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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년이 지나도 만년이 지나도
    특촬물 2020. 4. 28. 05:05

    * 백곰님께서 프세터로 푸셨던 피아 초전집의 오브 비설 스포 있음 

    * 정말 새롭게 알게 된 비설인데 나는 그거 읽는 순간, 가이가 살던 별이 무너지던 순간에 어떤 식으로든 결국 쟈그라는 방관했다는 얘기 듣고 미쳐서 썼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글이 길어질 정도로 내가 할 말이 많았던가..?! (대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썼는지 기억도 안 남 

    * 트위터에서 곰탱님의 썰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지그재그 ジグザグ-

    누가 세상에서 가장 싫냐고 하면 쿠레나이 가이, 저글러스 저글러, 당연히 이 둘은 서로를 지목할 것이다. 옆에 있어봤자 별 도움 안 되는 귀찮은 녀석이니까 단지 그 이유일 뿐이었다. 그냥 죽을 만큼 정말 싫었다. 수천 년 동안 함께 알고 지내오긴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마음이 맞지 않는 존재였다. 친구끼리도 마음이 맞아야 친하다 아니다 정도의 깊이를 표현이나 가능한거지, 친구라기엔 동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굳이 친구라 부른다면 평행선 같은 악우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성격과 좋아하는 것이 전혀 정반대였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들이라던가, 취향 등 전부 너무나도 판이하게 달랐다. 

    특히 저글러는 O-50 행성의 빛의 고리에서 가이는 빛에 선택받고 자신은 선택받지 못했다는 열등감과 질투 등의 여러가지 감정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울트라맨을 그닥 호의적으로 보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정말 싫어하는 건 아니고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에 비해 울트라맨 오브는 무척 싫은 존재에 가까운 감정이다. 

    오브가 바로 가이니까, 가이가 오브로 변신하는 자니까 당연히 악연의 연속이 지긋지긋하다 못해 짜증나는 이 인연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그렇기에 시간이 많이 흘러 서로 마음을 부딪혀가며 이제 어느 정도 꽤나 갈등이 해소된 지금도 ──단순히 츤데레를 피우고 있는거지만── 여전히 아니꼬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일은 자신에게 있어 씻을 수 없는 것들이었으니까 당연지사였다. 물론 가이 쪽도 마찬가지다. 그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터다. 저마다 상대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그 마음은 기정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상대의 좋고 싫어하는 것까지 너무 잘 알아서 문제다. 

    리더인 긴가를 필두로 한 뉴 제너레이션즈 울트라맨의 모임 때도 종종 만난 적 있었다. 언제나 함께였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두 사람이 각자 따로 혼자서 행동하고 있지만 어쩌다가 의도치 않게 거리에서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물고 뜯는 묘한 신경전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엄청 친한 척 하는 것보다 그게 백배, 천만 배는 더 편하다고 은연 중에 그런 생각이 드는 걸지도 몰랐다. 차라리 이런 방식으로 대하는게 억지로 마음에도 없는 친근감을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속 편했다. 분명 다시 말하건대 거부한 채 밀어낸다고 하나 아주 마음에 없는 친근감은 아니다. 진짜로 없었으면 그날에 이미 절교 선언을 한 뒤 절대 두번 다신 엮이지(운명은 이 두 사람을 자꾸 가만두지 않고 엮어대지만) 않았을 테다. 

    오늘도 그 여느 평소 때와 별반 다르지 않던 일상이다. 그래, 매번 항상 이렇게 먼저 시비를 걸어오는 쪽은 저글러다. '지겹지도 않나' 휴우, 하고 짧은 한숨을 내뱉은 가이가 도리질을 쳤다. 귀찮다. 녀석을 상대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좀 적당히 해주면 어디가 덧나는 걸까.. 오랜만에 모두 시간을 내서 만난 뉴제네 모임에서 가이는 그들과 같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누군가와 탁, 어깨를 부딪혔다. 아픈 어깨를 매만지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려는 찰나, 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가 순간 표정이 굳어진 것은 다름 아닌 저글러였기 때문이다. 

    "넌 또 뭐냐" 

    "그건 이쪽이 할 말이거든" 

    "사과 해!" 

    "하아? 실수로 부딪힌 거잖아! 내가 왜 사과해야 되는데?!" 

    "뭐? 어이, 가이- 나랑 마주친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이해하는데 실수든 뭐든 어쨌든 사람이랑 부딪혔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될 거 아냐!" 

    "그렇게 강압적인 태도로 나오는데 내가 진심이 담긴 사과를 하고 싶겠어?" 

    다소 화가 난 가이가 언성을 높였다. 그래, 저글러는 저글러다. 그가 서포터를 그만 두고 자신의 곁을 떠난 이후로 조금은 변했으리라 생각했다. 내심 그렇게 믿었다. 기대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입증해주었다. 그건 그저 저 혼자 좋자고 빠진 착각일 뿐, 전부 허울 좋은 상상에 불과하지 않는다. 아니, 그가 변했을거라 믿은 자신이 바보다. 이젠 정말 어이 없어서 웃음도 안 나온다.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작정인지 모를 성격은 수천 년 세월을 살면서 여전하였다. 정말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그는 누군가를 직설적이고 현실적으로 비판하는 것 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조언? 허, 당치도 않다. 충고랍시고 자기가 내뱉은 말에 사람이 상처받는 건 모르나? 역시 저 녀석은 그동안 뭐 하나 달라지는 태도를 보이거나 자기 잘못을 반성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변하지 않았다. 

    저글러와 다시 조우하고 그의 사건에 엮어져 서로 마음을 부딪히면서 상대에게 가진 감정은 어느 정도 해소될 만큼 해소되었고 갈등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풀어졌다. 그것은 인정한다. 사실이니까─ 부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이 감정 문제와는 또 다른 별개의 이야기다. 

    앞서 말했다시피 가이는 저글러의 그런 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나마 적당히 참고 넘어가주는 것은 최대한 그를 이해하기 위해 본인이 여러모로 꽤 노력해온 결과였다. 그래서 가이는 종종 저한테 만날 약속을 걸어오는 저글러의 말에도 사실상 그럴 때 마다 항상 거의 피하는 수준으로 뉴제네의 모임이 있다고 그와의 약속을 유보해버린다거나 하는 것이었다. 아마 자주 그 방법을 써먹었던 것 같다. 그게 점점 빈도가 많아져서 어떤 때는 뉴제네의 울트라맨들이 모이자고 한 일이 없었는데도 그냥 그렇다고 멋대로 거짓말을 하여 회피하였다. 

    "아, 왜 또 시비야?" 

    "시비는 항상 네가 먼저 했잖아!" 

    "너만 잘하면 되~ 이것 봐- 또 감정적으로 나오지? 그딴 식으로 행동하지마~ 꼴에 자기도 모두를 지키는 히어로, 정의의 울트라맨이라고 하기는.." 

    "그러니까 네가 안 되는 거야~ 빛에 선택 못 받는 거라고- 빛의 고리가 왜 널 선택하지 않은 줄 알아? 말해도 모를 걸~ 저글러- 그냥 평생 어둠 속만 헤맨 채 살아~ 내 눈에 띄지 말고!!" 

    "뭐라고?! 너 지금 말 다 했냐? 죽을래? 진짜 오늘 너 죽고 나 죽고 아주 사생결단 내자" 

    "누가 할 소릴! 바라던 바다-!!" 

    둘 다 그만 울컥해서 서로의 멱살을 잡았다. 정확히는 빛의 고리에 선택받지 못한 존재라고 단호하게 못 박아버리는 가이의 무자비한 한마디를 들은 저글러가 먼저 그의 옷깃을 확 쥐어뜯듯이 낚아챘다. 

    "뭐뭐, 두 사람 모두 진정하고- 그 마음 이해는 하는데 그래도 이렇게까지 서로 물고 뜯을 정도로 싸울 필요 없잖아?" 

    지금 이 같은 광경을 지켜보던 뉴제네의 리더인 히카루가 먼저 나섰다. 그러나 가이와 저글러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잠시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싸워대는 모습을 본 그들 중 리쿠가 천천히 싸움을 중재하며 나섰다. 

    "저, 죄송하지만 저는 가이 씨도 저글러 씨도 모두 만난 적 있으니까 하는 말인데요.. 멋대로 조언 하나 해드리자면 혹시 편지 써보는 건 어떨까요? 그럼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말들, 글로서는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아, 저도 페가나 라이하한테 그런 일 있으면 주로 쓰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오- 그게 좋겠다! 매번 만날 때 마다 싸우기만 하지 말고 편지로 한번 속마음을 풀어보는 건 어때?" 

    "좋은 방법이지 않아?" 

    "나도 찬성!" 

    "아사히 말을 인용하자면, 싸우면 해피해지지 않는다고요." 

    "에에- 그래도 부끄럽게 편지가 뭐야.." 

    "여기서 제가 낄 데는 아닌 것 같지만 저도 울트라맨 선배들의 말에 동의해요. 관계 개선은 뭐든 좋은 거잖아요?" 

    "하아?!" 

    쇼와 다이치의 말에 옆에 있던 카츠미와 이사미도 거들었다. 뉴제네의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한 히로유키도 마찬가지로 맞장구를 쳤다. 그 반응들에 가이와 저글러는 이구동성이 되어 크게 소리쳤다. 이럴 땐 한마음 한뜻이라니까- 하고 쇼의 말을 이어서 히카루는 피식 웃으면서 손허리를 하곤 '결정 됐네!'라는 말을 하였다. 

    "내, 내가 왜 이런 가이 녀석이랑.. 최악이군" 

    "동감이야" 

    "뭐, 어디 한번 열심히 해보라구?!" 

    완전히 결정 지어버린 히카루의 말을 들으며 두 사람은 서로 찌릿, 하고 노려보았다. 내가 왜? 절대 편지 따윈 쓰지 않겠다는 가이의 말에는 이때 만큼은 저글러도 공감하였다. 그것도 그냥 단순히가 아니라 누구보다 매우 공감 1000% 확률이다. 정말 온몸으로 기분 나쁨을 표현했는데도 아직 씩씩대던 분을 겨우 삼키면서 그들은 여간 좋은 표정을 짓지 못한 채 휙 몸을 돌려 각자 제 갈길을 휘적휘적 걸어갔다. 



                                  ▷  ▷  ▷  ▷ 



    전혀 편지를 쓸 생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저글러는 리쿠의 말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잊을만 하면 한번씩 떠올라서 그저 괴로워질 뿐이었다. 가이가 뭐라고 날 이토록 지긋지긋한 인연의 고리 속에 던져놓는 걸까- 가끔 어쩌다가 지구의 문구점 근처라도 지나가려치면 그 말이 머릿 속에서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맴돌았다. 쯧- 잔뜩 짜증이 일은 저글러가 혀를 찼다. 혀를 차도 기분은 좀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열 받는 느낌 밖에 들지 않아 때마침 제 눈에 보이는 깡통을 세게 발로 쳐버리고 말았다. 

    캉- 거리를 스쳐지나가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쪽을 쳐다볼 정도의 소리가 크게 확산된다. 다 먹은 음료수의 빈 캔은 멀리있는 사람이 들릴만큼 아주 엄청난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데굴데굴 데구르르 굴러갔다. 굴렁쇠같은 챙한 소리도 났다. 꽤나 상당히 있는 힘껏 친 모양이라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음료수 캔은 잘도 굴러가 금방 저글러의 시야에서 사라진 후 이윽고 그 시끄러운 소리 마저 들려오지 않았다. 옛다, 기분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은 가이나 저나 지구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니만큼 그는 특별히 문구점을 들려보길 결심한 후 근처에 있는 팬시ㆍ문구류 따윌 파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한층 교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은 채 이리저리 둘러보던 그가 곧이어 편지지 하나를 발견했다. 각양각색의 귀여운 디자인으로 된 예쁜 편지지와 봉투가 속이 훤히 다 보이는 투명비닐 안에 담겨있었다. 대충 계산을 한 뒤 그것을 들고 나온 그는 앞뒤 돌려보다 역시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미간이 좁혀지며 다소 눈빛이 흔들렸다. 

    "이, 이딴 걸 내가 대체 어째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목에 힘주어 큰 목소리를 낸 저글러의 모습을 마침 타이밍 좋게도 7~8살은 되어보이는 한 꼬마 소년이 보다가 위화감을 느낀 나머지 결국 으앙, 울음을 터뜨리며 천천히 막 뒷걸음질 치더니 엄마를 찾은 것은 더 두말 할 나위 없었다. 그 아이를 쳐다보면서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휴우- 한숨을 들이쉰 뒤 내뱉은 저글러가 좌우로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며 자리를 떴다. 

    더 돌아다닐 데도 없어서 저글러는 지구에 있을 동안 자신이 적당히 머물만한 거처를 잡은 아지트로 돌아왔다. 아, 이걸 뭘 어찌해야 하나 싶다. 그의 심정은 지그재그였다. 직선이 좌우로 왔다갔다 한 듯 그어진 선처럼 저글러의 마음은 그날로부터 지그재그가 되어 멈춰있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나름 화해를 하고 지내고 있다고 하나 한번 입어버린 상처는 쉽게 잘 아물지 않는다. 

    특히 그것이 물리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거라면 더욱 지배되어 고통 받는다. 괜찮아라던가, 아무렇지 않다며 자기 최면을 걸어보지만 쉽사리 괴로운 기억은 아무 일 없었던 것과 같이 그리 간단히 지워지지 않아서 더 견디기 힘들 뿐이었다. 버텨낼 자신이 없는 대신 가이를 증오하고 미워하며 늘 저주하는 삶 속에서 살아왔다는 걸 저글러는 인정하였다. 자신이 저지른 사건의 죄책감도 있으니까 굳이 뭐 숨기거나 거짓말 할 것도, 부정할 필요도 없었다. 전부 사실이었다. 그게 저글러스 저글러,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자신이다. 

    저글러는 깊은 심호흡을 한 다음 마음을 다잡은 채 본격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곧 펜을 들어 몇 번이나 썼다 지웠다(화이트 테이프)를 반복했다. 그런대로 썩 잘 썼겠지, 싶어서 처음부터 내용을 읽어보면 오글거려 연속적인 그라데이션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하고 싶은 말이 제대로 잘 전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마구 헝클었다. 머리를 쥐어뜯듯 힘껏 뇌를 굴려보았다. 하지만 어떻게 전하면 좋을지 몰라 한참을 그렇게 쓰고 찢고, 쓰고 찢는 걸 반복하였다. 

    한편,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이 쪽에서도 저글러와 비슷한 문제를 끌어안은 채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싸맸다. 확실히 뭐라 표현할 길이 없다. 그저 한숨만 계속 내쉬면서 잡았던 펜을 놓을 수 밖엔 없었다. '대체 누가 이걸 하자고 해서..' 혼자 중얼거리며 볼멘소리를 냈다. 필시 저글러도 저글러겠지만 본인도 불만이 가득 쌓였다. 가이는 맨 처음 편지라는 단어를 꺼낸 리쿠와 그것을 맞장구치면서 찬성한 히카루를 비롯한 뉴 제너레이션즈의 울트라맨 동료들이 오늘따라 괜히 원망스러웠다. 

    심지어 여간 배신감 마저 들지 않아서 가이는 지금 좀 여러모로 곤란해졌다. 그리고 그는 새롭게 편지를 몇 번이나 다시 고쳐 쓸 동안 라무네만 몇 병을 벌컥벌컥 시원하게 들이마셨다. 그가 워낙 식성이 좋고 또한 먹는 걸 좋아한다지만, 아무리 가장 좋아하는 것이 라무네라 해도 평소 다섯 병 이상 정도면 많이 먹는 편인데 완전히 다 먹은 빈 라무네 병에서 푸른 구슬을 꺼내놓은 것만 해도 벌써 10개째 넘어가고 있다. 편지 때문인가, 괜시리 라무네만 여러 개 사놓고는 아무 생각없이 계속 마시고 있었던 것을 가이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가 정말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뒤늦게서야 겨우 깨달았다. 



                              ▷  ▷  ▷  ▷ 



    편지를 쓰는 데만 꼬박 이주일이 지났다. 두 사람 모두 뭐라고 써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보니까 어느 덧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버리고 만 것이다. 절대 안 하겠다며 호기로운 말을 내뱉은 것치고는 가이도 저글러도 같은 생각이었다. 저도 모르게 편지 종이를 잡은 이후부터 가이는 틈틈히 뉴제네 모임 때 그 생각으로 가득 빠져 있어서 혼자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았다. 

    가이에게 무슨 말을 하면 그걸 누구보다 진지하고 차분하게 생각하느라 주변을 보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결국 어쩔 수 없이 말을 꺼낸 당사자였던 리쿠와 보다 못한 뉴제네의 리더인 히카루가 그만 쓰고 대충 쓰던 내용까지만 잘 마무리해서 끝맺으라고 일러주었다. 아무래도 그냥 말만 해선 둘 다 안 들어먹을게 뻔하기 때문에 히카루 주관 하에 직접 뉴제네 측에서 관계 개선을 위한 명목을 전제 삼아 편지 교환식 무엇인가를 열었다. 

    "동료의 라이벌과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까지 도와주고 리더는 아직 갈길이 머네!" 

    히카루의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가이는 그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정말 미안했다. 한낱 동료일 뿐인 자신을 그런 존재로 대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비록 뉴 제너레이션즈 멤버는 아니지만 제로가 히카루의 말을 대신하여 '모든 걸 다 받아주는 우리들 사이에 한낱이 뭐야.. 그렇게 말하는 너도 아직 2만년은 이르다고?'라며 손을 브이(V)자를 펼쳤다── 제로 씨의 말이 맞다. 너무 맞는 말이라 가이는 어떤 반박조차 하지 못한 채 그들한테 들리지 않도록 말끝을 살짝 흐렸다. 

    그가 쓰던 편지를 넌지시 쳐다본 제로가 가만히 머릿 속에서 저게 정말 관계 개선이 되는건가 의문을 표하며 베리알에게 편지 쓰는 진지한 자신을 떠올렸다가 '으-' 하고 이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하다. 두번 다신 떠올리기 싫은 건 싫은거고 어쨌든 제로는 오브를 응원해주었다. 

    방금 직전까지도 한사코 편지 따위 교환하지 않겠다며 거부하던 그가 적극 나서는 태도로 변했다. 빚이 하나 져버린 그들을 위해서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뭐라도 하고 싶었다. 반드시 어떤 일이 있어도 저글러와 좋게 이야기 해보자, 이번에야말로 꼭 절대 싸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 가이가 불끈 주먹을 쥐었다. 그의 눈빛에선 이미 결심을 했다는 결연한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그런 결심을 한 것 답지 않게 그는 그때까지도 계속 한참 더 망설였다. 턱을 매만지면서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긁었다. 

    저글러와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 되나, 대뜸 편지를 건네줄 수도 없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대화 분위기를 이끌어가면 좋을지 인생 최대의 고민을 여기서 다 풀어버릴 줄 몰랐다. 하아-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땅이 꺼져라 긴 숨을 내쉰 그가 다시 관자를 긁적였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 없었다. 어떤 원망의 말을 들을지 몰라 저글러와 직접 마주할 자신이 없어 내심 두렵고 무서웠다. 

    현실과 마주한 채 앞을 나아갈 용기가 없어서 여태 할까 말까 머뭇거리던 가이의 등을 히카루가 툭 밀었다. 앞에 한발자국 밀려 순간 걸음을 뗀 가이가 그를 향해 의도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눈동자가 커지며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뒤돌아 보았다. 선배와 후배 너나 할 것 없이 뉴제네의 동료들은 모두 영문을 몰라하는 녀석에게 저마다 한마디씩 말을 꺼내며 힘을 실어주었다.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우리들은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을께! 그러니까 울트라맨 오브는, 가이는 가이로서 있어줘!" 

    "모두 그렇게까지.." 

    마지막으로 히카루가 말을 외쳤다. 겨우 몇 문장의 말들을 들었을 뿐인데 단지, 그것만으로도 가이는 충분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 무언가 할 수 있을 듯한 용기를 받았다. '어- 나도 솔직하게 쫓아가고 싶어! 그럼-' 가이는 저글러의 일로 여러가지 생각을 한다고 다양한 고민들에 빠져 시선을 피했던 처음과 달리 이번에는 확실히 그들과 제대로 얼굴을 응시하였다. 이제 현실에 놓여진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가이가 뉴제네 멤버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거린 뒤 거리를 박차를 가해 뛰어갔다. 탁탁, 발걸음 소리에서 경쾌한 리듬이 났다. 그런 쿠레나이 가이의 입가에는 은은하게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숨 차게 도착한 약속 장소에 저글러는 아직이었다. 가쁜 호흡을 고르며 서 있었는지도 약속 시간부터 10분이 훨씬 지나있었다. 조금 기다리기 지칠 때쯤이야 서서히 멀리서부터 검은 인영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시야의 배경에서 좀 더 가까이 들어왔다. 저글러다. '가이- 너도 같은 생각이냐?' 한마디를 툭 내뱉은 그가 가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딴 소리하면 당장 제가 그렇게 자랑하는 사심검을 빼들 생각 만만하였다. 가이는 또 다시 한번 망설였다. 끝까지 고민하며 생각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자 다소 울컥한 저글러가 할 말 있어서 온 거 아니냐며 살짝 언성을 높여 말했다. 

    머뭇거리면서 알 수 없는 말을 횡설수설한 가이가 자켓 안 주머니에서 편지 봉투를 꺼냈다. 어째 둘이 각자 생각했던 마음은 서로 비슷한 듯 했다. 지금 굉장히 하고 싶은 말이, 반드시 전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았지만 잠시 말을 아꼈다. 저글러도 가이의 속마음을 대충 눈치챈듯 저에게 편지가 든 봉투를 어물쩍 건네는 그의 손을 다소 거칠게 확 낚아챘다. 그리고는 앞뒤를 살펴보더니 봉투를 열어보기 직전, 자신도 은근슬쩍 편지를 스윽 건넸다. 비록 시선을 바라보지 않았다.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회피한 채 팔만 그를 향해 쭈욱 뻗었다. 

    저글러를 한번 쳐다본 뒤 가이는 차분하게 편지를 잡았다. 그는 이미 뜯어보고 있었고 가이 역시 마음 속으로 하나, 둘, 셋, 숫자를 센 후 드디어 밀봉된 봉투를 뜯었다. 선물이나 이런 건 원래 과감하게 뜯어봐야 하는거지만 조금은 글을 읽어볼 용기가 없는 마음을 애써 꾹꾹 눌러담았다. 가이는 봉투의 크기에 맞춰 반 접혀진 편지를 펼쳐들었다. 

    힐끔힐끔 그의 행동을 곁눈질하던 저글러도 이제 본격적으로 편지지를 펼쳐 읽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의 떨림을 느끼면서 서로 쳐다보았다. 당연히 화가 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글러가 받은 가이의 편지 속에는 첫마디로 시작된 문장은 바로 [가이- 너 그렇게 살지마라]였으며 가이 또한 그가 쓴 첫 한마디가 [저글러- 너 그렇게 살지마]라고 미묘하게 조금 휘갈긴 검은 글시체가 적혀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 편지에 처음부터 이리 부정적인 속마음을 드러내는게 어딨냐" 

    "왜? 어차피 직접 말로 하지 못하는걸 글로 표현하는건데 어떤 식으로 쓰든 내 마음이지~ 너랑 상관없잖아?" 

    "너 그렇게 살지마라~" 

    "너도 그렇게 살지마!" 

    하여튼 말이 안 통한다 이거지- 관계 개선은 무슨 개뿔, 지나가던 사람이 비웃겠다. 사이가 좋아지기도 전에 싸움이 일어날 기세다. 여기서 더 화내봤자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첫 문장으로 이미 열받은 상태에서 그들은 각자 가슴 속 깊은 내부 안에서 무언가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꽃을 억눌러 삼킨 채 다시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거기에는 할 말, 안 할 말 구분하지 않고 전부 적혀있었다. '이게 또-' 저글러가 혀를 찼다. 저 녀석 때문에 오늘 하루 몇 번이나 혀를 찼는지 모른다. 아주 기분 최악이었다. 가이도 '진짜 이 사람이.. ' 하고 낮게 중얼거렸다. 어이가 없어 말도 안 나오는 건 그 다음부터였다. 첫문장 사태 이후 다시 읽어내려가던 그들이 또 한번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그러진 모습이 확연히 얼굴에 드러났다. 슬슬 화가 났다. 아니, 억지로 겨우 참았던 분노가 하마터면 다시 폭발할 뻔 했다. 

    점점 속에서 올라오는 화기를 어떻게든 참아가며 마음을 차분히 진정시켰다. 이럴 땐 심호흡이 좋댔는데.. 상대를 헐뜯고 힐난하는 내용들만 가득 들어있어서 거의 장점은 일체 없고 단점만 꽉꽉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이렇게나 상대에게 엄청 할 말이 없었던가? 가이와 저글러는 묘하게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글을 읽었다. 하지만 참 가관인 건 갈수록 도가 지나쳐 서로에게 있어서 더욱 건드려선 안 되는 것까지 건드리고 말았다. 

    편지 내용엔 가이는 저글러에게 O-50 행성에서 있었던 그날의 일, 빛의 고리에 자신이 빛의 전사로 선택받지 못했다는 절망으로 점철된 좌절감과 자괴감, 그것도 있었는데 게다가 다이아몬드 신성 폭발, 황금 오로라, 기타 등등 자신이 살던 행성이 파괴되던 날의 이야기라던가 그랬다. 저글러도 그간 오브의 행적과 여러가지 가이를 까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친구라면서, 말로는 친구라면서(악연이라는 건 둘째치고) 모두 상대가 가진 실력과 능력을 질투하거나 되먹지 못한 성격이라며 험담하는 내용 외에는 딱히 특별한 것이 없었다. 이것이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의 차이인걸까? 

    저글러의 표정이 심히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 옆에서 가이도 완벽히 절제 되어 있던 감정을 다 배제하지 못하고 벗어나려는듯이 마음 속에서 틔어올랐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순간 그들은 두말 할 것도 없었다. 당장 그 자리에서 검을 소환해 빼어들었다. 가이가 손에 든 오브 칼리버와 저글러의 사심검이 맞대며 챙, 하는 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졌다. 한참 아무 말 없이 노려보면서 싸우던 중 이윽고 저글러가 먼저 칼을 떨어뜨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넘어진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휘익 바람을 가르고 날아들어온 오브 칼리버가 얼굴 가까이에서 멈췄다. 

    "차라리 날 죽여~ 그렇게 죽을 때까지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발버둥치고 시달려 혼자 모든 짐을 끌어안은 채 괴로워하지 말고-" 

    "왜, 왜 나만 잃어야 하는데? 내가 오브가 될 운명이라서? 처음부터 그런 운명이라서? 그렇다면 난 이 힘 따윈 필요없어! 나는 울트라맨 실격이다!!" 

    "너 고장 났냐?" 

    "뭐? 고장? 하- 어째서 네가 고장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어?" 

    "뭐라고?!" 

    "내가 왜 고장났는데.. 내가 왜 이렇게 변했는데.. 이게 다 전부 너 때문이잖아! 저글러! 네가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거잖아!! 처음부터 너만 아니었어도 나는 이렇게까지 내 마음이 고장나지 않았어~ 이게 전부 다 너 때문이라고-!!" 

    "가이..." 

    가이는 미친듯이 울며 소리쳤다. 악다구니를 쓰면서 제 감정을 솔직하게 하나하나 토해내는 그의 진심에 저글러는 태클은 커녕,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가이는 울음을 삼켰다. 별이 무너지던 날 그저 옆에서 지켜보며 방관만 하던 너- 나는 아직도 그날의 네 모습이 각인되어 잊을 수 없는데.. 지금도 이렇게 괴로운데 너는 내 마음을 알까? 그에게는 미처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가만히 마음 속으로만 되내었다. 차마 그것까지 본심을 드러내면 그 녀석도 분명 괴로워 할테니까── 

    이기적이다. 참 모순적이다. 그가 괴로워하는 걸 보고 싶었으면서 한편으론 자신처럼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니까다. 가이는 그가 충분히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걸 알고 있다. 겉으로는 그러지 않은 척 해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였는지 정말 깊이 알고 있었다. 그동안 우주의 행성들을 떠돌아다니면서 수천 년을 함께해왔으니 상대를 너무나 잘 알았고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다. 악연이라고 하나 필시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지금은 그리 생각하기로 하였다. 

    눈물을 흘리며 가이는 그에게 향한 오브 칼리버를 거뒀다. 저글러는 예전, 가이가 자주 홀린듯이 하늘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잡으려 했던 모습을 떠올렸다. 지금은 아니지만 저 시절의 가이는 그랬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텅 비어진 쓸쓸한 마음을─ 강렬하게 뇌리에 박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알아~ 나도 많이 힘들었으니까.. 네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안다고-" 

    "그러니까 이젠 널 용서하겠어" 

    "멋대로 용서하고 후회나 하지마라?!" 

    가이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훗- 하고 피식 웃어버린 저글러가 이윽고 옆에 떨어진 사심검을 들고는 녀석이 내민 손을 탁 잡았다. 그는 한번 어깨를 툭 친 뒤 자리를 떠났다. 서넛 걸음 정도 걸어갔을 즈음 가이가 문득 '저글러!' 하고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걸음을 멈춘 저글러가 뒤돌아보았다. 아까와 같은 원망 섞인 눈빛은 아니었다. 대신 제 안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의 감정이── 

    "우린.. 천년이 지나도 만년이 지나도 친구, 맞지?!" 

    저글러는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미미한 미소를 띄웠다. 본인 나름의 행동으로써 긍정한다는 뜻이다. 무슨 청춘 드라마도 아니고 평소라면 저 오글거리는 멘트 따위 아주 펄쩍 뛸만큼 질색하고도 남았을테지만 뭐, 오늘만은 그냥 적당히 넘어가기로 하였다. 계속 지그재그였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정말 지그재그인 마음이었던 것은 비단 저글러 뿐만 해당되는게 아니었다. 가이 역시 그랬다. 그런 아픈 경험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걸까? 그럼 나는 울트라맨 오브로서, 쿠레나이 가이라는 한 사람으로서 조금 더 성장했을까? 

    우선 지금 내 마음이 편하자고 조금 이기적인 행동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 그를 용서한 시점에서 이미 성장했을지도─ 어느 의미로 그다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억이라 할 것도 없는 저글러와 함께한 지나간 날의 수천 년 동안의 덧없는 추억들이 아스라이 머릿 속에 스쳐지나간다. 

    자신에게 있어 저글러는 아직 필요한 존재다. 가이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으나 오브 링에서 푸른 불빛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가이는 이내 저글러가 자신이 서 있는 배경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 뉴제네 울트라맨의 동료들이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을 카페를 향해 걸었다. 

     

                      

                                                            Epilogue 



    가이는 바닷가를 찻았다. 가끔 한번씩 파도가 칠 때 마다 수면 위의 하얀 물결이 잔잔하게 일렁거렸다. 누군가에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 이야기- 그는 가슴을 꾹 부여잡았다. 그리고는 곧 재킷 안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하나 꺼냈다. 코르크 마개 뚜껑이 닫혀진 미니 보틀이다. 유리병 안엔 조그만 쪽지가 들어있었는데 차마 저글러에게 쓰지 못한 편지의 마음이 이쪽에 담겨있었다. 

    절대 두번 다신 이걸 열어볼 리 없을테니까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몇 번이나 쓰길 고민하며 망설인 편지지에서 그는 썼다 지웠다를 계속 반복하다가 내내 쓰지 못하고 그와 교환했던 편지에 험담만 가득 적어버리고 말았지만 따로 하나 더 쓴 것이 있었다. 그게 바로 이 쪽지이다. 진짜 자신의 속마음이 담긴 글이었다. 하지만 절대 이것만큼은 보여주기 싫었다. 어차피 전해줄 용기조차 없을 뿐더러 오히려 그래서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저글러가 이 편지를 절대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영원히── 

    그저 가슴 속의 이야기로만 남긴 채 언젠가 오늘을 다시 떠올릴 때까지 전부 잊어버리자고 다짐한 가이는 이내 편지가 든 코르크 마개 유리병을 푸른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는 바닷물에 가만히 띄워보냈다. 그러자 일순간 파동이 생긴 잔물결이 흔들흔들거린다. 가이의 마음을 실은 보틀이 하늘에 반사되어 비춰진 구름을 타고 두둥실 흘러갔다. 

     



                                   
    To 저글러, 닿지 않는 너에게 


                                                From 가이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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