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보여준 환상이 아닌 현실
* 가면라이더 가이무의 4호 라이더인 가면라이더 잔게츠 외전 연극 무대 완결 이후 시점을 바탕으로 다룬 이야기로 마사히토가 이랬으면 좋겠다, 혹시 타카토라가 이런 일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상상해서 쓴 취향글
* 그냥 시작조 코우타와 마이랑 시즈미야 형제를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근데 어쩌면 정말 죽은 뒤 한번 만나지 않았을까 싶음~ 당연하지만 무대 스포일러와 인용 대사가 조금 있습니다! 또한 어디까지나 공식에 의거하지만 마사히토와 카게마사에 대한 극히 주관적인 캐해석이 있습니다!
잔게츠 카치도키 록시드에 대한 언급이 살짝 있음! 무대 마지막 최후의 결전에서 타카토라랑 마사히토가 둘이 일기토를 벌일 때 모두 변신이 풀렸고 완전 망가져서 부숴진 록시드 모습이 안 나왔으니까 그럼 역시 앞으로 잔게츠 카치도키도 타카토라가 자신의 새로운 강화폼으로서 사용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반쯤 설정 날조~ 랄까, 생각보다 꽤 길게 썼길래 타카토라랑 마사히토 관련으로 몇 개 썼던 소설들 모두 나중에 회지로 만들어야겠다.ㅋ
잔게츠 무대 캐릭터로 책 만들면 사실 분! 미리 예약 받습니다.ㅋㅋ 일단 무대 마지막에서 타카토라가 마사히토에게 한 「변신!」이란 말에 담긴 진정한 의미에 대해 중점을 두고 썼는데.. 왠지 멋대로 이래도 되는건가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뭘까.....
<가면라이더 가이무 사운드 트랙 26 - 청춘란화>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겨우 눈을 떴다. 칠흑같던 어둠 속을 벗어나 밝은 빛을 받으니 순간 눈이 부시며 미간 사이를 좁혔다. 살짝 찡그린 채 팔로 가렸다가 다시 떼어냈다. 갑자기 눈을 떠 깨어났으니까 무리도 아니다. 그대로 일어서서 앉았다. 뭔가 엄청 오랫동안 잔듯한 기분인데 대체 뭘까? 새 하얗게 물든 하얀 존재가 느릿, 주위를 두리번 둘러보았다.
"여긴 어디?"
"아! 이제야 깨어났네~ 저기, 코우타-"
"응~ 마이-"
눈 앞에 발랄하게 절 내려다보고 있는 그녀가 한 남자 쪽을 향해 '코우타-'라고 외치면서 시선을 돌린 뒤 말했다. 그러자 코우타는 그녀를 '마이'란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그의 미소엔 감히 어느 누구조차 절대 흉내낼 수 없는 미소를 가득 지어보인 채였다. 그때 하얀 존재는 이런 느낌을 받았다.
전에는 없는 무언가, 따스하고 온화한 미소, 그리고 그 외에 것도 어떤 무엇이 새로운 신비로움을 자아내도록 만들었다. 마치 천사, 아니 천사보다 좀 더, 에.. 그러니까 뭔가 뭐라고 말을 해야되나? 그래! 이를테면 신- 신같은 느낌이다. 딱히 뭐라 말할 수 없는 형용한 기분이 흘러왔다.
"당신들, 누구야?"
"신! 이라해도 말이지.. 코우타- 카즈라바 코우타- 아, 그냥 편하게 코우타라고 하면 되"
"나는 타카츠카사 마이~ 이 별의 신인 코우타와는 같은 신이라구-"
"그래~ 코우타와 마이인가.. 꽤 들었어~ 자와메 시에 관한 정보를 좀 수집했거든"
코우타는 웃으면서 '여기-'라며 드링크를 건네주었다. '고마워' 짧은 소리를 내뱉은 후 마사히토는 뚜껑을 열었다. 간단히 목을 축인 뒤 물병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동시에 옆의 회색 정장차림을 한 누군가가 천천히 몸을 움직이더니 이내 눈을 뜨고 깨어났다.
"아! 그쪽도 드디어 정신 차렸네"
그리 말하면서 코우타는 마사히토 때와 같이 드링크를 건네주었다.
"카게마사!"
"형!?"
재빨리 일어나 마사히토는 카게마사의 몸을 잡고 일으켜세웠다. 조금 내려온 다크서클과 투명할듯 허옇다 못해 새파랗게 질린 창백한 피부가 뱀파이어처럼 으시시한 분위기를 주었다. 금방 깨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 기운이 없던 그가 콸콸 시원하게 몇 번 물을 들이킨 다음에야 겨우 이전처럼 활발하게 생기가 돋은 얼굴을 할 수 있었다.
"우린 이제 죽은건가"
조금 안심한다는 표정을 지은 마사히토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가 들으라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말을 낮게 중얼거리듯이 독백하였다. 어디까지나 한없이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와 특유의 미소를 유지한 채 그렇게 말했다. 코우타는 그런 마사히토를 잠시 응시하다가 다소 한발 멀리 걸었다.
코우타와 마이, 각각 헬헤임 숲의 침식이 찾아와 세계 멸망이라는 재앙이 덮쳐왔던 지난날, 결국 마지막으로 승리를 거머쥔 이들이 금단의 황금 열매를 손에 넣고 여기 이 새로운 행성에 와 정말 지구와 비슷한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엄청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댄스 팀복이 아닌데 다소 무거운 신의 갑주를 하고서도 자와메 시의 비트 라이더즈의 팀 가이무로 활동해온 것이 아주 헛일은 아니었던지 은근 요긴하게 써먹는 것 같았다. 마음 속 어딘가엔 여전히 스트리트 댄서의 신체 감각과 리듬감, 또한 댄서로서의 본능이 남아있는 것인지 모를 코우타가 이리저리 발을 휘휙 휘돌렸다.
탁탁 앞을 향해 밟는 스텝과 율동이 노련미가 넘치는 센스를 만들어주었고 기분 좋게 비트 라이더즈의 합동 댄스의 후렴 부분을 하였다. 그 모습을 본 마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코우타 옆에 뛰어들었다. 그가 손을 탁- 튕기니까 어디선가에서 비트 라이더즈의 댄스 비트가 흘러나왔다. 그 음악에 맞춰 본격 몸을 실은 두 사람이 즐겁게 춤을 췄다.
뭔가 순간적으로 흰 망토를 흩날린 신의 갑주와 팀 가이무의 상징인 파란색과 다름없는 푸른 파카가 마치 꼭 오버랩되는 것처럼 하나가 되어 겹쳐지는 환상이 나타났다. 다이나믹하고 매우 역동적인 움직임을 따라 멍하니 바라보던 시즈미야 형제는 저도 모르는 순간, 순식간에 관객이 되어 함께 입꼬리를 옅게 올리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합동 댄스가 끝난 후 마이가 시즈미야 형제가 있던 자리로 돌아오고 코우타와는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었다. 이내 먼산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손을 허리에 짚은 후 말했다.
"그렇구나~ 그건 그렇고, 얼핏 생각은 했는데 설마 그 고명한 타카토라가 이렇게까지 몸이 망가질 정도로 엉망진창될만큼 엄청난 과거가 있을 줄 몰랐다고!? 좀 더 빨리 말해줬다면, 알아차릴 수 있었다면, 아니 그 전에 일찍 녀석을 만났더라면 조금은 괴로운 짐을 함께 짊어줬을텐데.. 타카토라- 너 정말 고집쟁이구만~"
"훗- 너, 예전의 나와 비슷한 소릴 하는군"
"에에? 그, 그런거야??"
몸을 휙 돌려 마사히토를 바라본 코우타가 팔을 들어 머리를 긁적이면서 멋쩍은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코우타 곁에 가까이 다가왔다. 왠지 모르게 마이와 카게마사 두 사람은 둘이 나란히 선 코우타와 마사히토를 쳐다본 다음 다시 서로 마주 본 채 '으응?'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인류의 미래를 지키고 싶었는데 오히려 타카토라한테 구원받아버렸네~ 의외의 전개가 되버릴 줄 몰랐을거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그 녀석, 예전부터 그랬다고- 물론 나도 내가 타카토라랑 진정으로 친구가 되어 가면 안에 숨은 그의 진짜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말인거지만- 뭐, 별 그닥 상관없으려나.."
깊은 심호흡을 한 코우타가 기분 좋은 공기를 마셨다가 내쉬었다. 마이너스 가득 음이온이 복잡한 머릿 속과 무겁게 짓눌린 답답한 가슴 속을 시원하게 해방되는 것처럼 기운 넘치도록 바꿔주었다. 이젠 저 피톤치드가 난무하는 주변의 헬헤임과 인베스들이 마사히토의 맑고 검은 눈동자 안에 비쳤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신경쓰였다. 아, 미묘하게도 이거 엄청 신경 쓰이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며 다시 코우타 쪽을 향하여 시선을 돌렸다. 마사히토는 그를 똑바로 직시한 채 말했다.
"코우타- 난 말야.. 타카토라를 잘 알지만 그래서 그만큼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몰라~ 그러니까 알려줘~ 적어도 네가 봐온 녀석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난 알고 싶어!"
"...... 거절하지 않아~ 하지만 그 전에 하나 물을께~ 마사히토- 이제부터 난 당신에게 간단한 비전을 보여줄꺼야~ 거기엔 지금까지 계속 싸워나간 타카토라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비전?? 타카토라의 이야기?!"
"어- 그에 관한 짧게 축약한 비전 정도라고 해도 말이지, 이걸 본 순간 당신의 마음이 절대 흔들려서 무너지지 않을 자신 있어? 혹시 두렵다면 지금 여기서 멈춰도 괜찮아! 난 절대 무리해서 강요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8년만에 만난 그가 말했어~ 나는 알고 싶은거야~「변신!」이란 말의 의미를.. 그러니까 코우타- 부탁해~"
"알겠어"
코우타는 웃었지만 무언가 결의에 찬 눈빛을 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사히토 역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대응했다. 더 이상 멈춰서거나 망설이지 않는다. 마음 속에 망설임 따윈 없었다. 이때 마이가 카게마사를 따라 뛰어왔다. 다소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고작 1m 거리) 모두 들은 카게마사가 저도 함께 형의 친구를 좀 더 알고 싶다고 말을 하였다.
마이가 불안감을 드러낸 가운데 코우타가 손을 높이 뻗어서 탁- 손짓하자 드디어 천천히 허공에 비전이 나타났다. 카게마사는 왠지 그것이 빔 프로젝트의 스크린 화면같다는 생각을 하고서, 마사히토는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이면의 타카토라를 알 생각에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 ▷ ▷ ▷
커다란 빔 스크린처럼 생긴 비전이 나타난 후 처음 시작 화면은 토르키아 내부 스칼라 시스템이 있는 컨트롤 룸이 비쳐졌다. 카게마사는 또 같은 지난 일을 반복해 보여주는 저 장면이 보기 싫다며 벌써부터 머리를 붙잡은 채 크윽, 힘들어하였다.
약간이나마 비슷하게 관련된 키워드가 있으면 여간 괴로워하지 아니하였다. 마사히토가 금방이라도 울듯 호소하는, 하지만 굉장히 특유의 감정이 절제된 억지 미소를 침착하게 지어보이며 통화하는 마사히토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한쪽에선 백정장에다 구두까지 모두 새 하얀 의상과 빨간 행거치프와 달리 대조된 타카토라는 잘 다린 흰색 와이셔츠 위에 주름이 쫙 펼쳐진 그야말로 쓸데없는 주름 따위 하나 없이 핏이 선 완벽한 검은 정장, 초록색 행거치프가 꽂힌 모습이 마치 흑백처럼 확연히 대비되었다.
"스칼라 시스템을 가동시키겠어"
"그만둬"
"이 이외에는 피해를 진압할 방법이 없어"
"그렇지만-!!"
타카토라의 언성이 점점 더 커진다. 하지만 강하게 마음 먹은 이상 굳이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계속 왼쪽 가슴을 부여잡은 채 마사히토가 고통을 참으면서 입을 열었다.
"나도 감염자야! 어차피 오래 살 수 없어~ 타카토라- 인류의 미래를 부탁할께"
"마사히토!!!"
밝은 브라운 헤어의 마사히토는 계속 음소거로 고통스러움을 호소한 채 마지막까지 상냥함을 감싼 예의 그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내 전화를 끊었고 타카토라는 그저 절망에 휩싸여 절규하였다. 찢어질듯한 하울링이 보기 싫어 비전에서 고개를 거두었다. 이를 악물어 세게 쥔 주먹이 또 떨려왔다. 문득 옆을 둘러봤을 땐 코우타는 아무런 표정을 하지 않았고(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으나 속으론 엄청 암담해하였다.) 발랄한 마이의 얼굴도 점점 어두워졌다.
언제나 제 감정을 잘 숨길 줄 모르던 아이, 항상 올곧고 순수한 카게마사에게 일말의 미묘한 감정이 스쳐지나간 찰나, 마사히토는 손을 뻗었다. 제 동생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지려다 그냥 말았다. 차마 호기롭던 말처럼 행동은 그리 쉽게 움직임을 간단히 허락되지 않았다.
남몰래 뒤에서 살짝 뻗었던 손이 조금씩 차차 떨려왔다. 크윽, 마사히토는 다른 사람이 절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아주 짧은 신음을 흘렀다. 자꾸 흩어지려는 이 기분을 억지로 강하게 마음 먹으면서 애써 감정을 삼킨 뒤 손을 내릴 수 밖엔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손을 올려 위로해봤자 전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스칼라 시스템이 가동되었다. 모든 것은 마사히토의 손에 의해 토르키아 전체가 불살라졌다. 인베스화가 점점 더 빨리 진행되고 곧 오버로드의 형태로 진화 단계에 이른 그는 이젠 인간의 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진 별로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스칼라 시스템의 에너지에 노출된 채 극도로 많은 양의 에너지를 받아 이뤄진 오버로드의 각성과 인간으로서 죽음, 그 죽음을 뛰어넘은 오버로드로서의 초월함, 하지만 이때까지도 마사히토는 고통과 현실에 손으로 얼굴을 끌어안으며 마구 비명을 질렀지만 만족했다.
타카토라의 짐을 자신이 직접 함께 짊어졌고 전부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라 생각하니까 아직 그는 이 희생이 괜찮았다. 나쁘진 않았으나 적어도 나름 만족하였다. 그러나 비전을 찢고 나오는 마사히토의 처절한 비명은 너무나 인간과 오버로드 사이의 목소리가 한데 뒤섞어 괴상한 울음소리를 자아냈다.
끔찍하고도 애절한 울림이 다시금 그날을 다시 느끼도록 해주는 것 같아 그 기억이 떠오른 마사히토는 그저 연신 크윽, 한탄만을 내뱉었다. 헬헤임으로 뒤덮혀 모든게 불타버린 폐색적인 공기가 무겁게 감도는 토르키아 거리를 걷는 자기자신의 모습을 차마 견딜 수 없어서 더 보지 못하고 시선을 떼버렸다.
다음 장면이 전환된다. 잔게츠 기동 실험의 실패, 대량 크랙이 열려 여기저기 나타나는 인베스들, 그리고 또한 헬헤임 숲의 침식이 시작된 창궐로부터 스칼라 시스템을 가동하여 마사히토가 희생한 최악의 사건 이후 어느 날이다. 자와메 시의 이그드라실 기업의 주임으로 돌아온 타카토라는 어째 영 힘이 없었다. 식사는 커녕 사흘 밤낮동안 조그만 군것질, - 원래도 쓸데없는 군것질 따윈 잘 하지 않지만 하다 못해 저택의 사용인이 시간 맞춰 챙겨주는 간식 마저 입에 대지 않았다.
가족이라 해봤자 사실상 미국에 있는 부모님 대신 나이차 꽤 많이 나는 동생 미츠자네가 있을 뿐이다. 미츠자네는 분명 심히 형을 걱정하였지만 애써 미미한 웃음을 지을 뿐, 괜찮단 말만 몇 번이나 계속 반복하였다. 하기사 토르키아 사건을 모르는 녀석에게 굳이 설명해봐도 잘 모를텐데 뭐하러 잘 모르는 사람한테 묻는 것도 확실히 좀 이상하긴 하다. 하지만, 그래도 시즈미야 형제라던가, 이그드라실 기업에 관해 전부 밝힐 수는 없지만 하다 못해 적어도 약간의 의지 정도는 할 수 있는 걸 타카토라는 끝까지 마다하였다.
결국 그는 기어코 강한 척 무리해서 일은 많이 하고 식사는 적게하는 균형이 깨진 밸런스가 악영향을 미쳐 영양실조라는 병명을 얻어 이주일간 병원 입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바보- 저 고집쟁이! 고집불통! 그렇게 멋대로 혼자 안 끌어안아도 된다니까 왜 사람을, 옆에 있는 누군가를 의지하지 않는거야? 타카토라- 내가 분명 혼자서 짊어지지 말고 타인에게 감정을 나누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강한 척 참는건데? 사실은 누구보다 약한 걸 알면서.. 어째서!!"
"마사히토 형.."
"그런 녀석이라니깐! 타카토라는.. 정말 솔직하지 못해선 말이지"
학교 친구처럼 폭풍 공감해주는 코우타를 슬쩍 보다가 마사히토는 그 와중에도 하얀 구름이 둥실거리는듯이 계속 장면이 흘러가는 비전을 향해서 다시 응시하였다. 미츠자네가 '형~ 괜찮아? 지금 몸 상태는 어때?'라며 끊임없이 질문하였다. 괜찮다, 괜찮다, 도대체 뭐가 괜찮은거야? 속은 완전 망가졌는데 여전히 괜찮단다. 마사히토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훗, 하고 코웃음을 쳤다. 옆에서 코우타도 실없는 웃음을 띄웠다.
딱 보면 바보조차 알 정도로 뭔가 일이 있었고 당연히 그것을 숨기려 한다는 걸 알지만 그는 그냥 말하지 않았다. 단지 형의 개인적인 사생활이라던가, 혼자 고집 피우며 끌어안은 짐이라던가, 여러 고민을 충분히 이해하고 어떤 마음인지 알기에 굳이 일일이 더 캐묻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그게 오히려 스스로 마음을 이겨내기 편할지도 모른다.
미츠자네 자신도 미처 어느 누구한테나 말 못할 것들을 혼자서 끙끙 열심히 가슴앓이를 한 채 끌어안고 갈등하고 머리 아픈 고민하며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깊이 갈등하지 않았던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부딪히는 일이라 생각하니까 미츠자네는 아무 말 없이 잠자코 형의 곁을 지켜주었다.
이때 드륵 병실 문이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연구를 하기 위한 흰 가운, 안에는 평범한 갈색 체크무늬 남방 셔츠를 입은 이그드라실 연구원이자 현재 타카토라의 파트너, 센고쿠 료마다. 한손에는 빨간 장미 꽃다발을 든 채였다.
"이야! 고마운걸~ 내가 올 때까지 수고했어! 미츠자네 군- 교대 시간이야~ 너도 꽤 바쁠테니 어서 돌아가"
"응~ 그럼 료마 씨가 오셨으니까 난 이만 먼저 가볼께~ 타카토라 형-"
"미츠자네~ 조심해서 들어가라"
"교대 부탁할께요. 료마 씨~"
"맡겨둬"
미츠자네가 조용히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섰다. 눈알을 굴리면서 유심히 관찰하던 료마가 적당히 장미꽃을 꽃병에 끼웠다. '왠 장미꽃이냐'는 타카토라에게 휙 돌아선 료마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별 거 아냐~ 그냥 빈손으로 오기 뭣해서 적당히 시중에 파는 만만한 장미꽃을 골랐을 뿐이고- 뭐, 나름 빨리 퇴원하라는 의미를 담아 빨간색이 어쩌다 겹쳤을 뿐이니까 이상한 뜻으로 상상해주지 말았음 하는데? 타카토라~ 난 이상한 오해받는 거 엄청 싫어하거든"
"그래~ 연구 때문에 바쁠텐데 일부러 찾아와줘서 일단 고맙단 경의를 해두지"
"하아- 여전하네~ 타카토라-"
료마가 잠깐 병실 문을 향해 쳐다보며 뜸을 들었다. 잠시 머뭇하던가 싶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타카토라- 미츠자네 군이 없으니까 하는 말인데 솔직히 말하지? 지금 실험도 받지 않는 상황이고 그렇게 자기 관리 철저한 사람이 절대 쓰러질 이유 없어! 담당 의사한테 들었어~ 영양실조라며!? 네가 절대 관리 철저히 하지않을만큼 평소 행동이 부주의하지 않다는건데 뭐야? 말해~ 너 왜 쓰러진거야? 예상컨데 내 추측으로 하자면 말야~ 혹시 시즈미야 마사히토 때문인건가?? 역시 도저히 그것말곤 생각이 안 들어"
"역시 넌 알고 있군"
"나한텐 전부 말해! 미츠자네에겐 할 수 없는 진실이잖아? 여기서 토르키아 내부 상황과 사건에 대해 아는 건 너와 나 밖에 없으니까~ 하여튼 타카토라, 넌 정말 외골수이군 그래- 어쩔 땐 나보다 더 해! 너무 한쪽만 생각해서 풀리지도 않을 문제를 끌어안아버린다고- 그런다고 세상 사람들이 네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아니잖아?"
"료마- 난 설령 용서받지 않아도 상관없어~ 모든 과오와 죄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이어질 료마의 말에 도통 말이 안 통한다는 말을 들은 마사히토가 자신의 이익과 연구에만 미친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공감했다. 이번 일은 확실히 료마가 정말 맞는 말을 했다고 생각하였다. 그도 그럴게 타카토라는 오직 한 길 밖에 모르는 우직스러운 믿음, 나쁘게 말하면 진짜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외골수 인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뭐, 그 점이 타카토라가 가진 좋은 점이다.
비전의 장면이 또 새롭게 전환되었다. 이번에는 코우타가 록시드와 센고쿠 드라이버를 손에 넣은 후 타카토라와 만나 부딪히고 대립하는 씬, 료마와 미나토, 시드 등 이그드라실과 미츠자네의 갈등과 배신, 그리고 비트 라이더즈는 물론 차례로 데므슈, 레뒤에, 로슈오와 같은 오버로드 존재라던가 하는 것들이 짧게 줄거리처럼 나타나 보여준 뒤 사라졌다.
최후의 결전에서 쿠몬 카이토를 이긴 코우타가 마이와 함께 신이 되는 길을 선택한 것까지 모두 일련의 과정이 마치 주마등이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내용이 흘러갔다. 꼭 한편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타카토라 주연 영화라해도 손색없었다. 그간 토르키아를 떠나 자신이 원래 살던 자와메 시에서 타카토라의 간단한 행적들이 요약하여 보여주었다.
감상이 끝났을 때 비전이 사라졌다. 네 사람은 잠시동안 일동 침묵을 유지했다. 카게마사는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마이도 비슷한 표정을 하였으며 코우타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사히토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진다.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괴로움을 견뎌내왔는지,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번인가 죽을 뻔한 위기를 맞으면서 타카토라는 여지껏 살아왔다. 그리고 그 껍질 속에서부터 단단해진 열매처럼 강인한 자가 되어있었다. 부드럽게 씹히는 과육같이 안으로는 냉정함 대신 상냥함을 분명히 드러낼 줄 아는 존재가 되었다.
오히려 어리석었던 것은 본인이었다. 모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진정 그 녀석 말대로 변한게 없었다. 만약 변한 것이 있었다면 거기서 당당하게 말을 꺼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말을 듣고 분해서 소리친 자신이 조금 창피해졌다. 마사히토는 특유의 씁쓸한 미소를 살풋 지었다.
비록 오버로드가 되었지만 사실 한편으론 내심 자신이 오버로드라는 걸 부정하였다. 그러지 않고서야 처음부터 오버로드체로 정체를 보여줘도 될 것을, 마사히토는 굳이 타카토라에게 잔게츠의 변신 모습으로 계속 보인 이유였다.
일단 메론 록시드가 타카토라를 나타내는 아이덴티티와도 같은 것이 깊게 베인 어떤 특별한 상징성이니까 잔게츠 기동 실험이 실패된 예전이라면 또 몰라도 지금의 나라면 잔게츠로 변신할 수 있다. 분명 가능하다. 스칼라 시스템을 가동시켜 희생한 자신이야말로 잔게츠가 될 자격이 있다. 진정 아머드 라이더 잔게츠로 변신할 자격 또는 그럴 권리가 있는게 좀 더 도리로서 마땅하다고 여겨왔다.
토르키아 사건으로부터 8년이 지나 다시 조우한 타카토라와 일기토로 벌인 최후의 결전 땐 마사히토는 그에게 자신은 인간을 넘어 오버로드로서 새로운 힘을 손에 넣었다며 강한 척, 자신감 있게 긍정을 내뱉었다. 스칼라 시스템이 작동되고 오버로드로 변한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또 다시 덮쳐온 고통과 괴로움이, 죽을 때 인간이던 몸이 없어 실체가 없기 때문에 이제 인류와 불가능한 상호 작용, 이로부터 오는 외로움과 이미 불살라져서 폐허가 되어버린 토르키아에서 긴 시간동안 고립된 생활, 남겨진 동생 카게마사의 미쳐가는 모습 등을 보면서 마사히토 안의 고결한 순백색 수정의 결정이 점점 부서지고 산산조각이 나 더 되돌릴 수 없을만큼 망가져갔다.
모든 것이 정체된 채 삼켜진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이 미쳐간다는 걸 깨달은 그의 마음은 조금씩 그의 사상을 변화시키고 가치관을 바꾸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 한켠엔 자신이 오버로드가 됐다는 사실을 어딘가 그걸 내심 부정하면서도 긍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부정하였던 것이다. 진실을 받아들여 담담해지고 감정이 무뎌지도록 이 악물며 견뎌내기까지 너무 힘들었다. 마침내 믿어 마지 않던 정의와 윤리가 파괴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시즈미야 마사히토는 여지껏 살아왔다.
슬쩍 옆을 돌아봤다. 그런 형의 모습을 보면서 카게마사는 생각한다. 자신이 동경해 마지 않는 형을 언제나 그림자처럼 뒤에서 지켜봐왔다. 자신은 그 무엇도 할 수 없다고, 감정을 속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 대담하게 행동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이것은 토르키아에 정착하고 생활해가면서 더욱 이러한 인격이 형성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예전에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불안감을 내내 들어내 표출하지 못한 채 나타난 어떤 일그러진 감정의 형태가 불꽃 덩어리가 되어 그것을 가슴 속에 오랫동안 품고서 많이 억눌렸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 폭탄같은 것과 다름없었다.
아무리 어린 시절의 이야기라지만 카게마사는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였다. 아버지 카기오미는 프로토 센코쿠 드라이버를 이용하여 악의적인 실험을 하기 위해 오직 자기 이익만 돌보고 있고, 형(마사히토)은 형대로 심각한 리스크를 안고서 실험을 강행하고 있지, 이미 낯선 외국인들에게 둘러쌓여진 이 타국 생활부터가 엄청 힘들었다는 건 전혀 반박할 논리의 여지 따위 없었다.
외롭다. 늘 외로웠다. 빛조차 닿지 않는 어두운 공간에서 혼자 방치된 기분이다. 정말로 아무것도 돌아갈 장소 따윈 없다고 느꼈다. 자기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상냥한 형이 항상 저를 향해 잘 웃어주고 부드럽게 잘 대해주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딱히 의지하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카게마사에게 있어 마사히토는 자신이 되고 싶었던 롤모델과 같은, 나한테 없는 부분이 분명 있으니까 그로부터 오는 어떤 무한한 동경의 대상일 뿐, 절대 이게 제 형의 신념이라던가, 가치관이라던가 하는 애매모호한 정의를 어중간하게 받아들인 왜곡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카케마사에게 형 마사히토란 존재는 동경은 하지만 완벽한 이해자는 결코 아니었다.
형이 프로토 센코쿠 드라이버의 잔게츠 기동 실험에 참가한 이후 조금씩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먼저 그 실험에 참가했던 타카토라가 부상을 입은 채 병원에 입원 신세를 지게 됐으며 그걸 마사히토 형이 대신 이어받았다, 하는 것은 저도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이상 보는 눈이 있고 듣는 귀가 있기 때문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말은 대강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 카게마사는 분명 마사히토가 인베스화의 전조를 목격했으나 이해할 지식은 없던 상태였다.
몇 년이 더 흐른 뒤 카게마사는 지하의 라이더들이 프로토 드라이버를 계속 사용하여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한다면 인베스화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두 순간적으로 찾아온 흉통에 가슴을 부여잡은 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그것은 언젠가 봤던 예전의 기억 속에서 마사히토가 죽기 전과 같은 증상을 하였다. 이제서야 겨우 모든 의문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진 셈이다.
카게마사는 타카토라가 프로토 드라이버의 인베스화 부작용이 어떤 것인지 아니까, 전부 알고 있으니까, 잔게츠를 형에게 멋대로 떠넘긴 채 희생을 강요했다고 오해한 것이다. 그 오인이 이때까지도 원망만 있었던 감정에서 증오로 바뀌어갔고 카게마사는 타카토라에게 복수하기 위한 마음을 갖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카게마사가 정말로 그저 단순히 형의 복수를 위해 미친듯이 발악했던 건 아니다.
그보단 좀 더 무엇이, 외로움이라던가, 무언의 프레셔가 또 다른 나 자신에게 하는 일종의 발악 무언가였을지도 모른다. 저 혼자서만 열심히 발버둥치기엔 이 세계는 만만하지 않았으니까 차마 솔직해지지 못하고 점점 날개를 가둔 채 그렇게 지금까지 줄곧 믿어왔다. 그 믿음은 결국 타카토라와 직접 대면하고 현실을 직시하면서 흔들려 깨어져버렸지만..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좀 더, 좀 더 자신의 마음에 계속 솔직해지지 못했었다고....
수많은 운명의 갈림길과 싸움 속에서 흔들리며 필사적이 되어서 타카토라는 자신의 나약함을 알고 깨달으며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층 더 강해지면서 쿠레시마 타카토라는 코우타가 조언해준 것처럼 새로운 자신으로 변신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알 것 같아~ 타카토라가 말한 변신의 의미를.. 나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정말로 변한 건 내가 아니라 그 녀석이었어"
"난 형도 타카토라 형처럼 분명 변했다고 생각해"
"카게마사.. 훗- 뭐, 어느 의미론 말이지~ 근데 살짝 부러운걸~ 후후- 질투 나~ 나도 그때 널 만났더라면 조금은 운명이 바꼈을까? 하지만 저런 타카토라를 보니까 뭔가 코우타네들이 있어서 굉장히 다행이라고 생각해! 뭐랄까나.. 어긋나면 다시 바로 잡아줄 사람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살아갈 의미가 된다는 느낌이랄까...."
"마사히토도 그 희생, 분명 굉장하다고 생각해! 나라면 선뜻 나서는게 무섭고 두려워서 아마 할 수 없었을거야~ 그러니까 마사히토- 이제 혼자 괴로워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되"
"응! 상처받지만 그만큼 성장하니까야~ 사람은 그러면서 강해진다고 생각해"
코우타의 말에 마이가 한마디 거들었다. 두 사람의 밝게 웃는 모습이 옆사람까지도 기분 좋도록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타카토라 마저 동화될 정도로 확실히 무언가의 매력이 있었다.
"고마워! 코우타- 나는 이제 카게마사와 지하 세계(저승)에 갈꺼야~ 가기 전, 마지막으로 한번 더 타카토라를 만나고 싶어"
▷ ▷ ▷ ▷
타카토라는 오늘도 일에 지쳐 들어왔다. 헬헤임의 침식이란 재앙으로부터 자와메 시가 예전처럼 다시 평화와 부흥을 하기 위해 한때 아머드 라이더였던 자들과 비트 라이더즈의 동료들과 함께 협력하여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미츠자네도 방황하는 청소년기를 벗어나 아이에서 진정한 어른이 되어 한층 더 성장하였다.
"미츠자네~ 이거- 네가 찾던거지?"
"응~ 형- 고마워! 전부터 계속 읽고 싶었던 책이거든"
"그래? 다행히 서재에 있었다. 네가 좋아하면 그걸로 됐어"
미츠자네가 예쁘게 웃었다. 타카토라는 여전히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동생에게 말했다. 좀 조사하고 싶은게 있으니까 도서관에 자료를 알아봐줄 수 있나 부탁했다. 미츠자네는 알겠다고 흔쾌히 동의하였다. 비트 라이더즈 음악이 흘러나오더니 곧이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든 그가 잭의 전화임을 확인하였다. '형, 그럼 난 일단 나가볼께~ 잘자!'라는 인사를 끝마친 뒤 이 시간에 걸려온 잭의 전화를 받아 타카토라의 방을 빠져나갔다. 그 역시 낮은 목소리로 낮게 '잘자-'라고 중얼거렸다.
딱히 할일도 없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타카토라는 전에 보다 만 책을 꺼내 읽었다. 하지만 내일 또 일찍 일 아닌 일을 하러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곤 그는 휴대폰을 켜 시간 알람을 체크한 후 침대로 몸을 던졌다. 따뜻했다. 이게 바로 행복인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길 하면서 웃고 떠들 정도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잘 생각해보면 지난날들, 매번 참 힘들었던 순간들이었다. 아, 물론 좋았던 기억들도 분명 있었다.
코우타를 만난 일부터 하나씩 떠올려가던 중 이제 어느 덧 어디까지 떠올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언제부터 저도 모르게 스륵 잠이 든 상태가 된 타카토라는 깊은 수면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타카토라- 타카토라-'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듯한 느낌적인 직감에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눈 앞에는 시즈미야 마사히토, 시즈미야 카게마사 형제가 서 있었다.
"마사히토! 카게마사! 모두 오랜만이군"
"우리 토르키아에서 다시 만난지 얼마되지도 않았다고?! 그런데 벌써부터 오랜만 취급인거야? 에.. 좀 섭섭한걸~"
"아, 아니, 뭐...."
"타카토라 형~ 실은 오랜만에 형을 만나서 조금은 좋았다고 생각했어"
타카토라의 미소 지은 얼굴이 은은함을 띄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네 이야긴 코우타에게 간단히 들었어~ 타카토라- 마지막에 네가 말한 변신의 의미, 계속 생각해봤는데 변한 것은 내가 아니라 너였어~ 코우타네들이 있어서, 그 녀석들과 만날 수 있어서 여기까지 성장했구나 싶어서 조금 안심이 되면서도 뭐랄까.. 내 벗이 여기까지 성장했구나 싶어서, 내가 많이 뒤쳐진 것 같아서 살짝 질투가 난달까나~"
"그런가"
마사히토가 양팔을 펼치고서 말했다.
"있잖아-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만 역시 나는 널 만나서 다행이라 생각해~ 참! 그렇지- 지금의 난 인간도 오버로드도 아닌 그냥 유령이야~ 난 결코 내가 선택한 희생에 있어서 절대 후회하지 않아~"
좀 더 바짝 가까이 다가온 마사히토가 타카토라의 등을 가볍게 툭 쳤다.
"그러니까 이젠 혼자 짐을 끌어안지 않아도 되~ 타카토라- 내 예전 친구로써 다시 한번 인류의 미래를 부탁할께"
"예전 친구가 아냐"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마사히토- 넌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소중한 친구다."
"고마워! 타카토라- 그럼 카게마사, 우린 슬슬 가볼까~"
"형- 코우타가 형한테 아키라 누나와 밋치랑 모두에게 안부 전해달래요."
"카즈라바가..?! 알겠다."
"자! 갈께~ 타카토라- 이제 이별이야~ 언젠가 다시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
"마사히토...."
별 거 아니었지만, 별 대단치 않은 대화였지만 괜찮았다. 타카토라는 오랜만에 아이로 되돌아간듯 하였다. 그의 만면에 드리워진 미소가 끝없이 무한한 어둠 속 공간에서 밝은 빛을 이끌어냈다. 반짝반짝 빛이 빛났다. 그리고 빛이 점점 밝아져왔다. 아까보다 더 강렬하게 자신을 덮쳐오는 그 찬란한 반짝임에 눈이 부신 타카토라가 일순간 팔을 가린 채 살짝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썼다. 그것도 부족하여 눈까지 감았다가 떴을 땐 어느 새 벌써 아침이었다. 시간을 확인한 타카토라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꿈, 꿈이었다. 모든 건 꿈이었다. 하지만 타카토라는 기억한다. 그것이 정말 단순히 제 마음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꿈이 보여주는 환상이 아닌 현실이었다고, 진짜 시즈미야 마사히토가 자신에게 찾아왔다고 분명 그렇게 믿었다. 한낱 평범한 인간에 그저 지나지 않던 그가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모든 괴로움을 이겨내 황금 열매를 손에 넣은 뒤 이젠 모든 것을 초월하여 신이 된 코우타라면 꿈 속에서 살며시 조그만 마법을 걸어주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 생각했기에 타카토라는 정말로 마사히토를 만났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토르키아 공화국의 언더 그라운드 시티, 그릇된 귀족들이 감춘 진실을 조사하기 위해 8년이란 시간이 흘러 오랜만에 이 나라를 찾았다. 또한 여기 언더 그라운드라는 지하 도시에서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하는 아임과 글라샤를 만나고, 파이몬, 구시온, 베리스와 오세, 베리알, 포라스, 그들 일행을 만나서 협력하고 함께 싸웠던 그 날의 일을 타카토라는 결코 절대 잊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조우하게 된 시즈미야 마사히토와 시즈미야 카게마사 형제까지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이 엄청 열정적이 되어서 마사히토도, 타카토라 자신도 정말 필사적이었다. 마지막에 본인이 그한테 말했던 것처럼 기억은 마사히토를 포함한 토르키아에서 만난 수많은 다양한 인연을 이어 자신 안에서 살아갈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 기억을 영원히 간직한 채 끝없이 계속 산화하여 흔들리는 세계의 그릇됨이 전부 사라질 때까지 언제까지나, 몇 번이고 싸워나갈 것이다. 그러니까 잊지 않는다. 정의가 계속되는 한, 변신한다.
타카토라는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그러자 온 햇살이 창살 사이로 새어들어왔다. 비춰진 빛 조각이 하늘에서 쏟아졌다. 하얀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맑고 푸른 하늘은 자꾸만 색채를 덧칠해간다. 가만히 풍경을 감상하던 타카토라가 고개를 돌려 테이블 위에 얹어진 카치도키 록시드와 센코쿠 드라이버에 시선을 향했다. 곧 록시드를 손으로 집어들었다. 그런 다음 이내 조용히, 낮게 독백하듯, 아직 아침이라 다소 잠긴 중후한 목소리를 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다시 언젠가.."
쿠레시마 타카토라는 여기서 다시 한번 살아간다. 코우타가 항상 입버릇처럼 외치던 대사, [여기서부터는 우리들의 스테이지다!] 반드시 그러기로 담담하게 강한 마음을 먹었다. 타카토라는 가슴 속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새로이 아로새겼다. 지금은 신이 된 카즈라바 코우타가 썼던 오렌지의 가이무 카치도키 록시드와 같은 디자인의 메론 빛을 띈 잔게츠 카치도키 록시드가 반짝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