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ness of Lights
-쏟아지는 스포라이트 속에서-
프랑스의 동쪽 지방, 어느 한 작은 마을에서 마을 축제가 열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다니는 모습이 비친다. 그곳에서 우연히 마을 축제의 중심인 호수가 있는 광장에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젊은 두 청년이 서로 자신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 젊은 두 청년은 바로 클레르(Claire : 프랑스로 '맑은', '밝은'이란 뜻)와 시엘(Ciel : 하늘)이다. 그들은 10년동안 계속 함께해온 소꿉친구 사이이며 오늘 마을 축제에서 곧 열릴 오브제 (aube : 프랑스어로 '오브'는 [새벽]이라는 뜻)에 대해 담소를 나누며 떠들고 있었다. 이 앞으로 일어날 미래는 미처 알지 못한 채 누구보다 가장 즐거운 표정을 하였다.
1년에 한번씩 맞이하는 이 오브제는 5일동안 진행되는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새벽 축제로 이날은 새벽에 모두 모여 저마다 소원과 소망이 담긴 소원 종이에 적어 소원 나무에 매달아 놓는다. 오브제 때 자신의 소원을 소원 종이를 적어 매달은 뒤 축제 마지막 날 새벽이 되어 이를 실행하면 원하던 꿈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믿고 20대의 창창한 두 청년, 클레르와 시엘은 직접 행동해보길 결심한다.
두 사람에겐 오랫동안 간직해온 꿈이 있었다. 우연히 마을에 만나 같이 어울려 다니게 된 그들은 서로 나중에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인 '빛의 전사'가 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된 후 더욱 친하게 지내게 된다. 전설에 따르면 빛의 전사가 되기 위해선 엄청난 시련을 극복해야만 하는데 여기서 아득히 먼 곳에 존재하는 산기슭의 정상에서 빛의 자질을 가진 자를 시험하는 빛을 고리를 찾아 매번 꿈과 열정을 가진 청년들이 그곳을 방문한다. 누군가는 선택을 받고 또 누군가는 선택받지 못하는 그곳- 언젠가 그 꿈을 쫓아 달려가자고── 빛을 향해 나아가자고──
각각 소원을 적은 종이를 소원 나무에 매달은 후 큰 포부를 가진 두 사람은 누가 한명이 선택받지 못해도 원망하지 않고 기꺼이 축하와 응원을 해주자는 말을 하며 본격 빛의 전사가 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여러 시련과 마주하며 곧이어 그 장소에 도착한 클레르와 시엘- 자신들의 마을에서 5일동안 열리는 오브제의 마지막 날 새벽을 기다렸다가 산의 정상을 향해 힘든 사투를 하며 오른 그들이 드디어 정상과 마주한다. 하지만 빛의 고리에 선택받은 자는 클레르, 선택받지 못한 시엘은 크게 실망하지만 그의 서포터로서의 일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정반대 성격이었던 둘의 의견 차이로 인해 시엘은 이내 클레르의 곁을 떠나버린다.
그 후 시간이 많이 흘러 클레르는 혼자 빛의 전사로서 하나하나씩 악의 세력과 맞서 싸워가던 중 우연히 흑막을 알게 되는데 이 싸움의 최종보스는 바로 다름 아닌 2년 전에 잃어버린 소중한 친구, 악의 힘을 얻어 '어둠의 전사'가 되어서 돌아온 시엘과 다시 한번 조우하게 되고 피할 수 없는 운명 속에서 둘의 싸움이 시작된다.
▷ ▷ ▷ ▷
운명은 생각지도 못할만큼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어버린다. 도대체 왜? 라고 물어도 알지 못한다. 우리들도 이와 마찬가지인걸까? 누가 뒤에서 운명의 실을 조종하고 있는 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이따금씩 든다. 살아가는 의미라던가, 가이도 저글러도 두 사람 모두 은연 중에 그런 생각을 하였다. 그 이유를 찾아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서 그들은 오늘도 우주를 떠돌아다녔다. 각각 따로 행동하는 터라 두 사람은 한동안 전혀 만난 적 없었다. 가이가 오랜만에 저글러를 만나게 된 건 어쩌다가 우연히 다시 지구를 찾았을 때 일이었다.
예상 밖의 사람을 만난 것이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론 귀찮기도 하였다. 필시 가이 뿐만 아니라 저글러 쪽에서도 역시 그리 생각하던 차였다. 옆에 있으면 귀찮고 옆에 없으면 괜히 그리워지는 존재랄까- 되게 지겨운 인연이라며 저글러는 낮게 중얼거린 채 인상을 팍 찡그려댔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싶던 중 상대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저글러- 혹시 너도 이 티켓 받았어?"
"뭐?"
가이가 내민 손에서 조그만 티켓이 들러있었다. 아무래도 영화나 연극ㆍ뮤지컬 따위에 쓰이는 공연 티켓으로 보였다. ──느낌상 그랬다. 연극 티켓 치곤 조금 특이해보이긴 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까 자신한테 온 것과 좀 비슷해보여 수트 안 주머니에서 꺼내든 그가 이리저리 탐색하며 비교해보았다. '이거 완전 똑같은건데?' 저글러가 가이에게 티켓을 돌려주면서 말했다.
가이는 다소 의심스러워졌다. 어디서 났냐고 묻는 말에 저글러는 [신의 유희]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사용하며 그 표를 나누어주던 한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를 떠올리고 말을 전해주었다. '역시-' 가이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같은 일이 일어난듯 한데 도대체 그 기묘한 남자는 누구였는지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구 어딘가에 있다는 모양인데.. 저글러는 티켓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Catch your opera!]
티켓 위에는 까만 글씨로 '너의 오페라를 잡아라!'는 영어가 조금 휘갈긴 펜흘림체로 적혀있었다. 여기서 오페라는 해석하면 가극이라는 뜻이다. 무대 배우가 노래를 하며 연기하는, 즉 음악이 있는 연극의 한 장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왜 우리한테 있냐는 것이다. 그냥 단순한 초대인건가 싶었지만 그렇게 치부하고 넘기기엔 확실히 여러모로 너무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한번 알아볼래?"
"됐어~ 뭐하러-"
"혹시 또 모르잖아?"
사실 누구보다 가고 싶은 생각 만만이었다. 유혹까진 아니었지만 이미 문구에서부터 강렬하게 눈길이 끌려서 아닌 척하기에는 가이가 그걸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저렇게 얼굴이 훤히 티가 다 나는데 말이다. 확실히 사람을 혹하게 할만한 무언가가 있다. 티켓에는 친절하게도 조그맣게 주소가 적혀있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렇게 오게 된 극장, 저희들 말고도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왔다. 극장 안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홀 내부가 왠지 으시시한 기분이 들었다. 연극 상영을 앞둔 예정인지 의외로 몇몇의 인파가 꽤 몰렸다. 가이와 저글러를 포함하여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약 20명 남짓해 보이는 듯한 숫자였다.
가이와 저글러는 일단 맨 앞줄에서 4번째 중간 자리로 이동해 앉았다. 10분 정도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극장 안의 내부는 절반은 커녕 아예 반의 반도 오지 않았지만 상영은 곧 시작되는듯 진한 레드와인색의 커튼을 치며 갑자기 관객석을 은은하게 비추던 불빛이 확 꺼져버렸다. 역시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뭔가 음모가 있을거라 생각된 가이가 자리에서 탁 일어설 찰나, 보다 더 빨리 움직인 것은 저글러의 손이었다. 거의 낚아채듯 손목을 잡은게 불편했던지 그가 뿌리치려 했으나 보기 좋게 실패하였다.
"가만 있어봐~ 뭔가 있어"
"그러니까 내가-"
"제발 그 놈의 감정적인 태도 어떻게 좀 못하겠냐? 섣불리 나서서 좋을 거 없어~ 일단 지켜보자고?!"
"..... 알았어"
공연을 상영하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커튼이 서서히 걷혔다. 하지만 가극을 시작한 것은 아니고 무대 배우가 아닌 아까 티켓을 나눠주던 그 검은 정장의 남자였다. 앞줄부터 한명씩 대본을 건네받았다. 가이는 물론 저글러도 일단 대본을 집어들었다. 본 가극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라도 해주려는걸까- 왠지 모를 기묘한 기운을 흩뿌려대는 것이 정말 기분이 나빴다. 평소 가이에게 느끼는 기분 나쁨과 또 다른 느낌의 기분 나쁨이었는데 그건 아주 끔찍하게 최악이었다. 무어라 자세히 표현할 수 없지만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그런 느낌적인 기분이 저를 사로잡았다. 가이도 지금 그리 느끼고 있을까, 나와 같은 마음일까 싶었다.
이번에 공연될 가극의 이름은 「Darkness of Lights」라는 제목이었다. 직역하면 빛의 어둠이 된다. 온통 사방팔방 빛나는 빛이 가진 어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뻔한 내용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끌리는 이유는 뭘까? 저글러는 가만히 제 옆에 앉아있는 가이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앞에서 계속 설명하는 남자를 다시 응시하였다. 극의 줄거리와 짧막한 설명을 덧붙이고 말을 마친 남자를 보면서 저글러는 그만 기가 차고 말았다. 보통 때라면 이럴 때 혀를 찼을테지만 그럴 생각조차 나오지 않을만큼 너무 어이가 없어 멍하니 무대와 남자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윽고 불길한 예감은 왜 항상 틀리지 않는가!──
이야기는 간략하다. 프랑스의 동쪽 지방, 한 작은 마을에 살던 클레르와 시엘의 꿈과 열정으로 가득찬 내용이었는데 둘 사이는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오던 10년지기 소꿉친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1년에 한번 열리는 마을 축제인 오브제에서 소원 종이에 자신의 꿈이나 원하는 소망을 써서 소원 나무에 매단 뒤 5일동안 진행되는 축제의 마지막 날 새벽에 소원을 실제로 실행하면 정말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 같은 전설을 통해 실제로 많은 청년들이 빛의 고리를 찾았다가 누군가는 선택을 받고 또 누군가는 선택받지 못하고 잔인하게 꿈을 짓밟혀 반짝임을 잃어버린 채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굳은 의지를 믿고 빛의 전사가 되기 위해 여행한다.
온갖 시련을 극복하면서 도착 장소에 온 그들은 산 아래에서 머물며 오브제가 5일 날 밤이 되길 기다렸다가 새벽이 되었을 쯤 가파른 산기슭을 오른다. 잠시 후 정상에 이른 클레르와 시엘이 빛의 고리에 손을 뻗었으나 시엘은 선택받지 못하고 클레르만이 선택 받았다.
이후 서포터의 운명을 선택받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둘의 성격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절교를 선언한 채 떠나간 시엘이 2년 뒤 어둠의 전사가 되어 클레르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싸움에 뛰어들게 된다는 아주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이들을 둘러싼 결말은 결국 어둠에 물들인 한쪽이 그 죄의 댓가로 죽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부 중간 연기 내용은 자유롭게 각색하되, 클레르와 시엘이 검을 맞붙는 씬에서 배우가 둘 중 한명이 지면 자신 안의 반짝임과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게 될 거라는 무시무시한 게임을 걸고서 말이다.
"이걸 우리더러 연기하라고?"
"우리가 직접 무대 배우가 되서 가극을 연기한다라.. 그야말로 눈치 게임이군"
"이제 어쩔 셈이야?"
"해- 할거야~ 너도 도와"
"하아? 가이, 너 미쳤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말이 되니까 하는거지~ 어차피 너도 할 생각이었던 거 아니었어? 진짜 내부 음모가 있다면 그게 우리들이 나설 일 아냐?"
"그래서,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을 건데?"
"그야 당연히 내가 클레르인게 분명하잖아"
"내가 시엘이라고? 또, 또 이 패턴이지"
가이의 입에서 제 역할명을 들어버린 저글러가 발끈했다. 그는 씩씩거리며 분해 어쩔 줄 모르며 잔뜩 화를 내는 녀석을 적당히 모른 척 시선을 피한 채 무시해버렸다. 순서는 랜덤이었다. 왼쪽부터 앉아있는 자리가 번호 순서였다. 남자가 호명하는대로 번호를 부르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가극의 시작, 클레르와 시엘, 둘 사이의 운명을 건 게임 스타트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면 된다. 가이는 그거면 된다고 자기 암시를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으나 어째서 조금 떨리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었다. 랜덤이니만큼 언제 내 번호가 불릴지 몰라 더 긴장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5번의 순서가 지나갔다. 15번이라는 숫자가 외치자 쿠레나이 가이, 저글러스 저글러가 관객석에서 일어서서 천천히 무대 앞으로 향했다. 재미는 없지만 따분하진 않았다. 나름대로의 흥미는 있었기에 저글러는 굳이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하였다.
각본도 마음대로 각색할 수 있겠다, 이번 기회엔 반드시 가이 녀석의 콧대를 납작 꺽을 심산으로 대기실에서 의상을 갈아입었다. 그런 다음 가이는 오른쪽에서, 저글러는 왼쪽에서 무대 위로 올라섰다. 그는 가이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 어깨에 손을 툭 올렸다. 시작하기에 앞서 그가 귓가를 대고 살짝 코웃음을 치면서 속삭였다.
"이거, 클레르와 시엘 두 캐릭터 말야~ 너무 우리들 같지 않아?"
"그러게- 생각보다 엄청 감정이입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걸"
"그렇지? 그러니까 난 지금 여기서 너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진짜로 크게 상처 입도록 만들어버릴지도-"
"나도 말이지"
"자, 그럼 어디 한번 우리들의 가극을 시작해볼까~ Catch your opera!"
저글러는 그렇게 말하며 곧 외웠던 대본의 대사를 외치기 시작하였다. 익살스러운 대사와 표정, 몸짓, 그리고 스토리가 더욱 전개될수록 뜨거워진 세밀한 감정선, 완전히 클레르와 시엘이라는 캐릭터가 된 두명의 무대 배우, 극을 좀 더 극적인 분위기로 이끌어가는 음악과 연기의 합과 호흡이 소름돋을 정도로 매우 깊이 몰입해 있었다. 굳이 주변에서 누가 뭐라하지 않아도 그들은 알고 있다. 빛을 동경해 하늘 전체를 가지고 싶었던 자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 이 잔혹한 결말의 댓가까지도 모두──
열심히 중반을 달려 극의 후반부까지 이르렀다. 극의 마지막 부분인 이번 씬에서는 클레르와 시엘의 검이 부딪히는 싸움이다. 극의 내용은 비록 새드엔딩이나 그만큼 멋진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캐릭터의 마음을 대입해 연기하는 그들로선 조금 웃지 못할 것들이었다. 두 캐릭터의 이야기가 마치 꼭 우리들 같아서 다시 그날의 일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빛의 전사가 되기 위해 O-50 행성을 찾았고 빛의 고리에 선택받은 가이와 그렇지 못한 저글러, 자신이 맡은 캐릭터가 어쩐지 비슷한 운명을 그대로 걷고 있어서 서로 연기에 빠져들었다. 스테이지 주변에는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도, 정장을 입고 기묘한 티켓을 뿌려 초대한 남자도 없었다. 무대도 무대이지 않았다. 오직 허허벌판 위에서 검을 맞대고 있는 가이와 저글러, 클레르와 시엘의 모습이 겹쳐지듯 그저 오버랩 될 뿐이다.
「빛나고 있는걸까
그날로부터 잃어버린 내 마음은
텅 비어진 채인데 어째서
너만 빛이 되어야만 하는거야~ 클레르-」
「아아! 시엘- 날개가 있어도 날 수 없는 너
누구보다 가장 안타깝게 여기고 있어
하지만 마음 속의 어둠은 언젠가
어둠은 빛을 삼켜버릴 뿐이라는걸」
가극의 독주가 이어진다. 시엘의 선창으로 두 사람의 아리아가 울려퍼진다. 다시 노래를 뒤로 한 채 클레르는 ──가이의 오브 칼리버──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칼날에서 바람을 가르는 빛의 소리가 나는듯 했다. 시엘 역시 지고 있진 않았다. 그의 검이──저글러의 사심검── 휘익 휘두르는가 싶더니 금방 챙, 하는 소리가 허공에 크게 울렸다. 분명 처음에는 극중 캐릭터를 연기하며 열중했지만 어느 새 본인의 진심이 튀어나온 대사를 읊조렸다. 그 중에는 빛을 선택받고 안 받고를 떠나 은근한 개인적인 속마음도 내비쳤다.
"가이! 왜 그날, 날 붙잡지 않았어?!"
"뭐가!!"
"네 곁을 떠나갔을 때 사실은 은근 다시 붙잡아주길 원했다고!"
"나도 널 붙잡으려 했어!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그랬다고- 하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았어.. 선뜻 나설 용기가 없었단 말이야! 너한테는 고마움도 미안함도 많았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워! 네 녀석이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냐? 맨날 자기 이상대로 행동한답시고 충고하는 건 전부 무시하지, 네가 벌인 일, 내가 뒷수습한다고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
"네가 왜 서포터인 줄 알아? 너는 내 별이 무너질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관했어! 저글러- 너는 그 속죄에 대한 벌이야~ 그런 네 녀석이 빛이 될 자격이라는게 있어? 있냐고! 그게 네가 선택받지 못한 이유다! 적어도 자신의 잘못은 좀 알고 반성이나 하지 그래? 이 이기주의자! 위선자!"
"내가 왜 너를 따라나선 건데! 어째서 수천 년 동안 너와 함께 하기로 결심했는 줄 넌 모르지? 허구한 날 천날만날 이루지도 못할 이상 쫓겠다고 쇼를 한 인간이 타인의 마음을 알 리가 없지~ 관심 갖고 들여다보지 않으니까- 이기주의자에 위선자는 내가 아니라 너다. 가이! 그래도, 그래도, 난 다시 한번 더 네 서포터가 되고 싶었다고!!"
"거짓말-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긴.."
대화는 여기서 멈췄다. 어떻게든 극의 결말은 내야 하기에 가이는 다시 검을 들어 내질렀다. 그가 훅 휘둘러온 검에 밀러 쓰러진 저글러는 질끈 눈을 감았다. 원래라면 다크니스 오브 라이츠에서 이런 내용은 없다. 가이는 노려보다 천천히 심호흡을 한 뒤 검을 내렸다. '서포터까진 아니라도 예전처럼 다시 동료는 해줄래?' 눈물을 삼킨 클레르가 뒤돌아서서 말했다.
동시에 가이 본인의 진심이 담긴 말이기도 한 대사다. 힘겹게 숨을 토하며 내뱉은 문장에는 그의 본심이 은근히 베어있었다. 시엘이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클레르를 바라보았다. '빛과 어둠은 역시 서로 공존할 수 밖에 없는군' 그가 중얼거리듯 말하는 의미심장한 대사 역시 저글러의 마음이 살짝 들어간 말이다.
▷ ▷ ▷ ▷
무대의 막이 올랐다. 이로써 가극이 모두 끝이 났다. 정장을 입은 남자가 조용히 가이와 저글러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분명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묘하게 차가운 것 같으면서 차갑지 않은, 그러면서도 조금 차가운 느낌이 드는듯한 미소를 지었다. '무슨 짓이야! 왜 우리들을 휘말리게 만들었지?!' 하고 저글러가 그에게 나서려는 가이를 손으로 제지하면서 따지듯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예의바른 신사처럼 행동하며 박수를 친 뒤 이들을 향해 말했다.
"좋은 가극이로군요! 하지만 당신들을 휘말리게 한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죠~ 당신들이 제 극장에 들어온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결국 참지 못한 가이가 한마디하였다. 그렇지만 남자는 여전히 빙긋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음- 글쎄요.. 어쩌면 아마 그것도 모두 빛의 이끌림, 즉 운명이라는 거 아닐까요? 이 세계에는 우리도 알지 못하는 다양한 일들이 마법처럼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말을 마친 남자가 '오늘 신의 유희를 즐기기엔 좋은 날씨네요!'라며 저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를 따라 가이와 저글러도 가만히 하늘을 응시하였다. 여전히 변함없이 푸른 하늘이 무척 덧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문득 생각나 두 사람이 남자가 서 있는 방향을 쳐다봤을 땐 정장을 입은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에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아까의 오페라는 모두 거짓말이었을까? 하지만 결코 그게 한낱 꿈인 것 같진 않았다. 정말 알 수 없는 기묘한 하루였다. 남자가 사라진 그곳에는 그저 따스한 햇살만이 내리쬐고 있었다. 가이와 저글러는 그것이 왠지 쏟아지는 스포라이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