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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이상학적 퍼즐
    특촬물 2021. 3. 24. 02:07

    * 제트 본편 완결 이후 우주에서 다시 만난 하루키와 쟈그라 단문

    우주에서 울트라맨으로 활동한 지도 시간이 꽤 지났다. 대괴수 로봇 부대의 스트레이지 소속 파일럿인 나츠카와 하루키- 어쩌다 보니 나는 전투에 휘말려 죽어 있었고 그 직후 깨닫고 보니까 나는 제트와 만나 그와 융합해 일체화하면서 울트라맨 제트가 되었다. 내가 있던 지구에서의 일은 아주 금방 순식간에 바람처럼 지나갔다. 헤비쿠라 대장, 그러니까 정체가 외계인이던 뾰족뾰족 성인은 그렇게 떠나버리고 난 뒤 그로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만난 적 없다. 

    몇 번인가 임무 차 M78 성운의 빛의 나라에 가본 일은 있었지만, 몇몇 울트라맨들도 만났지만 대장님이 언젠가 스트레이지 내에서 종종 말해줬던 라무네를 든 사람은 ──울트라맨은── 좀처럼 마주친 적이 없었다. 석양의 떠돌이라고 하던가. 뭐, 이래저래 행성을 떠돌아 다니는 방랑자라는 모양이다.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마다 헤비쿠라 대장님의 얼굴은 어쩐지 기분 좋아 보이기도 하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복잡 미묘해 보였다. 

    나는 다시 한번 대장님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우주의 시공을 넘어 괴수를 무찌른 채 악의 세력과 맞서 싸워나갔다. 제트와 함께라면 뭐든지 가능할 것 같다는 조금 안일한 생각을 하면서 같이 했던 시간은 결코 절대 헛되지 않았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에 대해서 전부 아는 것은 아니지만, 단 몇 개월 뿐이더라도 우리들에게 있어 확실히 헤비쿠라 쇼타 대장님은 헤비쿠라 쇼타 대장님이었다. 나는 그를 믿는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들의 스트레이지 대장이라고── 

    스스로 자신이 믿는 정의가 절대적이지 않다고 하던, 그 이면에는 그렇게 관철하는 정의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고 싶었다던 사람. 그때는 몰랐다. 말의 의미를 전부 이해하기엔 아직 본인에게는 살짝 어려운 말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주에서 악의 세력과 싸우면 싸워 나갈수록 나는 그 말을 이제 조금 이해할 것 같았다. 다양한 울트라맨 동료들을 만나고 이런저런 행성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대체 어느 쪽을 선이라 부르고 악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역시 내 생각이 안일했구나- 그래서 조금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었다. 

    우주로 나가니까 단순히 지구에서 괴수를 무찌르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뭔가 속담으로 비유하자면 이걸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하던가- 아무튼 매일 매일 신비함 그 자체다. 점점 새로운 걸 하나씩 깨달아 갈수록 이전까진 경험하지 못했던 경험이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과연 진정한 정의란 무엇일까? 해답을 찾고 싶었다. 

    울트라맨 제트로써 싸워나가면 무언가 답을 찾을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몇 번이나 다짐했다. 우주의 평화를 위해 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와 맞서 싸워나가면 언젠가 분명 자연스레 알게 될 거라고, 그러니까 너무 조급해 하지 말라고.. 제트도 그렇게 말했다. 

    괴수가 출현한다는 정보를 듣고 어느 행성에 도착하여 간단히 괴수를 물리친 뒤 잠시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중이었다. 울트라맨은 울트라맨으로서 사명이 있어 타인의 별에 너무 오래 개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방금 전투로 인한 완전히 소비되어 바닥난 힘을 다시 채우기 위해 변신을 푼 채 약간의 휴식을 취했다. 
    울트라맨 활동을 하려면 역시 체력 소모가 장난 아니게 엄청 잡아먹어서 틈틈히 체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제트 랜스 애로우를 들어 한번 휘둘렀다. 허공에 내질러진 창이 공기가 실리면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기는 그렇게 사용하는게 아니라고? 하루키-" 

    "엇, 어랏? 대장님!" 

    "여어- 지구에서 본 이후로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냐?" 

    "옷쓰! 대장님은요?" 

    "나야 뭐, 항상 있는 일상이지~ 그보다 무기를 쓸 땐 좀 더 힘을 빼- 무조건 힘을 싣는다고 다 되는 건 아니라고 몇 번이나 가르쳐 줬잖아" 

    "하하- 아직 쉽게 안 고쳐지네요." 

    "그러니까 고치려고 노력해야지" 

    "옷쓰!" 

    "어때? 우주에서의 생활은?" 

    "처음엔 꽤 힘들었는데 지금은 조금씩 익숙해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냐" 

    오랜만에 만난 하루키 녀석은 여전히 밝고 기운차 있어 보였다. 자꾸 뾰족뾰족 성인이라는 말에 무환마인이라 단어를 정정해주었으나 계속 틀리게 부르길래 포기한 건 당연히 덤이다. 저글러스 저글러는 들떠서 그동안 우주를 여행하며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꺼내 떠드는 하루키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괜시리 피식 웃었다. 

    스트레이지 파일럿 대원복이 아닌 잘 다려진 검은 정장차림과 귀에는 뱀 디자인의 이어커프를 한 헤비쿠라 대장은 확실히 다소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서야 내가 그 사람이 외계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그 마인체인지 뭔지 하는 걸로 모습을 변신하지 않으면 여전히 이 사실을 잊어버리곤 하였다. 특유의 낮게 웃는 모습에 나는 느릿느릿 눈을 깜빡거린 후 그런 대장을 쳐다보다가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대장님, 조금 진지한 이야기가 있는데.." 

    "뭐냐? 너답지 않게-" 

    "저, 그날 이후로 대장님이 말한 진정한 정의가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래서 답은 찾았어?" 

    "아뇨~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당연한 거다. 정의에 어떤 선악도, 정해진 답은 없어~ 결국 자기자신이 하기 나름이지~ 말했잖아? 겉으로 보이는 진실만을 보지 말라고-" 

    "겉으로 보이는 진실만이 아닌 속에 감춰진 걸 보라는 건가.. 그럼 전 어떡하면 좋을까요?" 

    "네가 믿는 정의를 관철하되, 너무 깊게 빠지지 마라" 

    "그렇습니까- 역시 대장님은 대장님이예요." 

    "그래 그래" 

    "옷쓰- 뭔가 용기를 받은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천만에- 그저 전 대장의 별 거 아닌 시덥잖은 잔소리였을 뿐이야" 

    저글러는 가만히 손을 뻗어 하루키의 머리를 얹지려다 말았다. 어째 이미지가 맞지 않는 듯 잠깐 망설였다. 이런 건 원래 내 캐릭터가 아니잖아, 하고 중얼거린 그가 그래도 약간의 상냥함 정도는 보여줄 수 있겠지 싶어서 대신 어깨에 손을 얹은 채 두어 번 툭툭 쳤다. 나는 대장님과 함께 방위대 파일럿으로 일했던 것이 여간 자랑스럽지 아니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매우── 

    우리는 '예'와 '아니오' 사이에서 피어난 제 3의 길- 그것을 답이 없는 정답이라 부르기로 했다. 왠지 빛의 거인인 울트라맨에게 썩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저글러는 한줌의 영롱한 푸른빛 같은 그 녀석을 응시하자 제가 아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삶의 원동력이 될 석양의 타오르는 붉은 빛, 너를 둘러싼 하얀 달빛이 빛나는 새벽 하늘. 

    침묵하는 밤하늘 위로 그린 듯이 쏟아지던 아우성의 별꼬리. 상처 많은 등을 쓸어내리는 노랫 소리. 맞춰지지 않는 조각들로 완성해낸 형이상학적 퍼즐. 라무네와 오브니카를 든 방랑자, 쿠레나이 가이가 떠오른다. '그렇지? 가이-' 제 눈앞에 없는 가이한테 들릴 리도 없건만 저글러는 그리 말한다. 적어도 우리들의 잘못을 하루키가 같은 무게를 지게 할 수는 없었다.

    또 어딘가에서 보자는 말과 동시에 워프하여 사라진 헤비쿠라 대장이 있던 자리를 계속 주시하다가 바람이 불어와 전신을 휘감았다. 한바탕 옷과 머리칼을 휘날리고 지나간 후 나는 바닥 아래 떨어진 무언가를 발견했다. 허리를 숙여 그것을 집어든 손에는 초록 빛깔의 분재 이파리가 잘게 부쉬져 있었는데 주변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을 듯한 그 색채가 마치 오색찬란하게 섞여 번지는 수채화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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