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Vie en Rose
* 조금 늦었지만 05.14 로즈데이 기념 연성
* 로즈데이를 빙자한 꽃놀이 데이트 무언가
* 배경음악 / 아이즈원 - 라비앙로즈
저글러는 피식 웃었다. 저도 참, 한심하구나 싶어서 왠지 자꾸만 실없는 웃음이 나 입꼬리를 올려 작게 웃고 말았다. 지금 이 짓거릴 하고 있는 나도 나지만 그래서 이 상황이 퍽 웃겼다. 최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국 또 싸워버리고 말았는데 말이다. 별로 큰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어쩌다 보니 가이와 의견 차이가 맞지 않았을 뿐이다. 그때 일만 생각하면 확 짜증이 밀려왔다.
내가 진짜 두번 다신 네 녀석의 서포터를 하나 봐라! 라고 절대 안 한다며 이번에도 역시 말만 되내인다. 매번 그랬다. 왜 또 이러냐면 그래, 사건의 발단은 불과 바로 며칠 전이다. 이번 일은 꽤 처리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계속 쏟아져 나오는 괴수들 때문에 정신 없던 와중 오브는 다른 울트라맨의 힘을 빌린 형태의 기본폼으로는 턱없이 힘이 부족했다.
보다 더 강한 적이 나타나자 손에서 만들어낸 광륜으로 어떻게든 다들 버티고 있었으나 기어이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채 마침내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고 한다. 물론 자신은 건너건너 소식을 들었고 뉴 제너레이션즈 쪽에서 일러주어 알게 된 사실이었다. 어쨌든 울트라맨 오브로 변신하는 가이가 적의 공격에 더 버티지 못할 걸 알고 오브 오리진 형태로 폼 체인지를 했다는 것이다.
그 마저도 이번에 나타난 적은 훨씬 강했던 터라 처음에는 우세를 보였던 오브가 어느 순간 점점 밀리더니 다시 도로 열세가 되어버렸다. 힘이 떨어져간다고 느끼는게 곧 컬러 타이머가 반짝이며 불빛을 냈다. 더 이상 싸울 기력조차 완전 바닥이 나 이대로라면 정말 누구 하나는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될 즈음이 되어서야 겨우 전투를 멈췄다. 지금 현재는 호각으로 싸우긴 불리하니 잠시 힘을 충전한 뒤 싸우는 것이 유리했다.
마침 적 측에서도 아무런 별 일 없이 퇴각해버린 터라 우선 그러기로 하고 빛의 나라에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 후 다시 격전을 벌이러 갔을 땐 두명씩 나눠 팀을 이뤘다고 한다. 그리고 적의 무자비한 공격 앞에 제로는 정말 특단의 조치로 특별히 자신을 부른 것이다. 물론 혹시나 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미러 나이트를 통하여 미리 오브의 이야기로 귀띔을 해 저를 불러놓았던 거지만 하여튼──
"어이, 어이, 나는 울트라맨이 아니라고? 그런데 내가 대체 왜 그쪽의 사정에 끼지 않으면 안 되는거야?!"
"하는 수 없잖아? 다른 뉴 제너레이션즈의 울트라맨들도 그렇고 오브도 엄청 혼자서 무리하는 중이니까.. 게다가 계속 네 이름만 부르며 찾던걸"
그 녀석, 어지간히도 마음 약해졌나 보네.. 일단 가이가 위험하니까 급히 달려오긴 했다만 분위기는 심각한지 많이 악화된 것 같아보였다. 이럴 때 오브는 꼭 저 혼자만 뭔가 끌어안은 사람처럼 심각하게 구는 모습을 내가 과연 모를 줄 알았더냐? 저글러는 시선을 돌려 울트라맨 오브를 향해 바라보았고 그 직후 여전히 무리해버리는 녀석 때문에 순간 저글러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뭐, 뉴 제너레이션즈 측에서 직접 부탁까지 해올 정도니 어련하겠어, 라며 낮게 중얼거린 저글러가 가이, 그러니까 오브로 변신한 그에게 대뜸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야! 너 뭐하고 있냐? 그딴 식으로 할거면 울트라맨으로 변신하지마!"
"아니 왜 갑자기 오자마자 큰소리야? 큰소리긴.."
"내가 무리하지 말랬지? 또 그 옛날 버릇 나오는군~ 네가 그딴 식으로 행동하는데 내가 정말 화가 안 나게 생겼냐? 하아- 걱정해서 온 내가 바보다."
"쓸데없는 소릴 할거면 돌아가"
"이봐~ 뒤에 오잖아! 사리분별력 다 잊어버렸어?"
이미 무한마인으로 변신한 상태의 저글러가 오브의 뒷쪽으로 다가온 괴수 한마리를 날카로운 사심검으로 단숨에 확 그어 베어버렸다. 순식간의 일이다. 하지만 저글러는 단단히 화가 치밀어올랐다.
"너 하나도 안 변했네"
"버릇인 걸 어떡해"
"뭐? 제발 그 놈의 버릇이란 변명 대지마~ 좀 고쳐라"
"시비 걸지마라~ 네가 뭔데 자꾸 이래라 저래라 하는건데!"
"닥쳐!"
이렇게 저글러스 저글러가 쿠레나이 가이의 서포터 아닌 서포터가 되어버리긴 했으나 어찌저찌 번진 싸움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은 채 일파만파 커졌다. 공격하는 도중에서도 한사코 제 충고를 들어먹질 않길래 결국 두 사람은 마음이 맞든 안 맞든 적당히 끝만 낸 후 사소한 말 한마디조차 섞지 않았다. 마치 당연하다는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자리를 떠버렸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너무 심하게 대했던 것 같아 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 그 후로 몇 번인가 사과할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선뜻 먼저 나설 용기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해결되겠지, 그냥 대충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이 로즈데이라는 걸 깨닫고 나름 장미 꽃다발을 샀던 것이다. 심지어 가이도 저글러도 두 사람 모두 기념일 따윈 잘 챙기는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일단 어떻게 기회가 와서 그와 다시 만날 약속을 잡았으니까 지금 만나러 가는 길이다.
행성은 당연히 지구였고 약속 장소는 이 근처의 공원이었다. 5월 달의 꽃이 만발했다길래 그 까짓 거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꽃놀이를 어울러주러 가는 본인이 꽤 웃길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한 채 한참 걸어가던 저글러가 이윽고 공원에 이르러 가이와 약속한 장소로 도착하였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지 가이는 저 멀리서 손짓을 하며 저글러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은은한 미소를 지으면서 저도 같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렇게 서로 인사와 그동안의 안부를 나누며 마주본 두 사람이 선 공원 한가운데는 꽃놀이를 즐기러 모인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푸른 하늘에는 너무나 청명한 것이 아름다운 계절의 풍경이 펼쳐졌다. 반짝 빛을 내던 색채는 따뜻한 봄의 향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까 몇몇의 사람들은 반팔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대부분 의상이 얇은 편이었다. 이제 5월 중순쯤 다가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슬슬 더워지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워낙 5월 달의 봄의 기분이 좋았던 것일까, 어쩌다가 가이와 저글러는 잠깐 산책도 할 겸 나란히 발걸음의 보폭을 맞춰 공원을 걸었다. 주변은 온통 분홍빛, 노란빛, 주황빛, 빨간빛 등의 색깔이 저마다 아름답도록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어디선가 살랑살랑 불어오는 미풍과 함께 산뜻한 봄내음 가득한 이 기분이 좋아서 가이와 저글러는 잠시 눈을 감고서 그 향기에 젖어 취했다. 둘은 한참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서 있다가 이내 저글러가 먼저 눈을 뜨고 침묵을 깨뜨렸다.
"가이- 자, 받아~ 그, 뭐냐.. 오늘 로즈데이잖아~ 겸사겸사 사과의 의미도 담아서 주는거다?!"
"선물이야?"
"그렇다면 어쩔건데?"
"아, 맞아! 나도 너한테 줄 선물 있어"
"뭐야? 너도 준비했었어?"
"야~ 저글러- 나도 사과의 의미인거다? 오늘은 특별히 로즈데이라서 주는거라고-"
"누가 뭐래?"
가이는 자켓 주머니에서 무언가 하나 꺼냈다. 크기로 보나 당연히 감출 수 없는 꽃다발은 분명 아닐텐데 대체 뭘 준비했길래 조그만(중형 크기의) 상자였다. 의아한듯 고개를 갸웃거린 저글러는 가이가 내민 그것을 건네받았다.
새 하얀 색깔의 깔끔하고도 심플한 디자인으로 된 상자에는 붉은 천의 리본이 곱게 묶어져 있었다. 저글러는 약간의 두근거리는 설레임을 안은 채 상자에 매여진 붉은 리본 끈을 스륵 풀자 투명한 병이 하나 나와 그것을 꺼내 손에 들었다. 상자 안에 들어있던 건 다름 아닌 장미 향수였다.
"오~ 뭐야? 언제 이런 걸 샀대?"
"어때, 마음에 들어?"
"아, 완전이지!"
"뭐, 네가 좋다니까 다행이네"
저글러는 향수병의 뚜껑을 열어 향수를 뿌렸다. 코끝을 간질이는듯이 은은한 장미 향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향기 좋아"
"네 마음에 들 것 같은 거 찾느라 꽤 고생했다고? 그거 내가 엄청 하나하나 여러가질 알아보며 고른 거거든"
"생색내긴.. 잘 쓸께"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본 채 살풋 웃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휘이잉 하고 기분 좋은 산뜻한 바람이 불어와 그들의 뺨과 머리칼, 그리고 전신을 한번 휘감아 스쳐 지나갔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연분홍색의 꽃잎을 놀리기라도 하듯 완연한 녹음 가득 무성한 봄바람이 두 사람의 전신을 휘두른 채 장난을 걸었다. 그 위로 상냥하게 비추는 햇살이 꽃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면 그 자유로움을 따라 나폴나폴 함께 실려온 작은 꽃잎들이 마치 별 조각처럼 흩날렸고 차분하게 비추던 짙푸른 하늘을 수놓았다. 스쳐가는 바람에 이리저리 실려 저글러의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은 어떤 붉은 장미 꽃잎이 떨어지지 않고 딱 붙어있었다.
가이는 손을 들어 집어내 그것을 떼어냈다. 부드럽지만 연약한 꽃잎을 다른 데로 훅 날려보내주었다. 할 수만 있다면 새 빨간 장미처럼 지금 이 시간도 장밋빛에 취한 채 빨갛게 물들이고 싶은 기분이었다. 가이와 저글러는 옅은 미소를 살짝 머금은 채 다시 공원을 걸었다. 그들의 배경에는 그날, 투명한 하늘처럼 그렇게 유난히 싱그러운 배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