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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이 이 앞으로 트레기아 과거에 대해 더 안 풀어줄 것 같아서 쓰는 트레기아 과거 날조 썰
* 트레기아와 타이가의 주관적인 캐해석과 날조가 가득 들어있습니다! 타장판 스포도 다소 있어요! 타이가 스파크를 개발한 타로 친구가 정말 트레기아였다는 걸 맞춘 뒤 내 캐해석 점점 반쯤 공식화 되어가고 있는.... 트레기아가 타락하기 전에 겪은 어떤 모종의 사건에 대해서 일부러 간접적인 표현을 하고 넘어간 이유는 그냥 이것까지 전부 마음대로 날조시키고 싶지 않아서 사건 언급하는 정도로만 썼네요.
주로 타로와의 관계성, 트레기아의 마음이나 감정 묘사 중심으로만 내용을 이끌었습니다. 그래도 제 최애인만큼 최대한 이 캐릭터성을, 트레기아의 마음을 소중히 하고 싶기에.....
깊고 어두운 우주, 끝없이 넓은 은하 너머 M78 성운, 통칭 빛의 나라라고 불리는 그곳에는 기본 울트라맨의 힘이 나오는 것으로 대개 보통의 울트라맨들이 사는 행성이다. 빛의 나라에는 수많은 다양한 울트라맨이 살고 있는데 그중, 울트라맨 킹, 울트라맨 세븐, 울트라맨 조피, 울트라맨 잭, 울트라맨 레오, 울트라맨 히카리, 울트라맨 타로 등 정말 많은 활약을 펼친 현역들이 존재하였다.
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우주의 밤을 누비며 활약하고 있었다. 같은 뉴제네에 속하지만 긴가, 빅토리, 엑스, 오브, 지드, 타이가 등 흔히 뉴제네로 불리는 울트라맨들 사이에서 어찌보면 가장 대선배이기도 한 제로 역시 이곳 M78 성운 출신으로 이미 여러 번 멋진 활약담이 많았다.
우주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우주의 평화를 깨뜨린 채 괴수를 불러 공격하는 악의 세력들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타행성들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이 전 우주를 지키기 위해서 힘을 합쳐 지켜나갔다. 그들은 M78 행성 출신이든, O-50 행성 출신이든, U-40 행성의 출신이든 상관없이 모든 울트라맨들이 오늘도 어김없이 악의 세력과 맞써 싸워나간다.
정의를 향한 존재라 해서 결코 울트라맨의 힘을 얕보면 안 된다. 한명(외계인이지만), 한명, 각자 가진 힘이 설령 거대한 악 앞에서 약할지 몰라도 서로 손을 잡고 힘을 합치면 정말 상상할 수 없을만큼 어마어마한 힘을 낼 수 있다. 그것이 악이 아닌 선의, 정의를 향하는 마음들이 만들어낸 그러한 어떤 기적같은 것이 아닐까?
타이가가 기억하는 것은 아주 오랜 옛날이다. 울트라맨 타이가, 그는 울트라맨 타로의 아들이었다. 타이가가 그 존재들을 기억하는 건 가물가물해서 잘 없다. 그땐 작고 작았던, 지구인들의 나이법으로 계산하면 겨우 4~5살 정도 되는 나이였으니까 정말 어렸을 때 도시전설처럼 으레 들었던 영웅의 모험담같은 전설 이야기로만 들었던 것이라 희미하게 몇 사건만 어렴풋이 아른아른 기억할 뿐이다.
대강 그런 일이 있었던가 싶은데 그 이야기 중에는 확실치 않은 기억도 있어서 본인이 아는 이야기가 전부 사실이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정말 어릴 적에 가족한테 건너건너 옛날 이야기를 들었던 것 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가는 트레기어를 조금 기억하고 있었다. 왠지 잘 모르겠지만 타이가는 트레기어에 대해서 전부 알지 못한다. 그가 빛의 나라에서 대체 어떤 울트라맨이고 어떤 존재의 녀석이었는지 전혀 모른다. 예전에 아버지 타로에게 본인하고 함께 연구를 하던 자신의 친구라는 것과 들었던 몇 마디와 딱 한번 아버지를 따라 간 연구실에서 마치 푸른 빛에 둘러쌓인듯한 기분을 들게 한 기묘한 울트라맨이었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 솔직히 무슨 연구를 했는지도 몰랐다.
시간이 지나 조금 더 세상 물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될 정도로 성장했을 때 나를 위해, 나를 지키기 위해 만든 '타이가 스파크'를 함께 공동 개발한 과학자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자신의 곁을 떠났다는 설명을 들었던게 다였다. 왜 그가 떠났는지 떠난 이유조차 모른다. 그때 타로는 아들에게 그 '친구'에 대해서 딱히 정확하게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은 채 어물쩍 넘어갔다.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으라고, 울트라맨은 정의를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우주를 무대로 악과 싸워나간다는 말을 들었던게 고작이었다.
타이가는 지금까지 계속 의문을 품어왔다. 지금은 아버지 곁을 떠났다는, 과거에 타로와 함께 둘이서 타이가 스파크를 만든 공동 개발자, 그리고 빛의 나라 과학자로 한때 아버지와 오랜 친구 사이였다고 하는 신비스러운 베일에 감싸여진 그 울트라맨이 누굴까 궁금하였다. 혹시 만약 찾게 되면, 우연히라도 찾을 수 있게 된다면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 이름 모르는 울트라맨의 존재의 흔적을 찾아 친구들과 같이 줄곧 지금까지 우주를 여행해왔던 것일지도.. 아마 가슴 속에는 계속 그런 생각을 했던 터다.
점점 성장하면서 자신의 아버지이자 울트라맨 타로같이 누구나 동경하는 전설적인 활약을 한 레전드 울트라맨들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도 있었으며 사실 마음 한구석에는 그 아버지의 친구를 찾고 싶어서 어릴 때부터 소꿉친구로 지내온 U-40 출신의 타이타스, O-50 출신의 후마, 이 셋이서 다른 울트라맨들을 도와 경비대의 일부터 시작하면서 우주를 지키는 일을 해왔던걸지도 모르겠다고 싶었다. 문득 타이가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쿠도 히로유키라는 열혈 청년 지구인을 만나면서 그 믿음은 더욱 강해졌다.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선악을 봐온 터라 진짜 진정한 선악의 진리라던가, 그 선악의 정의가 무엇인지 이 지구에선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편으론 그리 생각했다. 큰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채 빛의 입자가 되어 지구로 떨어질 때 어린 히로유키의 용기있는 행동과 상냥한 마음에서 아마 좀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히로유키와 울트라해 변신한 후 타락한 울트라맨 트레기어와 마지막 결전에서 뒤늦게 눈치챈 타이가는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왜 좀 더 일찍 알아채지 못했을까, 항상 자신을 다 알고 있다는듯 말하는 저 여유로운 태도와 웃음, 매번 유대니 인연이니 뭐니 그런 것들이 가장 싫다던가 하던 녀석을 말이다. 게다가 타로의 이야기를 꺼내며 경멸하던 눈빛을 보내지만 왠지 모르게 허무감에 사로잡혀 텅 비어진 마음인 채 다크한 오오라를 내뿜던 기묘한 존재로 타이가의 머릿 속엔 그리 박혀있었다.
이따금씩 깊이 공허한 눈동자를 하던 파란색 브릿지의 인간체 모습을 한 키리사키이기도 하고 원래 본체는 자신이 아는 그 아름다운 푸른색 몸체를 하고 있는 트레기어와 동일인물이다. 설마 저 녀석이 타이가 스파크를 만든 개발자, 자신의 아버지인 타로의 친구일 줄은 그때까지 미처 생각치 못했다. 사실 이것저것 조합해 추리한 끝에 히로유키에게 이미 여러 번 아버지의 친구가 트레기어인 것은 아닐까 추측성 비슷한 발언은 한 적 있다. 추측성 뿐인 말을 확신해서 히로유키한테 말하다니 한편으론 어지간히도 그렇게 믿고 싶었나 보다.
계속 꼭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고, 하지만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했다. 그저 녀석의 농간에 놀아나는 것 뿐이었다. 타로의 이름에서 갑자기 뜬끔없이 화를 낸다거나, 증오한다거나, 얼핏 그런 느낌은 들었지만 차마 말을 걸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에서 타이가는 정말 확신했다. 그의 말대로 정말 선악의 진리는 어디에 있을까, 타이가는 다시 한번 머릿 속에서 끊임없이 되내이고 생각했다. 대충 어땠을까 그날을 미루어 대강 짐작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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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78 성운, 흔히 빛의 나라라 불리는 울트라맨들이 사는 행성에서 두 울트라맨이 식사할 생각조차 잊은 채 무언가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아주 초집중해서 조심스럽게 데이터를 만지거나 장비를 손본다. 이게 아니면 저거, 저게 아니면 이거, 하나하나씩 기계를 고쳐나가며 연구 개발 진행이 한창이었다.
"이건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떨까?"
"아냐~ 여기선 저 부품을 넣는게 더 좋을거라고 봐"
"역시 그렇지?!"
"그래"
울트라맨 타로와 울트라맨 트레기어는 자신이 만들 브레스에 전력을 다했다. 이 브레스가 앞으로 우리들에게 가져다줄 어떤 희망을 믿으면서, 그리고 그 상냥한 빛을 끌어안고서 계속 스파크 개발을 이어갔다. 아직 이름조차 붙어지지 않은 스파크의 이름은 그저 변신 브레스 정도로만 부르며 때론 연구에 지치고 힘들 때 마다 서로 격려하고 다독이고 의지하면서 두 울트라맨은 다시 일어서 힘내왔다.
내가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어디까지나 계속 멈추지 않고 전진할 수 있도록 등을 밀어준 건 서로가 곁에 있어주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위해서라도 결코 여기서 포기한 채 언제까지나 멈춰있을 수는 없었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슬슬 완성이었다. 앞으로 좀 더, 좀 더, 아직 시간은 다소 걸리긴 하겠지만 몇 달에 걸쳐 만든 것이 이제 조금씩 조금씩 제 형태를 잡혀가고 있었다. 붉은색으로 도색된 페인트칠이 썩 멋져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부품을 더 넣고 빼고 한 뒤 다시 손본지 약 50분여 만에 이윽고 스파크가 완성되었다. '호오.. 이것 보게! 트레기어-' 타로에 기쁨을 못 이기고 소리쳤다.
"오- 좋잖아~ 드디어 우리의 결실이 맺은거야"
트레기어는 손에서 부품을 만진 도구들을 내려놓은 후 그의 말에 공감하며 말했다. 쑥쓰러운듯 슬몃 웃는 모습이 가히 트레기어다운 행동이었다. 타로는 녀석에게 '바보- 이럴 땐 좀 더 기뻐해도 된다고?!' 하며 팔꿈치를 들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아무튼 고생해서 얻은 성과가 좋은 쪽으로 결과물을 낸 것 같아서 트레기어는 한쪽 입꼬리를 옅게 올려 훗, 하고 웃었다.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
"으음.. 내 아들을 위해서 만든거니 아들 이름을 따서 타이가 스파크, 어때..?!"
"타이가 스파크라.. 나쁘지 않은걸~ 최고로 멋지군"
"좋아! 오늘부터 이 브레스의 명칭은 타이가 스파크다. 함께 작업해줘서 고마워~ 트레기아 너 아니었으면 나 혼자선 감히 엄두도 못냈을거야"
"천만에-"
연구 개발에 힘쓰느라 여념이 없던 상황에서 이제 겨우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한시름 놓인 둘은 본인들이 공동 개발한 작품에 빠져 연신 감탄을 여간 내뱉지 못했다. 그만큼 기뻤고 또 좋았다. 당장 지금 자신의 옆에 깊이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오랜 친구와 함께 작업을 했기 때문에 작업이 조금 힘들긴 했어도 솔직히 그렇게까지 별로 일이 괴롭지는 않았다.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 언제나 그런 상대가 옆에 있어준 것만으로도 그저 충분하였다.
너무 작아서 가만히 섬세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찾기도 힘든 부품 조각들과 파편들, 그리고 또한 그 기계를 다루던 작업 공구 도구들이 주변에 마구 어질러졌다. 데이터 빔도 그대로 켜져있는 상태로 두 울트라맨이 완성된 타이가 스파크를 들고 이리저리 시험해본다. 역시 만족할만큼 결과가 잘 나와 기분이 좋았다.
빛의 나라의 천재 과학자인 트레기어는 역시 과학자로서의 삶은 매우 힘들지만 그것에 비례할 정도로 뒷따라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배가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해 조그맣게 미소를 지었다. 타로와 트레기어는 어느 새 부품을 정리하는 것을 잊은 채 한동안 계속 실험실에서 타이가 스파크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가슴 속에 간직한 마음이 별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 빛을 냈다. 우주의 밤하늘에 뜬 별은 반짝반짝 빛나서 이내 누군가의 어둠 속에서 빛을 밝혀주는 어떤 인연이 되고 별과 별을 이어주는 별자리가 되었다. 이것이 자신의 세대에서 다음 차세대로 이어지는 어떤 희망과 미래를 믿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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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트레기어는 자신의 전용 연구실에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 즈음부터 그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건 한번쯤 과학자로서 너무나 당연히 으레 가지는 그런 의문들이다. 선악은 과연 무엇일까? 진정한 선악의 진리는 어떤 것이고 또 그것을 추구하는 진짜 정의는 과연 무엇인가? 종종 그런 의문이 들 때 마다 혼자 질문하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자기 스스로에게 자문자답해보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이 고독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트레기어는 다른 울트라맨의 동료들에게 이런 속마음을 절대 단 한번도 앞에서 티를 내거나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이것은 오직 그가 자신의 연구실 안에서 덩그러니 혼자 남겨질 때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곤 해서 괜히 기분이 울적해졌다.
이때 우주에 큰 침략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마침 연구실로 허겁지겁 달려온 제 친구, 타로를 통해 전해듣게 된 트레기어는 선악에 대해 품은 의문점을 잠시 뒤로 한 채 싸움이 일어난 곳으로 향했다. 그래, 그래도 자신은 어디까지나 빛의 전사였으며 빛의 나라 울트라맨이다. 곧 불안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트레기어는 타로와 함께 싸움이 일어난 곳으로 발걸음을 향해 ──정확히는 하이 점프력으로 높이 점프하여 날아올랐다는 말이 훨씬 더 맞는 말이지만── 달려나갔다.
잠시 후 현장에 도착한 트레기어와 타로는 울트라맨이면 각자 모두 가지고 있는 고유의 능력을 사용해 빛의 공격을 가했다. 손에서 광채가 흩뿌려져 나와 어두운 우주의 공간 주위가 금새 태양처럼 환히 밝아졌다. 여러 울트라맨들의 능력이 계속 사용될수록 빛은 아까보다 더욱 더 밝아졌다. 바로 그때, 트레기어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그는 괴수를 공격하다 말고 급히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어이! 트레기어? 트레기어! 어딜 가는거냐? 저 괴수 좀 너도 어떻게 해봐~ 왜 공격하다 멈추는거지? 이봐~ 트레기어-!!"
"미안! 타로- 잠시 뒤를 맡길께"
"트레기어!!"
그 순간 엄청난 굉음이 일어나며 큰 폭팔이 일어났다. 이후 푸른 몸체를 한 트레기어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찌저찌 괴수를 물리치고 적의 보스를 없애기는 했기에 레오나 세븐, 코스모스나 조피 등 다른 울트라맨 동료들은 모두 기뻐하며 한시름 놓은듯한 모양이다. 다만 트레기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서 괜히 걱정이 된 타로가 아무리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둘러보아도 파란색의 울트라맨은 없었다.
순간 타로는 그 자리에서 그저 절망한 채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속마음 마저 모두 보여줄 정도로 트레기어와는 꺼리낌 없었으니까, 또 그런 친구였으니까 타로는 혹시나 아까 폭팔에 그가 휘말려 어디 크게 다치기라도 한 건 아닐까 싶었다. 괜시리 걱정되는 마음이었으나 트레기어의 모습이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정말 크게 부상을 입었거나 심지어 폭팔에 휘말려서 죽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여간 들지 아니하였다.
"어어! 저거 트레기어 씨 아냐?"
"뭐, 어디 어디? 어이- 타로 씨! 저기 오는 거 당신 친구 아닌가요?!"
울트라맨 제로와 울트라맨 티가가 저희끼리 말을 주고받다가 타로에게 얘기해주었다. 그들이 가리키는 쪽을 향하여 시선을 돌리니까 과연, 저 멀리서 검은 어둠 속에서 푸른 인영이 저벅저벅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왠 처음 보는 낯선 누군가와 함께였다.
"트레기어!"
"타로.. 크윽-"
"그 옆에는?"
"아까 싸움에서 크게 다친 자야"
"설마 그럼 그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어"
옆에는 그냥 떠돌이 나그네, 즉 그러니까 여행자라고 하는 한 외계인이었다. 평소 그가 과학자답게 자신이 추구하는 연구에 빠져 거기에 몰두하느라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지만 그도 할 때는 하는구나 싶었다. 어쨌든 트레기어 역시 빛의 나라 울트라맨이니까─ 평소에 자신이 알던, 본인이 생각하는 울트라맨 트레기어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비록 오랜동안 마음 터놓고 지내온 친구였지만 가끔 트레기어의 행동은 어딘가 어둡고 다크한 분위기가 없지않아 있어서 기묘한 녀석이었다.
타로는 이번 일을 통해 제 친구의 새로운 이면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이렇게 또 새로이 하나씩 무언가를 알아가는구나 싶어서 의외로 여러모로 특별하다면 특별했던 날이다. 하여튼 타로는 그들을 부축해주었다.
울트라맨들이야 부상을 입어도 기본 자기 몸을 힐링할 수 있는 자가 수복 능력이 있었지만 그 떠돌이 여행자인 외계인은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에 얼른 상처를 치료해야 하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트레기어는 다시 연구실에 쳐박히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중 자신을 구해준 외계인이 트레기어를 향해 말했다.
"저, 저기.. 트레기어 씨-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괜찮아~ 울트라맨은, 정의의 히어로니까-"
이 말을 끝으로 트레기어는 또 다시 문을 열고 자신의 공간이나 다름없는 저 연구실 안에 들어갔다. 많이 지쳤던가, 트레기어는 연구실 한쪽 구석에 마련된 간이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그리고는 이내 곧 서서히 몰려오는 피곤함에 어느 새 깊은 꿈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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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트레기어는 연구실에만 계속 틀어박혀 있었다. 타로와 다른 울트라맨의 동료들은 무슨 일인지 다소 궁금하였으나 트레기어가 만나주지 않아 차마 더 물어볼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좀 더 심해지긴 했지만 특히 요즘 들어 선악의 진리와 정의에 대해서 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 진리를 알고 싶어졌다.
좀 더 중점을 두고 깊게 파헤치고 싶었다. 이따금 제가 생각하는 선의와 악의가 대체 무엇인지 전부터 몇 번이나 계속 마음 속에 품은 의문들을 풀어보았으나 딱히 속 시원하게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과학자에게 있어서 학문을 연구한다는 것은 오직 진리 그 자체이다.
지구인들이 믿는 성경에도 보면 나오지 않는가! 그러한 것들이 선을 넘고 기준을 넘으면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트레기어는 이미 빛의 나라의 보통 행동 규범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너무나 세세하게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이 반복되는 삶에 지쳐있었던 것도 물론 있다.
특히 과학자라는 직업을 가진 경우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보는 선악에 대한 의문이다. 우선 빛의 나라 울트라맨들은 대개 티 없이 맑고 깨끗한, 그런 순수한 정의감을 추구한다. 하지만 자신은 달랐다. 절대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트레기어는 점점 더 이런 자신의 의문을 풀기 위해 더욱 연구에 미친듯이 매진하게 되었다.
연구를 하다보면 이것저것 알게 되는 것도 많고 새롭게 알게되는 부분도 있으며 그만큼 의문들은 더 늘어난다. 그래서 그 진리를 탐구하기 위하여 항상 어디에서나 과학자는 호기심을 버리지 못하는 편이다. 무엇이든 자신이 납득할 때까지, 끝까지 탐구해 마지 않는 것이 바로 이 과학자라는 직업이다. 하지만 그 대신 이에 따른 댓가는 외로움이라던가, 고독이 늘 따르는 법이다.
어떤 연구를 해서 주변에 보이면 사상 자체를 이해받지 못한다거나 간단히 부정당하는 부당함을 받기도 하니까 그렇다. 그래서 트레기어는 같은 빛의 나라의 울트라맨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울트라맨들이 결코 자기자신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설령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트레기어는 가만히 며칠 전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타로- 이것 봐봐! 역시 선악의 진리는 굉장해! 선의라던가, 악의는 따로 있지 않아~ 난 이 악에 대한 정의를 좀 더 탐구해보고 싶어!"
"뭐라고? 너는 틀렸어.. 그건 잘못된거야! 빛의 나라 울트라맨은 모두 정의를 위해서 싸우지- 그러니까 악같은 것 따윈 필요없어~ 전부 없어져야 할 존재인거다."
트레기어는 자신의 이론법이 적힌 데이터를 확인했다. 그는 스스로 자기자신한테 심취해 매우 자아도취적인 표정을 지으며 빠른 어조로 말했다. 그런 그를 본 타로는 조금 어이가 없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미묘해졌다. 나름 정의의 울트라맨이 악 따위 필요없다며 무조건 선을 향해야된다는 말을 하자 트레기어는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타로! 세계가 무너져도 너만은 믿었다. 다른 동료들도, 너도 날 이해해주지 않는군~ 그래, 항상 빛에 둘러쌓인 네 녀석이 이런 내 어둠을 이해할 리가 없겠지"
"하지만 트레기어- 네가 하고 있는 건..!!"
"하하하핫- 있지, 타로- 선과 악은 서로 평행선 관계인거야.. 악을 부정하는게 아니라 받아들이는거라고?! 애초에 빛의 나라는 절대 순수 따위 같은, 너무 많은 걸 바라잖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살면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악의 본성이 나오지 않을만큼 모두 정직하고 마음이 깨끗하다고 할 수 있어? 훗- 결국 그건 그저 선악을 긋는 흑백 논리의 오류일 뿐, 전부 모순이야"
트레기어는 손을 들어 한쪽 눈을 짚은 채 마구 광소를 터뜨렸다. 그리고는 타로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 손을 들어 입을 가린 채 속삭이듯이 말했다. 타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가만히 서 있었다.
"변했구나- 트레기어...."
"난 변하지 않았어! 나는 나일 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너다! 나한테 왜곡된 관심을 주지마~ 방해되니까-"
이날 이후 트레기어는 점점 더 미쳐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연구실에서 거의 잘 나오지 않은 채 마치 무언가에 홀린듯 블랙홀처럼 미친듯이 선악의 진리를 탐구하는 것에 빠져 연구를 하였다. 선악이 가진 진정한 정의와 의문을 위한 자신의 연구를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빛의 나라 울트라맨들, 그리고 내심 믿었던 타로의 이 같은 발언을 들은 그는 매우 크게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럴수록 점차 어둠에게 매료되어갔다.
며칠 뒤 빛의 나라는 어떤 사건을 대치하였다. 다른 울트라맨들은 모두 정의는 옳고 악은 그릇되었다, 잘못되었다고 표현했다. 트레기어는 아무것도 구할 수 없는 자신이 매우 한탄스러워 분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 펼쳐진다. 그 사건을 겪으면서 트레기어는 완전히 마음이 무너져내려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유대나 인연은 이렇게 간단히 깨어져버리는구나 싶어서 발악하고 발버둥쳐본다. 줄곧 믿어온 신념이 유리조각처럼 와르르 산산조각이 났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걸 알면서 자꾸만 유혹하는 악에 물들어 결국 타락해버리고 말았다. 깊은 심연 속으로 빨려들어간 그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가슴 속에 간직한 푸른 수정은 완전히 빛을 잃어버려 더 이상 반짝반짝 빛나지 않았다. 대신 어둠만이 지배하였다.
- 그날, 내 이성이 무너졌다.
- 내 신념이, 내 마음이 흔들려 무너져내린다..
선악은 대체 뭐지? 무엇인가- 그럼 도대체 선악의 진리는, 그 명제를 이끌 정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절대적인 것으로 분류할 수 있는가? 트레기어는 많은 의문이 들었다. 수없이 많은 질문을 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가슴이 괴롭다. 마음이 흔들려 미쳐간다.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것들이 모두 눈앞에서 부정당했다. 한순간에 소용돌이 치듯 마치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감정이 휩쓸려간다. 왜곡된 감정이 유리된다.
트레기어는 그때 알았다. 선악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절대적인 선악은 없다. 이 세상에 그런 것 따윈 존재하지 않으며 그 안에 든 껍데기를 벗겨보면 결국 모든 건 허무와 공허감, 전부 무(無) 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을─ 전부, 선을 부정하니까 악이 태어나는 거라고 생각하였다. 트레기어는 비로소 이제 그 진리를 깨달았다. 자신이 그토록 답을 찾아 헤매던 선악의 정의와 진리를 알게 되었다.
모가 아니면 도와 같이 무조건 선 아니면 악이라고 단정 지어버린 채 흑백 논리의 오류에 빠지는 것이 가장 싫다. 하지만 선악은 방정식이 아니다. 트레기어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한손으로 머리를 짚은 그가 괴로워하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반 광란 상태가 되어 미친듯이 흥분하며 소리쳤다. 바로 그때, 주위에서 절 향해 다가오는 검은 인영이 보인다.
처음에는 희뿌연 안개처럼 흐릿한 시야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마침내 선명해졌다. 검은 인영이 마치 하늘하늘 춤을 추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그것은 저를 보더니 광기가 만연한 웃음을 지었다. 악마가 유혹한다. 트레기어는 미처 견딜 수 없는 괴로움에 서서히 손을 뻗는다. 그리고 곧 그 인영에게 손을 뻗었다. 조금씩, 조금씩 유리같은 환상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그 뒤 연구실에 돌아와 미친듯이 데이터들을 광선으로 파괴시키며 마구 부숴댄 그가 불현듯 뭔가 생각났는지 행동을 멈췄다. 크큭거린 채 비릿하게 웃는 모습은 가히 트레기어가 얼마나 최악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는지 보여주는 미쳐버린 절정에 이르러진 상태였다. '사신마수 그리무도....' 사람을 홀릴듯한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느 날 한번 들은 적 있다. 그리무도는 괴수 중에서도 조금 특이한 괴수였는데 얼굴에 뱀의 눈같은 노른자위와 세로동공의 외눈박이를 하고 있으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입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몸통에도 그러한 형태가 있었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노른자위의 세로동공이 있었으며 몸통에는 얼굴과 달리 2개의 눈과 날카로운 이빨들이 가득한 입을 가졌다.
전체적으로 저와 같이 푸른색인데다가 붉은색의 뿔과 등에는 악마의 날개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하여튼 붉은빛의 괴상한 날개를 하고 있었다. 이 괴수를 사용하면 특히 자신의 힘을 더욱 강하게 증폭시킬 수 있는 아주 특이한 케이스로 다들 기피해온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진 존재다. 이윽고 그리무도를 찾아온 그가 빙글 웃었다.
이 악의 힘을 원천으로 쓸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강이다. '그래, 이것만 있으면 된다. 그리무도를 봉인시켜 내 힘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트레기어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다시 크크큭하고 크게 웃어젖혔다. 그리고 손에 다시 광선을 만들어냈다. 보랏빛의 번개 광선이 지직 모아져 하나의 광선구가 된다. 봉인당하지 않기 위해 그리무도가 발버둥쳤지만 트레기어의 강제적인 힘에 압도 당할 뿐이다.
"타로- 어디 한번 경쟁해보자고? 흑으로 감싸인 백이 이길까? 백으로 감싸여진 흑이 이길까? 이건 절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게임이다."
트레기어는 그리무도를 제 몸 속에 봉인시킨 다음 가슴의 정중앙, 울트라맨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컬러 타이머에 X자 표시로 구속구를 만들어 채웠다. 이제 엄청난 악의 힘이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 두려울 것 따윈 없었다. 한껏 즐거워진 그는 다시 한번 한바탕 미친 웃음 소리를 냈다.
그 후 타로 및 빛의 나라 울트라맨들은 트레기어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흔적조차 온데간데 없었다. 타로가 몇 번이나 찾아봤으나 이미 반 광란 상태가 되어 타락한 뒤 모습을 감춘 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끝내 두번 다신 찾을 수 없었다.
광기 어린 호기심(트레기어 : 고대 그리스어로 '광기 어린 호기심'이란 뜻)을 보이던 투명한 푸른 빛이 이내 날카롭고 예리한 칼날이 되어서 완전히 빛과 어둠을 베었다. 끝없이 어두운 우주 저편을 넘어 시공간이 블랙홀에 빠져든 채 배경으로 바뀌어갔다. 이에 따라 빛도 어둠도 아득한 악몽 속으로 집어삼켜졌다.
외로이 방황하는 타락한 울트라맨 트레기어가 입가에 손을 가리고서 특유의 광기 어린 조용하고 차가운 웃음을 흘렀다. 그런 그의 눈빛엔 왠지 모를 쓸쓸한 우울이 가득한 공허가 남아있을 뿐이다. 고요한 우주의 밤하늘은 여전히 상냥한 어둠이 날아올라 일렁거리며 반짝거렸다.'특촬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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