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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무 본편과 잔게츠 무대의 대사를 살짝 인용, 두 스토리 라인의 스포가 들어있습니다. 아마 가이무 본편 36화 중간쯤 사이 어느 시점~ 타카토라가 코우타와 대화 이후 미츠자네와 결착을 내기 직전 사이의 아직 하룻밤동안 생각과 각오를 다질 시간이 약간 있었으니 그 중간 내용 기반으로 썼는데 미츠자네랑 완전히 결판내기 위한 각오를 다지면서 팀 가이무의 아지트와 자신의 저택을 찾아가기 전 코우티와 한번 더 만났다는 내용.. 시간적 배경은 미츠자네와 결판을 낸 장소인 바닷가의 저녁으로 내가 생각한 뇌피셜, 동인 설정 등이 다소 들어간 취향글~
* 잔게츠 외전 무대를 보고나서 다시 가이무 본편을 되짚어보니까 왠지 이 당시, 타카토라가 상대에게 말하던 대사 마다 사실 모두 어쩌면 자기자신한테 하는 다이얼로그 비슷한 무언가가 아닐까 싶어서 쓴 글
이 글 쓰면서 타카토라가 얼마나 마사히토를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달까....
-아로새긴 이름의 의미-
모든 건 한순간이었다. 자신에게 아무것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을 때 그는 좌절했다. 그리고 모든 사건이 일어난 그날 이후 쿠레시마 타카토라는 제 스스로 아머드 라이더 잔게츠라고 가면라이더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단 한번도 '잔게츠'라는 라이더명을 잔게츠의 초성조차 입에 올리지도, 담지도 않았다. 카즈라바 코우타라던가, 쿠몬 카이토라던가, 다른 녀석들이 아무리 저를 아머드 라이더의 누구라고 자신의 라이더 명칭을 붙이더라도 타카토라는 라이더명은 커녕 제 본명 마저 밝히지 않았을 정도다.
현재 코우타도 무슨 뜻이었는지 타카토라가 그에게 어쩌다가 이름을 밝혀 성은 알지 못한 채 그의 이름만을 겨우 알았을 뿐이다. 타카토라는 얼마나 정말 자랑스러운 이름을 사랑하지만 그만큼 이름을 말하는 것을 아낄 정도로 부르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시즈미야 마사히토.. 전부 그 자 때문이다. 잔게츠를 언급하면 할수록 계속 마사히토가 생각나 괴로움에 견딜 수 없었기에 왠만하면 가급적 최대한 부르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잔게츠로 변신해 헬헤임의 숲과 맞서 싸울동안 정말 잊고 싶었지만 깊이 아로새겨진 상처와 그날의 흔적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리 쉽게 간단히 잊어버려지지 않았다.
미완성이었던 센고쿠 드라이버, 인류의 구제 계획을 위한 프로젝트 아크를 맡은 이그드라실의 두 공동 책임자, 인류의 미래를 이끌 쿠레시마 가와 시즈미야 가, 그리고 잔게츠 기동 실험의 실패, 대량의 크랙이 출연해 헬헤임의 감염이 되어 인베스화가 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의 검은 눈동자에 담겨 선명하게 새겨졌다.
헬헤임의 숲은 왜,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미지의 공간에서 지구라는 곳에 나타났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세계의 멸망은 그렇게 돌연 찾아와 시작되어버린다는걸까? 다른 이공간으로부터 '크랙'이라 부르는 지퍼가 여기저기 열리고 헬헤임의 숲에서 서식, 존재하는 식물의 포자는 이 땅에 빠르게 번식되어갔다.
헬헤임에 침식된 사람들의 피해와 붉은색과 녹색이 뒤섞여 흔들리는 이 암담한 세계를 구하기 위해, 라기보다 이 이상 벌어질 피해를 막으려 스칼라 시스템을 가동시킨 뒤 토르키아를 불살라 스스로 뛰어들어 희생한 마사히토, 그도 역시 감염자, 눈을 감자 선명하게 영화처럼 장면들이 스쳐지나갔다. 모든 것은 그 8년동안 타카토라한테 일어난 일이었다.
타카토라는 욕실에서 샤워를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이 당연히 씼어야할 기본 예의라 그래서 몸을 씼지만 사실 옷을 벗은 채 거울을 확인할 때 마다 어깨 뒷편의 붉은 상처가 아직 진하게 흉터가 남아있은 까닭이었다. 타투같은 흉터는 토르키아 공화국의 사건이 있던 8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크게 자국이 남았다.
원래 꽤 하얀 피부를 갖고 태어났지만 생각보다 새파란 멍과 검붉게 진 상흔들이 곳곳에 너무나 많아서 긴 옷을 입는 것을 좋아했고 어차피 회사를 나가야 하기 때문에 소름끼칠 정도의 핏이 세워진 정장차림이 평소 즐겨입기 딱 좋았다. 아니, 이전부터 그가 검은 정장에다 초록색 행거치프를 상징으로 하고 다녔지만 그 일 때문이라도 지금 타카토라가 더욱 그 의상만을 고집하는게 없지않아 있었다.
물론 더운 여름날도 안이 비치는 옷을 딱히 좋아하지 않아 같은 하얀색이라도 투명히 비치는 옷이 아니라 아주 진하게, 이를테면 마사히토가 항상 입던 백정장처럼 반드시 불투명한 흰색 계열이어야했다. 그래서 반팔 티셔츠 따위 별로 즐겨입지 않는 까닭이었다. 물론 그도 사람인지라 날이 더우면 여름 옷이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최대한 상처를 가리기 위한 어두운 색 계열을 선호하는 편이다.
스칼라 시스템 외 과일 록시드(자물쇠 형태의)와 센고쿠 드라이버, 헬헤임을 대항할 연구 개발의 실험 무대가 된 토르키아에서 정확히 잔게츠 기동 실험 실패가 일어난 2년을 뒤로 한 채 타카토라는 다시 자신이 원래 살던 자와메 시로 되돌아왔다. 그 많은 일을 겪어도 여전히 깨닫지 못한 채 자와메 시에 사는 사람들을 상대로 언제나 그랬듯 모르모트 취급하면서.....
아머드 라이더가 된 장착자들의 프로필이 기재된 문서가 든 서류에는 분명 이렇게 적혀있었다. 팀 가이무의 카즈라바 코우타 - 아머드 라이더 가이무(오렌지), 팀 바론의 쿠몬 카이토 - 아머드 라이더 바론(바나나), 이번에도 팀 가이무의 쿠레시마 미츠자네 - 아머드 라이더 류겐.. 응? 이때 타카토라는 매우 놀란 얼굴을 하였다. 미츠자네는 자신의 동생이다.
포도 록시드를 사용하여 류겐으로 변신한다는 자가 다름 아닌 본인의 친동생이란 사실이 타카토라로 하여금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오묘한 것이 마치 블랙홀과 같이 깊게 빨려들어갈듯한 눈빛을 하고서 말이다. 곧 인상을 찡그렸다.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가 펼쳐진다. 늦게나마 시드가 살짝 운을 띄워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계속 몰랐을 사실이 분명할 터였다. 그 깊은 심연의 눈동자를 한 타카토라는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며 크게 떴다. 도대체 시선을 어디로 둬야할지 몰라 주변의 갈 곳을 잃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분명 언젠가 마사히토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녀석도 카게마사라는 동생이 있었다. 여러가지로 서로 너무 비슷한 상황과 처지에 놓여있는 걸 마사히토도, 타카토라도 상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절대 우리 동생들한텐 이 아픔을 겪게해주고 싶지 않다고 자신에게 말했다. 그래서 그때 타카토라는 그의 말에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적어도 미츠자네는 절대로 이 무거운 세계의 짐을 짊어지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분명히 결의를 다져왔는데 한낱 자물쇠 딜러에 지나지 않는 시드가 그 녀석한테 록시드와 센고쿠 드라이버를 넘겨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여러므로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모든 걸 지키겠다고 약속했는데 왜 어째서 인생이 제대로 제가 마음먹은 것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레 흘러가지 않는걸까, 자기자신에게 화가 났다. 방해는 늘 이렇게 갑자기 찾아와 앞길을 가로막게 만든다.
이전까진 그저 자와메 시의 평범한 스트리트 댄스 팀으로서였다. 어느 날 시작된 인베스 게임과 랭킹 배틀 따위에 열을 올리며 비트 라이더즈 활동을 하던 자와메의 도시 청년들은 우연하게 히어로로 변신하게 해줄 특별한 힘을 손에 넣었다지만 자신처럼 다가올 세계 멸망의 거대한 운명과 맞서 싸우는 걸 선택하였다.
예를 들어 전 팀 인비토의 멤버이자 현 샬몽 가게에서 파티시에로 일하는 죠노우치 히데야스 - 아머드 라이더 그리돈(도토리), 한때 벽사 인베스가 되어 시드에 의해 죽은 팀 레일드 와일드 리더 하세 료지 - 아머드 라이더 쿠로카게(솔방울), 카이토와 같은 팀 바론의 팀원인 잭 - 아머드 라이더 너클(호두), 군인 출신으로 지금은 샬몽 가게의 파티시에 점장으로 활동하는 오우렌 피에르 알폰조 - 아머드 라이더 브라보(두리안)이 있었다.
그 외에도 라이더들이 더 많아졌는데 이그드라실에서도 아머드 라이더가 여럿 존재했다. 센고쿠 드라이버를 쓰는 비트 라이더즈완 달리 게네시스 드라이버라는 벨트를 쓰기 때문에 성능 차이가 당연 월등히 높았다. 모두 잔게츠 기동 실험과 개발 연구를 토대로 탄생한 료마의 결과물이다.
우선 일단 자기자신, 쿠레시마 타카토라 - 아머드 라이더 잔게츠(메론), 센고쿠 료마 - 아머드 라이더 듀크(레몬), 미나토 요코 - 아머드 라이더 마리카(복숭아), 시드 - 아머드 라이더 시구르드(체리)가 대표적으로 그러하였다.
이들은 선의를 목적으로 하든, 악의이든, 그것이 야망이 되든 간에 그들은 정체된 저보다 한발짝 앞을 향해 멈추지 않고 거침없이 달려나갔다.
단순히 강해지고 싶어서라는 이유도 상관없다. 설령 어떤 이유가 되어도 싸워나갈 이유 하나만 있으면 그게 목표가 된다. 목적을 잃은 존재에게 싸울 이유나 살아나갈 의미같은 건 아무것도 필요없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 타카토라는 무슨 일을 할 때엔 항상 목적 의식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다.
코우타는 그를 만날 때 마다 언제나 똑같은 말을 했다. '포기하지마!'라던가, '아직 무엇을 할 가능성이 있어-'라던가 하는,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희망을 심어주었다. 언제부터 저 녀석한테 점점 동화되어 갔을까 기억나지 않았다.
단, 한가지 확실한 건 아무리 쓰러지고 넘어져 아픔에 눈물을 흘리지언정, 코우타의 올곧고 올바른 마음이 타카토라에게 절망 이외의 선택지를 가져다 준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과거와 고통을 마주보며 나아갈 수 있도록 사람은 누구나 이전과 다른 나 자신으로 변할 수 있음을, 그리고 변신할 수 있다는 걸 늦게나마 깨닫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혼자서 모든 걸 끌어안은 채 그렇게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좀 더 곁에 있는 누군가를 의지해도 된다라고 그저 말해준 것만으로도 타카토라는 충분히 절망의 나락에서 희망을 믿어보길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였다.
"여어- 타카토라!"
"아, 응- 카즈라바인가~"
여기 이런 곳에 있었네- 라며 바닷가의 흰 방파제 위에 올라선 코우타가 타카토라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코우타는 가까이 다가와 환하게 웃었다. 공기 청정기 같이 맑게 환기시켜주는 미소가 더없이 멋져보였다.
"뭐하고 있었어?"
"그냥, 여러가지 생각 좀 하고 있었다. 카즈라바야말로 여긴 왠일이지?"
"으음, 그게 말이지~ 뭐, 어쩌다보니 반도 형네 도르퍼즈로 가던 도중 우연히 타카토라를 봤으니까 뭐라 말이라도 걸어볼까 해서-"
"그렇군"
여담으로 [도르퍼즈]란 반도 키요지로가 점장으로 일하는 후르츠 테마의 디저트 가게다. 신선한 과일을 공수해 다양한 파르페 등의 디저트를 파는 곳이다. 물론 볶음밥은 그저 비트 라이더즈 일행들에게 식사를 제공해주기 위해 만들어주는 것 뿐, 결코 가게의 메뉴는 절대 아니다. 아무튼 코우타는 갑자기 반대로 몸을 돌리더니 타카토라를 쳐다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저기, 있잖아.. 그냥 생각나서 말하는건데 이 특별한 힘을 손에 넣고 운명과 싸워나가면서 그동안 타카토라한테 들어왔던 말들, 가만히 곱씹어봤어~ 그리고 내 나름대로 결론을 지어봤는데 말야.."
"내가? 내가 그동안 네게 무슨 말을 해왔던가"
"어랏!? 벌써 전부 잊어버린거야?"
코우타가 타카토라 쪽을 돌아보면서 손허리를 하였다. 굉장히 놀란 토끼 눈을 하고서 이 사람, 지금까지 저가 해온 일들을 모두 잊은 기억상실증 걸린 인간이냐 뭐냐 생각할만큼 그는 자각하지 않고 있었다. 코우타가 씨익 웃은 뒤 아주 민망할 정도로 처음 헬헤임 숲에서 만난 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행적을 설명과 함께 시를 읊듯 낱낱이 하나하나 일러주었다.
자신의 행동들을 내사 줄줄 일러주는 코우타를 보다가 타카토라는 살짝 머리를 긁어 헝클어뜨리며 다소 겸연쩍은 표정을 하였다. 그 특유의 씁쓸한듯한 멋쩍은 웃음을 지은 그가 그동안 있었던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보았다. '아! 뭐, 그런 일도 있었군' 코우타의 말에 그때는 미안했다던가, 너를 만나기 전에 나는 그러한 인간이었지, 같은 말을 하면서 적당한 리액션을 취해주었다.
이제 미츠자네가 타카토라의 친형이란 걸 아는 코우타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미츠자네의 이야기를 함께 웃으면서 대화할 수 있게 될 정도가 되었다. 계속 카즈라바라고 말하는 타카토라가 내심 섭섭했던지 문득 화제를 돌려 '왜 나한텐 성이 아니라 이름으로 안 불러주냐?' 상대의 이름 부르기로 넘어갔다.
비트 라이더즈 대부분이 이름으로 부르는 코우타 대신 처음 몰랐던 시절부터 카즈라바라는 성을 부르는게 더 익숙해져 오히려 이름보단 성으로 그를 부르는게 당연시해졌다. 덕분에 왠지 친숙하고 좀 더 대하기 편할 뿐이지, 절대 친하지 않아서는 아니다, 라고 타카토라는 살짝 부정했다. '그래도 가끔은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코우타가 타카토라의 어깨를 툭 쳤다.
"카즈라바 코우타-"
"응? 뭔데??"
"그래서, 아까 네가 답을 냈다던 결론이 뭔가?"
"아아!"
코우타가 완전 까맣게 잊어버렸다듯이 오른 손바닥에 다른 왼손을 주먹을 쥔 채 탁 쳤다.
"맞아- 그거! 그러니까 결론을 말하자면 뭔가 영 다른 사람한테 하는 말같진 않아서 말이야~ 왠지 그런 느낌이 든단 말이지"
"그래- 너, 이제보니 꽤 사람 보는 눈이 나보다 더 날카롭군"
"아하하- 그, 그런가~ 헤헤-"
괜히 쑥쓰러움에 코우타가 멋쩍게 자꾸만 관자를 긁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분명 상대에게 말하고 있지만 꼭 누군가한테 말하는게 아닌, 어쩌면 타카토라 자기자신에게 말하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서-"
"역시나 예리하구나"
"어이- 어이- 그쪽(타카토라만이 아닌 이그드라실 전체를 향한 말) 덕분에 나도 꽤나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 되었다고?!"
"그렇네"
가만히 서서 타카토라와 코우타는 지금까지의 일을 회상했다. 헬헤임 숲에서 첫 만남 당시, 이 힘(아머드 라이더가 될 수 있게 해주는 변신 도구/록시드와 센고쿠 드라이버)을 어떻게 사용해야 되는지 아무것도 모르던 때 나타나서 압도적인 공격을 가하며 '싸움에서 의미를 찾아서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대답을 찾아내기 전에 죽음이 올 뿐-'이라 말했다.
이후 한동안 공포에 질린 코우타가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리고 또한 미츠자네나 이그드라실 사원들에게(료마, 미나토, 시드) 매번 강조하던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 세계엔 이유없는 악의가 얼마든지 있다는 말도 가차없이 내뱉었다.
코우타에게 반 강제적, 그가 화려하게 선보인 첫 가이무 변신 데뷔 스테이지에서 같은 팀 가이무의 리더인 스미이 유야가 헬헤임의 숲에서 헬헤임의 열매를 먹은 뒤 변한 백호 인베스의 영상을 보여준 다음 자기 손으로 동료를 죽였다는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렇게나 멘탈이 붕괴되어 부숴져도 마음의 빛나는 수정은 깨지지 않았다. 아니, 깨진 수정의 유리 조각을 다시 풀로 이어붙인듯 재생시켰다.
아무리 절망시키면 그 절망한만큼 다시 일어서서 나는 그때와 다르다며,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될지 아무것도 몰라서 가만 있는 자신이 아니라고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결의에 가득찬 눈빛을 한 얼굴로 정신적인 성장해서 희망의 대사를 외쳤다.
끝내 시즈미야 마사히토 마저 세계의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스칼라 시스템을 기동시켜 희생하는 선택 밖에 할 수 없었는데 코우타는 달랐다. 타카토라는 어쩔 수 없으면 그대로 절망감에 휩싸여 좌절하고 포기한 채 답이 없는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것 밖엔 없었다고 지금껏 계속 생각해왔었다.
절망 이외의 선택지는 단 한번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문제를 카즈라바 코우타는 너무나도 간단히 소수의 인류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구하고 헬헤임의 침식도 막을거라는 어이없을 정도로 무모한 말을 하며 스칼라 시스템을 파괴시켰다. 직접 자신이 그렇게 해보였다.
그러다가 헬헤임의 숲 속에서 두 사람은 멸망하던 문명 안에서도 새로운 진화를 이끈 종족인 오버로드의 존재도 알 무렵 타카토라는 그제서야 자신이 서서히 코우타의 인품에 점점 감화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절망 이외의 선택지를 주었으니까, 희망을 믿어볼 수 있도록 해주었으니까, 자신이 짊어진 짐과 오늘날까지의 과오를 속죄하기 위해 앞을 향해 나아가라 한 것도 바로 그 녀석이었다. 그 외 다양한 많은 일들을 한참 더 떠올렸다.
여기까지 회상을 끝내자 잠깐 주제에 벗어난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마사히토 말이다. 잠시 마사히토를 생각하고 있을 때 코우타가 타카토라에게 물었다.
"타카토라~ 당신은 지금 이 일이 자랑스럽다고 느끼지 않는거야?"
"자랑.. 스러워?! 흐음, 글쎄- 아마도 난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뭐가 어찌됐든 히어로가 되어서, 라이더로 변신해서 싸워나간 것에 후회는 없어"
"아니, 그쪽 말고- 되게 교묘하게 잘 빗겨가는데 내 말은 지금 현재 타카토라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아머드 라이더 잔게츠가 된 것이 진정 자랑스럽고 후회 없다고 느낀다면 좀 더 당당하게 가슴을 펼쳐봐! 움츠려 들 필요 없어! '잔게츠'라고 라이더명을 자랑스레 외쳐도 괜찮다는 말인걸~"
"당당하게, 자랑스럽게.. 아머드 라이더 잔게츠라..."
훗- 특유의 미미한 웃음을 살풋 내비쳤다. 그 미소에 코우타는 '뭐, 그 타카토라니까 안심이야~ 분명 잘 이겨낼 수 있을거라 난 믿어'라면서 타카토라와 함께 또 예의 밝고 환한 표정을 빙그레 지었다. 하지만 그는 차마 그 이름을 함부로 쉽게 내뱉지 못했다.
잔게츠 기동 실험을 하다 부상을 입어버린 저를 대신하여 짧게나마 잔게츠 변신을 한 적이 있는 마사히토가 있으니까 간단할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긴 솔직히 아직 너무 이르다고 생각되었다. 희생된 그를 위해서라도 잔게츠라 부르는 이름은 조금 자제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은 마음이다.
"마음 써줘서 고맙다. 카즈라바- 그렇지만 그 이름은 지금은 조금 자제하도록 하지~ 언젠가 정말 특별한 날이 있을 경우, 그때 부르고 싶어"
"좋을대로 해- 하지만 이것만은 잊지마~ 사람은 누구나 변할 수 있으니까 변신인거야~ 여기서부터는 우리들의 스테이지다!"
코우타가 주먹을 들어 타카토라의 왼쪽 가슴을 한번 가볍게 툭 쳤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서로 바라본 채 웃었다. 잠시후 코우타가 저녁도 아직 안 먹어서 형식적이라도 어서 빨리 뭘 좀 먹어야겠다며 도르퍼즈로 훌쩍 떠나갔다.
타카토라 역시 한참 더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이내 타카츠카사 마이나 처키, 리카와 랫트는 물론 아머드 라이더인 카이토와 잭, 페코, 오우렌, 죠노우치에 이어 든든한 아군 미나토까지 모두 모여있을 팀 가이무의 아지트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마사히토.. 만약 네가 혹시 카즈라바 코우타와 만났더라면 조금 너의 인생이 달라졌을까? 그럼 우리들은 불행이 아니라 행복해졌을까 생각한다. 난 아직 앞을 내딛는게 너무 두려워~
내가 과연 정말로 잔게츠라는 이 이름을 감히 담을 수 있는걸까, 잘 모르겠다. 허나, 한가지 분명한 건 그게 내가 너와 약속한 잔게츠에 아로새긴 이름의 의미라고 생각해!
언젠가 널 마주하게 될 날이 오면 그땐 내가 제대로 변할 수 있었다고 부끄럽지 않게 설 수 있도록, 그러니까 나는 여기서 변신해서 나아갈테니 부디 지켜봐줬으면 한다. 마사히토-」
타카토라는 짧은 독백을 한 채 다시 한번 아머드 라이더 잔게츠에 이름의 의미를, 그리고 변신의 의미를 새겼다. 코우타의 말처럼 아직 포기한 채 절망하긴 이르니까 살아나갈거다. 그렇기에 쿠레시마 타카토라는 다시 시작한다. 싸워나갈 이유를 새롭게 가졌다. 그날 밤 오랜만에 자신의 저택을 찾은 타카토라가 라이더 시스템이 든 은빛 아타셰 케이스를 발견하곤 천천히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조심스레 열었다.
록시드와 센고쿠 드라이버를 잡은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한번 집안 주변을 둘러보니 그동안의 여러가지 있었던 일들이 어지러이 교차되어 보여진다. 그는 가만히 메론 록시드를 꺼내들어 본 뒤 주머니 속에 손과 함께 넣었다. 지금 이 순간 어디선가 전에 본 적 없는 빛이 비치더니 강한 마음이 틔어올랐다. 이윽고 메론 록시드와 맞닿아 공명이 울렸다.
신선한 과일이 햇살을 받아 반사되는 것처럼 녹색의 메론 록시드가 반짝 빛났다. 더 이상 멈추지 않는다. 나만의 힘이 우리의 내일에게 더 나은 미래를 향해서 쿠레시마 타카토라는 오늘도 변신을 이어가고 그 속에서 살아나간다. 마치 밤하늘의 불꽃같이 물기 가득 머금은 상큼한 메론의 과즙이 팡 터졌다. 그리고 그 색깔이 타카토라의 주변을 진하게 물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