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촬물

그린 토파즈

シア 2020. 4. 26. 06:01

* 울트라맨 지드 본편 이후 시점 날조 

* 라이후쿠 중심 논컾 

* 소설 안에서 케이가 쓴 책 이름과 등장인물 설정은 모두 가상으로 지은 것입니다! 

* 소설 내 케이의 작품으로 등장하는 <전진 발큐리아>의 인물 이름 모티브 설정 

○ 이치토 리노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스 (유명 SF 소설가 이름에서 따온 애너그램) 

○ 단탈리온 - 책을 든 악마 

오랜만이었다. 한동안 도서관은 커녕, 서점조차 가지 않았다. 책을 읽어본지도 언제였을까, 이젠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갑자기 서점이 왜 그렇게 가고 싶었던걸까? 어느 순간 책이 너무 보고 싶어 필을 받아버린 이 기분은 뭘까? 정말 갑자기 지금 책이 그리워서 꼭 무언가 책을 하나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 라이하는 어쩔 수 없이 검술 연습을 그만두었다.

조심스레 목검을 내려놓은 뒤 옆을 둘러보니 울트라맨 지드, 지드로 변신하는 아사쿠라 리쿠의 집이자 비밀 아지트이기도 한 성운장에선 여전히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만이 그녀의 귀에 들려온다. 절대 소음은 아니지만 좀 들어주기 귀찮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저 충분히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로부터 1년이 지났다. 마치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 모두 거짓말처럼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아무 일 없는듯이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리쿠를 만나고 인간은 아니지만 그의 아버지, 타락한 울트라맨 베리알과 부딪혀가며 참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다. 싸우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추억들이 하나씩 하나씩 새롭게 다시 쌓여갔다. 

지난 6년동안 계속 가슴 깊이 품고 살아왔던 감정, 라이하는 오직 복수만을 위해 살아왔다. 눈을 감을 때 마다 그녀가 선명히 기억하는 것은 어릴 때 가족과 함께 등산을 가던 중 하필 괴수 스컬 고모라에 의한 습격을 당해 부모님을 잃었으니까 그럴만도 하다. 그렇게 만든 원인이 후쿠이데 케이, 전부 그 사람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좀 다를까 싶기도 하였다. 

아직도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케이와 맞붙었던 마지막 최종 결전을.. 라이하는 앞으로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처음부터 뭔가 수상한 점이 있을거라 추측은 했었으나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지구인이 아닌 스토롬 행성 사람인 외계인이고 악에 물들어 타락했으며 베리알의 부하였다. 평생 가도 절대 이해하지 못할거라 생각했다. 순간적인 괴로움에 버티지 못한 채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악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고작 한심하게 타락이나 해서 악행을 저지를 정도로 라이하한테 있어 케이는 최저, 최악의 사람이었다. 

죽을만큼 싫었고 증오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트라우마까진 아니었지만 라이하는 그날 이후 사람들을 만날 때 항상 저 사람의 성향이 어떠한가, 인간 관찰을 하게 된 관찰병이 생겨버렸다. 그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부모님과 함께 여느 가정처럼 평범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리쿠 일행들을 만났으니 이런 최악의 인생이라도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성운장 내부를 한번 두리번 둘러본 라이하가 이내 하얀 수건을 목에 걸고 도구 바구니를 든 채 욕실을 향했다. 일단 검술 연습을 했으니까 씻긴 씼어야 했다. 대충 옷을 벗은 뒤 커다란 수건을 몸에 두른 후 곧 샤워기를 튼 그녀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시원하게 촤악 내려오는 물줄기에 검은 흑발부터 발끝까지 젖어가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고요한 이 시간은 억눌린 감정을 모두 맡기는 시간이도 하다. 그렇게 몇 시간 씻고 나오자마자 라이하의 눈에 비친 것은 다름 아닌 가득 어질러진 성운장 안의 모습이었다. 

이젠 무슨, 아예 제 집 마냥 아무렇지 않게 들어와 사는 이가구리 레이토 씨, 뭐, 오늘 주말이라 회사에 출근하지는 않겠지만 굳이 자신의 딸인 마유를 데리고 와 여기서 리쿠, 페가와 함께 컵라면을 먹고 있는 중이다. 마유와 같이 공원 산책이라도 좀 하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참았다. 게다가 니코니코 보험회사, 아니 이젠 정체를 알았으니까 AIB 사람들이라고 해야겠지-

하여튼 지금 섀도우 성인 제나 씨와 아이자키 모아도 여기 와 있다. 뭔가 임무 중인건가? AIB는 범죄를 저지르는 우주인과 싸우는 지구 방위 조직으로 원래 우주의 치안 목적을 위해 결성된 외계인 대원들로 구성된 팀이다. 모아만이 유일한 지구인인 상황이고── 아니 근데 그럼 지금 한창 임무 수행하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왜 다들 모여서 이 난리인거야? 

"리쿠! 내가 청소한지 몇 시간 됐다고 벌써부터 주변이 엉망진창인거야? 레이토 씨- 제나 씨- 아이자키 씨- 이봐~ 페가도 그렇게 있지 말고 뭔가 말 좀 해봐!" 

"어,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어버려서.. 미안! 라이하-" 

"오늘 주말이고 해서 마유랑 같이 놀러왔어요. 헤헤-" 

"전 제나 선배랑 임무 중인데 잠시 리쿠 보러 들렀습니다!" 

"아, 뭐.. 진짜... 나 잠시 밖에 나갔다 올테니까 리쿠랑 페가가 뒷수습해놔~ 알았지?" 

"으응, 응! 잘 갔다 와" 

가디건을 챙겨입은 라이하가 떠들석한 성운장을 빠져나와 거리를 걸었다. 하루하루 즐거운 시간들 뿐이다. 소중한 사람들이 언제나 거리낌 없이 모이는 곳, 성운장은 이제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장소가 되었다. 

성운장에서 조금 더 걸으면 근처 상가들이 나타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번화가에는 다양한 움직임의 형태가 아주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틈에 비집고 들어간 라이하는 이윽고 어느 한 서점을 들렀다. 가게에 도착하여 입구의 문을 여니 도서관처럼 촤악 펼쳐진 수많은 책들이 책장에 딱딱 열을 맞추듯 잘 정리되어 꽂혀있었다.

천천히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책을 훑어보던 라이하는 문득 어떤 한 제목에 이끌러 집어들었다. 뭔가 소설 표지가 꼭 우주같은 느낌인 것이 마음에 들었는데 책의 제목은 <전진 발큐리아>, 부제는 '아름다운 녹색 별의 이야기'였다. 커다랗게 새겨진 제목 밑에 조그만 글씨체로 적혀있는 이 소설을 쓴 저자를 확인한 라이하는 책을 세게 꾹 쥐어잡았다. 

유명 인기 SF 소설가인 후쿠이데 케이의 이름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한자와 카타카나로 조합된 그것은 분명 틀림없이 케이의 것이었다. 표지 앞쪽의 책갈피에도 그의 사진과 싸인이 실러있었다. 라이하는 숨을 한번 들이쉰 뒤 내뱉었다. 천천히 종이를 넘긴다. 사락사락하는 종잇소리가 귀를 간질어왔다. 

케이가 죽기 전 유일하게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이다. 이제 앞으론 그의 신간이 나올 리 없을테니 더 이상 그의 소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마치 홀린듯 블랙홀처럼 빠져들어 케이의 책을 펼쳐든 후 마구 정신없이 글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어느 순간 깨달았을 땐 자신이 칠흑같은 우주의 공간 속에 들어와 있다는 걸 인지한 토바 라이하는 그곳에서 후쿠이데 케이를 보게 되었다. 



                           ▷  ▷  ▷  ▷ 


우주 저 멀리 밤하늘 별빛이 은은하게 반짝이는 은하 저편의 너머 아름다운 녹색 별의 프레지아 행성, 첫 페이지의 시작은 대강 이러했다. 우주 공간의 배경에 들어온 라이하는 마치 입체적인 4D처럼 생동감 있도록 느껴진 기분이 들었다. 라이하의 검은 눈동자 속에 지금보다 조금 더 과거의 후쿠이데 케이의 모습이 이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인 이치토 리노라는 소녀가 함께 두 사람이 하나로 겹쳐져 비쳐진다. 평범하고 조용한 일상적인 것들이 담겨졌다.

어느 날 다른 외계인들의 침략에 의해 멸망당한 프레지아 행성이 불에 타버려 지금도 여전히 불타오르는 아픔을 가진 리노가 우주의 평화를 위해 악의 세력과 싸워나간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몇 명의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을 만나 서로 손을 잡은 리노는 우주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행성들을 떠돌아다닌다. 그렇게 발큐리아가 된 소녀는 수많은 인연과 인연을 이어가며 따뜻한 마음을 되찾지만 여전히 리노를 향해 살며시 손길을 뻗어오는 악마의 유혹을 참지 못한 채 결국 악에 타락해 두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들어서고 말았다.

동료들은 절망하고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다치거나 죽은 자들이 많았으며 그 많던 동료들 중 살아남은 자는 불과 겨우 2~3명 남짓 할 뿐이었다. 책을 든 지식인 악마라 불리는 단탈리온의 심복이 된 이치토 리노의 최후는 마침내 결국 스스로 자신을 망쳐 무너지게 되었다. 비록 강한 힘을 얻었지만 한번 잘못된 길로 들어선 자의 최후답다면 최후다운 결말이다. 

라이하는 마지막 종이를 넘기며 이내 책을 덮었다. 역시 판타지 소설가다운 실력자인만큼 책의 내용은 전개도 빠르고 풀어내는 이야기도 재밌어서 자신도 모르게 책의 주인공이 되어 빠져들어갔다. 소설 안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들의 감정 이입을 하면서 울고 웃으며 라이하는 새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이것으로 알았다. 물론 책 내용에는 스토리의 극대화를 위해 조금 더 판타지적인 요소를 섞어넣기도 하고 일부러 과장된 내용도 일부 차용하여 넣었다. 하지만 라이하는 분명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인 이치토 리노의 과거라던가, 그런 아픈 과거를 갖고 있는 그녀를 타락시키기 위해 유혹하는 악마 단탈리온은 모두 작가 자신의 이야기였다. 이 둘의 관계 캐릭터성은 실제 케이 본인과 베리알의 모습을 교묘하게 살짝 빗대어 은유적으로 이 인물들에게 비유한 것이다. 

케이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건가? 이 원고를 쓰면서 어떤 생각을 했고 또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소설의 주인공인 리노한테 자기자신을 투영시켜 전하고 싶었던 말은 과연 무엇이었나, 어쩌면 자신을 알아달라고 외치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단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가족을 잃게 만든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검도를 익히고 무술을 단련해 언젠가 그와 마주하게 될 날이 오면 꼭 이기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하지만 리쿠네들과 만나면서 확실히 라이하는 변했다. 

리쿠의 상냥한 마음이, 미소가 저의 마음 속에서부터 그러지말라고 부드럽게 손을 잡는다. 그 상냥한 빛에 감싸인 채 라이하는 지금까지와 달리 조금 관점을 바꿔보기로 다짐했다. 시각을 달리하니 그제서야 계속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주변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복수를 그만두었다. 정확히는 그를 그렇게나 증오했던 마음을 버렸다. 얼마나 몇 번이고 계속 마음을 부딪히면서 케이의 진심을 알았으니까 그의 과오를 전부 용서하진 않았지만 대신 다소 연민과 동정이 들었다. 

아름답고 영롱한 녹빛으로 둘러쌓인 스토룸 행성의 인간이었던 케이, 아무 일 없이, 아무 잘못도 없는데 하루아침에 눈앞에서 자신이 살던 행성이 다른 외계 침략자들에 의해 불타고 멸망당해 살아갈 곳을 잃어버린 부당함을 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몇 번이나, 몇 번이나 괴로운 기억을 떠올릴 경험을 한 채라면 자신은 역시 현실을 도망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보통 사람들은 괴로운 일을 떠올리기 싫으니까 마주하기보다 회피해버리기 일쑤이기에 그건 절대 신이 아닌 평범한 인간인 자신 역시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하였다 정말 그렇게까지 정신적으로 멘탈이 몰리면 마음이 흔들려 이성 마저 무너져버리고 말테니까── 

그래도, 그래도 조금 다른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꼭 악에 타락하지 않아도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쿠이데 케이가 안 타락하면 오히려 그게 더 비정상 아닌가 싶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약함에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고 싶은 강함은 이윽고 왜곡된 관심의 감정으로 변한 아득한 기억 속에서 지배하던 환상이 덧없이 사라진다. 

툭, 투둑- 소설 책 위로 투명한 액체가 떨어진다. 눈물이다. 어랏? 어째서 눈물이 나는거지.. 손을 들어 재빨리 눈물을 훔친 라이하가 입술을 앙 다문 채 괜히 억지 웃음을 애써 지어본다. 


- 깊이 상처를 받아 버틸 수 없을 땐 도망쳐도 괜찮으니까 싸워줘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대사로 타인에게 말하는 리노의 외침이다. 라이하는 그 말이 왠지 오랫동안 길게 머릿 속을 자꾸 맴돌며 되내었다. 묘하게 여운이 남아서 그것은 자신의 다른 동료들한테 설령 괴롭더라도 살아남아 싸워라는 말일 수도 있고 또한 이 책을 보고 있는 독자들을 향해 말하는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다.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여러가지 시각으로 다양하게 해석할 여지가 있을 터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어 감정을 추스린 라이하는 이내 카운터로 가 자신이 고른 책을 계산하였다. 빛을 잃은 공허한 눈동자를 한 후쿠이데 케이의 생애 마지막 저서 <전진 발큐리아>, 라이하는 책이 담긴 종이가방을 든 채 서점을 나섰다. 문득 생각나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것은 언젠가 봤던 반짝반짝 빛나는 그린 토파즈처럼 그날 바라본 풍경은 진한 녹빛 환상으로 물들어 있었다. 



소녀는 다시 앞을 향해 전진한다. 발큐리아처럼.. 



토바 라이하가 처음으로 후쿠이데 케이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