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夕焼けで赤くなった 저녁 노을에 붉어진특촬물 2020. 4. 27. 02:43
* 특촬 동화 합작 [울트라맨 오브 / 쿠레나이 가이 + 저글러스 저글러]
* 사용된 소재는 [피리 부는 사나이] 동화 이야기입니다!
* 반 동화 AU, 본편과 연계된 AU, 아주는 아니지만 마지막 단락 부분에서 다소 오브 오리진 사가의 스포일링 있음
피릴리리리- 피릴리리리-
어디선가 피리 소리가 들린다. 귀를 잘 기울여 들어보면 무언가 굉장히 슬픈 멜로디가 바람을 타고 울려온다. 이유 알 수 없이 뭔가 어두운 느낌이 든다. 여기는 어디지? 주변을 두리번 둘러봐도 거리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하얀 달빛 아래 음울한 공포감만이 조성될 뿐이다. 이따금 까악까악대는 까마귀 울음소리도 건너건너 들려왔다. 조용히 불빛 따라 밤길을 걷고 있는 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지금 분명 우주를 여행하고 있는 중일텐데? 속으로 그리 중얼거렸으나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고요하기만 할 뿐인 이 도시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것인지 한산했다. 골목 마다 가로등이 서 있어 은은한 불빛이 내비쳤다. 그는 이곳 모든 것이 어딘가 좀 서구적인 느낌도 들었다. 일단 피리를 부는 소리가 들려오는 쪽의 방향으로 이리저리 정처없이 걸었다. 듣는 순간 어디에 홀리기라도 한듯 왠지 저항없이 끌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곧 아무 신경 쓰지 않았다.
뭐, 그냥 기분 탓이겠거니 하면서 일단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두서없는 말이지만 지금은 꽤 심한 부상을 입은 것도 있어서 빨리 성처를 치료해야 하는데 이 때문이라도 여유가 없는 것도 있었다. 조급한 마음이었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마치 좀비처럼 다시 어딘가에 홀리듯이 길을 걸었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 눈이 죽어있거나 몽롱하게 풀려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쩐지 그런 느낌이다.
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것일까- 홀린 상태에서도 종종 문득 정신을 차리면 세게 강타한 것 마냥 머리가 아파져 몸을 가눌 수조차 없었다. 괴로움의 연속인데.. 내가 마치 내가 아닌 것 같다. 제 안의 미친 사람이 날뛰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 채 그는 다시 거리를 걸었다.
어서 상처를 치료하고 하룻밤 머무를 장소를 찾아야 하는데 정말 적당한 곳이 없나 싶다. 한참을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가 때마침, 저쪽 맞은편에서 어떤 검은 인영이 보였다. 시야가 흐릿했던 그 인영은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점차 그림자가 선명해진다. 이윽고 제 앞을 가까이 다가와 자신과 마주 본 채 서서 가만히 응시하였다.
검은 눈동자 속엔 왠지 모를 슬픔과 아픔, 괴로움, 고통, 그리고 애틋함이 들어있었다. 가슴 속에서 흘러오는 감정이, 그 기분이 그의 눈빛을 보자마자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특히 애틋한 마음이 가장 저의 마음을 쿡 아려오게 만들었다.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깊은 내부의 심연 속에서 또 하나 의문이 든다. 아무 말 없이 계속 응시하던 녀석이 이내 손에 들려진 악기를 들었다. 아까 들었던 피리 소리였는데 조금 형태가 달랐다. 피리같은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아니, 분명 피리같은데 피리같지 않은.. 그러니까 보는 시각에 따라서 하모니카 같아보이기도 했고 하여튼 그랬다.
뭔가 오카리나와 하모니카를 반반 섞어놓은듯한 정체물명의 조그만 관악기를 다시 입술에 가져다 댄 채 피리를 불었다. 슬프다. 지금 흘러오는 이 마음의 감정이 그렇게 표현하는 것 같았다. 무척이나 슬프고 쓸쓸한 느낌을 주는 인상을 가진 음율이었는데 또 달리 보면 왠지 상냥한 기분도 함께 들었다. 슬프면서도 어딘가 다소 상냥한 느낌이 싫다고 생각되면서 싫지 않은 선율을 도대체 뭐라 형언할 수 없이 멍하니 서서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너는.. 누구야?"
"..... 가이- 쿠레나이 가이- 그쪽은?"
"저글러스 저글러-"
그것을 끝으로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뒷 설명을 덧붙여 피리의 이름은 오브니카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가이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감정이 없어보이진 않으나 왠지 고독하고 외로워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몸을 돌려 앞을 향해 악기를 연주하며 걸어가는 가이를 뒷따라 자리를 이동하였다.
그렇게 한참을 계속 걸어가기만 하였다. 뭔가 아까부터 걷는다는 표현 밖에 안 하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상황에서 딱히 뭐라 설명할 수도 없었다. 일단 그가 행동하는대로 따라줘야 할 것 같았다. 먼저 앞선 가이가 여전히 오브니카를 불면서 음악에 취한 채 음미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더니 순간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뒤돌아본 그가 '여기 이 마을의 쥐는 모두 위험해~ 마을 사람들도..' 라는 말을 한 뒤 다시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저글러는 어차피 자기가 여기 온 애초부터 이상하다고 느꼈으니까 별 상관없으려나 생각하곤 제 앞의 기묘한 녀석의 뒤에서 걸었다.
오브니카를 부는 사람, 왠지 모르게 그 소리에 이끌린 사람, 이렇게 두 사람이 움직이는 구둣소리만이 공중에 가득 울려퍼졌다. 그만큼 사람들조차 다니지 아니하였다. 단지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각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짐작만 할 뿐이다. 거리를 이동하는 와중에도 저글러는 가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생각했다.
가이, 가이, 가이... 으음- 대체 누구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기분인데.. 쿠레나이 가이라는 이름을 분명 알고 있었다. 너무나 익숙하게 알고 있는데 어째서 모를까- 그런데 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건지 모르겠다. 데자뷰라고 하던가.. 약간 그런 어떤 기시감 마저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오브니카의 멜로디에 홀려서 마치 거부할 수 없는 블랙홀처럼 확 빨려든 저글러가 멈춰섰을 땐 어느 새 가이가 불던 오브니카 소리가 완전히 그쳤을 때였다. 이 이후 음악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뭐, 가는 내내 1시간동안 그것도 밝고 활기찬 노래도 아닌 슬픈 곡을 계속 들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이 참았다.
처음에는 전혀 몰랐는데 점점 자꾸 머리가 아파오는게 괴로워 미칠 지경이었다. 가이도 딱히 뒤돌아볼 이유도 없는데다 그래서 굳이 내색하거나 티를 내지 않았기에 그는 자주 한손을 들어 머리를 짚은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1시간 정도 참고 듣고 있었다면 많이 버틴거다. 아마 여기서 오랫동안 좀 더 듣고 있었다면 그땐 정말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뭣하면 당장 칼집에 검을 꺼내들 생각이 가득 만만이었다. 정말 제 사심검으로 단칼에 그 짜증나는 녀석을 베어 오브니카인지 뭔지하는 피리와 같이 우주 저 멀리 날려버렸을지도 모른다.
오늘 처음 본 초면에 저 가이라는 녀석이 오랜 친구처럼 느껴지질 않나, 오브니카 소리에 머리가 아파와 괜히 짜증나거나 화가 나질 않나, 잘 기억도 나지 않는데 말이다. 어디서 많이 본 현상, 모든 것이 정말 데자뷰와 같이 너무 익숙한 것들이 저를 더 화가 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는 사실이 저글러를 훨씬 환장하게 만들었다.
얼마쯤 더 가니까 살짝 골목을 비틀어 들어간 곳에서 빠져나와 어느 한 장소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통나무로 만든 어떤 아담한 외딴 오두막집이 한 채 존재하였다. 가이는 그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마도 그의 집인 듯 하였다. 집 안으로 들어선 후 끼익 문이 닫혔다. 저글러는 무언가를 탐색하는 듯이 조금 인상을 쓴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책상 위를 뒤적거려보기도 하고 등 여러 가지로 가이를 관찰하였다.
워낙 여러 수많은 행성들을 떠돌아다니며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운다던가, 그렇게 우주를 여행해왔기 때문에 생긴 일종의 병적인 으레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아직 상대가 어떤 자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사람을 조사해보는 것은 저글러 뿐만 아니라 가이 쪽에서도 해당되는 말인듯 서로 실험 받는 대상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점을 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미간이 다소 좁혀졌다.
대충 적당히 찬장에 있는 것들로 입맛에 맞게 크림 파스타와 토마토 소스가 곁들인 파스타를 요리한 가이가 약간의 샐러드를 함께 준비해 ──저녁밥이라고 하기엔 거의 2시가 훌쩍 넘은 새벽이라 훨씬 늦은 감이 있지만── 식사로 내놓았다. 어차피 저녁시간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다가 상처도 치유할 겸 겸사겸사였다. 이때까지도 가이는 딱 필요한 말이 아니면 여러 말하지 않은 채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그리고 난 후 두 사람이 의자 위에 앉아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먹었지만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조금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너 혹시 기억을 잃은거야?"
"어- 어쩌다 여길 오게 됐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그렇군- 사실 나도 그래~ 나도 이곳에 오기 전의 기억이 없어"
"여긴 어디야?"
"그림 거리- 즉, 그림 거리의 세계야"
"그림 거리의 세계..?!"
"응~ 나도 너처럼 이세계에서 왔어"
"그런가"
나름 대화를 해보려 가이가 말을 꺼냈다. 저글러는 자신들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은 느낌이 들어 경계 태세를 풀었다. 우주를 여행하다보니까 자연스레 거의 야식에 가까운 저녁 식사를 하는 것도 그렇고 익숙하게 비슷한 취향들이(물론 전혀 다른 점도 있었다.) 있었다는 걸 새로이 알게 되었다. 게다가 둘 다 모두 이곳에 오기 전의 기억이 없다는 것과 자신의 이름 말고는 전혀 떠오르는 바가 없는 백지 상태란 것이다.
가이가 가끔 여기에는 기억이 없는 사람들이 흘러들어온다면서 말하는데 말끝을 흐리는 것 같이 낮게 중얼거리는듯한 말투로 말했다. 이때 잠시 그는 저글러의 시선을 피해 식탁에다 가만히 손가락을 톡톡 가볍게 쳤다. 그 뒤 저글러는 돌아갈 방법을 찾으며 이 집에서 며칠을 머무르게 되었다.
며칠 지난 어느 날, 서로 함께 생활하는데에도 이제 어느 정도 적응될 무렵이었다. 가이와 저글러가 함께 점심 식사를 하던 중 가이는 갑자기 알 수 없는 큰 흉통을 느꼈다. 처음에는 그저 아무것도 아니겠지 싶었으나 점차 더 강하게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았다. 곧이어 그는 인상을 쓰면서 고통을 호소하였다. 괜찮냐고 물어보았지만 식음땀을 한가득 흘리는 모습이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가이는 기침과 함께 심장을 꽉 움켜잡은 채 쓰러졌다.
피를 토하고 있어서 검붉은 울혈이 한꺼번에 덩어리 져서 나왔다. 그래도 이런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건지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소리친 그가 혼자 신음을 내뱉으며 앓았다. 그리고 저글러에게 이곳을 떠나라는 말을 전했다. 그간 신세를 지고 있는 상황에서 저글러가 아무리 차갑고 냉철한 사람이라도 그렇게까지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을 모른 척할만큼 매정한 사람이 아니다. 그 자식을 비록 버릴 수 없었고 결국 가이는 그제서야 자신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이런 일이 있는데 왜 너는 날 떠나지 않는거야? 저글러-"
"있지, 계속 생각해왔던건데.. 어쩌면 우리, 예전에 알던 사이가 아닐까?!"
"글쎄-"
그런 날이 있었는가 하면, 그로부터 어느 며칠 후였다. 엄청난 양의 무리를 지은 쥐의 형상을 한 괴수들이 나타와 물건을 훔치거나 아이들을 공격하였다. 하지만 아무런 힘이 없는 마을 사람들한테 무슨 좋은 수조차 생각나는 방법이 없어서 별 다른 소용이 없었다. 그 바람에 난리가 난 마을 사람들이 전부 모여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적극 나서는 사람 따위 없이 그저 어떻게 해야 되나 탁상공론만 펼칠 때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던 가이가 불고 있던 오브니카를 멈췄다. 바로 옆에는 저글러도 있었다.
마치 사이다처럼 상큼하게 톡 쏘는 라무네 한 박스를 사먹을 돈이면 충분하니까 대신 퇴치해주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선 오브니카를 막 불기 시작하였는데 그 놈의 슬픈 멜로디를 듣자마자 저글러는 다시금 두통이 도졌다. 쥐 형상을 한 그 괴수들 뿐만 아니라 저도 마침 그들과 같이 홀릴 뻔 해서 아찔한 정신을 겨우 가다듬었다. 잠시 일순간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쥐 형상의 괴수들을 피리 소리로 유도하여 전부 없앨 수 있었다. 어찌저찌 잘 해결한 가이가 마을 사람들에게 약속한 돈을 요구하였지만 그 돈도 아까워 그들은 일부만 건네주었다. 짧은 찰나, 저글러는 가이의 얼굴이 굳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이후 그가 또 다시 한번 더 오브니카를 불자 이번에는 우르르 많은 무리의 아이들이 기묘한 녀석을 따라나선다.
"저글러-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만나고 싶었어"
"가이..?! 가이- 가이! 가이-!!"
저글러가 가이의 이름을 부르며 크게 소리쳤다. 그 순간 정신이 아득해져온다. 아찔한 정신을 붙잡아봐도 멀쩡하게 돌아오지 않는다. 잠깐 고개를 돌렸을 뿐인데 어느 새 석양의 떠돌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하릴없이 존재할지 모를 실루엣을 찾아 헤멘 채 저녁 노을에 붉어진 너머 그의 뒷모습을 따라만 갈 뿐이다. 그럴수록 그림자는 점점 옅여져 멀어지기만 하였다.
자꾸 더 깊은 심연 속으로 빨려들어갈듯한 느낌이 들어 두눈을 감았다가 떴을 땐 검은 공간에 홀로 남겨진 채였다. 그 공간은 서서히 배경이 마구 어지러이 바뀌더니 곧 새 하얀 공간으로 바뀌어졌다. 또 다시 감았다가 눈을 떠도 지금 처한 이 현실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저글러는 그것이 꼭 구불구불 이어진 미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역시 빠져나가야겠지- 분명 나갈 수 있는 출구가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 이어진지 알지 못한 채 반복되는 지금, 몇 번을 끝없이 찾아 헤맸지만 여전히 제자리인 것처럼 느껴지는 기분이다. 그만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자신에게 겨우 이런 것쯤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미로는 출구를 찾으면 찾을수록 아까보다 더 구불한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아니다. 결코 기분 탓은 아닌 것 같았다. 이게 만약 정말 현실이라면 나는 여기서 갇힌건가? 짧은 찰나에도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 속을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냉정한 현실주의자의 동공이 불안해진다. 겉으론 아닌 척 애써 감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자칫 방심하면 이성을 잃어버릴 것 같아서 조금 초조해진 마음을 끌어안은 저글러가 턱을 살짝 매만졌다. 가이를 부를까? 여기서 가이의 이름을 크게 부르면, 그에게 닿을 수 있다면 곁으로 와줄까? 누군가가 자신에게 '피리를 불어라' 라고 속삭인다.
주변에선 온통 나를 보고 있는듯한 시선이 가득해 저글러는 얼굴을 찡그린 채 쯧, 하고 혀를 찼다. 뭔가 금방이라도 자신이 미쳐버릴 것만 같아 기분이 조금 최악이 되었다. 그저 단순한 제 착각임을 알면서도 그런 느낌을 차마 지울 수 없었다. 도망쳐보지만 결코 절대 도망칠 수 없는 곳에서 저글러는 털석 주저앉고 말았다. 손으로 목을 조이듯 꽈악 잡았다. 호흡을 한번 삼킨 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고독과 두려움이 함께 밀려와 저를 덮쳐온다. 그때 문득 시선을 옆으로 향했다. 중형 크키 정도의 초코빛을 띈 문이 하나 있었다. 언뜻 딱 봐도 꽤나 썩 빈티지하고 심플한 형태였다. 거기서 문이 끼익 열린 다음 하얗고 고운 살결을 한 손이 문 밖으로 뻗었다. 손이 취하는 포즈가 저를 향하여 구원을 내미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저글러는 잡지 않았다. 이 다음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잘 알지도 못할 남의 손을 덥석 잡는단 말인가.. 절대 잡을 수 없다. 하지만 악마의 유혹은 이 미로같은 공간을 헤매이며 도망치는 순간에도 계속되었다.
끝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저글러는 결국 그게 희망인지 절망인지 구분할 수 없는 누군가의 손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정말 천천히, 이제 조금만 더 뻗으면 된다. 한번 침을 꿀꺽 삼킨 후 이내 손을 잡았다. 드디어 잡아버리고야 말았다. 그러자 엄청난 빛이 아플 정도로 강렬하게 비춰들어왔다.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린 시야와 기억이 점점 사라져 흐릿해진다. 그 빛에 둘러쌓인 저글러는 그냥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 ▷ ▷ ▷
눈을 떴다. 저글러는 허리를 반쯤 일으켜 세워 일어난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까 전까지 있던 공간은 어디에도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언젠가 보았던 환상이었을까? 미처 알 수 없었다. 다만 옆에는 가이가 누워있었다. 한손에는 그리도 소중한지 오브니카를 꼭 쥐고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그제서야 생각난다.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현실이 아닌 꿈 속이었음을── 그리고 그것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악몽이었다.
O-50 행성의 정상에는 누구보다 밝게 빛나는 빛의 고리가 있다. 그곳에서 빛의 전사로 선택받기 위해 많은 이들이 가장 동경하고 꿈꾸는 곳이었다. 가이와 저글러 두 사람도 마찬가지로 빛의 전사가 되기 위해 항상 실력을 갈고 닦았으며 오늘도 서로 검을 맞댄 채 한바탕 수련을 한 다음이었다. 저글러는 아직도 잠든 가이를 한번 쳐다본 뒤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사심검을 칼집에다 넣었다. 때마침 옆에 있던 가이가 잠에서 깨어 몸을 일으켜 세워 앉았다.
"가이- 일어났냐?"
"어~ 근데 나 되게 이상한 꿈 꿨어~ 저글러- 뭔가 너와 함께 동화 세계에 있었던 것 같아!"
"그래? 나도- 우리 같은 꿈을 꿨나보네"
"그러게.."
저글러가 가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윽고 손을 잡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꿈, 왠지 불길한 느낌이 엄습해왔다. 하지만 저글러는 알 수 없는 어떤 일말의 불안함을 느꼈다. 뭔가 그 같은 꿈을 꾸고 나서일까 싶은 것이 있었다.
꿈 속에서 녀석은 그의 별명대로 정말 석양의 떠돌이 모습 그 자체였다. 마침 공간적 배경도 붉은 저녁 노을이라서 더욱 그랬다. 오브니카를 불며 ──나름 피리라 할 수 있는 악기 무언가의── 그 안으로 들어가는듯한 가이의 뒷모습을 따라 쫓아가는 느낌이 들어서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게 언젠가 우리들에게 닥쳐올 미래인걸까, 그런 평행선같은 존재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싶었다.
불안한 기분을 아니 지울 수 없지만 금방 그것에 대하여 너무 깊이 상관하지 않기로 하였다. 이제 곧 있으면 O-50 행성에 가 빛의 전사가 되기 위한 시련을 받으러 기나긴 여정을 떠날 때도 다가오니까 미래만을 생각하고 나아갈 것이다. 아마 굉장한 모험이 될 터, 저글러는 가만히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후의 따스한 햇살이 눈부시게 비춰진다. 여기서 보는 하늘은 푸르지만 우주에서 보는 하늘은 까만 별하늘 일 것이다. 그는 훗, 하고 샐쭉하게 웃었다. 가이와 저글러는 서로 마주 본 채 살풋 미소를 지은 뒤 손을 잡아 이끌듯 탁, 소리가 나며 손을 맞잡았다. 그들은 다시 앞을 향해서 걸어갔다. 그리고 이내 다가올 미래를 위해 앞으로 한발짝 더 전진하였다.
めでたし めでたし。'특촬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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