의 사장, 스파다가 매니저로 새로운 신인 아이돌 유닛 데뷔라는 식의 뭔 장대한 설정 어쩌고 그랬던듯 했다. 

    잠입 수사도 무사히 성공적으로 잘 끝났고 쟈크매터를 물리친 뒤 직후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그건 완전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하미- 역시 이 곡은 몇 번이나 들어도 좋은 것 같아' 나가의 말에 하미가 크게 리액션을 취했다. '그치? 나도 이 노래, 꼭 그 시절의 내 마음을 대신해주는 것 같아서 엄청 좋아해!'라며 같이 맞장구를 쳤다. 「전혀」라는 곡은 원래 호시 미나토가 한창 무명이던 시절 불렀던 노래다. 

    언젠가 한번 하미가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을 봤을 때 역시 불렀던 노래이기도 하다. 어느 의미로 두 사람에겐 의미가 있는 것으로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 담긴, 그날 자신에게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었던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였다. 때마침 문득 시계 큐타마를 써서 시간을 확인한 나가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벌써 한참 식어버린지 오래인 머그컵을 든 그가 남은 코코아를 마저 마신 후 내려놓았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그만 일어설께~ 하미- 오늘 늦은 시간에 나와 대화해줘서 고마워!" 

    "아니, 뭐.. 나도 마침 그땐 깨버려서 잠이 안 왔으니까-" 

    "그래도 같이 옆에서 이야기해줬잖아? 그러니까 고맙다고 생각하는걸~ 하미- 잘 자!" 

    "응~ 나가도 잘 자!" 

    서로 잘 자라는 인사를 한 뒤 나가는 서둘러 제 방으로 돌아왔다. 몸을 던지듯 침대에 누우니 따뜻한 코코아를 마신 기운이 아직 남아있었던걸까, 아니면 하미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눈 덕분일까 알 수 없었으나 조금씩 눈꺼풀이 자꾸만 스르륵 내려왔다. 그래도 오늘은, 아니 자정이 훨씬 넘었으니까 어제까지는- 이라고 표현하는게 맞나? 어느 쪽이 더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아까 전의 하미와 함께한 대화로 인해 나가는 기분이 좋았다. 왠지 가슴이 설레고 웃음이 나오는, 심장이 격렬할만큼 불안정하고 빠르게 호흡하며 고동치는듯한 이 느낌은 뭘까? 내일 밸런스에게 이 감정을 물어봐야겠다. 아, 그리고 또..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면 에키드나한테도 반드시 꼭 내가 보고 느낀 다양한 감정들을 알려줘야지- 그리 여러 생각을 하면서 나가는 어느 덧 깊은 꿈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나가 레이는 여전히 감정 표현이 서툴다. 아직 잘 모르는 감정이 많아서 좀 더 배워야 할 감정들이 많았다. 유리된 감정과 직접 맞부딪히면서 서서히 알아가는 중이다. 나가의 우주 항해일지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멈추지 않은 채 계속 나아간다. 

    큐렌쟈의 일도, 감정을 찾는 일도, 자신의 꿈도 모두 여러가지로 분명 힘내고 있다. 본인은 비록 자각하지 못하지만 뱀주인의 뱀은 카멜레온을 좋아하고 있었다. 


                           ▷  ▷  ▷  ▷ 



    우주 연방 리벨리온 본부 소속의 우주전대 큐렌쟈가 우주막부 쟈크매터의 지배에 대항해 완전히 물리친 현재, 전 우주는 해방이 되었다. 다시 예전처럼 평화를 되찾았다. 지금껏 1년동안 함께 울고 웃으며 활동해왔던 이 동료들도 이제 저마다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한 장소에서 나아가기 위해 잠시동안 헤어진다. 

    늘 활기찬, 다소 좀 오바스러운 면이 없지않아 있는 큐렌쟈의 구호 '오큐'가 오늘 따라 왠지 슬프게 들린다. 일명 '라져'같은 말인데 대체 누가 이 따위 멋없는 이름을 지은거야..(쇼 론포 사령관/큐렌쟈란 팀명도 그가 지음) 큐렌쟈의 구세주들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이미 1년간 다들 정들어버렸다고? 물론 조금 슬프지만 다들 웃으면서 인사를 나눈 뒤 이동 기지 아지트인 배틀 오리온 쉽 안의 짐을 하나씩 빼 담은 캐리어를 든 채 하나 둘씩 나갔다. 주섬주섬 짐을 정리하는 밸런스를 따라 나가도 자신의 짐을 챙겼다. 

    처음부터 괴도 BN단이 결성된 채 큐렌쟈로 들어왔으니까 떠나갈 때도 둘이 함께였다. '나가- 다 정리했어? 이제 갈꺼지?' 밸런스가 말했다. 나가는 '응~ 다 챙긴 것 같아~ 맞아! 그 전에 나, 뱀주인자리 행성으로 먼저 돌아가면 안 될까? 꼭 해야될 일이 남아있어'라며 결의에 찬 눈빛을 하였다. 그의 말을 들은 밸런스가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말했다. '고마워! 밸런스-' 나가는 녀석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아지트를 빠져나갔다. 물론 전용 큐 보이저를 타고서── 다른 큐렌쟈의 멤버들도 모두 개인 전용 보이저나 전부 어떤 무언가 탈 것을 타고── 그렇지 않아도 일단 떠나갈 때의 탈 것이 없으니까 말이다. 

    눈물 따윈 좋아하지 않는다. 큐렌쟈의 구세주들은 모두 눈물을 삼키면서 밝게 웃으며 떠났다. 나가 역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발짝 나아가기로 결의를 다졌다. 그래서 밸런스한테 우선 말을 꺼냈던 것이고 나가는 녀석과 함께 자신의 고향 별인 뱀주인자리계 행성으로 돌아왔다. 처음 목표 그대로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뱀주인자리 일족의 사람들한테도 감정을 가지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서둘러 떠났다. 몇날 며칠이 걸려 광활한 우주를 가로질러 드디어 도착한 나가는 제일 먼저 에키드나의 저택을 찾았다. 

    한동안 지구에 머물 때 어캠버의 유혹으로 타락해 감정을 해방받았을 시기, 에키드나는 감정을 가지는 것은 일족의 죄라며 나가를 말살하기 위해 자객으로 왔다. 그리고 그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큐렌쟈의 싸움을 모두 지켜본 자이기도 하다. 하여튼 뱀주인자리의 사람들은 모두 나가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데 다만 은백발의 헤어 스타일은 전부 각양각색이다. 

    과연 문이 열리더니 긴 은백발을 찰랑거리며 에키드나가 '무슨 일이야?' 그를 맞았다. 여전히 감정이 없는 무표정한 얼굴과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말투였다. 원래 그녀가 천성적으로 기본 차가운 성격인 탓도 있어서 그런가 더욱 그러했다. 이전에는 저도 이랬나 싶었다. 큐렌쟈로서 1년 살다오니 감회가 새로이 남달랐다. 묘한 기분이 든 나가가 에키드나를 따라 집안에 들어섰다. 자신의 방으로 안내한 그녀가 금방 먹기 좋을 정도로 데워진 따뜻한 차를 내왔다. 

    "쟈크매터도 완전히 물리쳤고 이제 전 우주가 쟈크매터의 지배에 벗어나 전부 해방이 되었어~ 더 이상 큐렌쟈로 변신할 일은 없어졌으니까 모두 각자의 꿈을 위해 잠시 헤어져 돌아온거야" 

    "........ 그래-" 

    에키드나가 차를 한모금 마신 뒤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무표정한 모습으로 말하는 짧은 한마디─ 공중에 덧없이 공명하는 에키드나의 예쁜 목소리가 울렸다. 언동 하나하나가 감정은 없지만 보는 이한텐 차가움이 서려있었고 정대함이 가득 베어져 담겨진 어투였다. 나가가 그런 느낌을 받을 정도라면 밸런스라도 확실히 같은 이 기분을 느낄 것임이 분명하다. 

    "나는 큐렌쟈의 동료들을 만나 감정을 배웠어~ 새로운 감정을 알게 되었고, 오랜 전부터 계속 원했으니까, 밸런스를 따라나선 건 내 의지였으니까 난 분명 잘한 선택이라 생각해~ 에키드나-" 

    "어- 확실히 난 그때 널 인정했어~ 감정을 가지는게 굳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그것을 가짐으로써 나가는 점점 강해졌다. 나도 느꼈으니까- 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어~ 우리가 왜 굳이 살아가는데 쓸데없는 감정이 필요한지에 대해선 이해가 안 되" 

    "그러니까 내가 온거야~ 기쁠 때나 슬플 때 울고 웃는다거나, 화를 낸다거나, 슬퍼하고 외로워하고, 아파하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래서 사랑이란 감정을 깨닫고, 상대의 말과 마음에 함께 공감해주고 연민을 느끼고, 이 외에도 다양한 감정 표현을 함으로써 텅 비어진 마음이 조금이나마 메말랐던 사랑이 가득찬다면 다시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배운 감정을 알려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건가....?!" 

    "응~ 절대 가능하다고 믿어" 

    에키드나가 잠시 뜸을 들였다. 그 사이 나가는 탁자에 놓인 찻잔을 들어 홀짝 차를 마셨다. 찻물의 온도는 아까보다 식어있었다. 

    "........ 알겠다. 나가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조금은 믿어보도록 하지" 

    "고마워! 에키드나-" 

    그렇게 말하면서 나가는 다시 차를 마신 후 찻잔을 내려놓았다. 줄곧 감정을 가지는 걸 동경해 마지 않았다. 어느 새 그는 이젠 꽤 자연스럽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봐봐! 나처럼 이렇게, 입꼬리를 옅게 올리고 은은하게, 부드럽게- 어때??' 어디선가 하미의 발랄한 목소리가 들린다. 저도 모르게 나가는 씨익 웃었다. '하미-' 낮게 이름을 부른 채 중얼거렸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일전에 한번 밸런스에게 들은 바는 있었으나 나가는 이때까지도 그 감정만큼은 아직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만 그것을 결코 자각하지 못했지만 두근거리며 뛰는 나가의 심장은 정확히 감정을 표현하였다. 언젠가부터 뱀은 카멜레온을 좋아하고 있었다. 

    우주는 참 아름답다. 매일 위험이 가득하지만 그만큼 정말 멋진 곳이라 생각한다. 전부 불안정하니까, 딱히 어떤 형태가 없으니까, 그렇기에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신화를 찾아서 역사에 새겨질 굉장한 전설을 남기기 위해(츠루기의 말버릇 인용) 떠나는 동료들과의 모험은 짜릿하고 재밌다. 

    큐렌쟈의 팀이 되어 하나로 모인 동료들은 두말 할 나위 없었고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항상 함께하는 동료들이 곁에 있으니까 무엇 하나 두려울 것이 없었다. 우주전대 큐렌쟈의 헤비츠카이 실버, 나가 레이의 우주 항해일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끝나지 않은 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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