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끌어안은 빛
* 마법천자문 한자영웅전이 원작 내용을 바탕한 게임이라 기본적으로 원작 만화책의 본편 스토리대로 진행됩니다.
* 신켄쟈 본편과 극장판 이후, 마법천자문 12권 이후 13권 직전 사이 어디 즈음에서 혼세마왕이 기억을 찾고 천세태자로 돌아오기 전에 잠깐 방황하던 시기 때 만났다는 설정입니다!
* 특촬 게임 크오 합작 주소는 여기!
https://dac101049.wixsite.com/tkstxgame-crossover
HOME | Mysite 1
dac101049.wixsite.com
오늘도 하고 싶은 일을 무작정 그냥 툭 던져놓고 하기 시작했다. 시바 타케루는 과묵하거나 그래서 겉으로는 감정 표현을 잘 하진 않지만 내심 누군가를 진심으로 생각한다거나 먼저 다가가 호의를 베풀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는 한가지 의외인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전혀 주군답지 않게 생각보다 가슴이 뜨거울만큼 열정적인 부분이라던가,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이라던가, 그것도 그렇고 가장 큰 문제는 누구보다도 매우 무모하다는 점이었다.
여느 슈퍼전대의 레드답다면 레드답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계획적으로 세우지 않은 채 즉흥적인 행동을 그대로 현실에 실현으로 옮기는 것은 으레 그렇듯한 행동인 것일지도 모른다.
본인이 시바 가의 19대 당주라는 것만 빼면 타케루는, 어떻게 보면 그닥 특별한 점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건 자기자신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고 시바 가문의 가신이자 타케루의 스승인 쿠사카베나 다른 사람들이라면 그 녀석과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할만큼 끌리는 무언가의 매력이 시바 타케루란 사람이 가진 어떤 특별함이 존재하였다.
그렇기에 같은 신켄쟈의 동료인 이케나미 류노스케, 타니 치아키, 하나오리 코토하, 시라이시 마코, 우메모리 켄타 등 그들이 타케루를 믿고 의지하며 따르는 모습이 한층 주군으로서의 위엄을 ──물론 타케루는 그런 수직 관계가 아닌 동등한 위치의 유대 관계를 좀 더 선호하였고 이를 신켄쟈의 동료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돋보이도록 만들었다. 어쨌든 그날 본가에서 한동안 머물 때 그는 시바 카오루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어머니- 저, 이번에 저 혼자서 어디 여행 다녀오고 싶습니다."
"여행이라니? 타케루-"
"그냥.. 미국이라던가, 다른 나라도 좀 돌아보고 싶고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면서 이른바 힐링 여행을 해볼 생각입니다만.."
"그런가"
정식 어머니는 아니지만, 나잇대는 엇비슷하지만(카오루가 조금 더 연상이지만) 집안 사정으로 어찌저찌 하다 보니까 처음에는 그저 진짜 신켄 레드의 카게무샤였던 것에서 이젠 카오루가 타케루의 어머니가 되었다. 카오루는 이제부터 자신의 아들이나 다름없게 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
녀석은 엄청 길치, 방향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바 가의 당주로서 생활 양식을 쌓으며 일상을 살아왔던 터라 길도 찾지 못하고 방향 감각조차 없어 혼자 여행하긴 무리다. 대체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걷기만 하다가 마침내 길을 헤메다 곧 미아가 될 것이 당연히 불을 보듯 뻔했다.
"어차피 할아범에게 미리 다녀온다고 허락도 맡아놨고..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몸조심 하거라~ 언제 떠나는건가?"
"오늘 새벽 일찍 떠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는 옆에 쿠사카베나 집안에서 일하는 쿠로코들이나 신켄쟈의 사무라이들 등 여러 사람에게 도움 받으며 살아와서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이번엔 정말 혼자다. 사무라이 교육 이 외에도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의 나와 다른 새로운 자신을 찾기 위한 오직 혼자만의 여행이었다. 그렇기에 사실 조금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고 지금의 나로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 타케루는 평소의 자신을 조금 깨뜨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무작정 계획 없이 여행을 하기 시작하였다.
본가에서의 생활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쿠사카베에 비해 특히 탄바가 워낙 유난을 떠는 것만 딱 빼면 뭐, 그럭저럭 보통 정도로 지낼만 했다. 아마 신켄쟈로 변신하여 외도중과 싸워나가는 상황이었으면 지금 같은 이 느긋한 상상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아예 그런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을게 분명 틀림없다. 외도중도 모두 물리쳤고 이제 진짜 나를 위한 여유를 좀 가져봐도 되지 않을까 싶어 방 안에서 주섬주섬 캐리어에다가 간단한 짐을 챙기면서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그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 새 벌써 자정이 훌쩍 넘었다.
적어도 여기서 한, 새벽 5시쯤 일찍 일어나 며칠 전 미리 끊어놓은 비행기 티켓을 들고 7시까지 공항으로 출발할 일정이다. 타케루가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리에 누운지 2시간 남짓 지났다. 첫 혼자만의 여행이라 그런지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괜히 마음이 설레서 잠이 오지 않았다. 겨우 2~3시간 좀 잔 이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결국 그때부터 뜬눈으로 밤을 지샌 다음 4시가 살짝 넘어서 욕실에 씻으러 나왔다. 카오루는 시간을 맞춰 주먹밥을 만들어 주었다.
굳이 일부러 내가 하지 않아도 가신들에게 대신 부탁해도 되지만 그래도 본인이 직접 여행길을 배웅해주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타케루는 신켄쟈의 변신 도구이자 모지카라를 소환할 수 있는 쇼도폰을 챙겨 우여곡절 끝에 공항까지 도착했다. 비행기를 탈 시간도 얼마 없는데 갑자기 공항에 난입한 외도중 때문에 신켄 레드로 변신해야 했다. 아니, 정확히 외도중은 아니고 비슷한 무언가 같아 보였다. 변신할 틈조차 없이 사건에 휘말린 그가 이세계에 향하는 차원처럼 보이는 어떤 시공간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이후 왠지 답답하고 텁텁한 느낌이 들어서 순간 눈을 떴을 땐 어딘지 모를 낯선 공간이었다. 타케루는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정신 차린 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기가 어디지? 하고 주위를 두리번 둘러보았다. 주변은 비 한번 오지 않은듯 단단하게 굳어 땅이 메말라져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 그는 자세를 낮춰 쪼그려 앉은 채 손을 짚어 땅을 한번 스윽 문질렀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얼른 쇼도폰을 꺼내 땅 위에다 무엇을 슥슥 한자를 써내려가더니 곧 그가 쓴 물 수(水) 한자가 변환되었다. 덕분에 물이 떨어져 묻은 곳의 일부분은 물을 머금고 그나마 다른 곳에 비해 조금 축축해졌다. 하지만 구름 한 점조차 없이 강한 햇빛이 내리쬐는 날씨도 이런 최악의 상태니까 아마 금방 다시 메말라버릴 것이 분명하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되기까지 방치했던 걸까? 여기엔 아무도 사는 사람들이 없는건가 싶었다. 길이라도 좀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그러다가 타케루는 다시 쇼도폰을 들어 이번에는 허공에다 글씨를 썼다. 물론 글씨라 해봤자 당연히 한자다.
무엇을 할지 한참 고민하는듯 망설임을 보이던 타케루는 결정했다는 얼굴을 한 채 곧 지도(地図)라는 단어를 써서 모지카라를 소환해냈다. 모지카라가 발동한 마법이라 오래 가지 못하고 금방 사라졌지만 대충 어느 방향으로 길을 가야 하는진 감을 잡았기에 타케루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후 무심한듯 표정 변화가 잘 없는 얼굴에 미세하게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 다음, 타케루 앞에 별안간 누군가가 나타났다.
"누구냐!"
"그러는 너는 누구지?"
타케루는 약간 경계심을 드러내며 경계 태세를 갖췄다. 뭣하면 곧바로 싸울 수 있도록 쇼도폰을 들어 칼 도(刀) 모지카라를 써서 신켄쟈의 검인 신켄 마루를 소환했다. 급작스레 나타난 사람, 일단 겉모습은 인간 같아 보이고 외도중으론 보이지 않았으나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혹시 모를 위험을 미리 대비해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여튼 마치 악마처럼 머리에 뿔이 난 그 남자가 제 앞에서 뭐라 말하고 있었지만 다른 언어인지 언어의 장벽으로 미처 알아듣지 못했다. 뭐, 불행 중 다행이랄까──
오늘 굉장히 쇼도폰을 많이 쓰는듯한 기분이다. 역시 신켄쟈에게 있어 쇼도폰과 식신 역할을 하는 오리가미는 절대 빼놓지 못할만큼 일상에서 너무나 많이 쓰였다. 지금 이 순간처럼─ 하는 수 없이 다시 한번 모지카라를 쓴 그가 상대의 말을 들을 수 있는 한자를 쓴 다음에서야 겨우 저 남자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너도 한자 마법을 사용하는건가"
"한자 마법..?!"
"뭐, 그건 됐고.. 비켜라~ 내 일에 방해하면 가만두지 않겠어"
그가 손을 들어 리스트 블레이드를 펼쳐들었다. 그런 다음, 아! 하고 비명조차 지를 여지 없이 날카롭게 들어온 예리한 칼날의 공격이 타케루의 옷깃을 살짝 스쳤다. 반사적인 행동으로 빠르게 피하지 않았다면 뒤에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타케루는 신켄 마루를 든 채 검과 검이 맞부딪혔다.
검끼리 부딪힐 때 마다 챙- 소리가 났다. 잠시 숨 돌릴 새도 없이 무지막지하게 밀고 들어온 상대의 강한 힘에 쓰러진 타케루가 눈을 확 감았을 때 아무 느낌이 나지 않았다. 공격을 멈춘 것 같은 느낌에 살며시 눈을 떠보니까 다행히 다른 자들이 먼저 막아준 상황에 위기에서 살 수 있었다. 하마터면 매우 큰 일이 벌어질 뻔 하였다.
"혼세마왕! 네 녀석, 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여기에 남아 있었나?"
"닥쳐라~ 손오공- 지금 당장 여기서 목숨을 끊어주지"
"바라던 바다!"
손오공이 여의필을 꽉 쥐고서 혼세마왕과 일기토를 벌이려 하였지만 직전에 삼장이 단어 마법인 방어(防禦) 마법으로 막았다.
"왜 막은거야? 이제 조금 있으면 완전히 끝장낼 수 있었다구!"
"그렇게 되는대로 막 나가지 말고 생각 좀 해! 바보야~ 지금 우리의 힘으로 혼세마왕을 이기는 건 불가능해! 장기간 지속된 전투로 인한 소모된 체력도 키워놔야 한다고-"
"하지만-!!"
"오공.. 지금은 우선 저 사람을 데리고 조선원으로 돌아가자"
"삼장.."
"심장 말이 맞아~ 일단 힘도 보충할 겸, 그러는게 좋겠어~ 손오공- 어이, 거기 너!"
".... 나 말야..?!"
"그래~ 너- 이름이 뭐냐?"
"시바 타케루-"
"타케루- 우리랑 같이 돌아간다!"
"길이 생겨라~ 길 로(道)!"
손오공이 주문을 외우자 곧 길 로(道) 한자 마법이 발동 되어 길이 생겼다. 정신을 차라니 허허벌판의 메마른 대지에서, 또 어쩌다 보니까 손오공 일행과 함께 자리를 피하게 된 시바 타케루의 하루에 어쩌면 이것도 하나의 인연 무언가의 운명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도대체 지금 자신이 이해하기도 전에 정신없이 펼쳐진 상황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금은 얼떨결한 표정을 지은 타케루 앞에 운명의 여신이 장난치고 있었다.
잠시 조선원으로 다시 돌아온 손오공 일행들 사이에 낀 타케루를 향해 삼장이 물었다. 겨우 한시름 놓았던 그가 일말의 고민을 하다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생각을 정리하여 물었다. 여기서 타케루는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혼세마왕이라던가, 대마왕에 대한 거라던가, 한자 마법, 그리고 붉은빛의 천자문 조각과 마법천자패 등이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이야기는 전혀 끝이 나지 않았다. 어떻게 이쪽 세계에 들어오게 되었는가부터 시작하여 이어진 이야깃거리가 한참 끝도 없이 계속 이어졌다.
"자, 그럼 혹시 모르니까 우리 팀을 나눠서 다니는 거 어때? 내가 여의필과 같이 다닐테니까 삼장은 동자와 함께 다녀"
"그래~ 그러지 뭐"
"오공- 조심해~ 무슨 일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 줘"
"괜찮아! 걱정하지 말고 나만 믿으라구!"
"타케루는 어떻게 할거야?"
"나? 나는 혼자 다닐께"
"너도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타케루도 우리처럼 한자 마법 비슷한 걸 쓰잖아?!"
"알겠어"
삼장은 걱정 되는지 손오공한테 재차 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 옆에서 동자가 팔짱을 낀 채 타케루에게 혼세마왕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니까 조심할 것을 당부하면서 삼장과 함께 먼저 떠났다. 뒤이어 손오공과 여의필이 떠나고 마지막으로 타케루도 조선원 밖을 나섰다. 문 문(門) 모지카라를 써서 금방 메마른 대지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타케루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걸을 때 우연히 저 멀리서 검은 인영이 보였다. 마치 아지랑이처럼 막 일렁거린 인영은 점점 가까이 다가와 이내 모습을 드러냈다. 찰랑거리는 은백발을 길게 늘어뜨린 혼세마왕과 다시 조우하였다. 타케루는 아까 손오공네들에게서 들은 말을 떠올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행동은 한치의 흐트러짐 없었지만 왠지 어딘가 조금 불안했다.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면 안다. 혼세마왕이라 불리는 자는 확실히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너는 아까의-!!"
"혼세마왕.."
미처 대답할 겨를도 없이 혼세마왕은 손목의 장갑에 장착된 리스트 블레이드를 꺼내 공격 태세를 갖췄다. 무슨 2번 방해 했다간 아주 죽여버릴 기세였다. 타케루가 쇼도폰으로 칼 도(刀) 모지카라를 써서 신켄 마루를 소환하려던 참이었다. 왠지 불안해 보이는듯한 눈빛이더니 금방 싸워서 끝을 낼 것 같은 표정과 달리 결국 머리를 짚은 채 고통을 호소하였다.
"크윽- 큭- 하필 이럴 때에 또!"
"어이!"
"다가오지마! 다가오면 베어버리겠다!"
"하지만!"
"크윽- 크악- 거짓말! 전부 거짓말이다. 이런 기억 따위.. 절대 진실일 리 없어!!"
대체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뭔가 정황상 봉인된 기억이 풀려 하나씩 돌아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과정에서 저렇게 머리가 아픈거고── 그런 와중 팔의 상처를 발견했다. 일전에 손오공과 싸우다 부상까지 입은 모양이었다. 피부 주변엔 약간 흐른 피가 굳어 뭉쳐져 있었지만 본인은 이 상처에 대해서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듯 별로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았다. 적은 적이고 상처는 상처, 그러니까 이 2개는 별개의 일이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적이라도 지금은 그저 일개 부상을 입은 약한 사람이나 다름없다.
신켄쟈를 해오면서 다양한 동료들과 외도중을 대치해온 경험이 있어서 그들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조금은 안다. 설령 아무리 조그만 상처라도 신속히 치료하지 않으면 덧나는 것이 당연하다. 애시당초 그가 딱히 부상을 치료할 성격도 아니거니와 그냥 그대로 놔둬버릴 것 같아서 타케루는 녀석을 부축하여 벽에 기댄 뒤 일단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찾아 대충 묶어주었다.
이까짓 거 별 거 아니라며 크게 화를 내던 혼세마왕도 조금 안정이 되찾았는지 더 이상 타케루의 행동을 밀어내지 않았다. 사실 여기서 더 고집을 부릴 힘도 없었다. 대신 어떤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쉬고 난 뒤 혼세마왕은 다소 뜸을 들인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이름은?"
"타케루- 시바 타케루-"
"..... 타케루-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나?"
"에? 무슨 말이야?"
"마법천자패는 굉장한 힘이 깃들어져 있다고 한다. 일전에 손오공 녀석들과 만난 적 있었을 때 난 그걸 한번 만졌던 적이 있어~ 한자 마법이 발동해 내게 봉인된 기억의 조각을 보여줬다. 사실 나는 하늘나라의 왕자, 천세태자라는 기억이다."
"그런가~ 그럼 부정.. 하는거야? 자신의 기억이 없으니까 모든 걸 거짓이라고 부정하는건가? 그렇게 쉽게 간단히?!"
"..... 역시 기억이 없으니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의미를 모르겠군"
"혼란스럽다고 생각해~ 나도 아직 진정한 내가 누군지 몰라~ 나, 동료들과 신켄쟈를 하고 있거든- 하지만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부딪힐수록 주군으로서가 아닌 다른 무언가의 내가 되고 싶은거야~ 그러니까 변하고 싶어! 새로운 자신을 찾아서 받아들이고 앞을 향해 나아가고 싶어~ 그래서 여행하고 있는 중이야~ 과거의 내가 어떻든 나는 나, 그건 절대 변하지 않아"
"나는 나.."
혼세마왕은 특유의 씁쓸한 미소를 살짝 지었다. 계속 웃음기 하나 없이 다소 차가운 눈빛을 하고 있던 그가 미미하게나마 처음 입꼬리를 옅게 올려 보였다. 타케루의 말에 조금은 공감하게 된 걸까, 그건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알 수 없었다. 어쩌다 보니 타케루도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처한 환경이나 처지는 조금 달라도 어쨌든 두 사람 모두 진정한 자기자신에 대해 방황하고 망설이는 중이다. 결국 비슷한 사람끼리 서로 이해하게 되기 마련이다.
이때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잠시동안 그들에게 찾아온 평화도 잠시, 잊고 있었던 외도중이 다시 쳐들어와 난장판을 벌였다. 분명 외도중 같아 보이는데 외도중처럼 보이지 않은 힘에 실력 차이를 보였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혼세마왕은 그게 아마 대마왕이 가진 악마의 힘이 융합해버려서 일거라 말했다. '상당히 힘들겠어'라고 중얼거린 타케루가 [일필주상 一筆奏上]이란 구호를 외치며 불 화(火) 모지카라를 쓰면서 변신을 시전하였다. 불을 뜻하는 火 문자가 얼굴에 쓰여진 슈트가 입혀짐에 따라 신켄 레드로 변했다. 타케루는 얼른 신켄 마루를 소환했고 혼세마왕은 다시 리스트 블레이드를 들었다.
"그 상태에서 제대로 싸울 수는 있나?"
"훗- 날 뭘로 보고? 그럼 일시적인 동맹을 하지"
대마왕의 힘과 융합해버린 외도중을 상대로 두 사람이 격렬한 격전을 벌였다. 하지만 무지막지하게 강한 실력차를 극복해내지 못했다. 특히 혼세마왕은 아직 다 낫지 못한 팔의 상처가 다시 덧나기 시작했다. 아차! 하고 탄성을 자아낸 그가 상처가 난 팔을 부여잡고서 신음을 흘렀다. 최악이다. 심지어 엎친데 덮친 격으로 외도중이 쓴 마귀 마(魔) 한자 마법에 의해 타케루가 맞곤 그대로 눈을 감았다.
토옥 톡- 어디선가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세계가 사라지고 오직 나 혼자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 채 타케루는 그 알 수 없는 하얀 공간을 헤맸다. 여전히 무심한듯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분명 마음 속에서 엄청 동요하고 있었다.
점점 심연 속으로 의식이 잠식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무튼 일순간 움직임을 멈춘 타케루가 으으- 하는 소리를 내더니 검은 연기와 함께 빨간색이었던 슈트의 색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타케루의 변한 모습에 다소 놀란듯 동그랗게 눈이 커진 혼세마왕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이미 악마화 된 타케루에게 자신의 목소리 따위 닿을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뭐야~ 어떻게 된거냐?!"
"......"
이미 악마화 되어버린 타케루는 가볍게 무시한 뒤 열화대참도를 사용하여 혼세마왕을 공격했다. 일반 신켄 마루보다 더 능력이 업그레이드 된 열화대참도에서 무시무시한 화염과 불꽃이 마치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렸다. 혼세마왕은 재빨리 막을 방(防) 마법을 써서 막지만 열화대참도의 공격을 미처 완전히 전부 피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어떻게든 막기는 했으나 이어서 마구 연타 공격해오는 강한 필살기에 제대로 손을 쓸 수조차 없었다.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둘은 그때부터 일기토로 싸우기 시작하였다.
"타케루! 타케루!"
희미하게 들려온 누군가의 알 수 없는 목소리에 잠시 그 자리에 멈췄다. 일시적인 공격을 멈춘 타케루의 귀에서 어렴풋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따라 반응해보지만 이내 자신의 곁에서 귓가에 대고 악마의 달콤한 속삭임이 뭐가 선이고 악인지, 나는 누구인지 기억을 흐리게 만들었다. 흐릿해져온 기억은 악마의 속삭임으로 인해 다시 희뿌연 안개처럼 없어져 버렸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 무너져만 가 어둠이 가져가 버린 모든 빛이 사라졌다. 왠지 모를 감정 속에서 그리운듯한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누구였더라?
혼세마왕은 기억이라는 건 참 덧없다고 생각했다. 내 안의 내면에 존재하는 사람의 약한 부분을 건드려 자극하고 마침내 악의 화신으로 타락하게 만드는 마귀 마(魔) 마법, 만약 시전자보다 훨씬 강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혹시 악마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 마법에 극복할 수도 있을까?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현재 자신의 불안정한 잃어버린 3천년 전 기억의 파편 어딘가에는 분명 내면 속에 숨겨진 나의 약함도 있지 않았을까 대강 추측해볼 뿐이다. 아직 완전히 모든 기억을 찾은 건 아니지만 분명, 분명 그럴거라고 생각했다.
신켄 레드- 엄청 강해보일 것 같은 여유로운 모습을 하고서 타케루도 다를 바 없었다. 우리처럼 똑같이 고민하고 망설이며 어둠을 끌어안고 빛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 하지만 그는 생각보다 이런 자신에 비해 매우 강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고 그렇게 생각한 혼세마왕은 타케루에게 거의 일갈에 가까울만큼 크게 소리쳤다.
"신켄 레드- 정신 차려! 들리지 않는건가!"
"......"
"타케루-!!"
아무리 말해봤자 별 소용 없었다. 한번 어둠에 집어삼켜진 존재는 그 광기가 만연한 나락 속을 영원히 헤매이게 된다. 누군가 손을 뻗어 잡아주지도, 이끌어주지도 않는다. 혼자 텅 비어져 남겨진 공간 마냥 그곳에서 조금씩 미쳐가기 시작한 존재는 결국 어둠을 끌어안게 된다.
"타케루- 너는 내게 변하고 싶다고 말했다. 새로운 자신을 찾아서 받아들이고 앞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고.. 과거의 내가 어떻든 나는 나, 아닌가? 그렇다면!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고작 이딴 어둠 따위에 지지마! 약해지지 마라! 타케루-!!"
"크윽- 큭- 크악-"
또 다시 목소리가 들려온다. 강하게 강타한 것 같은 머리가 아파져와 버틸 수 없었다. 타케루의 내면 안에서 그는 누군가의 외침이 귓가에 웅웅거렸다. 흐릿해진 기억과 의식의 내부에서 다시금 잊혀졌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점점 선명해진 혼세마왕의 외침이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지금 왜 나는 여기 있지? 그만 이곳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마치 제 마음 속을 읽기라도 한듯 자신의 얼굴을 한 악마의 형체가 나타나 조용히 속삭였다.
"네가 정말 어둠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나에겐 지켜야 할 동료들과 해야만 할 사명이 있어!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도.."
"크하핫- 네가? 절대, 절대 그럴 수 있을 리 없어~ 봐- 지금도 네 안엔 그런 약한 마음이 있으니까 이렇게 어둠으로 가득 물들이고 있는걸~ 솔직하게 마음 비우면 편하다고?!"
"아냐! 나는, 나는.. 나는 지금까지 잘못 생각했던거야~ 시바 가의 주군으로서가 아니라 진짜 나를 찾겠다고- 처음부터 그리 생각한게 잘못이었어~ 정말 중요한 건 둘 다 어느 쪽이든 상관 없어! 전부 나는 나다. 난 절대 지지 않아~ 그러니까 너는 이제 내 안에서 사라져"
타케루의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곧 그의 표정에는 이제 망설이지 않겠다고, 자신의 약함을 이겨나가겠다는 결의가 가득찬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저와 똑같은 얼굴을 한 악마의 형체는 어느 새 온데간데 없고 서서히 사라진 기억이 돌아왔다. 그 후 혼세마왕과 일기토를 벌이다 밀려나 쓰러진 타케루가 천천히 눈을 뜨며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타케루?!"
"혼세.. 민폐를 끼쳐버렸군"
"무사했다면 그걸로 다행이군~ 어이,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우선 저 녀석부터 없애야겠는데- 일어설 수 있겠나?"
"물론-"
혼세마왕은 타케루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귀 마(魔) 마법이 풀려 무사히 돌아온 타케루와 그가 다시 힘을 합쳐 이제 마지막 싸움으로 돌입했다. 파워 업한 상태에서 모지카라와 한자 마법의 상성이 섞여 각각 혼자였을 때보다 오히려 평소의 몇 배 이상 더 큰 최대의 힘을 발휘하였다.
반격하기 위해 새로운 한자 마법을 쓰려던 외도중이 최후의 일격을 날리는 두 사람의 화려한 합동 공격에 펑, 하고 커다란 불꽃이 터지면서 완전히 물리칠 수 있었다. 한참 지속되었던 싸움이 전부 끝이 났다. 타케루도 혼세마왕도 모두 가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잠시 후 신켄 레드에서 변신을 해제한 시바 타케루와 혼세마왕이 마주보고 섰다.
"솔직히 봉인된 기억 때문에 나는 누구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내게 과거가 어떻든 나는 변하지 않는다고 말해줘서 기뻤다."
"그래?"
"이제부터 난 잃어버린 3천 년 전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생각이다. 타케루는?"
"뭐, 일단 어쨌든 지금은 동료로 다니게 됐으니까 그 녀석들에게도 별 일 없었다고 상황 보고 하러 갈거야~ 그리고 난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신켄쟈로서 동료들과 함께 진짜 자신을 찾아나설거야~ 어떤 일이 닥쳐와도 앞으로 나아갈거고-"
"훗- 그런가~ 그럼 이렇게 우리들의 기묘한 인연도 이제 이것이 끝이겠군"
"응~ 하지만 유대가 계속 이어지는 한, 분명 어딘가에서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거야~ 분명-"
"그렇군"
타케루는 여전히 침착함을 잃지 않은 얼굴을 한 채 차분한 어조를 담아 말했다. 저마다 그렇게 말은 했으나 둘 중 아무도 먼저 걸음을 떼거나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대신 모두 나란히 서서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날 하늘은 너무나 맑고 청명한 푸른색을 띄고 있었다.
눈부신 햇살 사이로 새 하얀 구름이 두둥실 조그만 종이배처럼 흘러가는 절경이 펼쳐졌다. 그들은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계속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저 끝없이 넓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살풋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마음 속에 깃든 어둠을 끌어안은 빛이 반짝거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