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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면라이더 가이무의 4호 라이더인 가면라이더 잔게츠 외전 연극 무대 결말 스포일링 주의!! 엔딩 이후 남겨진 베리스와 오세, 그리고 팀 바로크 레드의 결성 비화 날조~ 그냥 글라샤, 베리스, 오세, 이 세 사람의 만남이 어땠을까 보고 싶어서 쓴 취향글!
개인적으로 잔게츠 무대 오리지널 팀들의 댄스를 보고 싶은 마음에 가이무 본편의 스트리트 댄스 팀 설정이었던 비트 라이더즈 컨셉 좀 끼얹어봤는데.. 단지 그냥 얘네들이 이러이러했으면 좋겠다 싶어 넣어본 거....
일단 지하도시조 애들 대부분 실제로 배우들이 연극 배우 이전에 원래 아이돌이나 전문 댄서인 사람이 꽤 있는 편이라 다소 배우 네타도 살짝 넣음~ 그래서 요 부분은 편하게 소설을 좀 더 재밌게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소소한 재미 요소로 보면 될듯~ 이 글에서 팀 바로크 레드의 글라샤, 베리스, 오세 세 명의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이지만 스토리의 주인공은 글라샤보단 베리스가 좀 더 이 소설의 시점의 중심이 되어 흘러가는 이야기~
가이무 본편에서 팀 바론의 잭과 비슷한 포지션이다보니 잭과 비교해가며 썼다. 일단 잭의 성격이 팀원의 의견은 존중하는데 자신의 마음은 좀 한발 물러선 채 상대에게 많이 맞추고 베려하고 양보하는듯한 경향이 없지않아 있는 느낌이라 베리스도 무대 내내 글라샤한테 말하는 거 들어보면 이와 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긴 들더라....
뭔가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지만 어쨌든 베리스는 잭처럼 팀이 원만한게 더 좋아서 솔직할 땐 솔직한데 보통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려하는게 좀 있는듯..!? 그래서 베리스는 약간 이런 타입의 성격이 아니었을까, 만약 얘라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 이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는 캐해석과 함께 약간의 동인 설정 있음 // 스토리는 나름대로 괜찮게 쓴 것 같다.....
-팀 바로크 레드 Begins-
모든 것이 끝나고 베리스와 오세는 글라샤의 무덤을 찾았다. 딱히 무덤이랄 것도 없이 그저 마지막 결전에서 그와 싸웠던 팀 오렌지 라이드의 아임이 죽은 장소를 알려주어 오게 된 것이었다. 힘, 힘을 추구했다. 그는 언제나 좀 더 강한 힘을 원했다. 마지막 끝에는 이리 허무한 결말을 맞이하면서.....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절대 굽히지 않은 채 허망하게 죽어갔다. 하지만 베리스와 오세, 팀 바로크 레드의 멤버들을 포함한 다른 팀의 어느 누구 하나도 그것이 결코 허망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후회없는 인생이었으며 운명의 선택이었다고 글라샤도 그렇게 말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말이지- 남겨진 자들은 어떻게 하나 싶을만큼 멋대로 떠나버리다니 정말 너무하단 마음이 없지않아 들었다. 파이몬과 구시온이 아임을 말릴 때 본인이 조금 더 강하게 화를 내며 말렸더라면 지금은 좀 달랐을까, 운명을 바꿔나갈 수 있었을까 싶어서 베리스는 조용히 글라샤가 죽은 곳을 향해 하얀 안개꽃다발을 훅 던졌다.
그의 손에서 힘이 실린 꽃다발이 한번 하늘의 공중에 붕 날아올랐다가 이내 힘없이 지면에 툭 떨어졌다. 옆을 돌아보니까 오세는 울고 있었다. 그동안 함께 여러 추억들을 쌓으면서 암담한 지하 도시를 살아왔는데 갑자기 그리 가버렸으니 아직 받아들이기 힘들거다. 어지간한 충격이어야지, 꽤 상심이 컸을만도 당연하다.
이제 글라샤가 더 이상 살아돌아올 일 없어졌다. 죽은 존재가 되어버린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운명은 참 슬프다. 돌아가면 돌아가는대로, 멈추면 멈추는대로 운명이란 것은 그러했다. 베리스는 속으론 이미 반쯤 울고 있었지만 겉으론 차마 눈물을 드러내지 않았다.
팀에 없는 글라샤를 대신해 이젠 자기자신이 리더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저로 인하여 차마 다른 동료들한테 민폐를 끼칠 수 없는 노릇이니까 그냥 참았다.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해서, 타인의 모범을 보여야 누군가를 이끌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 베리스가 계속 눈물을 흘리는 오세의 어깨를 잡았다.
"울지마"
"응~ 그래야겠지?"
짧은 대화 후 잠시 침묵이 오갔다. 더 할말이 없어진 베리스가 5분 정도 뜸을 들인 뒤 말했다.
"오세- 기억나?"
"뭐를?!"
"글라샤 씨가 있던 때의 추억들 말야~"
"아, 그래~ 당연히 기억나!"
"그렇네"
두 사람은 한참 서로 말을 주고 받았다. 마치 글라샤가 듣기라도 하는 양, 다양한 표정 변화가 풍부하게 일어난 베리스와 오세가 조금씩 그때 그 시절의 회상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기억의 루트를 따라 가슴 속 깊이 오래 묻혀놨던 추억이 되살아났다. 잠들어있던 것이 하나씩 깨어나 흑백의 모노톤이 기억 속에 들어가 헤집을 때 마다 화려한 색깔로 변해 색채가 바뀌어갔다. 그리고 그의 첫 만남은, 팀 바로크 레드의 시작은 이러하였다.
토르키아에서 가장 위험한 땅, 갖가지 위험이 도사리는 곳, 언더 그라운드 시티는 어둠이 스민 도시이다. 이 지하 도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대 기업 이그드라실로부터 행해졌던 실험이 시간이 흘러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있었다. 그 잔재란 것이 실패되어버린 실험 이후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던 까닭이다. 잔게츠 기동 실험과 스칼라 시스템의 가동, 그리고 불살라진 토르키아 공화국, 8년 전에는 잔혹할 정도로 참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그 진실을 지하 도시의 사람들은 별로 알지 못한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대충 거대 기업 이그드라실이 이 나라, 토르키아 공화국을 실험 무대 삼아 어떤 실험을 진행했지만 결국 실패한 뒤 이 나라를 불살랐다고 하는 그런 엄청난 일이 있었다는 건 아임과 글라샤 외의 몇몇 청년들은 꽤 아는 편이다. 그리고 글라샤는 모르모트가 된 아이를 멋대로 방치한 채 게임처럼 즐기는 어른, 소위 '귀족'이라고 부르는 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감정은 점점 증오로 바꿔져 귀족을 경멸하게 되었다. 뭔가 어디 납치되어 감금 당한듯한 기분 마냥 최악의 기분이 되어버린 글라샤가 한번 쯧, 혀를 찼다. 같은 인간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며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고작 이 따위 서바이벌 게임을 즐기고 싶어서 센고쿠 드라이버를 쥐어준건가.. 글라샤는 덧없이 미묘한 웃음만을 흘렀다.
"흥! 아무런 흥미도 안 생기는군~"
글라샤는 가만히 제 허리에 찬 센고쿠 드라이버를 보았다. 바보 같다. 지금 이 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했다. 처음에는 이곳도 분명 지상이었을 토르키아의 땅과 별반 다르지 않을 터, 언제부턴가 생겨난 지하 도시와 록시드와 센고쿠 드라이버를 건네주면서 여기서 마지막까지 계속 싸워 살아남는다면 바깥으로 내보내준다던 귀족들의 말을 몇 번이나 되내었다.
글라샤는 더 이상 그들의 오만하고도 그릇된 점을 따르지 않을 생각이다. 히어로는 정말 어릴 때 한번쯤 누구나 꿈꿔봤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변신해봤자, 히어로 따위 하나도 전혀 기쁘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지하 도시 안의 곳곳 마다 설치된 CCTV를 통해 우리 모습을 보며 좋아라 웃고 떠들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니까 다시 열이 뻗혀오는 화기를 억누를 수 밖에 없었다.
울컥하는 마음에 주먹을 날려 벽을 한대 친 글라샤가 분을 이기지 못했다. 최대한 감시 카메라가 없는 장소만 피해다녔다. 왠만큼 사각지대로 다녀야 그나마 마음 편했다. 사소한 말 한마디라도 감시 카메라가 앞에 있으면 왠지 말하기 껄끄러워지고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항상 어디에서든 말 조심을 해야되고 자유를 구속받는다고 생각하니 다시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토르키아의 여느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했다. 하지만 운명은 언제부터 돌연 찾아와 갑자기 조용하고 평화로운 날의 일상을 깨뜨린 다음 인생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 놓는다. 이런 운명이 싫다고, 바깥 세계로 다시 나가게 된다면 귀족들 따위 반드시 없애버릴거라고, 글라샤는 오늘도 다짐하고 다짐했다.
저 멀리서 웅성거리는 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 달려오니 이번에도 과연 역시다. 인베스가 나타난 것이다. 헬헤임의 숲, 이쪽 세계와 다른 차원 너머 미지의 공간과 함께 거기서 서식하는 괴물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거리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 괴물을 인베스라고 부르는 것이다.
또 어디서 크랙이 열렸지? 글라샤는 급 주변을 경계했다. 긴장감이 흘렀다. 곧 전투 태세를 갖춘 그가 변신하기 위해 바나나 록시드를 들어 자세를 잡았다. 옆에는 전에 한번 본 적이 있는 아임이란 녀석도 있었다. 이미 팀을 결성한 것인지 그가 파이몬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아임 역시 허리에 센고쿠 드라이버를 찬 모양이다. 전부 본인처럼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할 수 있는듯 하였다.
팀 오렌지 라이드라고 하던가, 아임이 오렌지 록시드를 사용해서 그런가 싶다가도 이름에 걸맞지 않게 푸른 청 패션의 캐쥬얼한 팀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보니까 어느 날 갑자기 리더가 사라져서 자신이 대신 대리를 맡고 있단 소문을 들은 바 있었다. 그쪽 팀의 리더가 별 이유 없이 사라져버린지도 이미 꽤 오랜 시간이 지난듯 하였다.
그 사이 아임은 언제 돌아올지 모를 기약 없는 리더를 대신해 리더 역할을 톡톡히 잘해내고 있는 중이었다. 이건 그냥 극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글라샤는 여기 이 지하 도시에서 사라졌다고 하면 어딘가에서 완전히 도태되었거나 죽음 밖엔 없을거라 추측할 뿐이었다. 눈웃음을 예쁘게 짓는 모습이 특징인 아임이 환한 웃음을 가득 담아서 글라샤 쪽을 향해 말을 걸었다.
"안녕? 글라샤라고 했지? 우리 자주 보네- 아, 여기는 우리 팀 오렌지 라이드의 파이몬! 모쪼록이니까 앞으로 잘 부탁해"
"네가 글라샤?! 말해두지만 난 아임처럼 상냥하지는 않아서-"
파이몬은 기다란 쇠파이프를 손에 쥔 채 어깨에 비스듬히 걸쳤다. 글라샤는 크게 코웃음을 쳤다. 뭐라 이어 말하려는 찰나, 자꾸만 날뛰는 인베스 때문에 글라샤는 한쪽으론 막고 한편으론 공격한 뒤 말했다.
"지금 한가롭게 잡담이나 할 여유는 없을텐데? 너네들도 힘이 있으면 좀 싸워라~ 오직 강함만이 힘을 증명할 수 있다!"
"그리 까칠하게까지 말할 필요 없잖아?"
"어이- 파이몬~ 글라샤 말이 맞아! 일단 눈 앞의 인베스를 없애는 것이 우선이야"
"아, 으응~ 아임-"
일렬로 늘어선 세 사람이 어느 새 허리에 센고쿠 드라이버를 장착한 후 록시드를 열었다. '록 온!' 효과음이 흘러나오더니 하늘의 공중에서 지퍼가 지직 열렸다. 화려한 동작을 펼치며「변신!」이라고 외친 뒤 각자의 록시드를 허리에 찬 프로토 타입의 센고쿠 드라이버의 정중앙을 맞춰 끼웠다. 그러자 그 크랙으로부터 오렌지와 바나나가 떨어져 마치 장난감 조립하듯이 변형되어 이들의 갑옷으로 변했다. 이들과 달리 아머드 라이더가 아닌 파이몬은 뭔가 검도를 하는듯한 동작을 취하며 쇠파이프를 들었다.
지하가 아닌 토르키아의 지상에 있는 귀족들에겐 이들을 이렇게 칭했다. 아임은 아머드 라이더 프로토 가이무, 글라샤가 변신한 모습은 아머드 라이더 프로토 바론이라고 라이더명을 불렀다. 하여튼 한참 인베스와 맞서 싸우는 중이다.
미처 못 피한 사람이 있던가 싶던 어떤 두 명이 번쩍 은빛이 감도는 기다란 쇠파이프를 들고서 싸우는 광경을 보았다. 이 지하 도시에서 바깥 세상으로 내보내준다 해도 말이지, 아마 모두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할 수 있는 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여기 언더 그라운드 시티 안에서도 어쩌면 다시 선택 받은 일부 소수만 라이더가 될 수 있는 변신 시스템(록시드와 센고쿠 드라이버)를 소유하도록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게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정하는건진 잘 알 수 없었으나 글라샤는 다시 한번 귀족의 불합리화함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계속 치를 떨고만 있을 수도 없어서 일단 그 둘을 어떻게든 싸움에 휘말리지 않도록 방법을 썼다. 최대한 강압적으로──
"어이- 비켜! 방해된다!"
"하지만...!!"
"말 안 들리나?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조차 할 수 없는데 뭘 한다는거냐? 고작 쇠파이프 정도로 저 괴물을 어떻게 물리칠 힘이 너희들에게 가능하다고 보는건가? 흥! 그럼 모순이군~"
슝- 다시 한번 무지막지하게 공격해오는 인베스의 흉폭함에 글라샤가 돌려 옆차기 기술을 선보이며 화려한 발차기를 연타했다. 그러면서 상대와 이야기까지 하려니까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이 와중에도 민첩한 그의 행동이 오히려 바라보는 이들한테 매우 큰 충격과 깊은 감명을 받게 하였다.
어떤 신선함이 자연스레 누군가를 그저 경외하도록 만들었다. 여전히 본인은 전혀 자각 못하고 있었지만 그랬다. 글라샤만의 사람을 따르고 이끌게 만드는 리더 자질의 무언가, 그 같은 재능 또는 매력이 분명 그에게는 존재하였다.
아임이 센고쿠 드라이버에서 록시드의 힘을 해방하기 위한 트리거 역할을 하는 칼 형태의 스위치, 즉 이른바 커팅 블레이드를 1회 커팅하여 오렌지 스쿼시를 써 인베스를 공격했다. 물론 글라샤도 마찬가지로 바나나 스쿼시를 사용한다. 다이나믹한 액션이 쇠파이프를 든 채 지켜보던 두 사람 마저 할말을 잃고 그만 넋이 빠졌다. 한편 이들이 2회 커팅하자, 자신이 쓰는 록시드의 과일 이름과 함께 '오레'라는 호쾌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후 몇 번의 공격이 더 오간 뒤 아임이 다시 이어진 인베스의 공격과 거의 동시에 커팅 블레이드를 3회 커팅해 오렌지 스파킹을 사용했다. 한편, 보다 앞서 먼저 바나나 스파킹의 필살기를 쓴 글라샤는 이내 공중으로 뛰어올라 라이더 킥을 시전하였다. 갑자기 최후의 일격을 시전하는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자리를 피한 파이몬이 가만히 숨을 죽인 채 아머드 라이더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아임 역시 마지막 결정타로 라이더 킥을 날렸다. 마침내 펑- 소리가 나며 불꽃이 틔어올랐다. 적당히 끝을 낸 아임과 글라샤, 두 사람은 리프트 오프를 눌러 변신을 해제하였다. 쇠파이프를 든 파이몬도 이제서야 겨우 숨을 돌렸다.
"글라샤~ 오늘은 도와줘서 고마웠어"
"난 그저 내 할일을 했을 뿐, 착각하지마라! 아임-"
"자, 그럼 우린 이만 갈께"
아임네들이 떠나고 글라샤도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 쇠파이프를 든 아까의 두 사람이 그의 앞에 다가왔다.
"당신의 이름이 글라샤..?!"
"그런데??"
"괜찮다면 우리 팀으로 들어오지 않을래요? 안 그래도 지금 멤버를 모집하는 중이라.. 아직 우리들에게 딱히 팀을 이끌만한 리더도 없고, 그렇다고 나나 얘가 맡기엔 리더감이 좀 없는 편이기도 하고, 말이죠.."
"별로- 거절하지"
팀을 결성해 조직 놀이를 즐긴다라.. 시시하다. 무엇을 위해서 지금까지 계속 혼자 싸워왔는데 팀의 소속이 되는 것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믿을 수 있는 동료를 믿고 의지하는 생활 따위 관심 없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혼자가 훨씬 더 편했다. 글라샤는 별 감흥 없이 가볍게 거절한 후 다시 돌아섰다.
이때 두 사람 중 조금 키가 작아보이는 한 명이 발목을 잡으며 쓰러졌다. '괜찮아? 오세- 뭐 어디 크게 다친거야?'하고 오세라 불린 녀석보다 키가 큰 다른 한명이 놀라 물었다. '그, 그게.. 왠지 발목을 다친 것 같아' 인상을 쓴 채 말하는 오세의 검은 바지를 베리스가 살짝 걷어올렸다.
아까 전의 싸움이 원인이었나, 툭 튀어나온 복사뼈 주위로 꽤 벌겋게 부어올랐다. 긁힌 상처대로 아무렇게나 굳어진 검붉은 핏덩이도 보였다. 그러다가 베리스는 점점 뭔가 이상하게도 왠지 모를 직감적인 느낌이 들어 크윽- 하고 짧은 신음을 질렀다. 곧 자신의 팔을 꾹 부여잡았을 때 어느 순간 다가온 글라샤의 행동이 베리스보다 훨씬 더 빨랐다.
빠른 속도로 빨간 와이셔츠의 조그만 손목 단추를 풀고 소매를 걷었다. '이게 뭐냐? 일이 이 지경까지 되도록 놔두다니.. 네 녀석들도 참 한심한 인간이군- 그러니까 애초에 이기지도 못할 싸움에 끼어들지말라 한거다!' 과연, 베리스는 왼팔에 꽤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그다지 아주 심한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 가벼운 상처는 아니었기에 혹시 치료하지 않은 채 그대로 놔두면 정말 덧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글라샤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매우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은 그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베리스와 오세를 부축하였다. '가자! 너희 팀의 아지트로-' 이 단 한마디를 내뱉었을 뿐, 팀 아지트로 도착할 때까지 어떤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혼자라면 걷기가 훨씬 더 편했을거라고 들리지 않게 중얼거린 글라샤가 잠시후 팀 아지트로 들어섰다. 한번 휘둘러 내리치면 간단히 정신을 잃을듯한 쇠파이프 등의 무시무시한 흉기를 손에 든 팀원들은 팀복인 양 검고 붉은 색깔의 의상을 입고 있었다. 여기 있는 녀석들이 전부 베리스와 오세의 동료들인가 싶었다. 적당한 위치에 잠시 내려놓은 뒤 글라샤는 지상에서 공급되는 비상약품을 찾았다. 팀의 한 멤버가 약품을 가져다주자 그것을 받은 그는 속히 상처를 소독하였다.
침을 꿀꺽 삼켰다. 한참 아무 말 없이 소독에 집중하던 글라샤가 베리스와 오세의 치료를 마친 후 끝으로 새 하얀 압박 붕대를 휘감아 핀을 고정시켰다. 뭐, 여긴 지하 도시니까 죽느냐, 사느냐 두가지 선택권 밖에 없는 이런 위험한 데서 살아남으려면 당연히 이 정도쯤은 기본이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꽤 적응하고나면 누구나 반드시 자기 상처만큼은 알아서 돌볼 줄 깨닫게 법이다. 세상은 오직 철저히 약육강식을 지배 받기 때문에 약하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지막까지 끊임없이 계속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는 것만이 살아남는다. 처한 환경이 그리 만들었다.
저들보다 좀 더 나은 점이 있다면 자신은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할 특별한 힘을 손에 넣게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이유가 어떤 경위로부터 시작됐든, 얼마나 귀족을 증오하든 이 사실만은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치료를 끝낸 글라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크윽- 신음이 새어나왔다. 짧은 단말마를 뱉은 그가 허리를 숙인 채 복부를 잡았다.
기분 탓일까? 오늘 처음 만난 초면의 사람한테 왠지 굉장히 실례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베리스의 손은 어느 새 글라샤의 검은 티셔츠로 향했다. 어차피 여기 팀원들은 다행히 모두 남자들 뿐이니까 별 상관없지만서도 역시 막 만난지 불과 얼마 안 된 사람에게 그런 식의 태도는 좀 무례한 면이 없지않아 있었다. 굳이 말을 꺼내진 않았으나 어지간히 창피했던지 팔이라던가, 다리도 아닌 하필 복부 쪽에 부상이라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세게 밀쳐냈다.
"이깟 부상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호들갑 떨지마라~ 고통은 버티면 되"
날 생각해주는 마음은 알겠지만 그는 차가운 시선을 하고는 강하게 밀어냈다. 역시 둘, 셋 이상, 여러 명이 되는 것보다는 혼자가 정말 더 편하다. 센고쿠 드라이버는 이전까지 평범했던 존재를 한순간에 특별한 힘을 가질 수 있게 해주지만 아머드 라이더로 거듭 변신할 때 마다 몸과 마음이 지배당해버려 내가, 자신이 아닌 나로 변할 것 같은 느낌을 받게하는 아주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마침내 이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잃어버릴 것 같은 그런 엄청난 힘이 깃들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팀들 간의 항쟁이나 최근 들어 갑자기 나타난 인베스의 습격을 막기 위해 이에 맞서 생각보다 꽤 자주 사용했던 록시드와 센고쿠 드라이버, 글라샤는 이 특별한 힘이 얼마나 쓸수록 이미 자신의 몸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확실하게는 몰라도 얼핏 대강 알고 있었다. 절대적인 무언가를, 힘을 손에 넣는다는 의미는 그런걸까..
글라샤는 지속적인 록시드와 센고쿠 드라이버를 사용할수록 마치 0과 1이 교차하는 디지털 안에서 인격이 바뀔 정도로 미친듯이 악마가 되어 발버둥치며 이리저리 날뛰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흉통이 있는데다가 아까보다도 좀 더 심해진 상처 탓에 신음을 참아내느라 불안정해진 호흡을 차마 버티기 힘들어져서 이내 몸을 맡겼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부상을 치료하기 위한 일시적인 목적이다. 오세와 나머지 팀의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베리스는 글라샤의 옷을 들춰냈다. 감히 저희들과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상처는 예상 외로 엄청 심각한 상태였다.
하얗고 고운 피부와 달리 부상을 입은 곳은 온통 시퍼런 멍과 시뻘겋게 붉은 상처투성이와 다름없었다. 베리스는 조금 전 글라샤가 그러했듯이 천천히 소독약을 집어들었다. 먼저 식염수를 살짝 부은 부드러운 거즈로 상처 부위를 조심스레 닦아낸 후 약품의 뚜껑을 열었다. 글라샤의 상처 위로 하얀 분말 가루가 톡톡 눈꽃처럼 뿌려졌다. 다시 빨간(정확히는 좀 더 갈색에 가까운 적갈색) 아이오딘(=포비돈) 용액을 몇 방울 떨어뜨려 발랐다. 간단한 드레싱이 끝난 후 베리스는 붕대를 감쌌다.
"자~ 여기- 상처는 모두 치료해뒀으니까 전부 나을 때까지 너무 무리하지마세요."
"글라샤 씨- 지금은 다친 곳.. 어때요?"
베리스가 단호하게 못 박았다. 다소 울상이 된 오세가 살며시 눈치를 보며 물었다. 글라샤는 괜찮다는 말을 하곤 본의 아니게 그들을 안심시켰다.
"역시 글라샤 씨는 상냥해! 아닌 척하면서도 은근 다 받아준다니까-!! 그치?? 오세-"
"응! 난 그냥 글라샤 씨가 이대로 우리들의 같은 팀이었으면 좋겠어.. 베리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오세의 진솔한 발언에 베리스가 잠시 뜸을 들었다. 약 1분간 남짓 시간이 흐른 뒤 천천히 입술을 뗐다.
"솔직히, 나도 오세의 말에 동감하는걸~ 저기- 있잖아.. 글라샤 씨- 어때요? 우리 팀에 들어오는 건..?!"
"왜? 무엇을 위해서? 말했잖아?! 난 그런 어설픈 조직 놀이 따윈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팀보단 혼자가 낫다. 단지 그 뿐-"
"하, 하지만.. 우리 모두 정말 간절히 원하고 있어! 여기 지하 도시에 있는 녀석들이라면 누구라도 꿈꿀겁니다! 끝까지 살아남아서 다시 토르키아 지상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을 갈망하는 것은 당신만은 아니예요. 사람들 모두, 전원이 뜻은 달라도 그 목적 하난 분명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다른 팀도 마찬가지일테고- 그러니까 우리 편이 되어주실래요? 팀 레드의 리더가-"
"아직 글라샤 씨처럼 그리 강한 힘은 없지만 저희도 글라샤 씨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노력할께요!"
오세가 베리스의 말에 공감한다는듯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베리스가 급히 그 뒷말에 살을 더 덧붙였다.
"절대 민폐 끼치는 일은 없을겁니다. 그러니까 한번 그냥 속는 셈 치고 우리들의 거짓말, 믿어보는 거 어떻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베리스와 오세의 얼굴은 사뭇 진지하였다. 거기엔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백과 용기, 정의감 어떤 것이 담겨져 있었다. 간절하게 소망을 갈망하는 눈빛이 그들의 눈동자에 비쳐졌다. 글라샤는 시선을 돌려 다른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알겠다. 내가 이 팀을 최강의 팀으로 만들어주지! 적어도 내가 이끄는 한, 절대 너희들이 약할 일은 없다. 오늘부터 팀 이름은 바로크 레드- 바로크의 뜻은 일그러진 진주라는 의미다. 저마다 일그러진 감정을 가진 진주가 하나로 결속하여 강해진다. 직접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나가자~ 팀 바로크 레드-!!"
묘한 이끌림은 과연 인연인가! 아니면 운명인가! 글라샤로선 아직 그것을 정확히 잘 알 수 없었다. 이전에는 그냥 팀복의 색깔에 맞춰 레드라고만 썼는데 이젠 그 앞에다 '바로크'가 추가되었다. 일그러진 진주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뜻과 간단한 설명을 들으니 우리에게 딱 어울리는 표현같다며 다들 좋아했다. 그러보니 문득 이제 슬슬 깨닫고 있는데 글라샤만 아직 바로크 레드의 팀복을 입지 않았다. 오세가 짐이 쌓인 창고 쪽을 향해 가더니 이내 뭔가의 옷가지를 가득 안은 채 들고 왔다.
베리스와 오세를 포함한 대부분의 팀원들은 강렬한 빨간색 와이셔츠와 레드와인 색 와이셔츠, 검은 자켓의 겉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가 건네준 의상은 다소 디자인이 달랐다. 짠듯한 옷이었는데 좀 많이 듬성한 얇은 옷이 빨간색 한벌, 검은색이 한벌 있었다.
2개를 모두 입지 않아도 그닥 상관없으나 글라샤는 안에 빨간 니트를 입은 다음 검은 니트를 덧입었다. 그리고 검은 자켓을 입었다. 상·하의가 왠지 빨간색 바지와 꼭 깔맞춤된다.
옆으로 넘긴 백금발의 울프컷이 움직일 때 마다 반대쪽에 가느다랗게 머리와 함께 땋아놓은 붉은 천(악세사리 일종의)이 마치 율동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글라샤는 이 옷이 나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팀 바로크 레드를 상징한다는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에 들었다. 글라샤, 베리스, 오세, 세 사람이 서로 마주 본 채 웃었다. 그들의 예쁜 외모가 더욱 투명하게 맑은 샘물처럼 반짝 빛이 났다.
"뭐, 그땐 그랬지"
"그러니까 더 견딜 수가 없는거라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사라졌다는게.. 그토록 갈망하던 세계를 코앞에 놔두고, 먼저 죽는 법이 어딨어....."
"오세...."
오세가 삐죽 입을 내밀었다. 약간 목소리가 떨려오는 것이 한층 격양된 채 다소 볼멘소리를 냈다.
"있잖아~ 만약 우리가 타카토라 씨를 더 일찍 만났다면 이런 슬픈 일은 없었을까? 뭐라고 말 좀 해봐! 베리스-"
"나도 뭐라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어~ 하지만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건 그 선택에 있어 글라샤 씨는 후회하지 않았다는거야"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
"응~ 모든 건 글라샤 씨의 뜻이었고 의지였다, 가 아닐까 싶어~ 그 사람은 정말로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겨우 부작용도 알았잖아~ 그 미완성인 프로토 센고쿠 드라이버를 계속 사용해서 아머드 라이더가 된다면 점점 인베스화가 점진적 진행된다는 걸 알고서도, 아무리 우리들이 말려도 글라샤 씨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변신해 싸워나갔어~ 그럼 그걸로 된 거 아닐까?"
베리스는 낮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의 입꼬리에 살풋 미미한 웃음이 자아진다. 그리 말하면서 살짝 눈을 감았다가 떴다. 가만히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구름이 둥실 떠나닌다. 손을 뻗으면 마치 달콤한 솜사탕처럼 사르르 녹을 것 같았다. 뭔가 왠지 덧없다.
오늘도 토르키아 공화국 내부 언더 그라운드 시티, 이 위험이 도사리는 곳인 지하 도시는 여전히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서로 팀을 만들어 걸핏하면 팀들끼리 싸우기 일쑤다. 팀 오렌지 라이드도 모였고 팀 바로크 레드에 팀 그린 돌즈까지 모여 있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다양한 팀들이 서로 조직을 이루어 생활해나갔는데 이는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신뢰할만한 동료를 만들고 팀을 구성하여 싸움을 반복하는 것 말곤 없었다. 하지만 이 항쟁도, 이 짓거리도 슬슬 지쳐가는 중이다. 그리고 최근 지하 도시의 팀들은 싸움이 영 확실하게 끝날 것 같지 않으면 종종 다른 방법으로 싸우고는 하였는데 그게 바로 댄스였다.
댄스? 하면 왠지 조금 놀라버릴지도 모르나 하여튼 그랬다. 때때로 이렇게 팀들 간의 싸움의 끝이 전혀 보이지 않는듯한 기미가 보일 때 은근 댄스 배틀로 붙는 건 아주 좋은 방법이라 가끔 써먹는 편이었다. 그도 그럴게 일단 본인이 록시드와 센고쿠 드라이버를 소유하고 있어서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할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구별된다.
몇몇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하는 녀석들 때문에 변신 시스템 없이 쇠파이프 등의 흉기를 드는 사람한텐 너무 불리한 싸움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아머드 라이더는 이머드 라이더, 일반인은 일반인끼리 암묵적인 룰이 있다. 그 규칙이라는 것은 아머드 라이더가 변신을 할 수 없는 맨몸의 상태인 일반 사람을 공격하면 안 된다는 기본 개념 상식의 법칙을 의거하고 있으니까 다행히 큰 문제가 야기될 것은 없었지만 어느 팀의 누군가가 우리도 공평하게 똑같은 기준과 방식으로 싸우자고 그 같은 불만을 마구 토로하는 바람에 시작된 것이었다.
생각보다 지하 도시의 팀 녀석들 중 춤에 꽤 능숙한 사람들이 좀 있었다. 댄스라면 누구의 방해를 받지 않고 어떤 장소의 구애받지 않고도 오직 팔 동작, 발 스텝, 몸짓 하나만으로 충분히 내가 가진 능력을 자유롭게 보여줄 수 있는 셈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막 힘들게 별 무리해서 무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자신의 힘을 증명시킬 수 있었다.
무기를 들어 싸웠던 이전과 달리 새로운 방식의 전개로 힘을 증명해보일 수 있고 과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 글라샤의 마음에 들었다. 별 시덥잖은 하찮음일지라도 어쨌든 굳이 나쁠 건 없다고 판단해 다들 하나 둘 제안을 수락하였다. 약하니까 그러는거냐며 파이몬과 포라스는 다소 볼멘소리를 터뜨렸지만 이내 곧 수긍하고 받아들었다.
저마다 무기를 들고 있어도 약하면 강한 자에게 쉽게 당하기 일쑤라 오히려 댄스 배틀이 차라리 더 싸우기 편했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몸짓 하나만으로도 거뜬히 타인을 제압할 수 있었으니까 어느 의미로는 공평하다면 공평했다.
금방 각 팀들이 쭈욱 커다랗게 대형 원을 만들었다. 하지만 빙 둘러싼 원 안에 다들 서로의 눈치만 볼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전부 네가 나가라, 소리치는 가운데 제일 먼저 팀 그린 돌즈의 포라스가 나섰다. 운이 좋은건지 신기하게도 때마침 저 멀리 떨어진 라디오를 갖고 오더니 아무거나 시작 버튼을 꾹 누른다.
경쾌한 리듬이 스피커를 타고 비트가 흘러나왔다. 그 음악에 맞춰 팀의 성원을 한껏 받은 포라스가 신나게 즉흥적인 안무를 선보였다. 시작부터 뜨거운 열기가 순식간에 고조되었다. 싸움보다는 또 다른 느낌이다. 그런 열기에 이어 자극을 받은 여타 팀의 몇 명이 나와 팀원들이 춤추기 시작했고 반응 또한 매우 뜨거웠다.
팔짱을 낀 채 쳐다보던 글라샤와 넋 놓고 바라보는 아임의 표정이 볼만했으며 그 짧은 순간, 옆에 서 있던 베리스의 얼굴이 일각 미묘해졌다. 뭔가 유심히 지켜보는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돌고 돌아서 팀 오렌지 라이드에서 구시온이 밑져야 본전이라면서 한번 출전해보자는 말에 파이몬이 소리쳤다. '다른 팀은 몰라도 절대 돌즈나 바로크 녀석들에겐 안 져!' 그리 말하면서 파이몬이 아임의 손목을 휙 잡아 끌고 나갔다. '어어? 이봐! 파이몬- 구시온-' 토끼눈이 된 아임이 두 사람한테 뭐라 외쳤다. 뒤쪽에 있던 구시온이 피식 웃으며 따라나갔다.
"아, 진짜 갑자기 그렇게 나서면 나보고 어쩌라는거야? 나, 춤 한번도 춰본 적 없다구?"
"아임! 돌즈나 바로크 녀석들에게 한방 먹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하여튼 파이몬은 너무 행동력이 빠르다니까-"
"잘 추는 편이 좀 더 낫겠지만 뭐, 잘 추고 못 추고는 상관없어! 게다가 아임의 액션이라면 분명 댄스에도 꽤 괜찮은 모션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걸"
"그, 그치만.. 너무 무턱대고 갑자기 이러면 역시 당황스럽거든~ 구, 구시온는 어떻게 생각해?"
"뭐, 괜찮지 않을까요? 아임 씨- 재밌어보여!"
"하아?!"
아임은 '믿었던 너 마저..'라며 말끝을 흐렸다. 파이몬이 한쪽에 쇠파이프를 던진 채 앞에 놓여진 라디오 카세트의 버튼을 꾹꾹 눌렀다. 이번엔 아까와는 또 다른 음악이 흘러나왔다. 포라스 때와 다른 활발한 음악이 보는 이 마저 팀 오렌지 라이드다운 느낌을 주도록 만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머리를 헝클어뜨린 뒤 센터에서 춤을 추는 아임과 오렌지 멤버들은 처음 초반에는 따로 따로 놀았으나 시간이 지나자 점점 댄스의 합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동작이 움직일수록 심장이 함께 쿵쿵대었다. 다이나믹하게 내딛는 스텝이 더욱 흥을 끌어올렸다. 조금 전까지 분명 자신은 춤출 수 없다며 내빼던 상황이었는데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아임은 즐거운 표정을 하였다.
음악이 끝날 때쯤 팀 오렌지 라이드의 뒤를 이어 마지막으로 팀 바로크 레드가 원 안으로 들어왔다. 크게 코웃음을 치면서 '이 스테이지는 우리가 접수하지'라고 말한 뒤 글라샤는 센터에서 자세를 잡았다. 베리스와 오세가 그런 그를 눈치보다가 두 사람이 서로 눈빛을 주고 받았다. 살며시 쇠파이프를 (베리스는 파이몬보다 꽤 조심스럽게 쇠파이프를 내려놓았다.) 툭 던졌다. 오세가 라디오의 버튼을 눌러 음악을 바꿨다.
각자 위치에서 나름대로의 포즈를 취한 바로크 멤버들이 이내 춤을 추기 시작했다. 확실히 팀 이미지답게 카리스마 있으면서 우아함과 군무를 맞춘 절도있는 동작, 파워풀하지만 살짝 절제된 부드러운 댄스가 뭇 팀들의 시선을 이끌었다.
조금 입꼬리를 옅게 올린 글라샤의 비웃는듯한 표정 연기 역시 주변을 간단히 압도하였다. 오늘 처음인도 불구하고 글라샤, 베리스, 오세 이 세 사람의 댄스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호흡이었다.
여유로운 표정과 모습이 더해져서 아임은 역시 글라샤, 괜히 겉으로 번지르르 말만 하는 녀석은 아니구나 싶었다. 동시에 분한 마음도 들었다. 글라샤와 아임은 모두 서로 상대의 강함을 인정하고 있었다. 최고의 라이벌이기에 더더욱 한 치 양보조차 없었다. 댄스 배틀에 있어서도 예외없이 마찬가지였다.
설마 이렇게까지나 우리 팀의 유대가 강했나, 베리스는 춤을 추면서 의문을 가졌다. 뭔가 이거, 어쩌다보니 왠지 지금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는데 말이다. 오세도 엄청 즐거워보이는 것 같고 무엇보다 글라샤 씨의 행동이 굉장히 의외라 생각한 그가 계속 춤을 거듭하였다. 지금까진 모두와 의견이 맞지 않으면, 엇갈리면 그저 양보하고 자신의 마음을 밀어낸 채 배제해왔다.
사실 평소 춤추는 건 정말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죽고 죽이는 싸움이 난무하는 서바이벌 게임 그 자체인 지하 도시에서 딱히 필요가 없었고 그렇게 그는 자신의 감정을 감춰왔다. 오세는 뭐든지 일직선으로 말하는 타입인데 반해 저는 팀에 소속되어 있으려면 그저 적당히 상대에게 맞추어주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이 훨씬 좀 더 이익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누군가와 함께 춤추는 것이 이렇게나 즐거운 것이구나 싶어서 베리스는 좀 더 팀원들한테 솔직하게 마음을 내어봐도 괜찮다고 느꼈다.
결코 의미 따위 있었는지는 모를 이 댄스 배틀은 묘하게 팀 바로크 레드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일단 아임이 인정해버렸기 때문에, 확실히 저도 모르게 멍하니 감상했던 것은 맞아서 다음 번에 만나면 절대 봐주지 않을거라는 말을 남긴 채 팀 오렌지 라이드가 떠났고 팀 그린 돌즈도 한마디 한 채 떠났다.
그러자 그곳에 모인 다른 팀들도 모두 조금씩 해산하여 자리를 떠났다. 팀 바로크 레드 역시 아지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걸어가던 도중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글라샤가 저를 뒤따라오는 베리스와 오세를 향해 살짝 몸을 돌렸다.
"베리스- 넌 네가 원하는대로 해라~ 굳이 상대를 너무 의식해서 맞추려하지 않아도 되"
"에? 글라샤 씨..?!"
"넌 강하다."
"아니, 갑자기 그런 말 들어도 전 하나도 강하지 않아요. 아직 약하고, 재주도 없고.."
"으응~ 확실히 글라샤 씨 말처럼 나도 베리스라면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해! 지금도-"
"오세까지! 다들 날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할만큼 난 강한 사람이 아닌걸~"
"내가 없을 땐 네가 리더다. 넌 나와 다른 방식으로 팀을 이끌만한 능력이 있어~ 넌 좀 더 강해질거야"
"글라샤 씨...."
이 밖에도 지난날 글라샤와 함께했던 다양한 기억들을 떠올렸다. 별로 챙기지도 않던 생일 기념을 챙긴다라던가, 전에는 아마 몰랐을, 무언가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던가 하는 그런 것들, 그와 함께해온 시간이 쌓인 추억들이 이젠 가슴 속에 묻어둬야 할 성 싶었다.
오세 앞에선 담담한 척 말은 했어도 사실 그렇게 곁을 떠나간 글라샤가 괜히 원망스러웠다. 야속하다. 머리가 멍해져서 죽은 이를 붙잡고 눈물을 흘릴 기력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베리스는 아임에게 절대 인베스화가 진행되는 몸에 대해 차마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몇 번 시도해봤다가 말았다. 정말 그 기분이 어떤 느낌일지 자신이 본 리더의 증상을 통해서 간접으로나마 고통을 알고 있으니까 차마 말하지 못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역시 일단 시도는 해보았으나 그저 입 안에서만 사탕을 빨듯이 동동 되내었을 뿐이다.
언젠가 꼭 말을 해봐야지 싶어서, 마음 속에서 다짐은 계속 하고 있다. 떠나기 직전 쿠레시마 타카토라가 남긴 말과 같이 이 나라는 아임과 함께 남은 자들이(지하 도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새롭게 일으킬 부흥이란 숙제가 남아있었다. '글라샤 씨도 함께였다면 좋았을텐데..' 베리스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서로 팀이 싸우는 것 없이 그릇된 세계의 정의와 저만 즐거워하며 비열하고 이기적인 귀족들에게 반기를 들 때다. 미친듯이 목숨을 걸어서 피 터지게 싸웠던 예전보단 확실히 지금 멤버들끼리 많이 친해진 모양이고- 현재 팀 오렌지 라이드의 파이몬과 구시온은 아임을 도와 하나하나 타카토라의 말을 행동으로 실천에 옮기려 열심히 애 쓰는 중이다. 군인인 베리알도 지하 도시의 사람은 아니지만 현재는 활발히 협력해주고 있다. 비록 포라스는 없지만 팀 그린 돌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보면 전부 팀의 리더들만 없다.
모두 아머드 라이더가 되고 내부에 축적된 데이터의 인베스화로 이어져 결국은 죽음이란 결말을 맞이하였다. 가만 잘 생각해보니 이거 참 웃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웃지 못할 감정을 끌어안으면서 베리스는 여기서 살아간다.
결코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할 수 없지만 이런 자신이라도, 조금은 도움을 주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베리스는 하얀 안개꽃다발이 떨어진 글라샤의 무덤 앞에서 새롭게 결의를 다졌다. 그동안 머리 속으로, 마음 속으로만 그렸던 걸 쿠레시마 타카토라를 만나고 그의 말 덕분에 겨우 용기를 가졌다. 앞을 향해 한발 내딛을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한다.
이 안개꽃은 색깔별로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중 베리스가 흰 색상을 선택한 건 죽음과 슬픔이란 뜻도 있었지만 거기에는 [약속]이라는 뜻도 깃들어있다. 약속한다. 글라샤가 못 다 이룬 꿈을 반드시 우리들이 이루겠다고, 올바른 세계를 만들어가겠다고 약속하였다. 메마른 사랑이 채워지면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은 행복해지지 않을까, 그런 행복이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베리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베리스는 지그시 웃었다. 그를 따라 오세도 밝게 웃었다. 지금껏 한바탕 많은 일을 겪은 후라 그 속에서 좀 더 성장한듯한 기분이 든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는 간단한 눈짓으로 글라샤의 무덤에 인사를 한 뒤 거리를 떠났다. 괴로울 때 마다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지평선 너머 아득히 멀고 아스라이 바스라져간다. 아직 베리스는 포기할 수 없다. 그러니까 멈추지 않는다.
소중한 존재가, 지켜봐주는 사람(글라샤)이 있으니까 좀 더 강해질 것이다. 새로운 나 자신으로 변신할 것이다. 두근거리며 설레는 것이 가슴이 고동친다.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어떤 예감이, 직감이 느껴졌다.
어디선가 살랑 불어온 바람이 베리스의 붉은 머리칼과 오세의 중간중간 붉은 브릿지가 물들여진 흑발이 휘날리며 나부꼈다. 추억은 바람을 타고 덧없이 흩날렸다. 생명의 목소리에 가슴의 고동이 들려온다. 언젠가 그 날 봤던 블루 토파즈처럼 빛나는 하늘은 변함없이 푸르렀다. 살아있는 것들, 꿈꾸고 있는 것들, 빛나고 있는 것들은 모두 여전히 애절할만큼 눈부실 정도로 반짝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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