シア 2021. 8. 29. 20:44

* 온객행이 주자서를 만나기 본편 이전의 시점 

* 10대 악귀들과 함께 무언가의 우당탕탕 일상 이야기 (소소한 개그와 우울함을 넘나 듬.... / 단문으로 쓰려다 실패함

* 원작 소설이 아닌 드라마 산하령 기반으로 봐도 OK 

 

 

귀신들은 다양한 개성을 가졌다. 보통 사람보단 훨씬 일그러진 감정을 갖고 있고 절대 평범하지 않다. 무공 지수도 일반 고수들에 비해 격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청애산 귀신의 골짜기. 일명 귀곡이라 불리는 이곳은 그 중에서도 특히 최저 최악의 10대 악귀들이 존재했다. 그냥 귀신도 아닌 귀(鬼) 자 앞에 악할 악(惡) 자가 붙은 만큼 이들 사이의 상성도 매우 최악이었다. 겉으로는 사람.. 아니 귀신 좋은 척 행동하지만 일부 귀신 중엔 앞뒤 다른 녀석들도 많았다. 그런 가운데 온객행은 이 무리를 이끄는 귀곡의 주인, 귀곡주였다. 

온객행은 지금 심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전에 작은 임무를 맡긴 적 있었는데 엄청 큰일도 아니거니와 결국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진 일 처리는 정말 화가 났다. 아니, 이렇게 간단한 임무를 주었건만 이 정도조차 제대로 완수해내지 못한단 말인가? 그는 화가 나 소리쳤다. 10대 악귀는 처음에 영문도 모른 채 ──정확히 말하면 어렴풋이 현재 상황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건 느끼긴 했다만── 한 자리에 나란히 집합되어 모여든 자 마다 모두 하나같이 어쩔 줄 몰라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었다. 

"이제 어쩔 셈이냐!" 

"그게.." 

"죄송합니다. 곡주님.." 

"너희들끼리 쓸데없는 싸움에 다 되어간 일을 그르쳤다. 어떻게 책임질 거지?"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못했다. 반란을 일으킨 배신자 귀신 놈을 한 명 잡으라 명령했더니 처음에는 그저 순조롭게 진행될 줄 알았던 것은 작전 계획을 수행하는 중간에서 실패해 말아먹었다. 

도대체 서로 안 좋은 감정 싸움이라도 했는지 네 탓이라 돌리고 미루고 하다 일이 이 지경까지 흘러가 버린 것이다. 온객행은 귀곡주로서 그냥 간단히 넘어갈 수 없었다. 또 무엇보다 이들의 성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편이기에 더더욱. 

"훗- 지난 몇 달간 허허 웃어넘겼더니 내가 만만하게 보이지?" 

"곡주님, 놓친 건 저희 잘못이 맞으나 나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것만은 참작해주십시오" 

"닥쳐라! 백무상-" 

입에 발린 감언이설을 연출하는 꼴이라니.. 어이도 없고 이해도 가지 않았다. 오히려 온객행의 성질만 더 돋울 뿐,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 그는 싸늘하게 식은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내뱉었다. 소름 끼치도록 폐부를 찌르는 그의 모습에서 10대 악귀들은 말 없이 침묵한 채 소스라쳤다. 

"무릎 꿇어라" 

"하지만.." 

"시끄럽다! 여러 말 하지 마라" 

"온 곡주, 차라리 아예 심복을 더 풀어놓는 게 어떻습니까?" 

귀신 무리 중 그나마 침착한 성품을 가진 희상귀가 호흡을 고르며 신중하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붉은 옷이 참 매력적인 귀신으로 다른 녀석과 비교하면 꽤 차분하게 행동하는 편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타 귀신과 비교했을 때 말이다. 하여튼 온객행은 희상귀의 의견을 듣자 조금은 한 박자 쉬고 그 놈의 성미를 죽였다. 

"그렇지 않아도 일단 명령을 내리긴 했어~ 나머진 알아서 잘하겠지" 

"그런데 우리를 전부 집합시켜 놓고 류천교는 안 보이네요?" 

"네 알 바 아냐" 

10대 악귀 내 일원은 성별이 여성인 류천교와 희상귀, 조직의 수장인 무상귀 아래, 흑무상과 백무상, 개심귀, 급색귀, 식시귀, 그리고 장설귀와 조사귀가 소속되어 있는 조직으로 최강 무투파 집단이다. 온객행에게 불러가 혼나느라 흑무상은 이제서야 10명의 귀신들 중 모인 자는 총 9명이고 하나가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충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린 온객행을 쳐다보다 무슨 이야기를 더 이어가지 못하고 그저 '네' 하고 거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귀곡주만이 앉을 수 있는, 권력을 상징하는 것과도 같은 특등석에서 다리를 꼬고 앉은 그가 슬며시 옆을 향해 허리를 비스듬히 젖힌 다음 등을 기댔다. 잠시 눈을 붙이겠다며 이르곤 그대로 눈을 감고서 짧은 잠을 청했다. 사실 잠이 오진 않았지만 배신자를 잡아 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따분함을 조금 지워버리고 싶었다.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다. 10대 악귀는 여전히 자기네들끼리 하네 마네 떠들고 온객행은 도저히 시끄러워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었다. 또 다시 짜증이 울컥 밀려온 그가 옆에 있던 물건을 휙 던졌다. 그러자 그의 내력이 실린 물건은 공중에서 한 바퀴 빙글 돌아 마치 과녁의 정중앙에 날아든 화살처럼 정확히 백무상의 이마를 맞고 튕겨 나가 바닥으로 힘없이 툭 떨어졌다. 

매번 이런 중요한 순간은 항상 그의 참담한 몫을 담당했다. 사실 원래 장설귀가 맞을 뻔 했으나 백무상을 앞세워 재빨리 뒤편을 향하여 몸을 숨겼기 때문에 도리어 이쪽이 당한 셈이다. 그러면서 적반하장이라고 얄미운 소리 밖에 안 하니 별로 엮이기 싫은 기분이다. 

"미쳤냐? 왜 날 방패로 삼은 거야!" 

"글쎄, 내가 손해 보고 싶진 않거든" 

"한 번만 더 그래 봐~ 그러다 내가 아주 죽여버리는 수가 있어~ 조심하라고?!" 

"시끄러워! 내 잠을 방해하지 마~ 둘 다 거기서 
거기 거든" 

"......"

"죄송합니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온객행이 다시 잠을 자려 했을 때다. 무료한 것이 싫어 따분함을 달래기 위해 잠이라도 잘 생각이었는데 어째 오늘은 그 조금의 여유 따위 주지 않는다. 운이 안 좋은 모양인 듯 하여 다음 번엔 부적술을 써야 할 판이다. 문이 세게 쾅 열리면서 자색 의상을 꼭 여민, 제멋대로 말투 험한 소녀와 그 옆에는 10대 악귀의 일원인 류천교가 검을 휘두른 채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지 안을 들어왔다. 

소녀는 악귀의 우두머리한테 '잡아 왔어요. 이 녀석이죠?' 하고 당돌하게 말했다. 귀신 마저 두려워 하지 아니한 소녀의 이름은 바로 고상. 온객행은 한쪽 입꼬리를 스윽 올린 채 무언가 재밌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양, 손가락을 한번 휘익 돌리면서 이를 아주 흥미로운 듯이 바라보았다. '역시 아상이군' 그 말에 고상은 엄청 자신감 가득 찬 눈빛을 하였다. 그리고 당연한 거 아니냐며 되받아쳤다. 류천교가 대강의 경위를 늘어놓는 걸 듣던 온객행은 그녀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뒷말을 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나? 갈가리 사지를 찢어 죽일까.. 숨이 넘어갈 정도의 고문을 할까.. 뭐, 어느 쪽을 선택하든 네 녀석의 목숨 따윈 없지만-" 

"우리 귀신에게 배신자의 자비라는 것이 있습니까-" 

"내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그게 귀곡의 규칙 아닌가요? 하여튼 은근 마음 약한 척 선택권 준다니까.." 

"천교.. 아상.. 
아아, 나는 부하의 의견을 잘 수용하는 상냥한 귀신이니까- 뭐, 모두의 앞에서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도 좋지 않은가" 

온객행은 조소하듯 광기 어린 차가운 웃음을 흘렀다. 천천히 좌중을 둘러보며 지금부터 연회를 열 터이니 술을 가져오라 소리쳤다. 곡주의 명령에 주변이 갑자기 허둥지둥 부산스레 바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잠시 후 그들은 맛 좋은 술과 음식을 내어왔다. 곧 소소한 잔치가 벌어지고 금방 분위기가 뜨겁게 무르익었다. 

이때쯤 그가 귀신들이 보는 앞에서 배신자 처단을 할 목적을 작정하고 중앙으로 불러든 뒤 자신의 내력을 사용해 물리적인 힘을 강타했다. '배신자에게 어울리는 건 죽음이란 결말 뿐이다.' 한 번 더 귀신의 능력을 펼쳤을 때 그 귀신은 죽고 싶지 않다는 절규와 함께 순식간에 전신이 입자화 되어 소멸해버리고 말았다. 

보는 이 마저 기괴스러운 연출이다. 10대 악귀들은 흠칫 몸을 잘게 떨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태연히 그 광경을 응시하던 고상이 호흡이 끊기듯 숨을 죽이는 것을 눈치챈 류천교가 가만히 손을 뻗어 어깨 위에 얹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마음이 안정될 수 있었다. 고상은 망설였다. 과연 지배와 복종 밖에 없는 이 세계에서 나는 잘 이겨나갈 수 있는 것인가,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제 귀곡주가 차가운 냉혈한이란 건 진작 알고 있음에도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바랐던 걸까.. 가족이라 생각하나 온객행이 보여준 행동엔 무엇 하나 흐트러짐 없이 철저했고 표리가 달랐다. 

연회는 아직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모인 귀신들은 그렇지 못했다. 온객행이란 귀곡주는 이전의 다른 귀곡주와 확연히 달랐다. 약한 자는 사라지고 강한 자가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그는 다소 이질적이고 특이한 존재였다. 그래서 반쯤 불만을 제기하면서도 온객행을 경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맨날 툭하면 이 구역의 미친 놈이야, 를 시전하며 약한 존재는 필요 없다던가, 강한 자가 살아남아야 한다느니 등, 어쩌고 소릴 내뱉지만 본심은 아니라는 걸.. 너무나 상냥하니까.. 

"뭐냐" 

"사람 놀라게 좀 하지 마요. 자기가 무슨 대단한 존재인 마냥..." 

"아상- 태클 걸지 마~ 왜 이야기가 그쪽으로 새는 거야!" 

"그럼 뭐라고 말해요?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아, 몰라" 

"저기.. 남은 술은 어떡하죠" 

"그딴 건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고-!!" 

"자, 그럼.." 

무겁게 짓눌린 공기의 흐름이 바뀌어졌다. 살벌했던 분위기는 어느 새 풀려진 상태다. 다행히 어색해져 버린 상황을 고상이 먼저 깨뜨려준 덕분에 가능했다. 온객행은 조금 해이한 상태가 영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인듯 못마땅하다며 고개를 가로저은 행동과 달리 얼굴은 미미하게 웃어 보였다. 반복된 괴로움과 악몽 같은 시간 속에서 보낸 애절한 나날이 있기에 지금을 지키고 싶었다.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 손을 뻗으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 것인가.. 증오로 불타오르는 눈동자 속에 대체 어떤 세계가 비치고 있을까.... 

그래도 원하고 있었다. 왜? 무엇을? 미래에 어떤 일이 닥쳐올지 몰라도 마음 둘 곳은 오직 하나 밖에 없다. 온객행은 지금 이 공간만이 유일하게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이 있을 장소라 생각하였다. 이조차 폐색감과 불안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이 기분을 어딘가 발산하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 이겨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마지막까지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자기자신 뿐── 

어디까지나 강함을 내보이기 위한 수단. 결코 내가 원한 적 없는 힘이다. 하지만 이젠 그 힘이 전부라 할 만큼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채다. 처음부터 가지고 싶었던 것도 원해서 생긴 능력이 아니었다. 허나, 귀곡의 정점에 서면서 일상은 많은 것들이 달라졌고 한번 엎질러진 물은 더 이상 주워 담지 못하듯 무능했던 이전으론 되돌아 가기 싫었다. 

굳이 예를 들면 모순이란 수식어가 퍽 잘 어울릴 터다. 선악을 놓고 정의 운운하면서 입맛대로 평가와 가치 판단을 내려버리는 오호맹, 그리고 강호 사람들을 보면서 그가 정말 속절 없게도 무의미한 짓인 것 같다고 생각하자 순간 괴리감을 느꼈다. 

이상적인 낙원을 찾을 수 있기야 한가. 문득 나락으로 떨어져 밑바닥을 향해 한없이 추락하는 기분이 된 온객행이 이내 술병에 든 남은 술을 전부 비워냈다. 기지 안은 시끄러웠다. 어째서 분위기에 휩쓸리지 못하고 답지 않게 오늘은 왠지 울적한 감정을 지워내려 미친 듯이 취해버리고 싶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