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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론의 녹턴
    특촬물 2020. 4. 25. 00:24

    * 가면라이더 가이무의 4호 라이더 잔게츠 외전 연극 무대 스포일링 있음~ 그냥 개인적으로 마사히토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싶다 생각해서 쓴 글 (트위터에서 단삭님의 썰을 보고 마침 필 받아서 연성 키워드 [피아노]를 주제로 짧게 끄적인 단문) 


    * 가면라이더 가이무 OP Just Live More에서「지금」이라는 바람은 무엇을 전하기 위해 너에게 불고 있는걸까 // 후렴 파트 첫 소절을 인용했습니다. 

    <쇼팽 - 녹턴 2번>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곡이라 마사히토가 쳤으면 좋을 것 같아서 일부러 삽입함 


    사방이 온통 푸른 녹음이 우거져 있다. 언뜻 보면 공기 좋은 청정한 숲길같은 느낌이 들지도 모르지만 한발 한발 땅을 내딛는 모든 것이 회색으로 물들어 있다. 전혀 아무것도 남지 않은 토르키아의 회색 폐허에서 도드라진 이질적인 색채가 있었다. 신기하게 저 물건이 어쩌다 언제부터 여기 이곳에 덩그러니 있는 것인지 잘 알 수 없었으나 왠 새 하얀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미미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하얀 존재...... 

    그 형체는 아슬아슬하면서도 아름다움을 내포하며 살짝 위험해보이는듯한 느낌을 들게 만들었다. 밝은 브라운 머릿결과 머리부터 발끝, 심지어 구두까지 모두 흰 정장 세트가 하얀 그랜드 피아노와 함께 최고, 최상의 멋진 조합을 자랑하여 더욱 섹시함을 강하게 이끌어내 강조시켜 주었다. 

    헬헤임의 녹색 식물 색깔을 카펫 삼아 홀로 연주하는 마사히토가 매우 인상적이다. 공허하고 폐색감이 감돈 주변에 아무도 그의 이목을 끈 채 봐주는 이 하나 없어도 마사히토는 열심히 피아노를 치는데 열과 성의를 다해 집중하였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기도 하고 때론 특유의 눈웃음을 지어보이며 웃었다가 슬픈 표정을 짓기도 하며 이내 쓸쓸한듯 씁쓸한듯한 오묘한 표정을 지은 채 계속 연주를 이어나갔다. 한껏 여유로움이 가득 깃들었다. 살짝 내리깐 마사히토의 옅은 은은한 미소가 굉장히 예뻤다. 

    누가 봐도 아! 하고,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한 예쁨과 조금은 아슬하게 위험한 아름다움이 들어 있었다. 마치 허허벌판처럼 고요한 시간 선에 선 저편의 지평선 아래, 피아노는 마사히토와 일체가 되어 후광에서부터 녹빛 아우라가 나타났다. 너무나 눈부실 정도로 밝게 빛났다. 수심이 몇 미터는 될 것 같은 깊고 까만 눈동자가 피아노를 치는 그의 손을 따라 흔들렸다. 

    그날은 절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헬헤임에 대항하기 위해, 전 세계의 인류를 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그드라실 코퍼레이션의 거대한 프로젝트- 이젠 그 녹색 환상에 자꾸만 덧씌워지고 덧씌워져 기억을 잊어버릴 노력도 힘들었다. 

    마사히토는 많이 지쳤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면 분명 나는 어떤 선택을 하여 운명을 바꿨을까, 어떤 운명을 향해 나아갔을까, 과연 우리들에게 불어오는「지금」이라는 바람은 무엇을 전하기 위해  너에게 불고 있는걸까 싶었다. 

    자신이 살던 소중한 장소인 토르키아 공화국이 활활 타오른 활화산처럼 기세 좋게 불타올랐다. 꽤 멀리 와버려 벌써 최악의 상황을 타개할 수 없었기에 토르키아 도시의 거리 전체가 미지의 공간에서 온 헬헤임의 숲이 담쟁이 넝쿨처럼 빠르게 휘감아 뒤덮힌 세계를 본 마사히토의 눈이 절망으로 치닫았다. 어차피 자신 역시 한번 인간으로선 죽은 몸이다. 

    이 느낌.. 그래- 마사히토는 이게 어떤 느낌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했다 할 만큼 정말 잘 인지하고 있었다. 조금 기분 나쁘다. 아마 미완성 상태인 센고쿠 드라이버와 록시드 사용이 어떤 물리적 힘을 불러일으켰을지도 모른다.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마사히토가 헬헤임에 감염되고 말았다. 

    잔게츠 기동 실험이 실패했다. 아직 불안정한 센고쿠 드라이버의 부작용은 실패 시 오버로드가 될 가능성이 큰 편이었다. 그리고 또한 헬헤임에 감염된 순간부터 인베스화가 진행되어서, 이미 마사히토는 인간이 아닌 오버로드가 되었다. 정말 미쳐 죽을 것 같은 기분이지만 여기서 더 큰 피해 따윈 더 이상 보고 싶진 않았다. 

    침식된 헬헤임 숲의 창궐로부터 결국 스칼라 시스템을 기동한 후 토르키아를 불사른 것이다. 거기엔 야망, 소원, 욕망, 희망과 절망은 물론 소망까지 전부 모조리 집어삼켰다. 검은 형태를 띈 광기 서린 악마가 제쪽을 향해서 비소(비웃음)을 흘렀다. 그런 다음 자신 안의 악식을 먹어치운다. 


    툭- 투둑- 투두둑- 


    쉴 새 없이 투명한 눈물이 떨어진다. 여전히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던 마사히토의 보석같은 검은 눈동자엔 인간으로써의 마지막 눈물이 흘러내렸다. 인류를 위해서 싸운 것이 실로 한심하게 여겨진 마사히토는 그 광경을 보면서 그저 한탄만 계속하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화가 났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걸까? 신은 정말 존재하는건가? 만약 진짜 어딘가에 신이 있다면 어째서 신은 방관만 할 뿐, 도와주지 않는거지? 사람이 이렇게까지 이토록 괴로워하는데 왜 시험하려 드는거야? 마음 속에서 끊임없는 처절한 목소리가 자꾸만 외쳤다. 어떤 곳조차 전혀 닿지 않은 형태인 채..... 

    다시금 그날의 고통이 또 다시 떠오른다. 헬헤임에 감염이 되고 몸이 막 불타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 느낌이 싫어서 마치 열병처럼 뜨겁게 달아오름을 젖어가는 기분에 몇 번이나 계속, 좀 더 가슴과 답답한 목을 꽉 세게 부여잡은 채 괴로움과 고통을 호소하며 몸부림쳤다. 크윽, 하는 신음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허공과 맞부딪혀 공명하였다. 

    인간의 손과 괴인의 손이 둘이서 하나로 겹쳐진다. 마사히토가 다시 한번 비명을 질렀다. 두근두근- 전보다 훨씬 더 빨리, 속도를 가속하여 가슴이 고동쳤다. 그대로 시대가 삼켜졌다. 자아낸 순수함의 결정이 저 나락으로 무너져내린 순간이었다. 거짓말.. 믿을 수 없다. 모든 것이 전부 다 거짓말 같았다. 

    회상이 지나갈동안 거쳐간 수 많은 기억들, 쉴 틈 없이 움직이는 마사히토의 손이 조금씩 격렬해갔다. 아까보다 더욱 감정이 점점 격해지면서 이 마음이 차올랐다. 비장해진 손놀림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필사적인 외침과 행동 대신 이끌리는듯이 음악에 취했다. 마사히토의 주위가 흰 깃털이 나풀나풀 흩날리면서 강한 오오라를 자아냈다. 그 모습은 마치 눈부신 천사 같았다. 아니, 새 하얀 날개를 가진 회색 폐허 배경의 하얀 마왕이다. 

    잔잔한 멜로디가 서정적인 것이 어딘가 슬프고도 외로운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마사히토는 멈추지 않았다. 언제나 익숙한듯 거침없었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혼자 연주하는 피아노의 음색이 그의 미모와 함께 어우러져 정말 예뻤다. 귀에서 세레나데가 상냥하게 속삭인다. 하지만 아름다우리만치 다소 위험한 느낌을 주도록 만들었다. 

    이내 피아노 소리가 점점 절정을 향해 다다랐다. 그리고 마침내 다다른 절정은 주변을 하얀색으로 물들었다. 곡의 음표가 하늘하늘 춤을 췄다. 절정이 별자리처럼 이어진 뒤 비로소 한바탕 끝이 났다. 이리저리 마구 흔들린 잔상이 곧 사라졌다. 하얗고 가느다란 고운 손가락이 선율을 부드럽게 마쳤다. 시선을 내리깔고 눈을 감았던 마사히토가 천천히 눈을 떴다. 깊은 심호흡을 내뱉었다. 

    녹턴- 조용한 밤의 기분을 나타낸 서정적인 야상곡은 애절해서 항상 마음이 차분해진다. 역시 이 곡을 선택해서 좋았다고 생각했다. 한편의 몽환스러운 꿈을 꿨다가 깨어난듯한 기분이었다. 마사히토는 살며시 입꼬리를 옅게 올려 본인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만족했다는 뜻이다. 그는 뚜껑을 덮었다. 하지만 자리에선 일어나지 않고 훗, 짧게 웃었다. 

    하얀 그랜드 피아노 위에는 쿠레시마 타카토라가 쓰던 것과 아주 똑같은, '아머드 라이더 잔게츠'로 변신 가능한 형태의 녹색 자물쇠와 새까만 변신 벨트가 얹어있었다. 그것을 허리에 찬 뒤「변신!」이라고 외치면 또 다른 새로운 나 자신으로 변신할 수 있게 해준다. 

    마사히토는 눈치 없이 여전히 푸른 하늘 위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잡는듯한 행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이내 다시 시선을 돌려 라이더로 변신해주는 저 엄청난 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마음을 지배당하게도 만드는 힘을 그가 검은 눈빛을 하고서 말이다. 

    시즈미야 마사히토 그 자신의 존재를 상징하는 물건이나 다름없는 메론 록시드와 센고쿠 드라이버가 나란히 놓여져 있는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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