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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업은 안 하는 주의!특촬물 2020. 5. 6. 11:15
* 18화 이후 어느 시점으로 진행되는 스토리
그 후로 며칠 지났다. 무언가의 흥미로움을 느끼고 타이가에서 타깃을 바꿔 히로유키를 건들이기 시작한 트레기어가 손가락으로 쏜 광탄에 의해 호마레가 쓰러진 후 약 2주일 정도 시간이 흘렀다. 며칠동안 깨어나지 않아 울며 걱정했던 히로유키의 마음도 이제 어느 덧 안심하고 있었다. 다행히 치료가 잘 되어 빠르게 회복해가는 ──호마레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외계인이라는 것도 한몫 해서── 호마레의 병실에 그 뿐만 아니라 피리카와 카나 사장님, 사쿠라 경부까지 이지스의 사람들이 자주 들러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가곤 하였다.
호마레는 자신이 민간 경비 조직의 이지스 대원복이 아닌 어딘가 빳빳한 느낌이 드는 하얀 환자복이 괜히 불편하고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병원에 입원해 있을동안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되도록 가능하면 빨리 퇴원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고 보니까 코마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얼핏 히로유키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뭐, 굳이 보지 않아도 울먹이며 간절하게, 애타는 모습이었을거라는 걸 대충 알 것 같았지만 말이다. 동료를 지키지 못했다던가, 자신 때문에 소중한 사람이 대신 당했다던가 하던 그날의 죄책감 등 여러가지 더불어 히로유키가 그런 진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 역시 카나 사장이 넌지시 일러주었다. 그리고 호마레는 점점 회복 속도가 빨라지더니 오늘 드디어 퇴원하는 날이다.
비록 위험천만한 의뢰를 담당하는 이지스지만 최근 임무 활동을 하러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지 못해 갑갑했던 병원 생활을 끝낸 것이 여간 기쁘지 아니하였다. 괜히 웃음이 나와 피식 웃으며 그는 퇴원하자마자 바로 무리하는 거 아니냐는 히로유키의 말에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이제 괜찮다고 선배의 미소로 안심시켜주었다.
때마침 걸려오는 피리카의 전화를 받은 히로유키가 임무 차 현장으로 잠시 이동할 동안 호마레는 주섬주섬 옷을 정리하며 살짝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퇴원 기념으로 이지스에 돌아가는 길에 좋아하는 붕어빵이라도 하나 사먹을까 생각하면서 여기저기 널부러진 짐들을 하나씩 가방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 때,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급 이유를 알 수 없는 쎄함이 엄습해온 기분을 깨달은 그가 문득 휙 뒤돌아 봤을 땐 흑백 반반의 셔츠와 푸른 브릿지를 한 존재가 빙긋 미소를 지은 채 서 있었다.
"키리사키?!"
"자~ 여기-"
"..... 네가 여긴 어떻게? 아니 그보다 이번엔 또 무슨 속셈인거야? 이건 뭐지?"
"에, 속셈이라니 말이 너무 지나친 거 아냐? 왜? 내가 널 잡아먹기라도 할까봐 겁나? 훗- 걱정마~ 아니 그냥.. 전에는 미안했다구~ 별 뜻 없고 축하해주려고 온 것 뿐이니까.. 퇴원 축하 선물-"
키리사키는 한손은 뒷짐을 지고 다른 한손을 들어 호마레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다양한 색깔의 꽃들이 왠지 조화로워 보였으나 그렇지 않아보이는 건 그저 기분 탓일까? 그가 잠시 꽃만 바라보면서 머뭇거리자 키리사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뭐해? 얼른 받지 않고.. 내 손 무안하게..."
키리사키는 눈매가 가늘게 올라가며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하는 수 없이 일단 꽃다발을 받아든 호마레가 키리사키를 쳐다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퇴원 준비하기 위해 절차를 밟아야 되서 어울려줄 시간 없다며 단호하게 못 박았다. 그럼에도 키리사키는 여전히 빙글거린 채 웃고만 있을 뿐,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기분이 미묘해졌으나 그는 다시 짐을 정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래서 말야~ 사과의 의미로 우리 지금 피잣집 안 갈래? 내가 사줄께"
"뭐? 피잣집?"
"왜, 싫어? 나는 나름 성의를 보였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동의하는 걸로 생각할께"
피자보단 차라리 붕어빵으로 해주지 그래, 라고 차마 태클을 걸진 않았다. 이 외에도 뭔가 녀석한테 하고 싶은 말이 가득 있었지만 그냥 말았다. 오히려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적에 대한 걸 알게 되면 자신을 걱정해준 히로유키에게 뭔가 조금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 그 생각이 미치자 호마레는 천천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느긋하게 심리전이라도 써서 떠볼 겸, 속으로 말을 삼킨 채 키리사키를 뒤따라갔다. 타각타각 걷는 발걸음 소리가 결코 그리 썩 경쾌하지는 않았다.
거리를 걷는 내내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키리사키를 따라 피잣집으로 도착한 호마레는 어쨌든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았다. 대충 뭐라도 이것저것 주문한 메뉴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주문 이후의 둘은 다시 말이 없었다. 아니 은근히 서로 상대를 관찰하며 일부러 눈치 게임을 하는듯 해보였다. 시간은 자꾸 계속 흘러가고 별 일 없이 금방 주문한 피자가 나왔다. 그리고 왠일인지 키리사키는 호마레에게 상당한 호의를 보였다.
먼저 선심이라도 쓰는 양, 직접 상냥하게 그릇에 피자 조각을 하나 떼어내어 담아주는 그의 행동이 다소 이해가 되지 않아 약간 어리둥절 했지만 곧 그 생각을 지웠다. 먼저 공격해 반쯤 치명상을 입히고 병원행을 지게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다시 퇴원 축하인지 뭔지 꽃다발 선물을 주더니만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정말 사람 놀리는건지 대체 왜 이러는 이유가 모르겠다.
"그게 맛있어?!"
"맛없을 리 없지~ 너는 안 먹어?"
"글쎄.. 그다지 지금은 별로 먹고 싶지 않은걸"
대화는 거기서 뚝 끊겼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던 건 호마레가 마지막 피자 한 조각을 전부 먹고 나서였다. '내가 뭐 재밌는 이야기라도 하나 해줄까? 내가 너에 대해 알아맞추는거야~ 어때? 소야 호마레 군-'라는 말을 한 키리사키가 또 다시 한쪽 입꼬리를 옅게 올린 채 빙글 웃었다.
요즘 꽤나 고민 많다거나 이지스의 사람들에 관한 것이나 그런 류의 질문을 던진 키리사키가 자신은 저에 대해서 뭐든 다 안다고 말했다. 한껏 교만스러운 행동을 취하면서 그는 호마레의 대답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했다. 왠지 키리사키가 생각하는대로 끌러가는듯 묘한 기분이 들어버려 호마레는 괜히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었다.
또 한번 히로유키를 건들었다간 그땐 가만두지 않겠다고, 정말 널 내 손으로 없애버리겠다고 나름 목에 힘주어 으름장을 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연하게도 또 한번 제 후배 녀석을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이지스의 모든 사람들에게 더 이상 본인 때문에 신경 쓰거나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쩌지? 난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너무 소중해서 지키고 싶은데? 현재 지구에서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고,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진 않거든~ 키리사키- 하나도 전혀 안 맞았어"
"......"
"아, 피자 잘 먹었어~ 덕분에 적당히 허기는 채운 것 같아~ 더 할 말 없으니까 이만 갈께"
꽃다발과 짐이 든 가방을 챙겨 든 호마레가 자리에 일어서 떠났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키리사키가 조금 분을 삼키는듯한 얼굴을 한 채 응시하였다. 그리고는 테이블로 다시 시선을 돌려 손을 뻗었다. 다소 느릿한 움직임으로 남은 피자 조각을 집어든 키리사키가 조심스레 한입 베어물었다. 살짝 새침한 표정을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음.. 뭐, 맛있네"
늦은 시간, 이슥한 밤이 되었다. 이제 거의 일의 미감 시간인데 아직까지 오지 않는 호마레 선배가 걱정된 히로유키가 휴대폰으로 몇 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는거지? 어째서 불안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꽤 초조한 기분이 되어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다시 흘러갔다.
한편, 거리를 걷고 있던 호마레는 불현듯 불안감과 공포에 휩싸였다. 전신을 감싼 공포가 부르르 전율을 일으켰다. 미세하게 떨려온 떨림이 현재 호마레의 상태를 증명해주었다. 걷는 속도를 올려 평소보다 보폭을 짧게 줄인 호마레가 급히 탁탁 소리를 내어 종종걸음을 걷던 중 휘익 뒤돌아보았다.
한밤중이라서 그런지 거리도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전혀 없어서 오직 호마레 뿐이라 마치 꼭 어디선가 귀신이라도 툭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 분위기와 별개로 아무것도 없었다. 휴우- 이윽고 조금 안심한 호마레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은 뒤 다시 발걸음을 떼려 막 몸을 앞으로 돌아보았을 때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시나?"
"키, 키리사키-!!"
"잠시 네 몸을 좀 빌려야겠어"
대체 언제부터 있었는지 어느 샌가 얼굴 바로 앞 가까이 사악 다가온 키리사키가 호마레의 몸에 빙의했다. 어쩐지 뭔가 무서운 느낌이 들더라니.. 뭐라 소리도 하지 못한 채 눈동자만 크게 커진 호마레는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그대로 손 하나 쓰지 못하고 당해버렸다. 빙의된 그의 몸에서 키리사키가 의미심장한 차가운 미소를 흘렀다. 타락한 푸른빛의 울트라맨 트레기어는 온몸으로 어둠과 혼돈을 표현했는데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 표정이(호마레의 얼굴로) 마치 더 없이 악마처럼 사악해보였다. 그리고 키리사키는, 아니 지구에서의 모습인 '키리사키'라는 인간체를 한 트레기어가 곧 이지스로 발걸음을 향했다.
타이가나 후마, 타이타스, 그들이 있을 민간 경비 조직 이지스로 접근한 트레기어를 히로유키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당연히 겉모습은 호마레이기에 카나 사장도 피리카도 아무도 전혀 깨닫지 못했다. 하긴, 귀신이 아닌 이상 평범한 인간이 알 리 없을 것이다. 뭐, 한가지 방해되는거라면 트라이 스쿼드의 세 울트라맨이 문제겠지─그런 말 있다. 귀신은 귀신을 알아보는 것처럼 울트라맨은 울트라맨을 알아보는 법이라고 평소의 본인들이 알던 호마레가 아니라는 걸 느낀 타이가가 벌써 불길함을 인지한 후 후마, 타이타스와 함께 각각 입을 모아 히로유키에게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라고 일렀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어둠의 오오라가 느껴진 것은 비단 트라이 스쿼드 뿐만 아니었다. 히로유키도 작게나마 그 기운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이지스의 팀원들이 하나 둘 퇴근할 준비를 하였다. 컴퓨터를 만지던 피리카에 이어 카나 사장 역시 서류를 정리한 다음 먼저 퇴근했다. 어째 평상시보다 분위기가 조금 달랐던, 하지만 꽤나 엄청 들떠서 떠들었던 호마레 선배도 이내 퇴근하자 히로유키는 아직 보고서 작성도 써야할게 있는 터라 유일하게 남아 있었다. 사람이 없는 텅 빈 이지스 내부는 정말 고요하기만 하였다.
오늘 뭔가 이상한 하루라고 생각한 히로유키가 트라이 스쿼드와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 받던 사이 무심코 트레기어라는 이름이 나온 말에 우연히 타이가 스파크를 꺼내보려다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혹시 싶어서 찾아봤지만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서 그제서야 앗, 하고 뒤늦게 타이가 스파크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지? 그게 없으면 울트라맨 타이가로 변신하지 못할텐데.. 조금 울상이 되어버린 히로유키가 미간을 살짝 좁혔다가 폈다.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시 하나하나 체크하며 되짚어보던 중 조금 전, 타이가네들이 일러준 것이 떠올랐다. 이미 자신도 그걸 느끼고 있었으나 호마레 선배, 그래! 호마레 선배였다. 아니 분명 말하자면 그건 호마레 선배가 아니었다. 쾅- 소리나게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려친 히로유키가 이미 퇴근했을 호마레를 급히 뒤쫓았지만 벌써 집으로 돌아간건지 알 수 없었다.
한번 마음을 가다듬은 뒤 심호흡을 하며 릴렉스한 히로유키가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이 다음에 이어질 대답으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호마레의 말을 듣고 헛수고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울트라맨으로 변신해서 괴수와 싸우는 일을 아직 이지스의 동료들에겐 비밀로 하고 있는 터라 더욱 직접적으로 타이가 스파크에 대한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일단 지금은 물러나지만 비열하게 호마레의 몸을 빌린 키리사키(=트레기어)를 용서할 수 없어 치밀어오른 분노만을 애써 집어삼킬 뿐이다.
다음날 낮, 그날도 예고없이 날아들어온 사쿠라 경부가 맡긴 의뢰로 임무를 하러 나선 히로유키와 호마레가 잠시 벤치에 앉아 대화를 하며 쉬고 있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호마레 선배도, 이지스의 사람들 모두 자신이 꼭 지켜주겠다며 말한 직후 '지켜주다니?' 하고 스윽 나타난 키리사키가 뒷짐을 진 채 다가왔다. 호마레는 히로유키 대신 무어라 말하려는 중간에 키리사키가 일방적인 흐름을 끊으며 말을 가로챘다.
"미안한데 나, 히로유키 군이랑 할 말이 있는데 자리 좀 비켜줄래?"
"어? 어어.. 그래~ 그럼 히로유키, 이따 보자"
호마레가 자리를 떠나고 뒷모습을 살짝 눈매를 가늘게 뜨고 쳐다본 키리사키가 이윽고 팔짱을 낀 채 벤치에 앉았다.
"어젠 잘 보냈으려나? 소중한 걸 잃어버려서 꽤나 불안했을텐데 말야~ 타이가 스파크가 없으면 넌 아무것도 못하는 평범한 지구인이잖아?"
"비겁하게 다른 사람 몸을 빌려 빙의하기나 하고- 타이가 스파크는 어딨지? 어서 내놔!"
"아~ 그거?"
키리사키는 팔짱을 풀고 곧 타이가 스파크를 꺼내들었다. 히로유키는 자신이 녀석에게 당한 것이 떠올라 다시 울컥했다. 태연자약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자 더욱 화가 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키리사키는 코웃음을 치며 히로유키를 향해 말했다.
"히로유키 군- 네가 과연 이 타이가 스파크를 사용할 자격이 있을까? 그렇잖아~ 애초에 이 물건은 그저 한낱 유대니 뭐니 하며 갖고 놀 단순한 어린애 장난감이 아닌걸~ 네가 울트라맨 타이가로 변신한 순간부터 운명은 시작됐다는거지"
"뭐? 이 악마..!!"
"악마라니.. 말이 너무 심하다? 난 자유로운 영혼이거든~ 그보단 날 광기 어린 호기심이라고 불러줄래?"
"쓸데없는 헛소리 집어치워!"
"어라? 화났어? 훗- 히로유키 군은 히로유키 군대로 있으면 되~ 아니면 아무도 널 신경쓰지 않는 고독을 선사해주길 원하나? 아아- 그건 그렇고 너는 꽃을 좋아해?"
"그건 왜 묻지?"
"아니 뭐, 그냥- 난 이 세상에서 꽃이 가장 싫거든~ 화려하게 폈다가 지는게 제일 덧없이 느껴져서.. 너도 이와 같은 존재일까? 타이가 스파크가 없으니까 울트라맨으로 변신할 수 없어서 네가 아무것도 구하지 못했다는 괴로움과 절망을 맛보는 무력한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방해가 들어와 계획이 전부 틀어져서 귀찮지만 하는 수 없지~ 난 잔업은 안 하는 주의거든"
"..... 악식만을 먹어치우는 악마 주제에!"
"말했을텐데? 난 광기 어린 호기심이라고- 그렇게 하고 갈께~ 잔업은 안 하는 주의라서 말야"
키리사키는 의외로 순순히 타이가 스파크를 넘겨주었다. 아마 일부 자신이 생각하던 계획이 틀어져 크게 흥미를 잃은 모양인듯 했다. 히로유키는 타이가 스파크를 돌려받은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쨌든 앞으로 한번만 더 그랬다간 내가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 트레기어- 명심해"
키리사키는 그런 히로유키의 모습이 매우 흥미로워 마지 않았다. 역시 타이가에서 히로유키로 타깃을 바꾼 건 정말 잘한 일이었던 것 같다. 지금 이렇게나 빛을 흩뿌리고 있지만 분명 그 안에는, 가슴 속에는 어둠이 들어있다는 걸 안다. 조금만 톡 건드리면 마치 빛도 어둠도 모두 혼돈으로 변해 허무가 되어 사라질 것을── 키리사키는 한번 허리를 뒤로 꺾어 고개를 젖혔다가 다시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곤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타이가 스파크, 잘 지켜~ 깨지지 않게.."
키리사키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히로유키와 마주선 뒤 한번 손짓을 하더니 후후, 하고 특유의 차고 조용한 웃음을 흘리며 울트라맨 트레기어로 변했다. 평소 같으면 바로 썼을 트레기어 아이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곧이어 순간이동 하듯 워프하여 연기처럼 스윽 사라지고 없었다. 타이가 스파크를 손에 든 채 덩그러니 혼자 남은 히로유키가 주먹을 꽉 지었다. 어디선가 들려온 트레기어의 독백은 히로유키는 미처 듣지 못했다.
도대체 빛과 어둠의 정의는 뭐지? 그 경계선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궁금하군- 강하기만 하면 할 수 없다고.. 상냥한 빛이 저 멀리 저편 너머 지평선으로 사라졌다.
빛은 말야.. 어둠이 있어야 빛이 되고 어둠이 있어서 빛이 존재해~ 결국 이 둘 사이는 공존할 수 밖에 없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타로의 빛 덩어리를 그대로 가진 너라면 반대로 그 속에 만연한 어둠이 되는 건 시간 문제라고? 조금만 방심할 틈의 여지를 주면 간단히 마음이 부숴져 무너질텐데.. 쿠도 히로유키 군- 역시 너는 정말 흥미로워~
난 자유로운 영혼이라서 잔업은 안 하는 주의거든──'특촬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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