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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그러진 바람
    특촬물 2021. 3. 9. 05:09

    * 특촬 드라마 & 영화 크오 합작 

    * 잔게츠 무대 × 메이즈 러너 

    https://youtu.be/-jmuKN2kDp0?list=PLTBC6ZfA4alN6p-H5KncIYfsdq-tEr5Sf

    태양 플레어 사건으로 대량의 판데믹이 일어난 후 기억을 잃고 글레이드에 입성해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고 미로에서 탈출한 뒤 몇 년이 흘렀다. 그 과정에서 가까이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의 죽음이라던가,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살아남은 생존자들끼리 정착한 이 새로운 세계에서 토마스는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손으로 뉴트를 죽여야만 했던 아픔과 트리사의 희생, 그날 이후부터 토마스는 무슨 일이 있으면 전부 혼자 짐을 끌어안아버리는 일이 많아졌다. 일종의 버릇이 되어버린 토마스가 가끔 어디를 보고 멍을 때리는 이유는 민호는 알지 못했다. 

    그는 뉴트가 어떻게 죽었는지 등 절대 민호에게만은 알리고 싶지 않아서 혼자 가슴에 품고 묻어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럴 때 이 세계는, 인류는 아무래도 어느 순간 또 다시 갑자기 감염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벽 넘어의 안전 지역, 이 새로운 세계에는 더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을텐데 정말 갑자기 대량으로 발생한 저 알 수 없는 타원형의 지퍼가 하늘이나 땅 등의 공간 여기저기에 출현했다. 믿을 수 없었다. 마치 이 세계가 가짜 배경인 것 마냥 공간 자체에 지퍼가 열리는 모습이 매우 기괴하고 이질스러웠다. 

    처음에 토마스와 민호는 아직 미약하게나마 잔존해 있는 플레어 병이 다시 발발하게 된 건 아닌가 추측했지만 잘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곳곳에 보이는 푸른 식물, 대체 어디서 왔는지 모를 괴이한 생물체와 다른 세계의 것으로 추측되는 식물 줄기들이 급격히 빠르게 성장하며 사람들을 위협했다. 감염되면 몸에 저 알 수 없는 식물이 자라나는 그런 미지의 병인 것 같았는데 확실히 바이러스를 통한 무언가는 아닌듯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일련의 사건을 겪은 뒤로 요 몇 년간 사이 토마스는 그때의 일을 잊지 못해 엄청 예민해 있었다. 

    자신이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 속에 계속 떠나지 않는다. 그러지 않도록 스스로 직접 항상 되내인 채 하루하루 살아왔기 때문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아무리 면역자의 백신을 만들기 위해서라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시절부터 글레이드라 불리는 공터에 몇 십년 동안 집단으로 넣어놓고 관찰하는 위키드는 역시 비윤리적인 것이라 토마스는 생각했다. 자신도 한땐 위키드의 일원이었고 그래서 그 괴로움과 죄책감이 은연 중에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거리를 걷고 있을 때 우연히 저 앞에서 조그만 지퍼를 발견하고 달렸다. 그런데 그 구멍의 크기가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지퍼 너머에는 이곳과 또 다른 공간이었는데 어떤 숲 같았다. 

    호기심이랄까, 이 지퍼에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토마스가 곧 망설임 없이 지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퍼가 닫히고 사라졌다. 그 소리에 놀라 뒤돌아보니 아까 전에 자신이 들어왔던 지퍼는 이미 사라져 흔적 따윈 온데간데 없었다. 기분이 묘했다. 토마스는 하는 수 없이 일단 이 기분 나쁜 이상한 숲을 따라 정처 없이 계속 걸었다.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디에선 휙휙 지나가는 이형의 존재도 있었다. 그것은 이전에 본인이 기억을 잃고 글레이드에 왔을 때 우연히 발견했던 미로 안의 그리버와 비슷한 느낌을 들게 만드는 존재였다. 그러다가 나무에서 굉장히 특이한 형태를 가진 열매를 보았다. 

    토마스는 어쩐지 그게 너무 맛있어 보여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한 채 다가가 손을 뻗을 찰나, 이 숲에 사는듯한 괴생물체들이 토마스를 향해 다가왔다. 끼익 끼익- 막 소름 돋는 소리를 내면서 다가오자 열매를 포기한 토마스가 곧 그들 무리와 싸웠다. 무기가 없으니까 그냥 맨몸으로 어떻게든 싸웠다. 하지만 괴생물체들의 힘은 강했고 무기가 없는 상황에서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한 괴생물체가 공격하는 바람에 결국 여기서 나는 죽는건가 싶어 한쪽 팔을 가렸을 때 순간 주위가 까맣게 어두워지는듯 싶더니 어디론가 땅 밑으로 확 떨어졌다는 느낌만을 유일하게 인지했을 뿐, 그 이후 토마스의 기억은 없었다. 정말 운도 없는 모양인지 토마스는 또 한번 이렇게 기억 상실에 걸리고 말았다. 

    "여긴 어디지?" 

    "에, 이제야 정신을 차린거야? 너 말야~ 내가 구해줬다고? 근데 그건 그렇고 못 보던 얼굴이네~ 다른 쪽에서 왔어?" 

    "에? 무슨 말이지?" 

    "이곳 사람은 아닌 것 같네~ 아마 저 위에서 떨어진 것 같은데 안 죽은게 다행인걸~ 당신 이름은?" 

    "이름? 내 이름.. 기억나지 않아" 

    "설마 기억 상실인거야?" 

    "그런가 봐~ 아무것도 전혀 기억이 안 나~ 그나저나 너희들은?" 

    "나는 오세-" 

    "베리스다! 그리고 이쪽이 우리 팀 바로크 레드의 리더인 글라샤 씨-" 

    "글라샤..?!" 

    토마스는 글라샤를 쳐다보았다. 아름다운 금발을 한 청년은 어쩐지 조금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는 이쪽을 향해 다가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간단히 말해주지! 여긴 토르키아 공화국의 언더 그라운드 시티, 즉 넌 현재 토르키아의 지하 도시에 떨어졌다는거다." 

    "지하 도시..?!" 

    그때 팀 바로크 레드의 일원으로 보이는 한 멤버가급히 아지트로 뛰어들어왔다. 녀석은 매우 숨을 헐떡였는데 어디서 누군가에게 당하고 온 모양인지 전신이 심하게 상처 투성이었다. 팀 오렌지 라이드가 나타나고 팀 그린 돌즈한테 당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들의 팀 이름에 레드라는 색깔이 들어가는 것 답게 다들 붉은색과 검은색 조합의 옷을 입고 있어 그나마 피가 많이 순화되어 보이는 것 같은 착시 효과가 있었다. 

    아마 붉은색 계열의 셔츠 덕분에 같은 붉은색인 피가 상대적으로 보호색 비슷하게 띄는 거겠지- 그러면서 토마스는 최대한 자신이 누군인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기억해보려 애썼으나 노력은 모두 헛일이었다. 베리스가 한손에는 쇠파이프를 든 채 토마스의 어깨를 툭 얹지며 지금 잃어버린 기억은 천천히 찾고 우선 중요한 일은 다른 팀들과 싸우러 가는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오세와 함께 먼저 앞장 서 걸어가는 글라샤를 뒤따라갔다. 토마스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아리송한 얼굴을 한 채 그들을 따라 나섰다. 

    토마스가 본 글라샤의 첫 인상은 그랬다. 어딘가 심히 뒤틀러 삐뚤어져 있다고, 그 왜곡된 감정이 무엇인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테다. 하지만 싸우러 나간 현장의 장소에서 글라샤의 이글거리며 불타오르는듯한 저 눈빛이 모든 걸 대신 말해주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의 이 상황, 어디선가 본 적 있다. 

    분명 처한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하는, 마치 서바이벌 게임 같은 이것이 뭔가 전혀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정말 기억나지 않았다. 뭔가 단편적인 조각 파편 따위 같은 기억이 드문드문 떠오르긴 하나 결국 거기까지다. 그 이상 기억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마스는 지금의 이 상황이 처음 겪는 일이 아니란 것쯤은 가슴으로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 아임! 포라스! 그것 밖에 안 되는건가?" 

    "흥! 누가 네 녀석 따위에게 질까 봐!" 

    "그럼 이제부터 이걸로 대결하지" 

    글라샤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때마침 오렌지 라이드의 파이몬과 구시온이 쇠파이프를 든 채 멈칫하곤 아임을 바라보았다. 

    "아임- 역시 이번에도 저걸 쓰는거야?" 

    "리더도 없는데 계속 사용하다간 좀 위험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잖아~ 그래도 록시드와 센고쿠 드라이버만 있으면 소중한 걸 지킬 수 있어! 파이몬- 구시온- 나머진 맡길께" 

    "어" 

    "이야~ 드디어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인가~ 이거 이거 두근거려서 참을 수 없는데~" 

    "록시드이든, 아머드 라이더든 나는 그저 힘을 내보일 수단이다.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건 오직 자기자신의 강함 뿐, 그것 뿐이다." 

    "자, 시작해볼까~ 글라샤- 포라스-" 

    아임이 오렌지 록시드를, 글라샤가 바나나 록시드를, 포라스가 도토리 록시드를 들고 포즈를 취한 뒤 변신을 외쳤다. 토마스는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록시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자물쇠를 허리에 찬 센고쿠 드라이버라고 하는 벨트에 끼우니까 곧 효과음이 흘러나오면서 변신이 되었다. 

    "저게 아머드 라이더.." 

    자물쇠처럼 생긴 물건과 저 벨트를 사용하여 싸우는 것 같았다. 게다가 갑자기 어디선가 툭 튀어나온 정체 모를 괴물이 나타나 각 팀들 간의 세력 다툼도 잠시 무마되어버렸다. 그 괴물은 아까 전에 토마스가 이상하게 생긴 기묘한 숲에서 본 그 괴물이었다. 

    "인베스인가" 

    "요즘 들어 자주 출몰하는군" 

    "하는 수 없네" 

    "어이, 글라샤- 잠시만 힘을 빌러줘라" 

    "닥쳐라~ 말 안 해도 알고 있어~ 우선 인베스부터 없앤다. 싸움은 미루도록 하지~ 아직 완전히 결판난게 아니니까-" 

    "나도 있다고? 너희들끼리만의 이야기로 빠지지 말아줄래?" 

    글라샤는 포라스의 말에 잠시 노려본 뒤 앞으로 나섰다. 이어 아임과 포라스도 각 필살기를 써서 인베스를 처리하는 중이다. 이를 보며 토마스는 혼자 중얼거렸다. 인베스인가.. 그래, 저 괴물을 인베스라 부르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그의 뒤에서 또 다른 인베스 하나가 달려들었다. 어떻게 하지 못하고 당한 그가 바닥에 나뒹굴면서 신음을 흘렀다. 

    운 좋게도 눈앞에 놓여진 쇠파이프가 보였다. 있는 힘을 다해 쇠파이프를 잡고 일어선 토마스에게 다시 한번 저를 공격한 인베스를 향해 강하게 휘둘러 내질렀다. 순간, 저도 모르게 본능적인 움직임에 일시적으로 두통이 일어난 토마스가 고통을 호소하며 머리를 짚었다. 그럴 동안 인베스는 아임, 글라샤, 포라스가 변신한 세 아머드 라이더들에 의해 이윽고 처리되었다. 잠시 후, 상처만 가득 안고 들어온 팀 바로크 레드의 아지트 안에서 멤버들은 각자 서로 상처를 소독하고 있는 중이었다. 당연히 맨몸으로 싸웠던 토마스도 예외 없었다. 

    "어이, 베리스- 저 녀석의 상처 치료해줘라"  

    "네~ 글라샤 씨-" 

    토마스가 베리스에게 부상을 치료할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하 도시라는 것 치곤 생각보다 꽤 많은 물품이 보였다. 생존하기 최소한의 물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가 여기에 와서 대충 알게 된 사실로는 팀 오렌지 라이드라던가, 팀 바로크 레드라던가, 팀 그린 돌즈 등 몇몇의 여러 세력의 팀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늘 이렇게 살아남기 위해선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계속 해야 된다거나, 또 여기에는 아이(청년)들은 있지만 어른들은 없다는 것이다. 조금 특이한 나라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생각 났어~ 내 이름은 토마스-" 

    "토마스- 그거 멋진 이름이네!" 

    "헤에- 이제 기억난거야?" 

    오세가 빙긋 웃었다. 평소의 바로크 팀원들의 모습과는 다소 달랐다. 이런 미소를 지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기억이 돌아왔냐는 베리스의 말에 토마스가 대답했다. 

    "아니, 완전히는 아니고 일단 이름만.." 

    "그런가" 

    "그래도 이름만이라도 기억난게 어디야" 

    "그런데 이곳은 지하 도시라고 했지? 그 아머드 라이더라던가, 전부 뭔지 설명해줄 수 있나? 여기에 어른이 없는건가?" 

    "알아서 뭐하지?" 

    상처 부위에 간단한 드레싱이 끝난 글라샤의 몸에 하얀 붕대를 칭칭 감은 채 바로크의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는 자리에 일어서서 팔짱을 꼈다. 그는 토마스 쪽을 바라보지 않고 말했다. 

    "혹시 알아? 뭔가 내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없다." 

    "......" 

    "..... 어른은 없다. 이곳은 말 그대로 지하 도시, 한때 이 나라는 어떤 실험을 한 뒤 실패되어 모조리 불타버린 후 황폐해졌다. 그리고 토르키아의 귀족은 우리들에게 이 록시드와 센고쿠 드라이버를 지급하여 지하 도시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게임을 하도록 시켰지~ 귀족들은 그런 녀석들이다! 이 물품들도 모두 토르키아 외부의 귀족들이 지원해주고 있어~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자만이 바깥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고- 그러니까 우리들은 살아남기 위해 싸워나가야 해" 

    "실험? 그것 때문에 나라 자체가 모두 불타버렸다고? 토르키아의 귀족?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 목숨을 건 싸움을 하며 살인을 한다고? 그건-!!" 

    "잘못 되었다고 말해도 어쩔 수 없지~ 애초에 우리는 힘이 없어~약하지~ 그러니까 어느 누구도 짓밟을 수 없는 힘을, 강함을 손에 넣어 귀족들을 없애고 이 나라의 정점에 선다. 그것 뿐-" 

    "외부인 치곤 내게 꽤나 많이 알려주네" 

    "그래서 뭐냐?" 

    "있잖아.. 글라샤- 그렇게 생각해? 정말 이 싸움에 의미가 있긴 하는거야? 내가 지금 기억을 잃어서 잘 생각나진 않지만 왠지 나도 예전에 이런 비슷한 상황을 있었던 것 같아~ 어딘가 한정된 공간에 갇혀 그 세계가 전부인 것처럼 알고 지내면서 살아남기 위해 싸워나가야 했던 일.. 기억날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뭐, 결론을 말하자면..." 

    "너는 싸움에 어울리지 않아~ 더 상대할 가치도 없겠군" 

    글라샤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뒤 밖으로 나갔다. 토마스는 토르키아의 지하 도시에 대해, 글라샤에 대해 아직 좀 더 궁금한게 많았지만 단호하게 말을 자르며 거절해서 미처 더 물어볼 수 없었다. 

    토르키아에서 지낸지 며칠이 지났다. 시간은 생각보다 참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동안 바로크 아지트에서 그들과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있었고 단편적으로 스쳐가는 기억의 조각에 서서히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하였다. 토마스의 기억도 조금씩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기억은 전혀 돌아오지 않아서 확실하게 어쩌다가 여기로 오게 되었는지 완벽히 알 수 없었다. 어서 기억을 찾아 원래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데 따위 생각으로 토마스는 점점 불안 초조해지고 있었다. 

    그런 때 또 다시 맞붙게 된 팀 오렌지 라이드와 팀 바로크 레드의 싸움이 일어났다. 저마다 쇠파이프 등 무기를 들고 난무하는 싸움 속에서 아임과 글라샤는 서로 마주 보았다. 그리고는 늘 그랬듯 익숙하게 록시드를 꺼내 허리에 찬 센고쿠 드라이버의 정중앙 파츠에 맞춰 끼웠다. 곧 오렌지 암즈- 하는 음성과 바나나 암즈- 하는 호쾌한 음성이 흘러나와 갑옷이 생성되고 이어 아머드 라이드로 변신하였다. 

    "글라샤- 우리 구역에서 무슨 짓이야!" 

    "먼저 우리 쪽을 공격한 건 바로크가 아닌 오렌지 라이드의 녀석들이잖아?" 

    "뭐라고? 너희들은 그런 비열한 수를 쓰는 모양인데 내가 절대 용서하지 않겠어!" 

    "소용 없다. 그리고 나는 비열한 행동 따윈 하지 않아~ 필시 바로크에서 일부 서열이 낮은 자들의 짓일 터, 그 점은 핸디캡으로 감안해주지" 

    "어디 한번 덤벼 보라고?!" 

    아임의 무쌍 세이버와 글라샤의 스피어가 서로 챙- 맞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가면의 파츠로 가려져 있어 비록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상대의 모습과 움직임,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이 한창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던 토마스 앞에 오렌지 라이드의 한 놈이 기다란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나타났다. 순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채 그 녀석과 험한 사투를 벌였다. 그렇다고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제 쪽을 향해 먼저 공격해오기도 했고 토마스는 정신없이 일어나는 싸움으로 인하여 매우 고전했다. 게다가 그는 아머드 라이더가 아니었기에 맨몸인지라 더욱 그랬다. 

    저도 모르는 본능을 따라 혈혈단신으로 뛰어든 것은 엄청 위험한 일이었다. 아임과 일기토를 벌이던 글라샤가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썼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글라샤는 곧바로 막았다. 물론 변신한 상태에서 맨몸인 사람을 공격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냥 간단히 가볍게 방어만 했을 뿐이다. 이제 겨우 한시름 놓는가 했더니 결국 토마스는 난무하는 혈투 끝에 심한 부상을 입고 말았다. 이렇듯 지하 도시의 거리 주변에는 검붉은 피가 흥건히 물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뭔가 떠오른듯 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함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이윽고 토마스가 정신을 차렸을 땐 팀 바로크 레드의 아지트였다. 이미 부상 치료를 끝낸 모양인 것 같았다. 팔을 움직일 때 마다 뻐근하게 아파와 고통이 밀려왔다. 억지로 참아보려 애쓰며 토마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베리스와 오세를 포함한 바로크 멤버들은 아무 말 하지 않고 리더의 눈치만을 볼 뿐이다. 그가 깨어난 걸 알고 있으면서도 글라샤는 여전히 그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은 채 계속 조용히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아지트를 나가려는 때 뒤에서 토마스의 나지막한 울림으로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글라샤는 잠시 걸음을 멈췄지만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전부 기억이 났어" 

    "기억 난거야?" 

    "에, 잘 됐잖아!" 

    "이 지하 도시는 왠지 내가 있었던 곳과 비슷해~ 글레이드 공터와 닮아 있어" 

    "글레이드..?!" 

    토마스의 말에 반응하는 건 모두 베리스와 오세 밖에 없었다. 글라샤는 그 와중에도 뒤돌아보지 않고 묵묵부답한 채 서 있어서 그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지하 도시처럼 나도 한때 글레이드에 갇혀 그곳에 있던, 나름 동료라 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싸워나갔어~ 미로 속엔 그리버라는 괴물도 있어서 말이지.. 그때도 지금처럼 기억을 잃은 채였네~ 그곳에 어른들은 없고 오직 아이들만 있어~ 알고 보니 어른들은 모두 글레이드 외부에서 엄청난 실험을 하고 있었고 우리가 그 모르모트였다. 이 정도랄까-" 

    "......." 

    글라샤는 거기까지 들으며 곧 아지트 밖으로 나가버렸다. 자신이 이야기 해보겠다며 토마스는 베리스와 오세를 남겨두고 먼저 나가버린 글라샤의 뒤를 따라 밖을 나왔다. 

    그 뒤 글라샤는 어느 폐건물로 들어섰다. 지하 도시의 황폐하고 어두운 모습 그대로 잘 나타내주는 것 같이 폐건물 내부는 희미한 빛이 새어들어왔다. 그것이 어쩐지 꽤 으시시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토마스는 그때까지 어떤 말조차 하지 않았다. 글라샤의 눈동자는 분노와 증오의 불꽃이 되어 이글거린 채 타오르고 있었고 여기서 매번 결의를 다지는 것처럼 느껴진듯한 기분은 그저 단순히 착각 탓이었다. 

    "너도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 있다면 알겠지~ 이 세계는 모순 투성이로 이뤄졌을 뿐이다.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지배 받는 세계.. 훗- 귀족 따위 내가 쳐부숴주겠어!" 

    "그러면 그건 결국 귀족들이 원하는대로 되잖아? 정말 힘만으로 무엇이든, 전부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시시하군~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힘을 손에 넣어 귀족들을 없애고 내가 그 정점에 선다. 절대 질 수 없어! 반드시 마지막까지 이겨나가야 한다고!" 

    "원하는 건 그것 뿐이야? 자, 그럼.." 

    "이건 게임이다!" 

    "게임이라고?!" 

    "서바이벌 게임- 우리는 지금 생존을 건 그런 게임을 하는거다!!" 

    "그렇게 해서 힘을 손에 넣은 다음엔 어떤 세계가 비치고 있어? 허무만이 남잖아! 그래선 사람은 고독해질 뿐이라고-!!" 

    "너도 아임 같은 소릴 하는군~ 오렌지 라이드의 그 녀석도 그렇게 말했지~ 허무? 고독? 알 바냐! 전부 약하니까 당하는거다. 그러니까 나는! 나는 여기에 살아가는 걸 긍지로 여겨! 토마스- 넌 살아가는 의미를 뭐라고 생각하나?" 

    "살아가는 의미..?!" 

    토마스는 잠시 머뭇거렸다. 어떤 말도 머릿 속에서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살아가는 의미]라는 말만 계속 반복하며 되내일 뿐이다. 뭐라고 잘 말할 줄 알았는데 막상 글라샤의 이 같은 반문에 오히려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살아가는 의미는 지금 이 순간이다! ..... 아임에게 결투를 보냈다. 남쪽 스테이지의 구역을 빼앗기 위해서 말이지~ 지하 도시는 서로 싸우지 않으면 당할 뿐인 위험한 땅이니까-" 

    "글라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폐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팀 오렌지 라이드와 팀 바로크 레드의 일원들이 쭉 모여있었다. 제각각 손에 무언가 무기를 하나씩 들고서 서로 눈치 게임을 하였다. 리더는 아니지만 어느 날 사라져버린 리더를 대신하여 팀의 2인자 포지션에 있는 아임과 그 뒤로 파이몬, 구시온이 따랐고 글라샤의 뒤에는 당연히 베리스와 오세가 보디가드라도 하듯 지키고 서 있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정중앙에서 아임과 글라샤는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하지 않고 주먹과 발차기 기술을 이용해 맨몸으로 싸웠다. 두 사람 다 무모하다면 무모하다고 할 수 있다. 

    토마스는 이 이상 글라샤를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말해봐야 별 소용 없을테고 지켜봐주는 것도 하나의 역할이라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토마스는 한발 뒤로 물러섰다. 남쪽 스테이지가 있는 구역을 빼앗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 자체가 모순이고 왜곡되었단 생각이 들지만── 

    싸움은 한참동안 계속 이어졌다. 아임도 글라샤도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슬슬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들 중 아무도 누가 먼저 패배를 인정하는 자는 없었다. 이길 때까지 계속 싸워나간다라.. 역시 이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서 토마스는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 자신은 한낱 외부인에 불과하고─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토마스는 분한 마음에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재수가 없는건지 마침 그의 옆에서 다가온 오렌지 라이드의 팀원 한명이 토마스에게 쇠파이프를 휘둘러 강타했다. 살짝 비껴나갔지만 팔을 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굉장히 아려오는 고통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지금까지 글레이드의 동료들과 함께 이 세계의 운명에 맞서 싸워왔던 것은 잘못 되었을까 싶었다. 그런 생각들이 불현듯 뇌리에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그러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역시 이상해.. 이건 잘못 되었어! 같은 지하 도시의 사람들끼리 이렇게 서로 싸움을 반복해도 이뤄지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 

    "닥쳐라!" 

    "외부인은 빠져!" 

    글라샤와 아임이 저마다 한마디씩 입을 모아 소리쳤다. 토마스는 힘겹게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꽉 쥔 두 주먹에선 작은 진동처럼 미세한 떨림을 냈다. 

    "어~ 맞아~ 난 확실히 외부인이야~ 하지만 눈앞윽 그런 참혹한 광경을 보고도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잖아!!" 

    "자, 달리 뭐가 있는데! 이거야말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나쁜 건 모두 우리에게 이런 일을 시킨 귀족들이다! 탓하려면 귀족들을 탓해라" 

    "그렇다면 나와 싸워! 기꺼이 상대해주지!" 

    "그만 둬~ 외부인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싸움이 아냐~ 분명히 다시 말하지만 이건 놀이가 아니라 목숨을 건 게임이다!" 

    글라샤는 토마스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며 노려보았다. 직후 토마스는 조금 전에 입은 상처로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 자리에 털석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변함없이 팀 바로크 레드의 아지트였다. 어떻게 된건지 멍하니 상황 파악을 하고 있자 베리스와 오세가 옆에서 승부는 미뤄지고 사건은 대강 그렇게 일단락 되었다는 말을 하였다. 부상을 입은 팔은 벌써 치료한듯 했다. 한참 아무 말 없다가 글라샤가 입을 열었다. 

    "너도 꽤나 무모한 녀석이군~ 보통 그렇게 뛰어드는 사람은 없으니까- 뜨겁다고 해야 될지, 그냥 사람 좋은 바보라 해야 될지.. 의미를 모르겠군" 

    "......." 

    "하지만 싫지 않아" 

    그날 밤, 모두가 잠든 고요한 어둠 속에서 토마스는 혼자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계속 생각을 거듭했다. 괜히 글레이드의 동료들이 생각나는 그런 날이다. 서로 싸우다가도 어느 새 힘을 믿고 의지한다거나, 강한 유대와 신뢰로 이어진 인연- 여기 이 지하 도시도 조금은 비슷할까? 이런 잔혹한 일상에서 그 녀석들도 우리들처럼 그런 강한 유대로 이어져 있기에 어쩌면 언젠가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왠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 같은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뭐 됐다. 글라샤의 말을 들으니 외부인은 이 정도 역할에서 이만 빠져주는 것도 괜찮을듯 했다. 게다가 원래 자신의 세계에 되돌아와서 꼭 해야만 할 일이 생겼기에 이대로 쭉 남아있을 수 없었다. 

    토마스는 결심한 뒤 새 하얀 종이에 편지를 남긴 채 이내 지하 도시를 떠났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팀 바로크 레드와 있었던 시간은 꽤 나쁘지 않은 추억이라 생각했다. 분명 어딘가엔 그 이상한 숲으로 이어지는 지퍼 달린 크랙이 열려 있지 않을까 싶어 찾아다녔으나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포기하려는 때, 저를 향해 확 덮쳐온 녹색 식물 줄기에 의해 다행히도 그 이상한 숲에 올 수 있었다.

    지퍼가 달린 크랙에서 빠져나오자 자신의 원래 세계에 돌아온 것 같았다. '글라샤..' 가만히 그의 이름을 새기듯 중얼거린 토마스가 곧 민호와 동료들이 있는 곳을 향해 걸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살랑거리며 산뜻하게 불어오는 미풍이 아닌 왠지 다소 어딘가 심히 일그러진, 왜곡된 바람인 것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이상한 숲과 괴물이 각각 헬헤임의 숲과 인베스라던가, 오버로드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더 지난 그 이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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